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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94호
2010.10.5 (음 8.28)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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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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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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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눈물이 있고, 행운에는 기쁨이 있고, 용맹에는 명예가 있으며, 야망에는 죽음이 있다.-세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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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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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샵
우리가 쓰는 말에는 고유어가 있고 외래어가 있다. 본디부터 있던 우리말이나 그 말들이 어우러져 새로 만들어진 말이 고유어이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서 우리말처럼 쓰이는 말이 외래어다. 하늘·땅·바다 등이 고유어이고, 피아노·텔레비전·택시 등이 외래어다. 우리말에서 한자어는 딱히 외래어라고 하기 어렵다. 쓰임의 역사가 길고, 우리가 만들어 쓰는 한자어도 있기 때문이다. 이숭녕 선생은 생전에 한자어를 준고유어라고 했다.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니다. 외국어를 받아들여 우리말로 삼은 이상, 그 말의 씀씀이는 더 이상 외국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변화가 있더라도 우리말 체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서울 강남의 고즈넉한 커피샵에서 만난 그녀는 톱스타와 아줌마의 양극단을 경험하고…”
스포츠지 기사에서 잘라온 구절이다. 외래어표기법 규정에 맞게 적으면 ‘커피샵’은 ‘커피숍’이다. 우리는 영어 단어 ‘shop’을 우리말로 받아들여 ‘숍’이란 이름으로 호적에 올렸다. 이 말의 본고장인 영국이나 미국에서 이 말의 발음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우리의 ‘숍’은 언제나 ‘숍’이다. 우리가 바꾸지 않는 이상.
그런데 문자 매체에서는 비교적 ‘커피숍’으로 바르게 적고 있지만, 전파 매체에서는 ‘커피샵’을 선호한다. 이런 말은 주로 본토 발음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퍼뜨리고 있다. 자기의 영어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탑텐’이 ‘톱텐’보다 반짝이는 말인가. 영어 실력 자랑하려다가 자칫 제 나라 말에 서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재욱/시인
주먹구구
손가락으로 꼽아서 하는 셈을 말한다. 예전에 구구단을 못 외운 사람은 주먹으로 구구셈을 따졌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구구셈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틀리기 쉽고 보는 사람은 믿음을 갖기 어렵다. 어림짐작으로 대충 하는 계산이라는 뜻을 갖게 됐다. 누가 계획성 없이 그저 대강 맞춰 무엇을 할 때 ‘주먹구구에 박 터진다.’고 한다.
조리다와 졸이다
음식의 국물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조리다’는 생선, 고기, 채소 등에 간이 스며들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생선을 맛있게 조렸다.’ 국물이 거의 없게 바짝 끓인다는 뜻을 가졌다. ‘졸이다’는 국물의 양이 적어지게 하는 데 목적을 둔다. ‘찌개 국물을 바특하게 졸였다.’ ‘졸이다’는 속을 태우다시피 초조해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뫼시어라
사극에서 "어서 안으로 뫼시어라" "공주마마를 뫼시고 오너라" "제가 뫼시겠습니다"와 같이 ''뫼시다''를 기본형으로 하는 말들이 종종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뫼시다''는 현행 표기법상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 '모시다'라고 써야 현대 어법에 맞다. '뫼시다'는 '모시다'의 옛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글을 쓸 때나 이야기를 할 때 "스승을 잘 뫼셔야 한다" "내일 부모를 뫼시고 오너라"처럼 '뫼시다'를 기본형으로 하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아마도 '뫼시다'를 '모시다'의 존칭으로 생각하고 그리 쓰는 것 같다. 그러나 '모시다'라는 말 자체가 웃어른이나 존경하는 이를 받드는 높임말이므로 "스승을 잘 모셔야 한다" "부모를 모시고 오너라"처럼 쓰는 것이 옳다. 사극에서 옛말을 살려 '뫼시다' 형태의 말을 쓰는 것은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까지 '뫼시다'를 쓰는 것은 올바른 언어생활이 아니다.
교환 / 교체
얼마 전 끝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한화 이글스를 꺾고 우승했다. 적절한 시기에 등판(登板)시킬 수 있는 투수가 많았다는 점도 삼성이 우승한 요인 중 하나다. 위기를 맞았을 때 투수를 교체하는데, 이 '투수 교체'를 '투수 교환'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이렇게 쓰지 않을 것이다.
'교체(交替)'와 '교환(交換)'은 어떻게 다를까. 교체는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사람이나 사물로 대신해 바꿈'을, 교환은 '서로 바꿈' '서로 주고받고 함'을 뜻한다. 둘 다 바꾼다는 의미이지만, 교체는 이미 있는 사물(사람)을 새로운 사물(사람)로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흔히 말하는 타이어 '교환'이나 엔진오일 '교환' 등은 잘못 쓰는 것이다. 가정에서 수명이 다한 건전지를 '교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타이어/엔진오일/건전지 '교체'라고 해야 옳다.
교환은 맞상대가 있어서 그것과 서로 맞바꾼다는 의미다. 그래서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 '예물을 교환'하는 것, 상대방과 물건을 맞바꾸는 '물물 교환', 전쟁 '포로 교환'을 '예물 교체'나 '물물 교체', '포로 교체'라고 하면 틀리는 것이다. 교체는 'change, replace'를, 교환은 'exchange'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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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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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송곳 - 서영미
폭풍인 줄 알았는데 안개였다. 신화처럼 왔다가 좀도둑처럼 떨고 있다. 뜨겁게 다가갈수록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지는, 한때는 위대한 빙탑이었다.
얼음송곳 속으로 영문 모를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들어왔다 나가며 또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건드릴수록 격하게 각을 세우는 얼음의 침묵. 사람을 만나면 이내 흉터를 가지라 했다. 막 아문 흉터 딱지 위에 얼음탑 쌓지 말라 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얼음송곳은 스스로 무너진다.
금이 간 거울 속, 아직도 웃고 있는 그리운 혐오. 섣부른 이별은 때론 치명적인 그리움이 된다. 네가 두고 간 오래된 향수병이 유치한 슬픔을 기억한다. 미끄러운 유리벽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고독한 향기 마지막 한 방울, 너의 몫까지, 떨고 있는 내 통점 부위에 뿌리겠다.
뼛속이 시리지만, 이제 더는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다.
너를 찌르려니 내가 먼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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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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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꼬리 - 이영지 - 새벽기도. 1518 -
눈썹이 나부끼자 나뭇잎 한들한들 말 담아 새겨놓고 꼬바닥 세운 다음 아침에 살갗에 나와 보고싶다 볼로록
더듬어 달싹이자 초록잎 살랑살랑 꺼내들며 꼬바박 지낸다음 날 아침 온 몸에 피어 그리웁다 오로록
분홍꽃 입두덩이 양볼에 웃음까지 두둑히 그려놓은 층층의 꽃잎의 새 그리움 아침바다는 시의 꼬리 볼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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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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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겨울 사람 - 석용원
희고 커다란 겨울 사람이 불을 쬡니다 혼자 논둑에 앉아서.
대야 모자를 쓰고 나뭇가지 안경을 끼고 솔잎 수염을 달고.
신나게 빙판을 달리는 아이들이 피워 둔 불 곁에서 혼자 한나절 외롭습니다.
노곤하게 몸이 풀리자 희고 커다란 겨울 사람은 자꾸자꾸 작아집니다.
어디선가 봄이 오는 소리 희고 작아진 겨울 사람은 아이들 몰래 사라졌습니다.
대야 모자와 나뭇가지 안경과 솔잎 수염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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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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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4장 꿈이 서린 계절의 회상을 위하여 -《scrap(그리운 1980년대)》
8월 3일 (금)
나리타 공항에서 "별송품이 도착했으니까 찾아가십시요"라는 전화가 걸려 와 전철을 타고 나리타까지 갔다 왔다. 굉장히 무더운 날이어서, 좌석에 앉아 있기만 해도 셔츠에 땀이 흥건히 배었다. 게세 전철에서 냉방 칸을 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매트 데니스의 노래 가사를 빌린다면, 정직한 중고차 중개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런데 그 별송품이라는 것이 보스턴에서 산 세면대와 수도꼭지였다. 그게 300달러나 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잔소리를 했더니, "어쩔 수 없잖아요, 아오야마에서 사면 세 배는 더 줘야 할 걸요"하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한마디로 반론을 제기할 수가 벗어서 괴롭다. 나도 중고 레코드 같은 것을 "디스트 유니온에서 사면 세 배는 더 비싸다구"하면서 열심히 사들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무더위 속을 뚫고 나리타 공항까지 갔다가 왔다. 별송품을 찾는 일은 익숙하지 않으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다. 우선 플라잉 타이거스 사무실까지 가는 게 어렵다. 도중에서 세 차례 정도 검문을 받는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받아 거기에다가 여러 가지를 기입한 뒤에 그것을 가지고 세관 사무실까지 가야 하는데, 바쁠 때는 항공회사 측이 제대로 서식 같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업자에 비해서 개인은 차별당한다. 그러고는 세관 사무실에서 탕탕 도장을 받고, 다음으로 항공 회사의 창고에 가서 짐을 검사소까지 직접 운반한다. 못뽐이 등을 사용하여 상자를 열고 체크를 받고 나서 다시 상자에 집어 넣고, 그것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약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세관 사람과 함께 상자를 열고 있으려니까, 다른 세관 사람이 뛰어와서, "구시켄이 금메달을 땄어요!"하고 외쳤다. 오늘은 권투 경기가 없는데 어떻게 지금 구시켄이 금메달을 딴 걸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 사람은 체조 선수란다. 권투 선수 구시켄과는 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8월 4일 (토)
나이를 먹으면 평일의 낮 동안 함께 놀아 줄 친구(특히 젊은 아가씨)가 없어져 버려서 크게 곤란을 겪는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들 평일의 낮 동안에는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하고는 잘 놀아 주지를 않는다.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전화를 걸어 보면 두세 명에 한 명쯤은 낮 동안의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서른 살이 넘으니까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나는 아는 아가씨와 점심 전에 만나서 점심 식사로 튀김이나 장어를 먹고, 두 시부터 시작하는 영화를 보고는, 영화관을 나와 천천히 산책을 하다가, 저녁때 바에서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 방식을 전부터 좋아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탓도 있고 해서, 밤늦게 하는 데이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홉 시경이 되면 나도 모르게 꾸뻑꾸뻑 좋거나 한다. 물론 데이트 상대는 아내라도 괜찮지만, 그녀는 장어도 튀김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영화에 대한 취미도 나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그런 건 다른 사람하고 가요"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해도 대낮부터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따금 혼자 하루 종일 풀에 있을 때가 있지만, 그것도 말짱 헛일이다. 카세트 테이프도 두세 시간 듣다 보면 지겹고, 그렇게 오래 수영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주위에는 쌍쌍들뿐이어서 굉장히 따분하다. 얼마 전에 예전의 여자 친구로부터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나서 때마침 전화가 걸려 왔길래 반가워서 "식사라도 하러 가자"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농담하지 말아요. 지금 셋째 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구요"하고 가볍게 거절했다. 자유업이라는 것도 그 나름대로 상당히 어렵다. 올림픽하고는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8월 5일 (일)
나는 일단은 자유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니까, 평일이든 주말이든 전혀 상관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일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미적미적하면서 매일 똑같은 날을 보내게 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고 누가 물으면, 갑자기 떠올릴 수가 없다. 일단 화·목·토가 쓰레기수거일, 월요일은 이발소가 쉬는 날이라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어서, 이것이 요일 망각증의 최후의 브레이트인 셈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자아, 오늘은 이발소에라도 가볼까?'하고 마음을 먹는 날은 언제나 월요일인 것이다. 그런 일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손해만 보는 성격인 것 같다. 나는 가는 데만 한 시간 반, 전철 요금으로 쳐서 630엔이 드는 센다가야에 있는 이발소에 가기 때문에, 만일 도착했을 때 이발소가 쉬면 굉장한 쇼크를 받는다. 그래서 어쨌든 월요일만큼은 이중으로 동그라미를 쳐놓고 조심을 하고 있다. 만일 이발소가 연중 무휴였다면, 나는 요일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왜 요일에 관해서만 쓰고 있느냐 하면,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풀로 수영을 하거 갔었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 기간중 일요일에 풀에서 수용하는 것은 야마노테센의 만원 전철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덱 체어를 빌리기 위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계속 덱 체어를 빌리는 값에 구애받는 것 같지만, 이곳(다카와 프린스)은 500엔이다. 밤에는 '온 선데이즈'에서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를 봤다. 오늘도 올림픽과의 접점은 없었다. 그래서-비단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하퍼에다 소다수를 섞어 네 잔을 마시고 맥주를 세 병 마셨다.
8월 6일 (월)
오늘은 호텔에서 잤기 때문에 처음으로 텔레비전의 올림픽 중계를 보았다.《넘버》지의 편집자 니시야마 요시키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화면에 비치지 않을까 하고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으나, 역시 보이지 않았다. 남의 일이지만, 그가 빽빽한 스케줄을 무릅쓰고 영화 <고스트버스터>를 볼 수 있었을지 걱정이 되었다. <고스트버스터>는 정말 재미있어서, 나는 두 번씩이나 봤다. 그런데, 내가 오늘 아침에 본 것은 여자 마라톤이었다. 지난 밤에 일찍 잔 탓으로, 8시 45분부터의 녹화 방송을 보았다. NHK의 아나운서가 존 베이노트와 그레테 와이츠를 섞어서 '존 와이츠'라고 외치는 것이 우스웠다. 이따금 텔레비전을 보면, 여러 가지 우스운 일이 있다. 가케후와 카니가 나오는 CF도 우스웠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아나운서는 "그린벨트에는 코럴 트리가 심어져 있습니다. 산호나무입니다"하고 설명했는데, 산호나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해가 가도록 설명한 게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아내는 나에게, "저기 선두에 선 여자의 어깻죽지에 삐져 나와있는 게 브래지어 끈이죠? 아까부터 마음에 걸렸는데"하고 질문했다. 그런 것을 나에게 물어 보면 곤란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여자 선수의 어깻죽지에서 끈이 보인다면, 브래지어나 뭐 그런 유사한 것의 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로스앤젤레스라고 해도 22구경 홀스터(역주:권총을 넣는 가죽 케이스)를 차고 마라톤에 출전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일일이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니까, 아내는 "뭔가 특수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하고 말했다. 여자 마라톤 주자가 브래지어 외에 뭔가 특수한 것을 유방에 감고 뛴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대답해 주었다. 브래지어 끈의 레이스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상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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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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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관련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먹고 있으며 먹히는 존재이다. 우리는 한쪽으론 얻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준다. 우리는 사과를 먹는다. 어느 날 사과나무는 우리의 육체를 먹을 것이다. 육체는 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를 먹고 있을 때 그대는 그대의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가 그 사과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그대의 후손들이 그대를 먹을 것이다. 모든 것은 관련되어 있다. 이 관련되어 있음에 도라는 말이 뜻하는 어떤 것이 있다.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상호의존 한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도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에고는 부조리하다. 부분들은 나를 말할 수 없다. 오직 전체만이 나를 말할 수 있다. 만일 부분들이 나를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단지 언어적 형식으로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부분들은 나를 주장하지 못한다. 그대가 실존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존재할 때 그대는 고통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대는 단절되어 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책임질 수 없다.
거짓된 인생
자신을 방어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만일 그대가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거짓말 투성이의 모습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전체가 거짓으로 뒤덮여 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고, 우파니샤드 철학에서는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붓다, 노자 등은 눈을 감고 내면으로 들어가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내면을 볼 때마다 거짓말이 줄지어 서 있기 때문에 그대는 내면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대가 살아온, 그대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가식해 온 거짓들을 본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려는 자는 모든 거짓들을 떨쳐 버려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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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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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9장. 다시 여는 내 인생
참기
화가 난다고 해서 곧바로 세상에 쏟아 놓지 마라. 일시의 분을 참으면 적어도 3일은 편안해진다. 오늘. 내일. 모레. 참아라. 분(화)이란 일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탈 것이 없으면 이내 꺼져 버리고 마는 불길과 같은 것으로서 잠시 참고 있으면 가라앉는다. 이처럼 분이 이는 시간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을 참지 못한 대가는 엄청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갖은 고생으로 얻어 놓은 인격과 명예가 몽땅 달아나고 만다. 욱 하는 성질로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위험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욱하는 사이에 살인도 저질러지고 평생의 후회거리도 만들어진다. 한 나라가 망하는 데는 전쟁이 제 1원인이고, 한 개인이 망하는 데는 분이 제1원인다. 평화를 버리고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는 데서 나라는 피폐되고, 참지 못하고 분을 곧바로 쏟아내는 데서 개인은 모든 것을 잃는다.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 젖소의 뱃속으로 들어간 풀이 우유가 될 시간 만큼만 참을성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라도 값진 인생을 엮어 갈 수 있다. 참을성이 부족한 것이야말로 인격의 중대한 결점이다. 잠시 참으면 수그러드는 분을 참지 못해서 인생에 두고 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어 놓고, 그 동안 얻어 놓은 인생의 가치(인격과 명예)를 잃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과오
궁지에 몰린 사람을 쫒지 마라. 그것은 그에게 죽음을 선택하라고 재촉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목숨을 내놓고 덤비는 자와 겨루면 둘 중에 어느 하나가 죽어야 한다. 평온한 벌집과 잊고 사는 과오(過誤)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이미 뉘우쳐서 마음 고쳐 먹은 자를 비방해서 이전의 과오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평온한 벌집을 건드리고 잠자고 있는 야수의 콧수염을 건드리는 것과 같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 상처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파헤쳐서 화를 자초하는 것은 어리석음 중의 어리석음이다. 아무리 화가 치밀어도 묻혀 있는 과오를 들춰서는 안 된다. 과거의 잘못을 겨우 묻어 두고 사는 자의 아픔을 건드리면 그 화살은 그것을 건드린 자에게 가장 먼저 날아든다. 아직도 자신을 과거 속의 인물로 취급하고 있는 데 대한 분풀이를, 또 깨끗이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오가 타인에 의해서 들춰질 때의 실망과 허탈감을 난폭한 행위를 함으로써 위로한다. 과거에 비록 잘못된 일을 많이 했을지라도 현재에 개과천선해서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온정을 베풀어 과오가 영원히 묻혀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당사자보다도 주위 사람들이 더 많이 다독거려 주고 보듬어 줄 때 그 과오는 재발되지 않고 안전하게 묻혀 있을 수 있다. 아픔을 안겨 주겠다는 어설픈 생각으로 평온히 잠들어 있는 과오를 파헤치면 둘 다 자멸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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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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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8. 개혁은 어려워라 - 트로이의 목마
야합, 또는 트로이의 목마
1993년 3월부터 그 뒤의 서너 달을 떠올리면 지금도 짜릿한 느낌이 든다. 바야흐로 30여 년의 군부 정권을 끝내고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선 때였다. 문민정부의 최고 지도자인 김영삼 대통령은 과감한 개혁 을 통해 이제까지의 낡은 한국을 새로운 한국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실제로 낡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고위 공무원들의 재산이 낱낱이 공개되었고, 직위를 이용해서 재산을 축적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던 부정한 관리들이 상당수 공직에서 쫓겨났다. 몇 억씩의 돈으로 별을 사고 팔았던 위세 좋던 장군들도 군복을 벗어야 했다. 쫓겨난 부패한 관리 대신에 새로 임명된 서울 시장이, 그린벨트 안에 있는 집을 허가 없이 고쳤다는, 낡은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이유로 6일만에 시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뿐만이랴. 군부 정권에 의해 불손.파괴분자들의 난동으로 매도되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투쟁으로 자리매김되었으며 더러운 돈이 오가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금융실명제도 실시되었다. 청와대의 점심상에 오른 칼국수는 또 얼마나 신선해 보였던가. 여차하면 한 대 후려갈길 기세로 이놈! 하고 눈을 부릅뜬 군사정권 밑에서 오랫동안 주눅들어 지내온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마치 의붓어미한테 온갖 구박을 받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옴으로써 오랜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는 듯한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아가서는 정의의 기사가 나타나 악독한 무리들을 쳐부수는 만화 영화를 볼 때의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 법보다는 돈, 양심보다는 권력, 성실히 일하며 흘리는 땀보다는 뇌물과 투기가 힘을 발휘했던 낡은 한국 에서 큰소리 치고 살았던 사람들-유식한 말로 기득권 계층이 그러했다. 낡은 한국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던 그들은 새로운 한국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영삼 대통령은 주로 그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다시피 김영삼 대통령은 3당합당을 통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김대통령 자신은 그것을 구국의 결단 이라 표현했지만 무혈 쿠데타 야합이라는 비난도 들끓었다. 어쨌거나 선가는 치러졌고 김영삼씨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영삼씨의 당선이 보수적인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은 것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 자리에 오른 김영삼씨는 그를 야합의 명수 라 비난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개혁정책을 천명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로선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격이요, 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언론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을 트로이의 목마라고 빗대어 표현했다. 트로이의 목마란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체를 숨기거나 위장한 채로 적진에 들어가 적을 함락시키는 스파이를 말한다. 당하는 쪽에서 보면 멋모르고 받아들였다가 그로 말미암아 큰 낭패를 당하게 되는 화근 덩어리를 일컫는다.
불화의 사과와 트로이 전쟁
트로이는 지금의 소아시아 터키 지역에 있던 왕국이었다. 그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쟁이 트로이 전쟁이고 10년에 걸친 그 긴 전쟁의 전말을 서사시로 기록한 것이 바로 호머의 <일리아드>이다. 트로이 전쟁은 아주 엉뚱한 데서 비롯되었다. 여신 테티스와 영웅 펠레우스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모든 신들이 빠짐없이 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상기한다면 잔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아 그러려니 여길 만도 하건만, 따돌림을 당한 데 양심을 품은 에리스 여신은 혼인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 중에 나타나 하객들사이에다 황금 사과를 한 알 던졌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세 여신, 즉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서로 그 사과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참을 입씨름 해도 결말이 나지 않자 세 여신은 제우스에게 판결을 내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제우스는 그런 골치 아픈 문제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다 산에 살고 있는, 파리스라는 잘생긴 양치기 청년에게 판결을 맡겼다. 여신들은 파리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각기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약속했다. 헤라는 부와 권력을, 아테나는 명예와 명성을, 아프로디테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노라고 했는데 이윽고 파리스가 선택한 것은 아프로디테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파리스는 사실은 트로이 왕가의 왕자였다. 어린 시절에 이 아이는 장차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 이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인 프리아모스 왕이 궁궐에서 내보내 양치기로 키운 것이었다. 게다가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주마고 약속한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이미 결혼한 여자였으니,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꾀어내 조국 트로이로 가 버렸다. 어이없이 오쟁이를 진 스파르타의 왕 멜넬라오스는 그리스의 모든 왕국에다 파발을 보내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예전에 약조된 바가 있어서였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으니 만큼 결혼하기 전 헬레네에게는 메넬라오스말고도 숱한 구혼자가 있었다. 그리스 전역에서 모여든 내노라하는 구혼자들은 헬레네가 자신들 중의 한 사람을 선택하기 전에 누가 선택을 받든 이후로 헬레네와 그 지아비에게 위험이 닥칠 경우 지체 없이 하나가 되어 도와주기 로 맹세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트로이를 공격할 막강한 그리스 연합군이 꾸려졌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는 메넬라오스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이 뽑혔다. 그 아래로는 그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무장인 아킬레우스, 슬기롭기로 이름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에 버금가는 장수 아이아스, 아킬레우스의 죽마고우인 파트로클로스 같은 영웅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에 맞서는 트로이 쪽의 진용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은 나이가 좀 들기는 했지만 옛부터 영명한 군주로 이름나 있었다. 또 그의 아들인 헥토르는 고대 작가들에게서 인간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인간 이라는 칭송을 받았을 정도로 덕과 용맹을 두루 갖춘 뛰어난 장수였다. 그외에도 아이네이아스, 데이포보스, 글라우코스, 사르페돈 같은 괄목할 만한 장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양 진영의 면면을 보면 알겠거니와 트로이 전쟁은 그야말로 뭇영웅들이 총출동한 대서사극이었다. 전쟁은 영웅들간의 혈전뿐 아니라 친구간의 의리, 지아비의 지순한 사랑, 희생 정신, 지략과 모험 등등에 얽힌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낳으며 10년간 계속되었다. 전쟁이 그렇듯 오래 간 것은 양쪽이 워낙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올림포스 신들의 탓도 적지 않았다. 이런 인연, 저런 사정으로 신들 또한 양편으로 나뉘어 전쟁의 흐름을 이리저리 뒤틀어댔던 것이다. 파리스의 부당한 심판에 승복할 수 엇었던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 편이었으며 아프로디테는 물론 트로이편이었다.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전쟁신 아레스는 트로이 편을 들었고 포세이돈은 그리스 편이었다. 아폴론과 제우스는 대체로 중립을 지켰으나 때로는 이쪽 저쪽을 번갈아가며 편드는 변덕을 부렸다. 그들은 때로는 예언자로 변신해 자기가 편드는 쪽의 사기를 북돋우기도 하고, 때로는 다 죽어가는 용사를 살려놓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하늘을 구름으로 가려 상대편을 골탕먹이기도 하며 전쟁이 간섭하였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를 비롯해 양편의 많은 장수들이 전사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끝나지 않고 있던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그리스군의 목마 전법이었다.
트로이를 함락시킨 목마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트로이가 계속 버티자 그리스군은 무력으로는 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참에 꾀많은 오디세우스가 한 가지 작전을 제안하고 의논 끝에 오디세우스의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이 났다. 그리스 군은 우선 선단의 일부를 철수시켜 가까운 섬에다 숨겨 놓았다. 그리고는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속을 무장한 장수들로 꽉 채웠다. 이어서 목마만 해변에 남겨둔 채, 나머지 그리스군도 각기 함선으로 돌아가 완전히 퇴각하는 척 했다. 트로이 군은 포위가 풀리고 선단이 항구를 떠나는 것을 보고 그리스 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 군의 퇴각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성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스 군이 남기고 간 목마는 당연히 트로이 사람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전리품이니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 무슨 흉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경계 해야 한다는 사람, 의견이 분분했다. 이때 포세이돈 신전의 신관인 라오콘이라는 사람이 음모가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며 목마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 그러자 신음소리 같은 게 났다. 사람들이 무언가 수상쩍다고 웅성대는 순간 저쪽에서 그리스 포로가 한 명 잡혀 왔다. 그는 자신은 시논이라는 사람인데 오디세우스의 미움을 사서 출항하는 함대에 타지 못하고 낙오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목마는 아테나 여신의 분노를 삭이기 위한 제물로 만든 것인데 그렇게 크게 만든 것은 만약 목마가 트로이 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트로이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 목마가 성안에 끌려 들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시논의 증언은 트로이인들로 하여금 그 기분 좋은 예언을 현실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때마침 불가사의한 사건까지 일어나 트로이인들의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의혹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바다에서 커다란 뱀이 두 마리 나타나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휘감아 죽여 버렸던 것이다. 뱀에게 휘감겨 끔찍하게 죽어가는 삼부자의 모습을 목격한 트로이인들은 신성한 목마를 모독한 라오콘을 벌하려고 신들이 뱀을 보낸 것이라 믿고는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날 밤 트로이 성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마셨다. 그러나 시논은 오디세우스가 만약을 위해 남겨 놓고 간 첩자였다. 그는 트로이 병사들이 모두 술에 곯아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목마의 뱃속에 신호를 보냈다. 목마 속에서 쏟아져 나온 장수들이 성문을 활짝 열어제치자 야음을 틈타 이미 성 앞까지 와 있던 그리스 군들이 성 안으로 들이닥쳤다. 성은 곧 불바다가 되었다. 배불리 먹고 잠에 곯아 떨어져 있던 트로이 군사와 백성들은 그리스 군의 창칼 아래 무참히 도륙되었다. 이로써 전쟁은 그리스 군의 승리로 끝났다.
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병법에서, 트로이의 목마 와 같은 위장 전술은 그 역사가 대단히 깊고 또 수법도 다양하다. 선물을 가장한 폭탄, 미인계, 거짓 정보 흘리기, 스파이 전술 등등이 모두 그에 속한다. 위장 전술이 널리 이용되는 까닭은 아마도 적의 헛점이나 급소를 파고듦으로써 피를 별로 흘리지 않고서도 큰 전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권.유비의 연합군과 조조의 군사가 맞붙은 삼국지의 적벽대전은 위장 전술의 백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조의 패배는 물고 물리는 위장 전술에서의 패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조는 적장 주유를 꾀러 장간을 세객으로 보내는 꾀를 쓴다. 하지만 주유는 오히려 장간을 역이용해 조조 진영의 뛰어난 두 지도자 채모.장윤이 자신의 첩자인 양 거짓 정보를 흘리고 조조는 그 계략에 속아 아까운 장수 둘을 제손으로 죽여 버린다. 그 뒤 조조는 다시 채중.채화 두 사람을 주유에게 거짓으로 항복시켜 적진을 탐지하려 하나 이번에도 주유는 그 둘을 역이용해 충신 황개를 조조에게 거짓 항복시키는 데 성공한다. 더욱이 방통까지 첩자로 보내 조조로 하여금 방통의 제안대로 연환계를 쓰게 만든다. 30∼50척의 배를 쇠사슬로 엮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서로 오갈 수 있게 하면 멀미를 막을 수 있어 수전에 유리하다는 소위 연환계로 말미암아 조조는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자초한다. 주유는 제갈공명이 일으킨 동남풍을 이용하여, 거짓 항복한 황개가 이끄는 스무 척의 화선을 앞세워 화공을 펼침으로써 조조의 막강한 수군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트로이의 목마나 적벽대전 이야기를 듣고 보면 위장 전술이라는게 퍽 깜찍하고 경제적인 전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신화나 전설, 영웅담 속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 산뜻하게 결말을 맺진 않았다. 법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힘있고 배경 든든한 사람들의 바람막이가 되는 현실에 의분을 느낀 많은 법관 지망생들이 늘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지켜주는 법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혀 왔다. 하지만 실제로 법관이 된 뒤에, 말하자면 트로이 성 안에 들어간 뒤에 젊은 시절의 그 의기를 올곧게 지켜낸 법관은 그리 흔치 않다. 그보다 트로이 쪽에 항복해 버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낡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학생운동에 뛰어든 아들딸을 보고 한국의 많은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해 왔다.
"너의 분노와 정의감은 이해한다. 하지만 학생 신분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니. 무의미한 희생이 있을 뿐이야. 열심히 공부해서 힘있는 자리에 올라선 뒤 네 뜻을 펼쳐라. 힘이 있어야 쇠를 고쳐도 고칠 거 아니냐."
분노와 정의감을 잠시 눅이고(목마가 되어), 국가의 정책을 좌우하거나 집행하는 힘있는 자리, 자신의 듯대로 사람을 부릴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트로이 성에 들어간 뒤), 그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변혁을 시작하라(성을 함락시키라)는 뜻이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는 이런 논리가 가진 함정을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정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한국을 만들자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으나 다리며 백화점이 어이없이 무너지고, 낡은 한국을 다스렸던 낡은 인물들이 그것봐라. 옛날이 좋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낡은 한국이라는 성은 신화 속의 트로이 성처럼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낱 간계로 무너지기엔 그 뿌리가 너무나 깊고 완강하기 때문이다. 비리 공무원 몇 명을 솎아낸다고 해서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뇌물과 촌지의 관행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진 않는다. 12·12를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낡은 한국에서 온갖 부당한 이듯을 누려온 사람들이 잘못했습니다 고 고개를 숙이진 않는다. 오히려 빈틈이 생긴 때마다 낡은 생각, 낡은 가치, 낡은 구조를 부활시키려 든다. 그들은 트로이 왕국의 군사나 백성들처럼 술 취한 채 잠들지 않는다.
개혁은 어렵다. 낡은 사회의 역사가 너무 오래기 때문이다. 개혁은 혼자 할 수 없다. 혼자 하려다간 낡은 사회의 구조 속에 자신마저 빠져 버린다. 트로이 성 안에 들어갔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항복해 버린 수많은 옛날의 젊은이 들처럼. 개혁은 진정으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의지와 힘을 하나로 묶어 밀고 나가는 것이다. 트로이를 함락시킨 것은 나무로 만든 목마가 아니라 그리스 연합군의 병사들이었다. 개혁을 밀고 나가는 힘은 근사한 수사나 멋있는 선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고난의 연대를 살아 오며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 속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나온다. 꼭 그 이 만큼, 꼭 그 넓이 만큼. 그 혈루의 대하는 섣부른 간계 따위로는 씻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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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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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자동차
한때 나에게는 교수이자 말을 너무 사랑하는 이웃이 하나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매일 아침 그는 차를 깨끗이 닦았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전시품 신세에 머물러 있을 뿐, 결코 그것을 길 위로 끌어내는 법이 업었다. 수년 동안 나는 그것을 지켜보았는데 매일 아침 그는 차를 닦고 광내느라고 많은 곤란을 겪곤 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같은 기차의 객실에서 만났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차에 무슨 고장이라도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밖으로 내놓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니 말이오. 언제나 당신의 차고 안에 그대로 놓여 있더군요."
그는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그것과 사랑에 빠졌어요. 나는 그것을 너무나 사랑해서 내가 만일 그것을 밖으로 끌어내면 무엇인가 잘못될까 봐 항상 걱정하고 있습니다. 사고나 긁히는 일 같은, 어떤 식으로든 무엇인가 잘못될 수는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 자동차, 말, 그물, 그것들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대는 그것들과 사랑에 빠질 수 있으나 그렇다면 그대는 결코 그것들을 사용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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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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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42. 상업도시의 발달과 도시문화 - 지폐 교자의 공인(1023년)
북송의 수도 변경의 도시생활을 그린 청명상하도를 보면, 사람들이 서로 몸을 부딪힐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왁자한 거리에서 도시민들의 활력이 가득 느껴진다. 또한 이를 소개한 맹원로의 동경몽화록 등은 변경의 활기찬 도시 모습을 다시금 우리에게 확인,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어떻게 마치 19세기인 양 착각을 일으킬 만큼 이와 같은 화려한 도시생활이 12세기 이전에 가능했던 것일까? 도시민들 중에는 부재지주, 사대부, 하급과료나 서리, 서숙의 교사, 상인 배우, 창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계층들이 존재하였을 터이다. 이제 도시는 당대까지의 정치 도시적 성격에서 탈피, 상업도시로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대에는 10만 호 이상의 대도시가 10여 곳에 불과하였으나, 북송대에는 40여 곳으로 늘어났으며, 전국 각지에는 시, 진이라고 불리는 중소 상업도시가 널리 출현하게 되었다. 당의 장안은 큰길로 반듯반듯하게 구획된 백 수십개의 방으로 나뉘어지고 방마다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 폐쇄적인 도시였다. 서민들에 대한 통제도 자심해서 서민들은 큰길을 향해서는 문을 열지 못하고 방문으로만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해가 진 후부터는 성문, 방문이 모두 폐쇄되었다. 상업활동은 동서에 설치된 두개의 구획, 즉 시로만 제한되어 있었으며, 역시 야간영업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송대, 1038년에는 방벽이 무너지고, 시의 제한은 없어졌다. 상점들이 성 안의 각 곳에 진출, 도로 양측에 즐비하게 되니, 성내 전체가 번화가로 변해버렸다. 각종 물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문상점가가 출현, 상인 조합인 행, 수공업자 조합이 작이 조직이 되었다. 야시장도 서서, 밤에도 찬란한 등불이 대낮과 같이 거리를 밝혔으며, 새벽에만 반짝 섰다 사라지는 도깨비 시장도 섰다. 성벽 밖에까지 인가가 넘쳐, 이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 바깥 둘레에 성벽을 쌓으니, 그 규모는 장안의 3배에 달했다. 도시의 구조는 완전히 개방되고, 도시민들의 생활은 보다 자유로워졌다. 시민들이 향유하는 각종의 서비스업이 출현하게 되었다. 와자라는 오락거리에는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 생겼고, 거리에는 야담, 마술, 곡예, 씨름, 연극 등 온갖 구경거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십 개의 음식점, 술집, 찻집이 즐비한 골목도 생겨났으며, 그중에는 수백 명의 창녀를 고용한 창녀를 고용한 요정도 있었다. 곳곳에는 각종 일용품이나 애완동물 외에도, 서적, 문방구류 등도 판매되고 있었다. 서적이 거리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 시기의 매우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 배경에는 당대 이후의 사설 서당과 서원의 증가, 특히 송대의 과거제의 확대와 인쇄술의 발달이 있었다. 송대에는 문화의 향유층이 보다 확대되고, 적어도 법적으로는 과거제도가 서민층에게 열려 있었던 것처럼 평등주의의 실현이 전대에 비해 진전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서민들 중에 그 어려운 한자를 터득한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을 것이고, 역시 문화의 주도층은 사대부층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와 희곡의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사가 널리 유행, 송대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한다. 서정시에서 유래하는 사는 도시의 찻집이나 주점 등에서 대중가요로 불려지게 되었다. 사는 음조에 따라 자유롭게 구사되며 구어체를 많이 사용했는데, 점차 문장가들의 천시로부터 벗어나, 소동파를 많이 사용했는데, 점차 문장가들의 천시로부터 벗어나, 소동파를 위시한 송대의 유명한 시인들이 적어도 약간의 사를 남기는 바가 되었다. 도시의 구란이라는 연예장에서는 잡극이 공연되기 시작, 고전연극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전문가수나 예인도 출현하였다. 지방의 소시장이나 촌사, 사묘 등지에서도 편력배우에 의한 연극이 출현, 농민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도시의 발달과 도시문화의 성장 토대는 당말 이래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던 경제의 성장에 있었다. 농업생산의 획기적인 발전과 지역적 분화는 전국적인 유통망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었다. 인구도 놀랄 만큼 증가하여 12세기 초에 중국의 인구는 처음으로 억대를 돌파하고 있었다. 특히 경제적 비중이 커진 강남의 인구증가는 두드러진 것이어서 남중국 대 북중국의 인구비율은 대략 6.5 대 3.5의 비율을 보이고 있었다. 인구의 증가,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중에서도 능력있는 구매자의 성장으로 이제 상품생산에 돌입한 각 분야의 생산물은 보다 광범한 수요자를 맞아 활발히 교환되었다. 상품도 소수 지배자의 사치품 단계에서 벗어나 좀더 일용적이고 대중적인 것으로 확산되었다. 여기에 대외무역의 획기적인 증대가 가세하니, 송대의 상업은 가히 상업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커다란 질적인 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북방의 유목민족과의 무역도 증가했지만, 해상무역로를 통한 아시아 각국과의 무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제 비단길은 서서히 전성기를 마감하고 해양무역이 개시, 광동 등 중국 남부에 대무역 도시를 탄생기켰다. 신라나 아라비아 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남해무역이 중국인들의 손에 장악되기 시작했으며, 대양항해에는 나침반이 사용되었다. 송대의 화폐는 무역로를 따라 일본에서 동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널리 발견되고 있다.
상업혁명은 화폐경제의 발달을 수반, 엄청난 금속화폐가 주조되기에 이르렀다. 당 현종 말기에 연간 30만 관의 동전이 주조되었으나, 송의 신종 대인 11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500만 관으로 폭증, 사상 최고의 수준에 달했다. 상업량이 증폭함에 따라 세계 최초의 지폐인 교자가 발행되는 등 유가증권의 발행도 촉진, 송대에는 역사상 최초로 화폐가 지배하는 경제에 도달했는데, 교자는 성도의 16대 부호들이 당시 사천 지방에서 통용되던 철전이 휴대에 불편한 점을 개선, 철전 대신 유통시 켰던 지폐다. 당국에서는 1023년 사천에 교자무를 설치하여 지폐를 흡수, 이를 공식화했다. 이밖에도 금은포, 전호 등의 금융기관이 나타났으며, 수도 변경에는 일종의 환전소가 생겨 상인들이 이곳에 현금을 넘기고 영권, 즉 수표를 받아간 다음, 다시 지방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주판도 발생, 계산기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현상들은 인플레를 야기하고 농촌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으며, 서양의 근대에서와 같이 독립된 시민 계층의 출현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행, 작 등 상공업 단체들도 도시행정에의 참여를 추구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국가에 의한 물자조달의 청부기관으로서의 측면을 강하게 띠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미 중국의 관료제도는 이 모든 변화를 탄력적으로 흡수할 만큼 고도의 수준에 달해 있었다. 오히려 중국정부는 국내상업의 수입과 대외무역의 관세 등을 추렴, 단단한 재정수입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상품화를 기초로 하는 도시문화의 성장 속에 여성들의 지위는 더욱 하락했다. 도시문화는 농촌에 비해 여성의 노동력이 덜 중요시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었고, 여성의 상품화가 진전, 창녀가 증가하고, 축첩의 제도가 널리 성행했던 반면, 과부의 재혼을 반대하는 사회의 관습이 강화되었다. 특히 상류층 사이에서 전족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족은 이미 오대의 남당에서 시작된 풍습으로 점차 확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병폐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전족이란 한참 뛰어놀 소녀 시절,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을 아래로 향하도록 꽁꽁 묶어두고 조그만 신에 고정, 기형적인 발을 만든 것이다. 이로써 여성의 발은 정상적인 발의 반 정도에서 성장을 멈추게 되고 뒤뚱거리며 겨우 걷게 되는데, 전족은 남성의 노리개로 전락한 여성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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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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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두드리며 골프는 치지만 - 鼓腹擊壤(고복격양) 鼓(두드릴 고) 腹(배 복) 擊(부딪칠 격) 壤(흙 양)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요(堯)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민심을 파악하고자 천한 옷을 입고 시내를 돌았을 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요임금은 거리에서 아이들이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조금 후에는, 한 노인이 무언가를 먹으면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鼓腹), 격양 놀이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노인은 "해가 뜨면 들에 밭을 갈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네.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농사지어 먹고 사니,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리오."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치가 잘 되어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요 임금은 흐뭇한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 왔다. 鼓腹은 부른 배를 두드리다 라는 뜻이다. 壤은 본시 나무로 만든 신발모양의 놀이 도구이며, 30~40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것을 서로 맞치는 놀이를 격양擊壤이라 했다. 따라서 鼓腹擊壤은 부른 배를 두드리며 양 치기 놀이를 하는 것 인데, 이는 곧 太平聖代(태평성대) 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저 잘 먹고 골프 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태평성대일 수는 없다. 鼓腹擊壤은 진정 마음까지 편안한 시대에라야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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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격양(鼓腹擊壤) - '태평성세를 즐김'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 《出典》'十八史略' 樂府詩集 擊壤歌
먼 옛날 중국에 성천자(聖天子)로 이름난 요(堯)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온 지도 어느덧 50년이 지났다. 하루하루를 태평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요 임금은 정말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미복(微服)을 하고 민정(民情)을 살펴보러 나갔다. 어느 네거리에 이르자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요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立我烝民(입아증민)] 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 [莫匪爾極(막비이극)]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不識不知(불식부지)] 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 [順帝之則(순제지칙)]
마음이 흐뭇해진 요 임금은 어느새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 그 곳에는 머리가 하얀 한 노인이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鼓腹]', 발로 '땅을 구르며[擊壤]'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日出而作 日入而息(일출이작 일입이식)]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耕田而食 鑿井而飮(경전이식 착정이음)]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요. [帝力何有于我哉(제력하유우아제)]
임금은 정말 기뻤다. 백성들이 아무 불만 없이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하고, 정치의 힘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정치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요 임금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동의어】격양지가(擊壤之歌), 격양가(擊壤歌)
격양 : 나무로 만든 신 모양의 ‘양(壤)’을 땅에 세워 놓고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양’을 던져서[擊] 맞추는 놀이라는 설과 ‘흙으로 만든 악기를 타는 일’이라는 설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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