비정형 사춘기 - 곽은영
너의 편지를 건조한 화장실에 내려놓고
나는 배꼽을 보며 묻는다
오늘 밤만은 온전히 너를 추억할 수 있겠구나
우리의 문법으로 걷기 위해서
신발 가득 철벅철벅 발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고인 채
아픈 줄도 몰랐고
다만 갈증이 있었지
더,
제발
마치 밤의 자식임을 처음 깨닫듯
달 없는 밤에 뿌린 순무처럼 쑥쑥 자라
더러운 머리칼과 찌든 쇠 냄새
화물열차의 먼지 흔들리는 등불의 욕설과 무표정
1명만 빼고 모두 경로를 이탈한 마라토너들 같은 시절
밤은 부끄러움을 가져가버리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모를 어둠을 주었지
위풍당당한 아버지의 다리는 바지의 트릭이었고
어머니의 다리는 등이 굽은 만큼 휘어져 있었다
흐르는 불빛이 다정하게 번지는 왼쪽 얼굴과
흐르는 불빛에 험하게 구겨진 오른쪽 얼굴의 밤들
싫어,
이런 감정
밟히는 것이 말똥이든 누군가의 연민이든
무작정 걷고 달려 마침내 어둠 속에서 네 손도 놓치고
내 목소리도 아득해 혼자 돌아와 밝아오는 새벽에 울고 말았지
양순해진 얼굴로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발을 가지런히 현관에 놓는 영악함
밤이 비로소 두 손의 부끄러움을 주었어
야옹야옹 문밖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를 못 들은 척
네가 손을 놓았다고 애써 덮으려 했던 그 밤
오늘 밤은 온전히 추억할 수 있겠구나
온통 하얗고 검고 붉었던 별들이 있었던 시절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