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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의 아이러니 - 진은영
멸치가 싫다
그것은 작고 비리고 시시하게 반짝인다
시를 쓰면서
멸치가 더 싫어졌다
안 먹겠다
절대 안 먹겠다
고집을 꺾으려고
어머니는 도시락 가득 고추장멸치볶음을 싸주셨다
그것은 밥과 몇 개의 유순한 계란말이 사이에 칸으로 막혀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항상 흩어져 있다
시인의 순결한 양식
그 흰 쌀밥에서 나는 숭고한 몸짓으로 붉은 멸치를 하나하나 골라내곤 했다
시민의 순결한 양식
그 붉은 쌀밥에서 나는 결연한 젓가락질로 하얘진 멸치를 골라내곤 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나는 거룩하고 순수한 음식에 대해
밥상머리에서 몇 달 간 떠들기 시작했다
문학과 정치, 영혼과 노동, 해방에 대하여, 뛰어넘을 수 없는 반찬 칸과 같은 생물들에 대하여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 결국 한 말씀 하셨습니다
"멸치도 안 먹는 년이 무슨 노동해방이냐"
그 말이 듣기 싫어 나는 멸치를 먹었다
멸치가 싫다, 기분상으로, 구조적으로
그것은 작고 비리고 문득, 반짝이지만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것
왜 멸치는 숭고한 맛이 아닌가
왜 멸치볶음은 죽어도 살아 있는가
이론상으로는, 가닿을 수 없다는 반찬 칸을 뛰어넘어 언제나 내 밥알을 물들이는가
왜 흔들리면서 뒤섞이는가
총체적으로 폼을 잡을 수 없다는 것
그 머나먼 폼
왜 이토록 숭고한 생선인가, 숭고한 젓가락질의 미학을 넘어서 숭고한가
멸치여, 그대여, 아예 도시락 뚜껑을 넘어 흩어져준다면,
밥알과 함께 쏟아져만 준다면
그 신비의 알리바이로 나는 영원토록 굶을 수 있었겠네
두 눈 속에 갇힌 사시(斜視)의 맑은 눈빛으로
다른 쪽의 눈동자를 그립게 흘겨보는 고독한 천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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