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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00호
단기 4343. 2. 12 (음력 12. 29)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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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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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
의병장 곽재우 천강홍의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나라사랑의 충의정신 함양 및 문학의 저변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은 물론 인물의 고장인 청정 의령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하여 개최하는 제2회 천강문학상 작품을 다음과 같이 공모하니 역량있는 작가들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공모부문 : 시, 시조, 소설, 아동문학(동시,동화), 수필, O 시 : 7편 O 시조 : 7편 O 소 설 : 중편 1편(200자 원고지 200장 내외), 단편 2편(200자 원고지 80장 내외) O 아동문학 : 동시 7편, 동화 3편 O 수 필 : 3편
□ 작품내용 : 미발표 순수창작 작품(주제는 자유) □ 시상내역 : 상패 및 시상금
구 분 대 상 (5명 3,800만원) 우수상 (8명, 3,400만원)
시 1명/ 700만원 2명/ 300만원
시 조 1명/ 700만원 2명/ 300만원
소 설 1명/ 1,000만원 2명/ 500만원
아동문학 1명/ 700만원 2명/ 300만원
수 필 1명/ 700만원 2명/ 300만원
공모기간 : 2010년 6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 당일 우체국 소인 유효 응모자격 : 대한민국 국민(기성문인 포함) 발표 및 시상 : 2010년 10월 05일(화) 11:30 O 당선작 및 심사위원은 최종 심사 후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며, 시상식은 곽재우 장군 탄신 458주년 다례제와 함께 갖습니다.
□ 기타사항 O 신인의 경우 수상자에게는 기성문인으로 예우합니다. O 작품의 수준이 시상권에 미치지 못할 때는 시상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O 표절, 모방 또는 중복 응모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입상을 취소합니다. O 모든 부문 응모 시 PC 워드프로세서 작성 제출 가능합니다. O 이메일로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O 수상작품의 판권은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와 본인에게 귀속됩니다. O 응모자의 이름과 전화번호(휴대전화), 주소 등은 별지에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합니다.
□ 보내실 곳 O (636-805) 경남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467-2 충익사관리사무소(의령문인협회)
□ 기타문의 : 의령군청 충익사관리사무소 (☎ 055-570-2441)
2010년 2월 1일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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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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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가 잠들면 빈곤은 창으로 들어온다.(라이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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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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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르다·치루다
용언의 활용형을 틀리게 쓰는 일이 더러 눈에 띈다. 이런 일은 많은 경우 기본형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추스르다’의 활용형을 ‘추스렸다·추스려서·추스려라’ 등으로 쓰는 예는 흔히 볼 수 있는 잘못이다. 이런 잘못은 기본형을 ‘추스리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기본형이 ‘추스르다’라고 정확히 알고 있으면 ‘추슬렀다·추슬러서·추슬러라’로 틀리지 않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기본형이 헷갈려 활용형을 흔히 틀리게 쓰는 낱말로 ‘추스르다·치르다·담그다·잠그다·들르다’ 등을 들 수 있다. “칠순 잔치를 치룬 가요계 대모 현미는…” 신문 기사의 한 구절이다. ‘치른’으로 써야 할 것을 ‘치룬’으로 잘못 쓰고 있다. 과거형으로 하면 ‘치렀다’인데 이것도 ‘치뤘다’로 쓴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치르다’의 기본형을 ‘치루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잘못이 일어난다.
‘담그다·잠그다·들르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장 담갔다’, ‘문 잠가라’, ‘큰집에 들러라’로 써야 할 것을 흔히 ‘담궜다’, ‘잠궈라’, ‘들려라’로 잘못 쓰는 예가 허다하다. 이 또한 기본형을 ‘담구다·잠구다·들리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잘못이다.
다만 ‘치르다’의 과거형이 ‘치렀다’이니 ‘추스르다’의 과거형도 ‘추스렀다’로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추슬렀다’인 것은 용언의 ‘불규칙 활용’에 관한 문제로, 다른 기회에 살펴보고자 한다.
우재욱/시인
접수하다
접수(接受)는 무엇을 받는다는 뜻이다. 신청이나 신고를 받고, 돈을 받는 거 모두 접수다. 제출한다는 의미는 없다. 은행 등에 ‘접수창구’가 보인다. 은행에서 서류나 돈을 받기 위해 마련해 놓은 곳이다. 은행 직원은 서류 등을 접수하고 손님은 제출한다. 그러나 이따금 착각이 일어난다. 주객이 바뀐다. 손님이 서류를 접수한다고 표현한다
천둥벌거숭이
‘벌거숭이’는 벌거벗은 알몸뚱이다. 나무가 없고 흙이 드러난 산도 이렇게 부른다. 잠자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잠자리는 천둥이 쳐도 두려운 줄 모른다. 이리저리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다닌다. 여기서 천둥벌거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철없이 함부로 덤벙거리거나 날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천둥벌거숭이라고 한다.
복지리
연말연시나 명절에 과음한 뒤 속을 풀기 위해 많이 찾는 음식이 복매운탕이다. 복어는 술독 해소뿐 아니라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복 요리에는 회.탕.찜 등이 있지만 주로 찌개인 매운탕이나 지리로 먹는다. 매운탕은 얼큰하게 끓인 것을, 지리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맑게 끓인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리'는 우리말이 아니다. '지리(ちり)'는 냄비 요리의 하나를 지칭하는 일본말이다. '즙(汁)'의 일본식 발음인 '지루(じる)'가 변해 '지리'가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은 '복지리' 대신 '복국'이나 '복싱건탕'으로 부를 것을 권하고 있다. '복국'은 다소 어색하지만 '싱건탕'은 '싱거운 탕'의 준말로, 매운탕에 대립하는 개념이므로 잘 어울린다. '복지리'를 '복맑은탕'으로 부르자는 사람도 있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국물이 맑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복싱건탕'이든 '복맑은탕'이든 일본말로 의미가 잘 와 닿지 않는 '복지리'라 부르는 것보다 낫다. 복 요리보다 가격이 싸 즐겨 찾는 대구탕도 마찬가지다. '대구지리'는 '대구싱건탕' 또는 '대구맑은탕'으로 부르면 된다.
제수용품 / 꼬지, 꽂이, 꼬치
올해는 설 연휴가 길지 않아 귀향길이 힘들 것으로 예상됐으나 생각만큼 막히지는 않았다니 다행이다. 선택한 도로에 따라 길 위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오랜만에 친지들을 만나는 것이 위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설에는 기제(忌祭)와 달리 밥 대신 떡국을 차려 놓고 차례(茶禮)를 지낸다. 차와 별 관계가 없는데 왜 차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에 대해 성균관에서는 '중국의 옛날 의례를 보면 조상을 가장 간단하게 받드는 보름의 망참(望參)에 차 한 잔만을 올리는 것을 '차례'라고 했는데 우리가 조상을 가장 간략하게 받드는 것이 명절의 예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차례라고 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하고 있다.('우리의 생활예절')
차례를 지내려면 과일이나 생선.고기 등 음식 재료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흔히 제수용품(祭需用品)이라고 일컫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제수(祭需)가 '제사에 쓰이는 여러 재료'라는 뜻이므로 용품을 붙일 필요가 없다. 또한 제사에 쓸 생선이나 고기 등을 꼬챙이에 끼워서 솥에 넣고 찌는 음식을 '꼬지' 또는 '꽂이'라고 쓰지만 이것도 '꼬치'로 적는 것이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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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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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 생(生)에 대한 고찰 - 이기와
잡념같은 별들이 수북히 내려앉은 밤 골목 주소 잃은 사내 하나가 오착(誤着)된 우편물처럼 남의 집 대문 앞에 떨어져 있다 풀어헤쳐진 넥타이 헐렁해진 사내의 몸을 벗어 던지고 사색의 문턱에 홀가분히 나앉은 구두 한 짝 사내의 입에선 채 곯아떨어지지 않은 독백이 타액에 섞여 흘러나오고 양복바지처럼 구겨진 그의 그림자가 몇 차례나 제 주인을 일으켜 세우려다 도로 주저앉고 만다 얼마나 고단한 삶을 이고 다녀야지만 저리 한순간 가차없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을까? 한사코 직립을 고집해 오던 생의 척추를 깔판도 없는 맨땅에 사정없이 주저앉히고 초인종 없는 아득한 꿈의 저택으로 귀가하기까지 얼마나 자주 환멸의 뒷골목을 순례하며 단단한 정신을 분질러 왔을까 그후 몇차례나 더 잠꼬대의 들을 게워내기 위해 거리의 냉담한 쓰레기더미와 마주했을까 감춰진 내면의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까지 편집없는 적나라한 삶을 생방송하기까지 제 영혼을 망각의 대문 앞에 샘플로 내다걸고 얼마나 자주 관객들을 불러모아 왔을까 내가 고탄력 이성의 스타킹을 배꼽까지 두르고 금속 브래지어로 가슴 두 쪽을 바짝 동여매고 하루하루 철저하게 방어하는 내 집 앞 홈그라운드에 오늘은 강력한 라이벌이 먼저와 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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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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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 손영옥
흰 날개 펴고 나선 해저물녁 나그네가
목이 긴 외로움에 낙하하며 치솟다가
온 세상 수런거림에 창밖 딛고 일어서면,
잊혔던 실바람이 빛살같이 달려 와서
메마른 가지 끝을 촉촉히 적셔줄 때
젊음의 향기도 되살아나 누리 딛고 춤을 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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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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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3
1. 사랑을 위하여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 버질)
사랑의 기억
엘리노어는 할머니에게 무슨 잘못된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뭐든지 금방 잊어버렸다. 설탕을 어디에 뒀는지, 세금을 언제 내야 하는지, 야채는 언제 사러 가야 하는지 매사를 그렇게 잊어먹기만 하였다. 엘리노어는 엄마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왜 저러세요? 옛날에는 소문난 멋쟁이셨는데, 지금은 슬퍼 보이고 도무지 정신이 없어 보이세요. 뭐든지 잘 잊어버리구요."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는 다만 늙으신 것뿐이야. 그래서 이젠 더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지." 엘리노어가 물었다. "늙는 건 어떤 거에요? 늙으면 누구나 잘 잊어버려요? 나도 그렇게 돼요?" 엄마가 설명했다. "누구나 늙는다고 해서 기억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엘리노어. 우리 생각에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것 같아. 그래서 더 자주 모든 걸 잊어버리시지. 할머니가 필요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아무래도 할머니를 노인 요양원에 보내 드려야만 할 것 같다." 엘리노어는 놀라서 소리쳤다. "엄마!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에요. 할머닌 집이 너무나 그리우실 거에요." "당연히 그러시겠지.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말고는 많지 않아. 그곳에 가시면 할머닌 더 잘 간호를 받으실 테고, 새 친구분들도 사귀게 되실 거야." 엘리노어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 생각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리노어는 물었다. "그럼 우리가 자주 찾아가서 할머닐 만나도 돼요? 난 할머니가 잘 잊어버리시긴 해도 할머니와 얘길 나누는 게 좋단 말예요." 엄마가 대답했다. "우리가 주말에 찾아가면 돼. 할머니에게 선물을 갖다 드릴 수도 있구." 그 말에 어린 엘리노어는 미소를 되찾았다. "아이스크림 같은 것두요? 할머닌 딸기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하신단 말예요." 엄마가 말했다. "물론 딸기 아이스크림도 되지." 노인 요양원으로 할머니를 만나러 간 첫날 엘리노어는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엘리노어는 말했다. "엄마, 사람들이 전부 휠체어에 앉아 있어요." 엄마가 설명했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편이 더 나은 거야. 안 그러면 자꾸 넘어지니까." 할머니는 사람들이 일광욕실이라고 부르는 방의 한 구석에서 바깥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혼자 멍하니 앉아 계셨다. 엘리노어는 달려가 할머니를 껴안으며 말했다. "이걸 좀 보세요! 할머니께 선물을 가져 왔어요.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 아이스크림이에요!" 할머니는 컵에 든 아이스크림과 작은 나무 스푼을 받아들고는 아무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드시기 시작했다. 엄마가 엘리노어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할머닌 지금 아주 맛있게 드시고 계신 거야." 엘리노어는 실망해서 말했다. "하지만 할머닌 우리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세요." 엄마가 말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돼. 할머닌 지금 새로운 환경에 와 계시고, 여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실 거야." 하지만 다음 번에 엘리노어가 엄마와 함께 다시 할머니를 방문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을 드시며 엘리노어에게 미소를 보내긴 했지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엘리노어가 물었다. "할머니,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할머니가 대답했다. "물론 아다마다. 넌 나한테 아이스크림을 갖다 주는 아이 아니니?" 엘리노어는 두 팔로 그 노부인을 껴안으며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저는 할머니의 손녀딸 엘리노어이기도 해요. 절 기억 못하시겠어요?" 할머니는 엷은 미소를 지으셨다. "기억하냐구? 분명히 기억하지. 넌 나한테 아이스크림을 갖다 주는 아이야." 문득 엘리노어는 할머니가 자기를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할머니는 자기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살고 계셨다. 그 세계는 온통 흐릿한 추억과 고독감만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엘리노어는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머니, 전 할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해요!" 그때 엘리노어는 할머니의 두 뺨에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사랑? 그래, 난 사랑을 기억하지. 다른 건 기억 못해도 사랑은 기억한다." 엄마가 말했다. "너도 들었지, 얼리노어? 지금 할머니가 원하시는 건 오직 사랑뿐이야." 엘리노어가 말했다. "주말마다 꼭 할머니에게 아이스크림을 갖다 드리겠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저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할머닐 껴안아 드릴거에요."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보다 사랑을 기억하는 것! - 마리온 슈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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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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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4장 지혜의 메아리
꾸준한 노력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보태라.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만 보태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한 걸음의 보폭은 1미터도 채 안 되지만 그것을 합쳐서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어떤 일에든 한꺼번에 하려고 하는 성급함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속담처럼 꾸준히 그리고 조금씩조금씩 노력을 보태서 극복해 나가는 것이 가장 빨리 성공에 이르는 길이다. 성급함은 일을 망치는 근본이다. 한꺼번에 하려고 하는 성급함이 일을 아예 시작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던 일도 도중에서 포기하게 만든다.
승률을 높이고 싶으면 소나기식 노력보다는 꾸준한 노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보다 큰일 보다 뛰어난 일을 이루어내고 싶으면 한 번의 큰 노력보다는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보태야 한다. 한 번에 쏟는 노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작은 노력이 집합된 힘에는 미치지 못하고, 꾸준한 노력 앞에서 극복되지 못하는 일이란 세상에 흔하지 않다.
작은 노력이라고 해서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만 보태면 무시 못할 힘이 만들어진다. 큰 것은 한결같이 작은 것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작은 내가 모여서 강이 되고 작은 돌이 쌓여서 태산이 되듯이 작은 노력이 모여서 엄청난 일을 이루어낸다. 에베레스트산도 결국은 1미터도 채 안되는 작은 걸음걸음들이 모여서 정복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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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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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3장 서양사상
사회계약설(Contract Social) - 루소(Rousseau, 1712-1778)
자연으로 돌아가라.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도처에 그는 얽매여 있다. 구속을 싫어하고 자연을 좋아한 저항적인 자유인 루소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주장한 인류해방의 고전, 프랑스 대혁명의 여명기에 쓴 이 책 속에서 루소는 사회계약, 주권, 일반의지의 3단계 구성을 통해 종래의 정신세계 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켰고 기존의 가치관에 일대변혁을 가져와 프랑스 혁명의 성서로 불린다.
생애와 작품활동
'루소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나폴레옹의 지적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물러난 루이 16세는 '나를 몰아낸 것은 바로 이 두 놈이다.'라고 말한 두 놈 중 한 사람이 바로 루소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사상가이자 반문명가인 루소는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 등과 동시대인이다.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출생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출산시 사망했다. 열 살 때 부친마저 잃은(가출) 그의 유일한 낙은 어머니가 남겨준 상당한 양의 책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지나친 독서로 인한 두뇌비대증은 노년에 그를 정신이상으로 몰고간 원인이 되었다. 그는 1세때 제네바에서 가출하여 고향을 등지고 방황한다. 그때 자애의 손길을 내민 어느 남작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은 그를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시켰으며, 사실상 그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그녀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루소는 정서적 안정 속에 여러 학문을 닦아 교양을 쌓았다. 그후 1740년경에는 잠시 가정교사 생활도 하게 되는데, 이때의 겸험이 그로 하여금 교육문제에 평생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1742년 파리로 나와 음악 비평가로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백과전서파의 디드로와 사귀면서 사전편찬에도 협력하여 음악항목의 집필을 담당한다. 그러나 디드로와 결별한 후 영원히 그들의 우정을 회복하지 못했다. 1750년 과학과 예술은 풍속을 좋게 만드는데 도움이되는가(학문예술론) 라는 현상논문에 당선되어 비로소 사상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이 논문을 통해 그는 발달된 문명이 끼치는 해악을 낱낱이 지적하여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로써 갑자기 파리사상계의 유명인이 되었다.
1752년 마을의 점쟁이 라는 가극을 발표하여 또 한번 파리의 귀족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 1754년에는 사유재산제도가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들었다는 불평등 기원론을 발표하여 당시의 사회제도를 비판했다. 같은 백과전서 5권의 정치경제 항목을 집필하고, 이것을 후에 정치경제론으로 독립 출간했다. 1762년에 불평등 기원론 과 정치경제론 을 발전시킨 사획계약설과 교육에 관한 혁명적인저서인 에밀을 발표했다. 그러나 파리 제네바 등지에서 사회질서의 혼란과 크리스크 교의 가르침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금서 처분을받는다. 실망한 루소는 파리를 떠나 제네바로 피신하려 하였으나, 제네바 정부 역시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유럽 각지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깊어가는 고독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그의 자전적인 작품 고백록을 완성했다. 그가 쓸쓸하고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에름농빌에는 루소 공원이 있고, 또 프랑스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의 무덤인 팡테옹 에는 루소가 볼테르를 마주해 가장 큰 크기로 묻혀있다.
자연법 사상과 사회계약설
자연법 사상, 17세기의 정치이론은 16세기의 마키아벨리와 같은 현실정치의 직접적 방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권리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하는 근본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사고의 결과였다. 한마디로 17세기는 자연법과 자연권의 고전시대였다. 17세기의 과학혁명으로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그것과 똑같은 법칙이 인간의 사회생활에도 있을 것이란 확신이 굳어졌다. 다시말하면 사회의 자연적 질서 가 있으며 영원불변의 자연적 법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연법의 관념은 17세기에 활발히 논의되고 18세기의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널리 일반에게 보급되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인간의 자연권 회복은 18세기 혁명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본질적으로 자연법이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하는 데에는 일치된 견해가 있을 수없으나, 간단히 말해서 정과 부정내지선악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법이 시간과 지여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에게 적용되는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법과 권리는 궁극적으로 모든 지역과 민족,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있다. 이러한 자연법과 자연권은 모든 인간에 있는 이성을 통해서 인식된다. 그리고 나라의 사람들이 차별없이 합리적 능력과 이해력을 갖고 있으므로, 그들은 공통된 목적, 즉 자유, 평등, 박애를 성취하려고 할 것이다.
사회계약설, 홉스는 17세기 과학혁명의 정신을 그의 저술 속에 잘 반영 시켰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 로 보고, 사회계약에 있어서는 자연권의 전면적인 양도설을 내세웠으며, 정치적으로는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는 절대 군주제를 옹호했다. 반면 명예혁명 시기의 로크는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을 전제로 한 점에서는 같았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반대였다. 즉, 그는 자연상태를 평화로운 것 으로 가정한다. 자연권의 일부를 국가에 양도한다는 일부양도설을 주장했다. 정치적으로도 저항권 을 인정했고 대다수의 의사에 따르는 대의제도 를 주장했다. 바로 이 점에서 불만을 느낀 루소는 다수파가 소수파에 대해 행사하는 전제의 위험을 극복하고자 자신의 사회계약론을 주장하였다. 루소도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합의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그런데 로크는 합의를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계약으로 본 반면 루소는 인민들 상호간에 맺는 계약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상호간에 자연적 자유를 양도함으로써 전체가 융합된 일반의지(공동체자체간의 의지)를 만들며 각 개인은 절대로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추상적인 일반의지는 바로 주권자이며. 그것은 절대 신성하고 불가침하다. 일반의지는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민전체를 결합시키는 공동이익 에 의해 결정된다. 루소의 일반의지 관념을 결과적으로 대의제에 의한 간접 민주정치 및 다수결 원칙 등을 거부하게 된다.
사회 계약설 의 주요내용
사회계약론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전에 발표된 인간불평등 기원 에서 제기된 문제, 즉 자유와 평등을 누리던 인간이 자연상태를 상실하여 생긴 지배와 피지배 등의 해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올바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성격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제1부는 어떻게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옮아가는다. 또 사회계약의 본질적 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이고, 제 2부는 주권과 법률, 제3부는 정부형태, 제4부는 국가의 체제가 다루어지는데, 제1부가 핵심이다. 제1장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는 태어났음에도 도처에 묶여 있다. 자신이 타인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도 사실은 그들 이상으로 노예인 것이다. 왜 이러한 변화가 생겨났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무엇이 그것을 정당하게 만드는가를 나는 안다.' 여기에 보듯이 루소의 관심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태어난 인간이 모든 곳에서 사슬에 묶여 있는 상태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데 있다. 그래서 그는 자연상태에 관한 이론부터 시작한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상태는 각 개인이 자유와 평등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자연상태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주권자인 개인은 서로 결합하여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약을 한다는 것이다.
1. 일반의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며, 이 국가의 통일과 바른 정치를 위해 일반의지 라는 기준이 필요한다고 했다. 일반의지란 항상 전체(국가)가 부분(개인)의 보존과 행복을 지향하고 법률의 원천이 되는 것 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어떻게 하면 일반의지가 관철되는 국가를 형성하고,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가졌던 자유와 평등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해 각 구성원의 합의로 각 개인의 자연권을 위임하는 대신 개인은 시민적 자유를 얻게 되고, 정치체제를 일반의지라는 최고의지(주권)에 두도록 했다. 이 일반의지가 정치기구의 최고결정자이며, 주권, 법, 권리, 정부도 모두 이 의지의 표현이요, 속성이다. 다시말해 이것은 가장 철저한 인민주권론이며, 종래의 모든 국가관을 뒤엎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인민의 일반의지는 절대적이며 잘못되는 일도 없을 뿐더러 예외를 인정하는 일도 없고, 또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분할되거나 하는 일도 없다.
2. 주권, 일반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곧 주권이므로 주권도 또한 절대적인 불가양, 불분할의 것으로서 확립된다. 루소는 주권이란 누구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분할할 수도 없으며 전 인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없는 신분제의회에 의해 대행될 수도 없다 는 것이다. 이 이론은 홉스의 국가론을 계승하여 그것을 역전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의지는 국가 또는 정체체제를 구성하는 일반의지의 행위가 사회계약 이다.
3. 복종계약 거부, 사회계약설은 물론 루소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사회계약설은 소위 복종계약설 이어서. 그것은 어떤 특정 지배자의 존재를 미리전제하고 이 지배자와 국민 사이에 계약이 맺어진다 는 것이다. 이러한 계약은 국민보다는 지배자를 위한 복종계약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루소는 이러한 계약방식을 거부하고 사회주권을 개인간의 결합계약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루소의 이러한 착안은 큰 공적이었다. 기르케는 루소가 계약이론에서 복종계약을 배제했을 때 그것은 참으로 혁명적인 일이었다 고 말했다. 루소의 정치이론은 당시 프랑스에서 지배적이었던 백과전서파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디드로가 주장한 이론은 국가의 형성을 인간의 자연적 성질인 사교성에서 설명하고, 인민의 자연적인 권리, 특히 사유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복종계약이 맺어진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백과전서파의 이 사상은 실은 푸펜도르프나 로크에 의해서 대표되는 근대 자연법학의 고전이론을 계승 한것이다. 따라서 루소는 고전이론이 배척한 홉스의 사상에 깊이 감동받고 그에게서 가장 많이 배우게 된다. 홉스는 자연적 사교성의 이론을 부정하고 자연상태를 적대관계로파악,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절대권력을 이끌어냈다. 루소는 그 영향을 받아서 똑같이 자연적 사교성의 이론을 부정하긴 했으나 자연상태를 투쟁상태로는 보지 않고 투쟁상태를 사회상태 속에 옮겨놓음으로써 홉스와 똑같이 절대권력을 이끌어냈다. 어느 경우에서든 복종계약 은 부정되었던 것이다. 단 , 루소의 경우에 있어서는 인간의 자연적 선과 인민의 일반의지가 전제되어 있느데, 이 점에서는 홉스와는 다른 민주주의적인 국가론이 주장된다.
정치사상적 의의
이상에서 살펴본 사회계약론을 요약하면 모든 사람은 그들의 공동이익을 위해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구성원들의 자유의지를 묶어 일반의지 라 하고 이 절대적인 일반의지에 복종케 함으로써 개인 및 전체의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의지는 반드시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민전체를 결합시키는 공동이익에 의해 결정된다. 루소의 일반의지 관념은 결과적으로 주권재민설에 입각한 민주주의 와 공동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전체주의를 동시에 다 같이 합리화시키는 이중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즉, 그것이 선용될때는 진정한 민주주의 역활을 하지만, 악용될 때는 전체주의 지배체제의이론적 무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계몽사상가들과 루소의 사상의 차이는 디드로가 천국과 지옥의 차이 라고 당시 기술한 것처럼, 당시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몽테스키외나 볼테르는 보수적인 사회계혁을 주장한 면이 있다. 반면 루소의 그것은 진보적이고 혁신적이어서 부르주아에게 있어 루소의 평등사상은 매우 못마땅한 것이었다. 루소는 인간의 평등을 개인의 이성과 개성의 상위에 두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합리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의 선구자이기도하다. 아무튼 18세기 사상가 중에서 루소만큼 신비스럽고 흥미로운 인물도 드물다. 그는 당시의 이성존중 풍소에 반항하여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이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러 방면에 걸친 그의 관심을 발전시켜나가. 학문예술론 과 인간불평등 기원론으로 당시 문명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사회계약론으로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소설 신 엘로이즈는 낭만주의 소설로 퇴폐적 문명을 비난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교육사상을 밝힌 에밀에서는 개인의 잠재능력과 개성의 계발을 강조하였고, 고백록에서는 근대적인 고백문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는 에밀을 통해 칸트의 이상주의와 실러의 낭만주의를 낳게 했고, 현대의 심리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칸트는 이 책에 심취한 나머지 규칙적이던 산책시간을 잊었는데, 그의 산책시간에 맞춰 저녁식사를 하곤 했던 동네부인들도 그를 기다리다 저녁준비가 늦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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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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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거목과 거위 - 산목
장자가 산속을 지나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거목을 보았는데, 나무꾼이 그 옆에 서 있었으나 베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쓸데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재목이 안 되므로 그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 장자는 산에서 나와 옛친구의 집에 묵었다. 친구가 반가워하며 하인* 에게 거위*를 잡아 삶으라고 명했다. 하인이 물었다. "하나는 잘 울고 하나는 울지를 못하는데, 어느 것을 죽일까요?" 주인이 대답하였다. "울지 못하는 것을 죽여라."
* 하인 : 수는 '심부름하는 아이', '내시'의 뜻을 가진 글자로서, '하인'을 뜻한다. * 거위 : 원문은 안으로, 여기서는 '거위'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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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어느 산속을 지나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한 그루 보았다. 그런데 나무꾼이 그 옆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베려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장자는 느끼는 바가 있어서 중얼거렸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타고난 수명을 다할 수 있구나."
장자는 산을 내려오자 옛친구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친구는 반가운 나머지 하인에게 거위를 잡아 삶으라고 했다. 그러자 하인이 물었다.
"한 마리는 잘 울고 다른 한 마리는 잘 울지 못하는데, 어느 놈을 잡을까요?" 주인이 말했다.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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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말글/국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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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밥이 하늘
덜커덩 방아를 찧어서 거친 밥일망정 맛있게 지어 보세. 부모님께 드린후에 행여 남는 밥이 있으면 내 먹어 볼꺼나.
지은 때나 지은이를 알지 못하는 고려시대의 방아 찧는 노래(相杵歌)다. 열성으로 일을 해서 방아를 찧어 밥을 지어도 자신이 먹을 밥이 넉넉지 않음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밥을 하늘이라 한다. 금강산 구경이 좋기는 하지만 밥을 먹은 후라야 제 맛이 나는 법. 오늘의 세상살이와는 참으로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 때문에, 남아도는 오래된 쌀 관리 때문에 일천억원을 웃도는 돈을 써야 하지 않는가. 지금도 우리가 사는 지구 어디에선가는 먹거리가 없어 굶어 병들어 죽는 사람들 소식이 자주 신문에 오르내린다. 우리가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한 것은 겨우 이십여 년. 따지고 보면 쌀은 남아 도는데 남의 나라에서 많은 양의 먹거리를 사들여야 하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정말 잘못이지. 시간을 거슬러 고려 중엽때의 문헌인 계림유사를 볼라치면 방아노래에서처럼 엄청나게 먹거리 곧 밥거리가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 논에서 벼와 함께 자라지만 잡초로 여겨 뽑아버리는 풀을 '피'라고 한다. 이 피로 물건 값을 정해 물건을 서로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에는 옥수수, 피, 벼, 수수, 호밀, 콩을 통틀어서 여섯가지 쌀이라 하였거니와 곡식의 낟알을 모두 쌀이라 하다가 지금은 벼의 열매껍질을 벗긴 알맹이만을 이른다. 이것만으로는 먹거리가 충족되지 않았을 뿐더러 정착하여 여름지이를 한 뒤에도 나무열매나 풀뿌리로 모자란 부분을 때워 나갔던 것이다.
나무열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밤'이라 하겠다. 삼국유사 권4에 전해오는 밤나무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원효의 어머니가 해산기가 있을 즈음 지금의 경산땅 불지촌이란 마을의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미처 집에 닿기도 전에 아기를 낳게 되었다. 남편이 밤나무에 옷을 걸어 막아주었다 하여 이 나무를 사라수(詐羅樹)라 했으며 열매 또한 이상하여 '사라밤'이라 불렀다. 이곳에 있던 절을 주관하는 사람이 절머슴에게 저녁 끼니로 밤 두개씩을 주었다. 절 머슴이 그 양이 적음을 관청에 알리자 관원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그 밤을 가져다가 알아보았다. 밤 한개가 바릿대에 하나 가득 차므로 오히려 밤 한개씩만 주라고 판결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율곡(栗谷) 곧 밤골이라 하였으며, 원효가 집을 나온 후 그 집을 절로 삼아 초개사(初開寺)라 하고 사라밤나무 곁에 절을 지어 '사라사'로 부르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밤과 대추 복숭아 오얏 살구를 5과라고 불렀으며, [청산별곡]에서는 머루·다래를 먹고 살아가는 산 속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낸다. 이 밖에 풀의 열매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물론 여기서는 피와 벼를 빼 놓고 나무열매에 맞먹는 경우를 살펴보자.
삼국유사 권2에 보이는바, 저 유명한 [서동요]의 바탕글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서동은 늘 '마(저)'를 캐어다가 팔아서 생계를 이었다. 선화 공주를 사모한 나머지 머리를 깎고 서울로 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준 대가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였으니 이 노래가 바로 [서동요]다. '마'는 덩이뿌리로서 약용으로 쓰이며 뿌리에서 나는 싹을 먹기도 한다. 지금은 약용으로만 쓰이지만 옛 기록으로 보아 식용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물 속에서 자라는 풀로서 '마름'이라고도 하며, '말'이라 하는 경우는 어떤가. 훈몽자회를 따르자면 민물 또는 바닷물에서 자라는 풀을 '말[m l]'이라 한다. 문종 임금이 풀이해 적기로는 '말왐'이라 하였으니 '머구리밥 빈(頻)'을 '말왐 빈'으로 드러내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지금도 마름을 '말밤'이라 이르니 '말밤→말왐(말암)'으로 바뀌어 간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글에 이르기를 물에 잎이 뜨는 말은 조(藻)요, 가라앉는 것은 빈이라 하였다. 유씨물명고에서는 마름 또는 말밤을 '물밤(水栗)'이라 하였으니, 그럼'머구리밥'의 '밥'과 말밤의 '밤' 사이의 걸림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끼니로 먹는 모든 음식을 '밥'이라 한다. 더러는 동물의 먹이(미끼)로 풀이하기도 하며, 좁혀서 쌀·보리·좁쌀 따위의 곡식을 씻어서 솥 같은 것에 안치고 물을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도록 끓인 음식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니까 크게 보아 개구리 곧 머구리밥이나 사람이 먹는 말밤이나 모두가 밥이 되기에 충분하다.
'밥'은 '밤'에서
밥을 만드는 게 심 그게 진짜 심이지 (조재훈의 '물로 불'에서)
글쓴이가 보기로는 '밥'이란 말은 '밤'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연구(강길운,1990)에서는 지리지의 마주걸림(栗木→冬斯)을 떠 올려, 터키어 계통의 밤나무-거스다네(kestane)가 쓰이고 있음을 보이면서 지금의 밤과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방언에 따라서 겨울을 일러 '겨슬·거실·겨실·기실'로 함을 보면 그럴듯한 대응이 보인다. 밤송이에 가시가 돋히듯이 생긴 말밤(마름)을 '거ㅅ연밥 검)이라 함은 더욱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한다. 우리말을 중심으로 하면 밤송이에 가시가 많이 돋혀 찔리면 아픈 것처럼 겨울은 춥고 지내기가 어려움을 뜻하는 걸림을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겨슬(거슬)이라고는 하지도 않으며 모두 밤이라 부른다. 나무열매로서 밤이나 물풀 열매로서 말암(말밤·마름)은 모두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알맹이를 요리하거나 날것으로도 먹게 된다. 물론 유씨명물고 에서도 그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럼 밤이란 말은 무엇을 벗겨낸다는 말에서 온 것은 아닐까. 우선 '밤'은 밤나무열매·놋그릇을 부어 만드는 틀, 어린 송치가 어미 뱃속에서 먹고 자라는 물결이란 뜻 등으로 두루 쓰였다. 우리말 방언을 보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길게 소리나는 '바암(대구), 바:ㅁ(경상도)'과 같은 소리꼴들이 눈에 띈다. 벼나 보리가 채 익기도 전에 이삭을 훑는 일을 '풋바심'이라 한다. 본디 바심이란 집 지을 재목을 연장으로 깎고 파고 하는 일을 말한다. 방언에 따라서는 '바슴·바심'이라 한다. 신증유합 같은 옛말글 자료에서는 '부수다(碎)'는 뜻으로 자주 쓰였다. 결국 불필요한 부분만 들어내는 것이다. '바스러지다'나 '바심'은 말의 됨됨이로 보아 겉(表·外)을 뜻하는 '밧(벗)' 동사파생접미사 '∼다'가 붙어 된 말들이다. 한마디로 '벗겨냄 떨어냄 어떤 틀에서 벗어남'으로 뜻의 보람을 풀이할 수 있다고 본다. 하면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의 풀이와도 크게는 같은 흐름에서 그 쓰임을 간추릴 수 있다.
이제 '밤→밥'이 된 과정을 따져 보자. 형태가 갈라져 쓰이는 틀 가운데 모음이나 자음이 바뀌는 것이 으뜸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ㅁ→ㅂ'으로 바뀌어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그럼 낮과 밤의 '밤'은 어떠한가. 먹는 밤의 소리가 더 길다. 바탕은 같을것으로 보인다. 낮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밤이 되고 밤에서 낮이 비롯된다. 이러한 밤의 어두운 틀 속에서 빛을 인식하게 되며,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 빛깔도 먹는 밤과 크게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검은 색은 신의 영지요, 큰 가능성이기도 하다. 나무열매로서 밤의 생산이 중시된 것은 땅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가장 많은 예는 밤골 밤고개 밤나무 밤밭 밤실 밤가지 등이다. '마-말'과 '벼-피'의 풀이를 덧붙이자면 '마'는 ㅎ끝소리명사로 아예 윗말에 붙어 '마(ㅎ)-맣-맛-맏-말'로 발달한 것이요, '벼-피'는 같은 '비'에서 비롯한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벼를 '비'라고 함이니, 거센소리가 없던 때에는 피를 '비'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 한알이 귀신 열을 쫓는다 했거니와 음식을 소중하게 여길 일이다.
몸과 묶음
이 몸이 생겨날 적 하늘의 뜻을 따랐으니 일평생의 일을 하늘이 모를까 이내 몸이 젊어 있고 임께서 날 아껴주시니 이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어디에다 비길까.
참으로 찐더운 사랑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그리움이 이에 이르면 가히 정겨운 그 무엇이 있을 듯하다. 널리 읽히는 송강이 지은 <사미인곡>의 머리글이다. 글의 끝부분에 가면 몸이 죽어 벌나비가 되어 임의 옷에 옮아 다니면서 꽃 향기를 전한다는 마무리를 하고 있다.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 제 몸을 잃을진대 온 누리의 물질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한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흔히 왜 사느냐고 묻는다. 여러가지의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생물은 제몸보존과 씨알보전의 목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여기 보존의 중심은 '몸'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 주는 이를 몸알리-지기(知己)라고 하거니와 몸이란 여러가지 복합적인 쓰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옛부터 몸의 관리를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신(身)·언(言)·서(書)·판(判)이라 하여 몸의 생김새를 사람 저울질의 큰 자로 삼아 왔지 않은가. 살아가는 우리네 둘레와 몸을 고리지어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좋은 음식을 찾기도 하며 온갖 옷감이나 집 지을 재료들을 마련하기에 매우 바쁘다. 하루도 걸름이 없이 먹는 먹거리도 그 뿌리는 모두가 목숨이 담기는 몸들이다. 쌀이 그렇고 맛있게 먹는 고기들이 그러하다. 본시 사람 때문에 태어나 일생을 마치는 목숨살이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사람의 목숨이, 몸이 값진 것이라면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먹고 살아 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양만큼의 물질은 있어야지. 다른 생물의 몸이나 목숨을 어떤 즐김의 대상으로 함은 분명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죄업이지).
'몸'이란 무엇인가. 짐승이나 사람의 머리로부터 발까지 그에 딸린 모든 부분을 일컬어 몸이라 풀이한다. 우리말 '몸'에 드러난 겨레들의 깨달음 바탕은 무엇이며 예서 비롯하는 말들의 겨레로는 어떤 형태들이 있을까. 몸을 이루는 부분으로는 제각기 다른 구실을 하는 많은 기관들이 있다. 눈 코 귀 입이며 머리로 이루어지는 얼굴,목 가슴 배 허리 궁둥이 등의 몸체부분이 있으며 여기에 나뭇가지처럼 달려 있는 팔 다리며 이에 붙어 있는 손 발은 말할 것 없고 다시 이에 딸린 손발의 가락들이 있다. 사람의 몸을 일러 작은 우주라고도 한다. 침뜸을 주로 하는 한의학에서는 침 놓는 자리를 경혈(經穴)이라 이른다. 그 수는 지구가 자전하는 삼백육십여개로 본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상당한 마주걸림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니까 우리 몸은 크고 작은 부분들이 모여 유기적인 걸림을 조화있게 이룸으로써 목숨 보전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과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뼈만 해도 그렇다. 해부학에서는 우리 사람의 몸에는 약 200개 가량의 뼈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뼈는 석회질과 아교와 같은 교질이 단단하게 엉겨 붙어 소화기 등의 내장을 보호하고 운동의 거멀못 노릇을 한다. 쇠로 만들어진 못을 박아 두 개 이상의 물질을 결합시킨다. 이를테면 몸의 뼈가 못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몸은 여러 부분들이 질서 있게 모인 아주 정교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이란 모인 것
그러면 작은 부분들을 모아만 놓으면 목숨살이가 가능할까. 그렇지는 않다. 가령 집의 경우를 더듬어 보자. 나무와 벽돌과 기와 등 필요로 하는 물질이 있다고 해서 집의 기능이 살아 오르지 않는다. 요컨대 몸도 보다 작은 부분들이 일정한 질서의 흐름을 따라 결합되고 해체되며 이러한 신진대사가 되풀이 될 때에만 삶의 교향악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되지 않겠는가. 하면 '몸'이란 말이 한데 어울려 이루어진 '결합체'란 말인가. 그러한 말의 발전과정과 속사정은 어떠한가. 우선 '몸'이 쓰이는 시골에 따라서 조금씩은 다른 경우를 들어보기로 한다. 예천·문경 등지에서는 몸떵어리, 경상 전라 강원도의 일부에서는 몸뚱아리, 전남 영광에서는 모뚜이, 양산에서는 몸디, 남원·임실·예천 등지에서는 몸떼이, 산청 등지에서는 몸띠이라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풀이가 다르겠으나 몸떵어리가 상당한 실마리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이르자면 몸떵어리는 몸과 덩어리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덩어리는 덩이라고도 하는바 작은 부분들이 모여 이룬 떼를 가리킨다. 몸데이란 것은 몸덩이의 덩이에서 모음이 바뀌어 일어남이요, 몸띠이(몸띠)는 데이→디이(디·띠)와 같이 모음이 쉽고 편한 전설모음으로 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몸'이 '모으다'에서 비롯되었다면 어떨까. 여럿을 한 곳으로 오게 하거나 돈이나 물건을 저축하는 일, 또는 담 등을 쌓아 올리거나 나무의 여러 쪽을 짜맞추어 배를 만드는 움직임을 통틀어 '모으다(모다)'라 이른다. 하면 움직임을 드러내는 동사의 어간 '모으∼'에 명사형 어미(ㅁ)이 붙어 음절이 줄어지면 '모음→몸'이 되어 긴 소리로 내게 된다. '모으다'는 기원적으로 같은 뜻을 드러내며 이륜행실도·노걸대언해 등에 보이는 '못다'에서 발달해 온 낱말겨레가 아닌가 한다. 짐작하건대 '못'에 조음소 '으'와 동사화어미(-다)가 붙으면 '못으다→모스다→모 다→모으다'로 된다. 그럼 여기 '못'은 무엇을 드러내며 '모으다-모음-몸'의 몸과는 어떤 걸림이 있는 걸까. 훈민정음해례·아언각비 등의 자료를 보면 연못의 못(池)과 쇠로 만드는 못(釘)과 같은 뜻이라 적고 있다. 앞의 경우 넓고 깊게 팬 땅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이다. 못은 다른 곳보다 낮으니까 늘 다른 곳에서 물이 흘러 들어온다. 곧 여러 줄기의 물들이 함께 모이어 이루어진다. 뒤의 경우는 두 물건을 하나로 결합시켜 모이게 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옛글에서는 못이 'ㅁ'으로도 적힌다(왜어유해·훈몽자회). 오늘날의 '모두·모든·ㅁ다(제주도)'와 같은 말은 예서 비롯한 말의 겨레들임을 알 수 있다.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육천명이 ㅁ이었다'의 'ㅁ이다'도 같은 경우라 하겠다. 지역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모이다'의 경우 '모둔다(상주·산청·광양) 못다(정선·제천) 모당께(마산·함안·창녕) 모단다(부산·마산·함안)'의 말들이 쓰이는데 'ㅁ-'계가 중심을 이루는바 상당히 미더운 보기들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못-ㅁ은 어말자음의 바뀜에 따른 것이요 뒤로 오면서 갈래져 별개의 말로 굳어지기에 이른다. '못'이 모음 곧 모여서 이룸이란 뜻을 드러냄과 관련하여 모음이 바뀌면 못은 뭇이 된다. 지금도 장작이나 잎나무를 한 묶음씩 작게 추스려 놓은 셈의 단위를 '뭇(束)'이라 하지를 않는가. 혹은 세금을 받을 때 계산하기 위한 땅 넓이의 단위도 뭇이라 하며 수효가 많음을 드러낼 때에도 '뭇-'이란 말조각을 쓴다. 잇몸을 왜어유해 같은 말에서는 '닛무윰·닛므음'이라 적고 있다. 여기 '무윰(므음)'의 소리마디가 줄어지면 '뮴(믐)'이 되는데 모두가 '몸'의 또 다른 변이형이라 보면 좋을 듯하다.
'무우'도 묶음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부른다 ('사우'에서)
부는 봄바람에 흐드러진 야생 무꽃 - 청라꽃을 보노라면 벌써 내 지나쳐 버린 유년의 뜨락이 눈에 선하다. 일상으로 우리는 밥과 함께 배추와 무우김치를 먹는다. 이 때 '무우'도 '뭇'과 걸림이 있는 말로 보인다. 시골말의 쓰임을 보면 흔히 무시·무수·무꾸와 같은 말이 많이 사용됨을 알 수 있다. 500년전 무렵의 두시언해를 보더라도 무우를 '무?'라 하였으니 이를 한데 간추리면 '무수(무시)-무?-무우'와 같이 됨을 알겠다. '뭇'과 무우는 어떤 걸림이 있을까. 본디 무우는 겨자과에 딸린 한 해 또는 두 해살이 풀로서 잎은 뿌리에서 무더기로 모여 나고 자줏빛 혹은 흰빛의 네잎 꽃이 '무더기'로 피어 올랐다간 지고 그 자리에 열매들이 무더기로 꼬투리 안에 열린다. 시골말에서 무우를 '무꾸'라 했거니와 이는 '뭇(못)'이 이른바 기역(ㄱ)으로 끝이 나는 말조각과 같이 쓰이어 특수변화를 하는 명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흔히 기역 종성체언이라 하는바, 때로는 위엣 말의 받침이 되어 아예 굳어져 녹아붙기도 한다. 가령 '뭇(ㄱ)다>ㅋ>묶다(묶음)'도 그러한 보기라 할 것이다. 시옷이 기역에 거꾸로 닮아 완전하게 같은 소리로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우리의 몸이 여러 부분을 한데 얼려 한 인간의 영혼을 기르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거룩한 자연도 하나의 몸-곧 공동체인 것이다. 하물며 우리의 이웃이나 배달겨레로서 같은 핏줄을 나눈 남과 북의 말미암음은 같은 한아비의 몸에서 갈라져 나왔으매 우리의 몸, 우리 겨레는 하늘이 섭리하는 한 묶음이다. 세상살이란 게 작은 묶음에서 큰 묶음으로 이어지는 고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어울림. 때로는 삶과 죽음의 모습으로 달라지기는 하나 본디 그 또한 한 몸에서 비롯한 것을. 나 혼자만이 어떻게 해 보겠다 함은 마침내 해 볼 수 없다는 물음과 고뇌에 부딪히고 마는 것을. 그래 세상은 한 몸이야, 한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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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썼을까?
셰익스피어가 썼다고 일컬어지는 희곡들이 정말 셰익스피어에 의해 씌어졌는지 아니면 베이컨에 의해 씌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학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논쟁거리가 되었다. 베이컨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교육을 받지 못한 백정 소년이었고 무식한 동네에서 살았으며 오늘날 그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희곡들을 창조해내는데 필수적인 광대한 지식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셰익스피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첫째로 셰익스피어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둘째,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도 천재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경우가 문학계에서 종종 있어 왔다고 반박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베이컨이라면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실수들을 셰익스피어는 계속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시인이고 베이컨은 학자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교육보다는 상상력이 월등히 풍부했던 셰익스피어였기 때문에 내륙 지방인 보헤미아에 해변을 설치하고, 헥토보다 700년이나 후대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헥토가 인용하기도 하고, 로마의 휴일을 의미하는 루퍼 칼리아를 로마의 언덕이라 부르고 있다. 덧붙여 셰익스피어 지지자들은, 시인으로서의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베이컨이 절대로 따라가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베이컨이 철학가로서는 훌륭한 자질이 있으나시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세한 것을 너무 따지는 사람은 크나큰 환상의 날개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이 두 반대파들의 주장에 대해 가장 훌륭하게 답변한 사람은 아마도 마크 트웨인일 것이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셰익스피어에 의해 씌어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에 의해 씌어진 것이 분명할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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