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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8호 - 2024.10.18. 금요일(음력 : 9.16.)
angelo@nownforever.co.kr / 風文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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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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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이란 그 사회의 자신부족을 반영한다. - 포터 스튜어트(P.S.)(美 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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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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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이득’과 ‘개 좋아’
국어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접두사 ‘개-’의 뜻은 ‘야생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헛된, 쓸데없는, 정도가 심한’이다. 그러니 ‘개-’가 붙은 낱말을 좋은 뜻으로 쓰기는 어렵다. ‘개살구’나 ‘개떡’처럼 사물을 가리키는 말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언짢은 것’을 비유하는 말로 더 흔히 쓰이는 게 현실이다.
‘개이득’이라는 생소한 낱말을 접했을 때, 나는 이 말이 ‘개꿈’처럼 ‘헛된’을 뜻하는 ‘개-’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개이득’이 ‘큰 이득’임을 알고는 혼란스러웠지만, 이 말이 ‘개고생’처럼 ‘정도가 심한’을 뜻하는 ‘개-’가 붙어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개이득’과 ‘개고생’의 ‘개-’는 ‘일상의 정도가 넘어선’이란 의미를 공유하고 있으니까. 물론 부정적으로 쓰이던 ‘개-’가 긍정적인 뜻까지 포괄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이 또한 익숙해질 것이다. 접두사 ‘왕(王)-’은 ‘매우 큰’의 뜻으로 ‘왕소금’, ‘왕만두’ 등에 쓰이는 한편, ‘매우 심한’의 뜻으로 ‘왕고집’, ‘왕짜증’ 등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그러나 명사에 붙을 접두사가 ‘개 좋다, 개 급하다, 개 맛있다’ 등처럼 쓰인 표현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개고생’이 ‘개고생하다’로 쓰이는 현상과 대비하면, ‘개 힘들다’가 만들어진 정황은 짐작할 수 있다. ‘정도가 심한/매우 큰’이란 뜻의 접두사 ‘개-’가 서술어와 호응하면서 ‘매우, 무척’이란 뜻의 부사로 변한 것이다. ‘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말의 파괴일까? 언어 변화 이론에서는 낱말이 접사로 바뀌는 변화를 문법화로, 접사가 낱말로 바뀌는 변화는 어휘화로 설명한다. 파괴보다는 변화로 보는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유년은 [달게] 해입니다.
올해는 정유년(丁酉年)이다. 정유(丁酉)에서 정(丁)은 십간(十干)의 넷째로 붉은 색을 상징하고, 유(酉)는 십이지(十二支)의 열째로 닭을 상징한다. 그래서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다. 밝고 뜨거운 기운을 나타내는 붉은 색의 상징과 부지런하게 새벽을 알리는 닭의 상징처럼 정유년에는 온 나라에 항상 밝은 기운이 넘치고 모두가 부지런히 뛰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닭의 해’는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 ‘닭의 해’를 흔히 [다긔해]나 [다게해]로 발음하기 쉬운데, 이는 틀린 발음이고 [달긔해]나 [달게해]가 바른 발음이다. 그 이유는 겹받침 ‘ㄺ’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하게 되면 받침 ‘ㄹ’과 ‘ㄱ’을 모두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으로’는 [다그로]가 아닌 [달그로]로 발음하고 ‘닭을’은 [다글]이 아닌 [달글]로 발음하며 ‘닭이’는 [다기]가 아닌 [달기]로, ‘통닭을’은 [통다글]이 아닌 [통달글]로 발음한다.
그러나 겹받침 ‘ㄺ’ 뒤에 조사가 아닌 명사나 동사 등의 실질형태소가 올 경우에는 비록 모음으로 시작하더라도 받침 ‘ㄹ’과 ‘ㄱ’을 모두 발음하지 않고 ‘ㄺ’의 대표음인 ‘ㄱ’으로 발음해야 한다. 그래서 ‘닭 앞에’는 [달가페]가 아닌 [다가페]로 발음하고 ‘닭 위에’는 [달귀에]가 아닌 [다귀에]로 발음하며 ‘닭 우는’은 [달구는]이 아닌 [다구는]으로 발음한다.
또한 ‘닭’이 단독으로 쓰이거나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 쓰일 때에도 [닥]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닭’은 [닥]으로 발음하고 ‘닭도’는 [닥또]로 발음하며 ‘닭만’은 [닥만→당만]으로, ‘닭한테’는 [닥한테→다칸테]로 발음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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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은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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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마한 세상의 智慧(지혜) - 김수영
조고마한 세상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설운 일이다
그것은 내일이 되면 포탄이 되어서
輝煌(휘황)하게 날아가야 할 지혜이기 때문이다
원한이 솟는 가슴속에서 발사되는
포탄은 어두운 하늘을 날아간다
빛이 없는 둥근 하늘에서는
검은 포탄의 꾸부러진 곡성이
정신의 주변보다 더 간지러웁고
계곡을 스쳐서 돌아가는
악마의 안막같은
강물을 향하여
지극히 정확한 각도로 날아가는
포탄이
행복의 파편과 영광과 열도로써
목적을 이루게 되기 전에
승패의 차이를 계산할 줄 아는
포단의 이성이여
[너의 자결과 같은 맹렬한 자유가
여기있다]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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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 이해인
약속의 사슬로
나를 묶는다
조금씩 신음하며
닳아 가는 너
난초 같은 나의 세월
몰래 넘겨 보며
가늘게 한숨 쉬는
사랑의 무게
말없이 인사 건네며
시간을 감는다
나의 반려는
잠든 넋을 깨우는
약속의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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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11~15) - 이해인
봄꽃들의 축제 - 이해인
11
사람 사는 곳곳마다 교회도 많고, 사원도 많고, 그 안에서 바치는 기도의 종류도 많다. 서로 다른 성격의 종교들도 세상엔 너무 많다. 그래도 평화보다는 분열이 잦고, 역사 안에서 종교인들끼리의 싸움이 많은 경우 전쟁의 원인이 되어 왔으며, 이러한 전쟁은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진리조차 독선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고 죽음을 불러오는 세상이라면 하느님도, 부처님도, 마호메트도 오고 싶지 않으시겠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12
중부지방에 내린 큰비로 집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지금 내가 있는 곳엔 햇볕이 쨍쨍하니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다른 이의 몸과 마음이 아픈 걸 빤히 보면서도 내가 아프지 않으면 그저 겉도는 동정을 할 뿐 깊이 실감하지 못하는,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식량의 위협을 받는 북한 동포들의 소식을 들어도 그저 냉랭하기만 한 나를 반성하며 오늘은 다락방에서 혼자 울었다.
13
“언니가 무얼 알아? 뭐니뭐니 해도 여자는 아이를 낳아 키워 봐야 철도 들고 인생을 아는 거라구.”
불쑥 전화를 걸어 내게 힘주어 말하는 동생에게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그래, 그건 나도 알어. 그러니 이제 어쩌란 말이니?” 라고 대꾸해도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그래도 힘들고 괴로운 일만 생기면 제일 먼저 내게 전화를 걸어 “언니야?` 언니는 어쨌든 나보다 하느님 가까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급히 기도 좀 해주라. 알았지? 나중에 한턱 낼게. 꼭이야” 라고 한다. 살아갈수록 결혼도, 인생도 사실은 별것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언니는 가장 좋은 몫을 택했으며, 수녀 되길 정말 잘했다고 곧잘 후렴처럼 덧붙이는 우리집 막내. 나보다 네살 아래지만 때로는 여러 면에서 언니 같기도 한 아우가 사랑스럽다.
14
“어디 아파요? 목소리가 힘이 없네.” “어때? 건강하지?” 이런 말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돌며 고마워지는 마음은 내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일까? “언제 한 번 다녀가지 그래.” “언제 좀 안 올 거야? 보고 싶은데...” 어쩌다 안부를 전해 오는 가까운 친지들의 목소리가 새삼 반갑고 포근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조금씩 더 외로움을 탄다는 말일까? 단순하고 평범한 안부의 말이 어떤 멋지고 교훈적인 말보다 훨씬 따뜻하고 깊은 여운을 남길 때가 많다. `불혹이란 자기 몫의 외로움을 겸허하게 견디는 일`이라고 고백한 어느 시인의 표현을 자주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15
세수하다 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지. 손질을 많이 해도 비가 새는 낡은 인간의 육신도 오래 쓰고 나면 고장나게 마련이다. 짧아지는 겨울 오후의 햇빛처럼 갈수록 짧아지는 나의 시간들.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자주 잊어버리는 건망증도 웃음으로 받아들이며 기쁘게 살자. 불안과 초조함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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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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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박유석
아이들이
도시로 다 떠난
산 속은
텅 비었다.
아무도
들어줄 아이 없는
산새들의 울음을
산울림이
혼자
들어주고 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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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 윤이현
토옥
튀겨 보고 싶은,
주욱
그어 보고 싶은,
와아
외쳐 보고 싶은,
푸웅덩
뛰어들고 싶은,
그러나
머언, 먼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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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외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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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 76 - 셰익스피어 / 이상섭 옮김
왜 나의 시는 참신한 치장도 없고
도무지 변화 무쌍할 줄 모르는가 ?
왜 유행따라 새로 고안된 방법과
기발한 표현에 유의할 줄을 모르는가 ?
왜 나는 한가지로 꼭 같은 것을 끄적이며
나의 시상(詩想)에게 눈에 익은 낡은 옷만 입혀
거의 말 마디마다 내 이름을 말하며
그 출생과 출생지를 빤히 보이는가 ?
오오, 기억하세요. 사랑하는 이여,
언제나 나는 당신 얘기만 써요.
당신과 사랑이 변함없는 게 내 주제랍니다.
그러므로 나의 최선은 옛말을 새로 옷 입혀
이미 썼던 것을 다시 쓰는 것입니다.
마치 태양이 매일 새롭고도 옛스럽듯이
내 사랑은 했던 얘기 그냥 하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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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감성사전
엑스트라
대본의 등장인물란에 이름 대신 복수 접미사나 숫자로 표기되는 배역. 연기에는 태연하고 인기에는 초연한 존재. 등장과 퇴장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살타
야구에서 공격자의 타구가 수비자의 손에 걸려 자기 팀의 뛰는 놈과 나는 놈을 모두 척살시켜 버리는 불상사를 말한다. 권투에서는 선수와 심판을 한꺼번에 때려눕히는 경우를 말하며 세상살이에서는 사랑과 우정을 한꺼번에 놓쳐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겹치는 불행 뒤에는 언제나 겹치는 행운이 뒤따른다. 만약 불행을 통해 자기를 반성하고 노력을 배가시킬 수만 있다면 누구든 불행이 그만한 크기의 행운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예비관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허수아비
농업에 이용되었던 인류 최초의 로보트
인신매매
황금에 눈이 뒤집힌 파렴치한들이 몇 푼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동족들을 악마에게 팔아 넘기는 행위. 또는 인간을 상품화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도모하는 모든 행위. 비천한 인간들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저질적 표현.
과대망상증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인식하거나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켜 인식하는 정신 병리학적 증세. 인류는 창세기 때부터 이 병을 앓아 왔다. 사탄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똑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말로 아담과 이브에게 과대망상증을 전염 시켰던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만으로도 아직까지 그 병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심증을 굳힏기에 충분하다.
가짜
가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진짜처럼 꾸며 놓은 가짜와 진자처럼 행세하는 가짜다. 꾸며 놓은 가짜에게 속았을 경우보다 행세하는 가짜에게 속았을 경우가 한결 비애감을 짙게 만든다. 전자는 물건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주지만 후자는 인간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제 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인격자.
걸레
인간들이 방이나 마루나 세간을 닦을 때 사용하는 헝겊으로 낡아서 못 쓰게 된 천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생활용품의 일종이다. 걸레는 다른 사물들에게 묻어있는 더러움을 닦아주기 위해서 자신의 살갗을 찢는다. 대개의 인간들이 걸레들 더러워 하지만 현자들은 걸레에게서 부처의 마음을 배운다. 육안으로 보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더러운 오물이 산재해 있지만 심안으로 보면 그 자체로써 더 없이 아름다움을 스스로 알게 된다.
천재
수재를 능가하는 인재다. 뛰어난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고 예술을 창조한다. 그러나 천재는 요절한다. 천재는 사회를 수용할 수 있으나 사회가 천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천재의 죽음은 자살보다 타살에 가깝다.
새
저 세상에서건 이 세상에서건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새가 된다.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이 제일 먼저 새가 된다. 새가 되어 윤회의 길목에 날개를 접고 앉아 그리운 이가 오기를 기다린다. 같은 그리움을 가진 영혼들끼리 같은 날개를 가진 새가 된다. 사람들은 엽총을 만들어 도처에서 새의 심장을 겨누지만 결국 살해당하는 것은 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그을음
빛의 죽은 미립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멸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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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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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신구 게임
스키조프레니아(정신 분열병) <-> 파라노이아(편집병, 망상증)니, 아름다움 <-> 돈이니 하는 여러 가지 구분 - 그런 걸 차별화라고 한단다 - 이 항간에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비단 일본에 한한 것은 아니다. 미국만 해도 힙(힙합. 뉴옥의 흑인들과 푸에르토리코인 젊은이들이 1980년대에 시작한 음악 혹은 춤. 랩, 브레이크 댄스등.) <-> 스퀘어(스퀘어 댄스. 포크 댄스의 일종. 여덞 명이 둘씩 짝을 지어, 상대를 차례차례 바꿔가며 사변형을 그리듯 추는 춤)라든가, 쿨 <-> 언쿨이라든가하는 구분이 지금껏 수없이 많았다.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그 나름의 재미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런 구분 리스트를 농담 또는 패러디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의 의식의 낙차 속에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에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인터뷰>라는 잡지가 있다. 발행인은 앤디 워홀이고, 광고가 유별나게 많다. 이 잡지는 판형이 너무 커서 늘 어디에 보관하면 좋을지 골치를 썩는데, 그건 뭐 이 글과는 관계 없는 일이다. 며칠 전 이 <인터뷰>지를 일고 있으려니 '지금, 무엇이 세련된 것인가'라는 칼럼이 실려 있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요컨대 다양한 세상사를 '뒤쳐졌다'와 '앞서간다'로 나누어 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다. 와타나베 카즈히로(히로시마 태생,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씨의 선별 시스템을 차용하자면 신과 구가 된다. 미국 풍속의 최첨단에 있는 일이라 개중에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항목도 있지만, 일단 아는 것만 쭉 열거해 본다. 앞이 구이고 뒤가 산이다.
마리화나 -> 아스피린
습관성 마약 -> 정사
NY 양키즈 -> NY 메츠
<배니티 페어>지 -> <애틀랜틱>지
레게(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확산된 자마이카의 팝 음악) -> 메렌게(도미니카의 경음악. 초기에는 민속 악기를 위주로 한 소박한 것이었는데, 1970년대 이후 섹스폰이 첨가되면서 댄스 음악으로 각광을 받았다.) (아, 그립다)
쿨 -> 민감함
클럽 -> 레스토랑
일본풍 -> 타이풍
영국 -> 독일
조깅 -> 팀 스포츠
인디애나 존스의 소프트 모자 -> 야구 모자
팜 비치 -> 마이애미 비치(이유는 잘 모르겠다)
댄스 -> 오페라
노먼 메일러 -> 고어 비다르
록 콘서트 -> 오픈 브로드웨이
뉴욕 타임즈 -> 월 스트리트 저널
다이어트 -> 미식
로렉스 -> 스워치(스위스제 싸구려 시계)
...는 식이다. 이 중에는 그럴 법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무슨 얘긴지, 대체 이게 뭐야 싶은 것도 있다. 마리화나나 코카인은 사양하고 아스피린을 먹으며, 클래시컬한 사랑에 빠져서는 월 스트리트 저널(다소 경제 신문에 가깝다)을 읽고, 오페라를 관람하러 다니면서 뉴욕 메츠를 응원하는게 지금 뉴욕의 선직적 신 인사의 모습인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로 어제까지 디스코테크에 들락날락거리던 인간이 하루 아침에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마적>을 보러 가거나, 어제까지 매일 아침 10킬로미터를 조깅하던 사람이 갑자기 수구팀에 들어갈 것인가 하면,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낡은 것이라 해도 좋은 것은 좋고, 새로운 것이라 해도 싫은 것은 싫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 감각이다. 더구나 이런 리스트는 하늘에 뜬 구름과 같은 것으로, 올려다 볼 때마다 그 모양새가 변해 있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그렇긴 하나 애당초 썼듯이 이런 류는 게임으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다. 예를 들면 나는 산토리 맥주를 마시며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응원하고 있는데, 이런 사항 역시 내 멋대로 신구 리스트로 만들 수 있다.
기린 맥주 -> 산토리 맥주
요미우리 자이언트 -> 야쿠르트 스왈로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치요다선 -> 긴자선
버섯 -> 순나물
햄버거 -> 튀긴 두부
BMW -> 도요페트 크라운
...하고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다. 딱히 이 리스트에 근거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저 거기에 생각이 미쳤을 뿐이다. 긴자선은 깜빡하고 불이 나가는 점이 좋고, 순나물은 버섯보다 맛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아름다운 여성은 도요페트 크라운을 몰고 다니고,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오노두부집'은 튀긴 두부가 일품이다. 그런 정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목록을 작성해 보면, 자신이 제법 첨단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니 참 묘한 일이다. 한 번 하기 시작했다 하면 버릇이 될 것만 같다. 세상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이런 리스트를 제멋대로 만들어, '아니, 아직도 계란 덮밥 먹어? 이제부터는 튀김 덮밥 시대라구'라든가, '워드 프로세서? 뭘 모르시네. 지금은 잠자리표 연필이 제일 멋있다니까'라는 등 자신을 갖고 저 하고 싶은대로 살기 시작한다면, 제법 흥미로울 듯하다.
- 기린 맥주를 나쁘게 얘기했는데, 그 다음에 나온 청색 라벨은 나도 제법 좋아합니다. 기린 맥주에 종사하는 분들, 미안합니다. 극단적인 얘기, 거품이 있으면 그걸로 족한 면도 없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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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사회/문화/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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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로베르토 리돌피
마카아벨리 평전 - 제23장 결말 2/2
로마와 메디치 교황의 파멸이 피렌체에서 메디치 정권의 와해로 이어진 것은 필연이었다. 모든 그리스도교도와 모든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에 공포를 안겨다준 이 소식은 느지막이 11일이 되어서야 전해졌다. 그리고 피렌체인들은 이러한 공포 속에서도 곧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인지를 생각하였다. 16일 정무궁에 모인 8인집행위원회는 사보나롤라 체제하에 있었던 대평의회를 부활시키고, 아울러 두 명의 메디치 가 젊은이는 사적인 시민의 위치로 남게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사태는 결말이 지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피렌체 사람들은 매를 둥지에 가둬두는 것으로 안전함을 느기지 못했다. 곧 질시와 의혹, 수군거림과 소문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자신들이 안전과 도시의 평화를 위하여 메디치 가가 떠나주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17일, 그들은 경의도 적의도 보이지 않는 군중들 사이를 지나 망명길에 오름으로써 스스로가 민중의 뜻을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교황은 자신이 그 같은 곤경에 빠져들었음을 이후에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마치 그것에 스스로 동의한 양 행동하였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이를 두고, 교황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무슨 선심이라도 쓴 양했다며 그를 조롱하게 될 것이다. 소데리니에 비해 마키아벨리에게 더 이익을 준 바도 없었고 더욱이 그 스스로 훨씬 더 바보짓만 골라서 했던 클레멘테 7세가 마키아벨리로부터 좋은 말을 듣기란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마키아벨리는 교황의 일을 돕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귀차르디니와 함께 브라차노까지 갔는데, 그것은 역시 사절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5월 19일, 총감독관 친구는 브라차노에서 정권이 바뀐 소식을 들었다. 곧 이어서 오르비에토 입성을 앞두고 (로마에 대한 그 무시무시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하나의 지진이 훑고 간 후 다시금 들이닥친 또 하나의 여진인 셈이었는데, 두 사람은 비록 한 배에 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소식을 듣고는 서로 전혀 다른 마음과 생각에 잠겼다. 마키아벨리는 즉시 친구에게 피렌체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친구는 그것을 허락하였다. 아니 더 나아가 그는 마키아벨리를 돕고자 자신이 8인집행위원회 앞으로 보낸 21일자 편지의 부본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 편지의 내용인즉, 그는 교황의 통치로부터 해방된 공화국 시민들을 방해할 생각이 없으나, 스스로는 (그는 이렇게 썼다) (제 군주의 사람으로서 그냥 이 군대와 함께 여기 있겠으니) 이를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또한 마키아벨리 역시 똑같은 이유로 교황의 사람들을 방해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마키아벨리는 동일한 임무를 띠고 교황 군 진영에 와 있었던 프란체스코 반디니와 함께 안드레아 도리아의 함대가 있는 치비타베키아로 갔다. 그곳에서 다음날인 5월 22일, 그는 제독과 상의를 끝낸 후, 자신에게 이에 대한 임무를 주었던 총감독관 앞으로 상의 결과를 보고하는 편지를 썼다. 그의 (사절 생활) 중에 마지막으로 쓴 이 편지에서 그의 서명은 (딱 한번!) 프란체스코 반디니의 이름 위에 씌어져 있다. 이어서 그는 배에 올라 리보르노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피사 전쟁기 동안 청명한 날씨 속에서 수없이 지나쳤던 그 가로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그는 마음으로는 공화주의자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교황과 메디치 정부를 위해 진력하였다. 그리하여 조국이 자유 공화국으로 바뀐 지금, 그는 또다시 패자의 편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주위에 거느린 사람도 별로 없이 깊은 상념에 잠긴 채, 한때 즐거웠던 시골 들녘과 마을들을 지나 순리와 자유로 되돌아간 피렌체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는 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유를 너무나도 사랑하였다.) 무엇보다 그에게 후회스러운 일은, 나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조금도 애정을 준 적이 없는 교황과 그 (메디치 군주들)과 일함으로서 스스로의 앞날을 막는 바람에, 이제 행운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진심을 다하여 자신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 정부 아래서 국가에 봉사하는 길마저 빼앗겨버린 점이었다. 그는 또한 그 스스로와 가족에 대한 생각들로 괴로워했으며, 그 중 오해 마지않던 무료함과 (가난으로 인한 멸시)를 되새기며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그는 언젠가 메쎄르 니차의 입을 빌려 내뱉었던 그 말들을 혼자 되풀이해서 중얼거렸으리라. (이곳에서 우리같이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개도 짖지 않는다.) 1512년에 정권이 바뀔 때만 해도 그는 아직 젊은 나이여서 한창 힘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이제 1527년의 정권 교체에서는 그는 늙고 지치고 좌절한 상태였다. 옛날 그때는 써주기만 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만큼) 기백으로 충만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아마 더 이상은 알베르가초에서 위인들의 혼령과 더불어 공부하던 그 기억에 끌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능력 한도내에서 가능한 모든 불멸의 저작들을 깡그리 토해 냈다는 느낌을 받앗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가 (나 여기 있노라!) 라고 말을 걸 만한 사람도 없었다. 이탈리아가 파멸되는 상황에서도 이제 더 이상 불러낼만한 구원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그에게, 메디치 가가 제거된 지금, 한 대 그들이 그로부터 빼앗아갓던 것, 서기국의 그 애정 어린 자리로 복귀하리라는 희망은 전혀 없었다. 그는 도시 돌아가는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고, 읍도파 일색인 새 정부가 마키아벨리란 인물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 경우 의심받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당시의 한 피렌체 사람의 말을 따르자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별히 자노비 부온델몬티와 뤼지 알라만니를 비롯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금 그 자리에 복귀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이 늙은 시인에게 한 가지만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는 사이, 그 역시 인간이었으므로, 6월 10일 그의 자리에 지금은 폐지된 8인집행위원회의 제1서기장으로 2년 간 봉직했던 프란체스코 타루지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또 한번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과거 메디치 정부는 공화 정부가 그에게 부여한 자리에 그를 그냥 두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공화 정부는 그의 옛 서기장을 다시 불러들이지 않고 오히려 메디치 정부가 선임했던 한 서기장을 그 자리에 재임명하엿다. 앞의 메디치 정부는 마키아벨리보다 니콜로 미켈로치라는 인물을, 뒤의 공화 정부는 프란체스코 타루지라는 인물을 더 선호했던 것이다.
한편, 다시 찾은 자유에 대한 환호성 속에, 길거리에서 서로 포옹하는 시민들도 눈에 띌 만큼 도시는 기쁨으로 가득 차 (거의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 (...)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위대한 시민, 미켈란젤로와 함께 단테 이후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그는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멸시당했다. 그가 메디치 가로부터 몇몇 보잘것없는 직위를 받았다는 사실 정도는 쉽사리 용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만든 그 행동 방식과 그 신랄한 말투와 그 거리낌없이 내보이는 결점으로 인해 용서받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의 (군주론) 때문에 그를 비워하였다. 부자에게는 (군주론)이 공작으로 하여금 그들이 재산을 모두 가로채려는, 빈자에게는 그들의 자유를 빼앗는 법을 가르치는 문서로 보였고, 읍도파에게 그는 이단으로 비쳤으며, 선인에게는 사악한 인물로, 악당에게는 자신들보다 더 악당이거나 더 능력 있는 인물로 생각되었으므로, 모두가 그를 미워하였다.) 부시니는 그렇게 썼다. 그는 심술궂고 악의로 가득찬 작가였으나, 적어도 이 말 속에는 그의 동향인에 대한 악의와 증오심이 일면이 충실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한숨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가 기억을 더듬었고, 한숨 사이로 간간히 교황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조롱의 말들을 힘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가 이미 늙고 인생이 별 기대를 가지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래도 자신과 이탈리아에 대한 최후의 희망으로 뙤약볕과 눈비를 마다 않고 말을 달렸던 마지막 시간들로 인한 혹사 때문에, 그는 이제 그만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최근의 그 쓰라린 고통을 겪은 후, 흔히 그러하듯이 마음의 병은 곧 육신의 병으로 이어졌다. 그의 비웃는 듯한 조소와 거만하게 보이는 외양 아래 깊숙이 자리한 그 열정적인 성격도 그의 상태를 호전시키지는 못하였다.
타루지의 임명 직후 병석에 누운 그는, 20일 자신이 평상시에 들던 약을 먹었다. 그가 어떤 병이든 걸렸다 하면 먹곤 하던 바로 그 유명한 환약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엾은 위인 니콜로에게는 자신이 그 시대의 군주와 장군들에게 내렸던 처방만큼이나 약효가 없었다. 사실 그 약들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곧 격심한 복통이 닥쳐왔고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어,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까지 생각될 정도였다. 주위에 그때까지 남아있던 몇 안되는 좋은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프란체스코 델 네로, 친절한 자노비 부온델몬티, 시인 뤼지 알라만니, 재능 있는 문인이자 훌륭한 시민이기까지 한 야코포 나르디, 또한 최근 조국의 해방에서 담당한 역할과 더불어, 이미 유서 깊은 가문과 부 덕분으로 자신에게 쏠리고 있던 선망과 질시를 한층 더 배가시킨 필리포 스트로치 등이 그들이었다.
병자는 마음의 고통과 창자를 뜯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때로는 이상한 쾌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는 아이들과 자신이 나라와, 그리고 국정의 상태가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논하는 행복함을 맛보게 될 메쎄르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를 생각했다. 그는 또 알베르가초의 서재와 정무궁이 사무실을 생각했다. 그곳에서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그의 것에 비하면 다만 무미건조할 뿐인 공한들을 쓰고 있을 터였다. 산 카쉬아노의 숲과 새잡이 그물도 생각났다. 그곳에서는 가을의 감미로운 안개 사이로 개똥지빠귀들이 다시 날아올 것이었다. 그에게는 아마 크고 작은 이 모든 것이 생각났을 것이며, 이제는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여인들과 생명에도 생각이 미쳤을 것이다. 주금을 생각하명, 때로는 견딜 수 없다가도 또 때로는 그거시 피난처이자 휴식처인 듯도 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병약함과 불행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마키아 Machia) 였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친구들과 더불어 자신의 불행을 웃어넘겼고, 스스로의 고통과 나아가 자신의 감정 자체에 반항하려 했을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누르면서, 웃고 농담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감히 죽음에 맞섬으로써 마치 자신의 마지막 영웅 조반니 데 메디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듯이 보였다.
그는 형편이 좋았던 옛날이나 별 다름 없이, 편안하게 자신이 꾼 어떤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그의 상상에서 나온 것일 뿐이었다. 그는 누더기를 걸치고 비쩍 말라 병약해 보이는 빈자의 무리들을 드문드문 보았다고 얘기하였다. 그가 그들에게 누구냐고 묻자, 자신들은 천국의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에 대해서는 성경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가난한 자는 축복받을지니 천국이 너희 것이라.) (마태복음 5장 3절-옮긴이) 그들이 사라지자, 왕이나 궁정의 예복을 입은 고상한 입성의 사람들 한떼가 나타났다. 그들은 진중히 국가사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플라톤, 플루타르코스, 타키투스를 비롯한 고대의 유명한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그가 새로이 나타난 이 사람들에게 누구냐고 묻자, 자신들은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인데 그 이유는 (이러한 종류의 지식이 신의 뜻에 어긋나기) (이 말의 정확한 전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로마서 곳곳에 나오는 오만함에 대한 바울의 경고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서 11장 20절, 12장 3절, 12장 16절 등을 볼 것-옮긴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 역시 사라지자, 그에게는 누구와 함께 있고 싶으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그는 대답하기를, 자신은 처음의 누더기를 걸친 무리들과 천국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고귀한 영혼들과 국가사를 논하며 지옥에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는 그 존재가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한 위대한 이야기꾼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키아벨 리가 (이 유명한 꿈)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채 조소하며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친구들이 떠나고 가족들만이 남자 홀로 생각에 잠겼으며, 조용히 스스로 임종에 대비하면서 (마테오 신부를 불러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고), 그리하여 신부는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그는 6얼 21일 세상을 떠났고, 그 유해는 22일 산타 크로체에 묻혔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 생전에나 죽는 그 순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키아)가 곧 마키아벨리였고, 가면인 듯 보인 것이 곧 진면목이었다. 죽음 직전의 그 담대한 태도에서, 그리고 돌연히 스스로의ㅡ 평상심으로 되돌아가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바로 다음의 시를 썼던 바로 그 사람임을 본다.
나는 웃네. 하지만 웃어도 마음은 허망하기만 하네.
나는 태우네. 하지만 불꽃은 밖으로 피어나지가 않네.
그는 저녁이 오면 흙먼지로 뒤덮인 일상의 옷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훌륭한 옷으로 갈아입었던 바로 그런 사람이기에, 죽음에 임해서도 다시금 궁정의 의상을 차려입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귀차르디니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시시껄렁한 농담 조의 말로 일관하다가 어느새 진지한 태도로 되돌아오던 것처럼, 그리고 (군주론) 말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틀림없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결국 (자신의 구원자)를 희구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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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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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7. 고전으로 되새기는 우리 인생관
스트레스 해소방법
세익스피어는 <태산명동에 쥐털 하나>라는 희극에서 ‘걱정 근심을 죽이기 위해서는 유쾌하고 즐거운 마음만 가지면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즐거운 마음만 가지면 걱정, 근심도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영국 시인 조지 위더는 “걱정 근심을 내버려라.걱정 근심은 사람을 죽이니,세상을 즐겁게 살아보자꾸나”라고 읊었다. 걱정이란 사람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짐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 벗어버리면 얼마나 편안하고 시원한가? 그의 충고에 따라서 걱정과 근심을 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하루하루 ‘밥 삭이는 기계’ 역할을 열심히 해보자. ‘마음의 즐거움은 좋은 약이 되어도 근심 걱정은 뼈마저도 마르게 한다’는 성경의 구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걱정과 근심은 몸에 해롭다 (Care killed the cat.)
예술과 인생
의사로 첫 출발을 하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그리스 외과 의사로서 히포크라틱 의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의술을 ‘사람의 병을 고치는 기술’이라고 했다. 즉 의술은 배우기 어렵고 오래 걸리는데 사람의 생명은 너무 짧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아트란 통상 말하는 예술 작품(회화, 사진, 조각 등)을 뜻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기술을 뜻한다. <켄버리 이야기>의 저자, 영국의 초서 역시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의미로 아트란 말을 사용하였다. '인생은 짧고 기술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술 작품의 생명성을 뜻한다.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가의 수명보다 오래 간다는 말이다. 중국 송대 성리학자로 이기설을 대성한 주자 역시 히포크라테스나 초서가 말한 내용과 비슷하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학문은 배우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배우기가 어렵고 세월은 빨리 지나가나니 일초의 시간도 아껴서 열심히 노하여라.
연못가의 풀들은 봄 꿈을 꾸고 있는데
뜰 아래 오동나무에서 가을 낙엽소리가 나는구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Art is long and life is short.)
벼락치기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죽음을 면하려면 앞서 포탄이 떨어진 곳에 뛰어가 엎드리면 된다. 한 번 떨어진 곳에는 포탄이 다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벼락도 포탄과 마찬가지로 한 번 내리친 곳에는 다시 치지 않는다. 미국 중서부의 한 마을에는 벼락을 무려 다섯번이나 맞고도 끄떡없이 잘 살고 있는 사나이가 있다. 그는 벼락을 맞아 모자나 머리칼을 홀랑 태워먹은 적이 있으며, 한 번은 벼락이 주머니의 동전을 박살냈으나 몸만은 멀쩡하게 비켜갔다고 한다. 벼락이 주머니의 동전을 박살냈으나, 몸만은 멀쩡하게 비켜갔다고 한다. 벼락이 두려워진 그는 마침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그는 허리띠 버클과 구두에 한번씩 두차례나 벼락을 더 맞았으나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명줄이 질기기가 고래 힘줄 같은 사나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나타나면 모두 피해 버린다. 왜냐하면 벼락이 워낙 그 사나이를 좋아하다 보니 그 사나이 옆에 있다가 ‘날벼락’ 맞을까 두려워서란다. 이렇게 ‘벼락은 같은 곳에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바꿀 위대한 인물(?)은 몇백 년에 하나 나타날까 말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벼락을 두 번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벼락’을 한 번 맞으면 대부분 바로 하늘나라로 가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숟가락을 놓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은 ‘포탄이 떨어진 곳’에 다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듯이 옛날의 실패를 거울삼아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래야만 어려움을 다시 당하지 않는다.
벼락은 같은 곳에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Lighting never strikes the same place twice.)
미련
그리스 철인 소포클레스는 “현재가 아닌 것은 지나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일을 자꾸 되뇌면서 괴로워하기보다 지나버린 것은 지나버렸으므로 모든 것을 잊고 밝은 마음을 갖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좋다. 과거의 일을 현재로 다시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곧은 낚시로 낚시질을 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린 것으로 유명한 강태공을 보자. 그는 어려울 때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던 부인이 찾아와서 다시 결합하자 했을 때, 한 번 헤어진 사람은 재결합할 수 없다고 이렇게 매정하게 말했다.
“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므로 과거의 실수를 거울삼아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옳은 길로 나가는 사람은 받아주지만 과거에 연연하면 용서하지 못한다고 공자는 말했다. 아울러 세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루지 못했던 일에 대하여 미련을 두지 말라. 한 번 지나간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말자. (What's done cannot be undine.) 한 번 지나가 버린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며 ‘그 때가 좋았지’하면서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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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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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Paradise Lost:1655-1667) 2/2
하느님은 그의 아들에게 사탄이 인류를 죄에 빠뜨리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어 유혹에 대항할 수 있도록 창조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처럼 자기의 악의에서가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의해 타락되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정의가 충족된다면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하셨다. 인간은 신의자격을 얻으려는 교만이므로 하느님의 존엄을 더럽혔으므로 그 죄를 회개하고 그의벌을 대신 받을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의 자손과 더불어 죽음의 선고를 받게될 것이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자진하여 자신과 인간의 대속 제물이 되겠다고 하자 하느님은 이를 수락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이름을 초월하는 우월한 존재인 그에게 모든 천사들이 그를 예찬할 것을 명하셨다. 천사들은 노래로 성자의 덕을 찬양하였다. 이 때 사탄은 우주의 끝을 산책하다가지구의 최상부에 다달았다. 이곳은 당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광막한 들판이었으며 앞으로 땅 위의 모든 자들이 고통스런 미신과 맹목적인 열정의 결과에 대해 대가를 치를 곳이었다. 여기서 방황하던 사탄은 맞은편에서 흘러오는 한 줄기 빛 속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한 건축물을 발견하였다. 문은 황금과 금강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사탄은 놀라움과 비애에 사로잡혔다. 사탄은 젊고 우아한 천사로 변장하고 대천사 우리엘을 만났다. 새로 창조된 세계와 신의 위대함을 찬미하겠다는 구실로 인간 세계의 주소를 물었다. 우리엘은 천지 창조를 보기 위해 홀로 나온 것을 칭찬하며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사탄은 아시리아의 우아테스 산상에 도달하였다. 사탄은 악의 천사가 되어 하느님께 복수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탄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 속임을 당한 우리엘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탄의 본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탄은 에덴은 경계에 이르렀다. 많은 꽃과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었고 높은 산비탈이 낙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탄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에덴을 바라보며 신과 사람에 대한 음모를 시험할 장소를 물색하였다. 그는 중천의 태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 태양이여! 나는 옛날에 너보다 빛나는 권위자였는데 오만과 야심 때문에 타락하였다. 아, 이 무슨 일인가!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복종을 멸시하고 스스로 반역하였다. 이것은 내 몸에서 생긴 독이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무한한 노여움 무한한 절망 어디로 가나 그것은 지옥이다. 내 자신이 지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단념하겠다. 회계할 여자는 없는가? 그것은 복종하는 것, 그러나 내가 가장 멸시하는 것 복종을 맹세한다 해도 마음 편할 리 없다. 결국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희망이여 공포여 후회여 그럼 안녕! 일체의 선을 나는 잃었다. 악이여 너야말로 나의 신이다. 너에 의하여 나는 적어도 하늘의 반 이상을 지배할 것이다"
사탄은 향기로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숲길을 걷고 있었다. 울창한 숲속에 문이 하나 있었다. 에덴 동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사탄은 일부러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가볍게 날려서 절벽을 한 발로 뛰어넘어 광명의 낙원에 숨어 들었다. 마치 늑대가 목자의 눈을 피하여 양 떼 가까이 가는 것처럼 도둑이 밤중에 숨어 들어가는 것처럼 최초의 큰 도둑 사탄의 침입으로 신의 전당에 음란한 사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사탄은 낙원의 중앙에 가장 높이 솟은 생명의 나무 아래에 탐욕의 새 고루모란도와 같이 악마의 날개를 쉬며 새로운 낙원을 의심의 눈을 반짝이며 돌아보았다. 에덴의 낙원 중앙에 과실 나무와 신비로운 나무 향기 좋고 맛 좋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뛰어난 것은 생명의 나무였다. 보석과 같은 이 나무의 과실은 너무도 향기로워 잠을 모르는 신들이 한없는 환락의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살고 있는 낙원은 환락과 행복의 선경이었다. 사탄은 뜻하지 않은 광경에 마음이 타는 듯한 분노와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늠름한 아담의 모습과 청초한 이브의 질투심이 일어났다. 거기에는 권리와 지혜와 참다운 자유의 성결함이 빛나고 있었다. 싱싱한 과실 나무들의 생명을 부르는 그 아름다운 맛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명의 나무 옆에는 우리의 죽음인 지혜의 나무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고 자주색의 열매가 달린 포도 넝쿨 새들은 아름답게 합창했다. 자연의 신 춤의 신은 즐겁게 춤을 추었다. 아담과 이브는 서로 손을 잡고 벌거벗은 채 걷고 있었다. 그들은 악을 몰랐으며 사랑으로 맺어져 있었다. 두사람은 녹음에서 또는 분수 옆에서 쉬었다. 유쾌한 동산에서의 상쾌한 서풍을 받으며 산책하다가 과실을 저녁으로 먹었고 먹은 과실 껍질로 맑은 물을 떠 마셨다. 앞에는 지상의 여러 동물들이 와서 장난을 하였다. 태양은 점점 기울어지고 돌아오는 별들은 저녁 하늘의 선구자처럼 반짝였다. 사탄은 점점 가까이 가서 두 사람의 즐거운 대화에 부러운 듯이 귀를 기울였다. 아담과 이브는 최초의 남자와 최초의 여자였다
"이브여, 너는 나의 모든 기쁨이다. 신은 우리들을 흙으로 빚어 이 낙원에 살게 하셨다. 신은 자비롭고 영광된 분이시다. 우리들은 이 낙원의 모든 나무 가운데 생명의 나무 곁에 있는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된다. 삶의 옆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서운 것이리라 너도 저 나무의 과실을 맛볼 때 죽음이 우리들에게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그 외에 모든 것에 대해서는 무한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또 어떠한 환락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의 생활은 항상 신을 찬미하고 초목과 꽃을 기르는 일이다"
이브는 아담의 존귀함을 찬미하였다.
악마는 이것을 듣고
"그들에게 금지된 나무가 하나 있군. 선악의 지혜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안다는 것이 죄가 되는가? 그것이 죽음인가? 그것은 불합리하다. 그것이 그들의 신에 대한 신앙과 복종의 증거인가? 나는 이제부터 그들의 마음을 유혹해야겠다. 그리하여 금단의 과실을 먹고 죽게 하리라"
라고 중얼거렸다. 사탄은 그들을 파멸에 빠트릴 방법을 찾아낸 것을 기뻐하였다. 조용한 낙원의 저녁 동물들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 새들은 나무에서 꿈을 꾸며 나이팅게일만이 밤의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달이 구름의 베일을 걷고 나타났다. 아담과 이브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의 잠자리는 자연 그대로의 과일 나무들과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나무로 덮여 있는 조용한 장소였다. 사탄은 마술로써 환각과 꿈과 공상을 갖게 하였다. 그녀의 순결한 머릿속에 불평 불만의 생각을 갖게 하고방종한 욕망과 교만이 생기는 환상을 갖게 하였다.
아침이었다.
동쪽 하늘의 태양이 붉은 진주를 땅 위에 뿌릴 때 아담이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깼으나 이브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담이 손을 잡고 흔들자 이브는 눈을 뜨고 어젯밤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타락의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하여 늙은 천사 라파엘을 불러 두 사람을 보호하도록 명하셨다. 라파엘은 아담과 이브에게 사탄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경계하도록 하였다. 아담이 천지 창조에 대하여 묻자 라파엘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가 사탄과 싸워 이긴 것을 칭찬하여 새로운 세계를 하나 창조하고 거기에 인류를 살게 하고 기쁨과 사랑의 왕국으로 만드셨다. 그 창조는 6일 간에 이루어졌는데 제1일에는 낮과 밤을 구분하셨다. 제2일에는 하늘과 물을 구분하셨다. 지구에 땅과 바다를 만들고 대지 위에 풀과 나무와 꽃이 나게 하신 것이 제3일이었다. 해와 달과 별을 만든 것이 제4일이었다. 바다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게 하고 육지에는 하늘 높이 새들을 날게 하시어 제5일은 조류와 어류를 만드셨다. 창조의 제6일은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흙으로 만들어 생명의 입김으로 불어넣으시고 자연을 다스리게 하셨다. 신은 그것을 남성이라 하고 다시 여성을 만들어서 지상에 자손을 퍼트리게 하셨다. 제7일에는 창조된 세계를 흡족해하며 모든 일을 쉬셨다. 이러한 말을 하는 동안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서 천사와 헤어지게 되었다. 사탄은 아담과 이브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자고 있는 뱀을 만나 그 몸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다시 아침이 되었다. 에덴 동산에는 아침 기도를 끝낸 두 사람이 그날의 밭갈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브는 나무와 꽃들이 무성하므로 일거리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서로 웃고 이야기하고 쳐다보느라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니까 따로 떨어져서 일을 하자고 말했다. 아담은 라파엘의 경고를 떠올리며 유혹이 위험하다면서 따로 일을 하는 것에 반대했으나 이브의 자신감 있는 얘기를 듣고 양보를 하여 이브의 말대로 하였다. 악령에게 끌린 뱀은 이브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며 장미꽃 그늘에서 일하고 있는 이브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브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유혹하기 시작했다
"아니, 동물이 인간의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여왕님, 어느 날 내가 들을 배회할 때에 금색의 과실을 가진 한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향기로운 냄새가 식욕을 돋구어 맛을 보았더니 나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 이렇게 이성과 언어의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브는 뱀의 말을 듣고 그 나무의 있는 곳까지 안내를 받았다.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금지된 지혜의 나무(선악과)였으므로 깜짝 놀라 물러서려 하였다.
뱀은 대담하게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금하고 당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셨습니까? 여왕님 믿지 마십시오. 죽지는 않습니다. 그 과실은 지혜를 주는 것으로 나를 보십시오. 그것을 먹었어도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높고 완전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동물인 나는 인간이 되었으니 인간인 당신은 틀림없이 신이 될 것입니다. 선악의 지식에 도달하는 것이 어찌 죄악이 되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잠시 선악과를 바라보고 있던 이브는
"저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과실, 뱀이 말한 것처럼 영험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금지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인간에게 허락치 않은 것을 동물에게 허용하실 리가 없을 텐데 금지한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라고 말하며 이브는 과실을 따서 입에 넣었다. 죄를 범한 뱀은 풀 속으로 미끄러져 도망하고 이브는 과실의 아름다운 맛에 취하여 홀로 중얼거렸다.
"아, 지혜의 길을 열어 준 과실 나의 이 변화를 그에게 알려서 같이 행복을 즐겨야지"
이브는 과실이 많이 달린 가지를 꺾었다. 이브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아담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미 생긴 일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겠느냐?"고 말하면서 그녀와 같이 벌을 받고 죽을 결심을 하였다. 아담도 그 과실을 먹었다. 효과가 나타나서 두 사람은 독한 포도주에 취한 것처럼 음욕에 불탔다. 두 사람이 눈을 떴을 때 마음을 덮고 있던 흥분은 사라지고 불안한 마음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놀라서 앉아 버렸다. 신앙도, 청정도, 결백도 모두 사라지고 악을 아는 마음이 되었다. 그들은 나체를 부끄러워하여 무화과의 잎을 엮어 허리에 감았다.
하느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그들의 유혹자가 지옥을 빠져 나올 때 알고 있던 것이 마침내 왔다. 인류는 타락하였다. 그들에게 줄 것은 이제 죽음의 선고이다. 그 심판으로 가리라"라고 성자께 말씀하셨다. 아담과 이브는 바람에 들려오는 신의 음성을 듣고 벗은 것이 부끄러워 숲 속으로 숨었다. 성자는 불순한 그들의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하였다
"뱀, 너는 배로 기어다닐 것이며 평생 진흙만을 먹으라! 너와 여자는 영원히 원수가 되어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며 너는 사람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브 너는 비애에 젖어 살게 될 것이며 해산할 때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남편의 의지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너를 거느릴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아담을 향하여 선고를 내렸다
"아담이여 이제부터는 흙을 갈고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갖게 되리라"
이브는 아담에게 용서를 빌며 자손에게 미치는 저주를 피하기 위하여 자살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아담은
"너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깨뜨리리라고 하신 신의 말씀을 잊었는가? 자손들에게 희망을 가지라 너는 이제부터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당하고 나는 일을 하여 빵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의 죄악은 슬픈 일이지만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기뻐하자" 하고 위로하며 두 사람은 쓸쓸히 낙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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