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아테네
아테네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이다. 아테네라고 하면 인구 삼백만을 헤아리는 그리스 제일의 도시(실로 그리스 총 인구의 삼분의 일에 가까운 수)지만, 관광객이 통상 돌아 다니는 면적으로 하자면 그리 큰 도시는 아니다. 역사적 유물은 대충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아주 넉넉하게 잡아도 사흘만 있으면 볼 만한 곳은 다 볼 수 있다. 이 도시는 먼 옛날 폴리스 주변에 마치 자석에 철가루가 달라붙듯 근교 주택지까지 그대로 무질서하게 다닥다닥 발전한 도시라서 관광객에게 흥미가 있는 장소는 중심부에만 밀집되어 있는 것이다. 근교 주택지 같은 곳에 일부러 구경을 하러 가봐야 별 뾰족한 것이 있을 리 없으니(가령 당신이 도쿄에 온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히바리가오카나 다마 플라자, 니시고쿠분지 같은 곳에 관광하러 가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 프라카에서 레티나를 마시고 무사카를 먹고는,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다가 기념품 가게를 기웃기웃거리고, 신타그마 광장에서 차를 마시고, 리카비두스 산에서 아테네의 야경을 구겨하고, 그 후 시간과 관심이 있는 사람은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견학하고 그러면 끝이다. 요컨대, 세 번씩이나 왔다면 이미 볼 것도 없고, 가야 할 장소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아테네의 그랜드 브르타뉴 호텔에 머무르면서, 거기에서 발렌티나라는 여성을 만났다. 그녀가 우리에게 집을 소개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
발렌티나 발렌티나가 우리에게 섬에 있는 전셋집을 소개해 준다.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말이죠, 비유우우우우우우티플한 집이에오." 라고 그녀는 감격스럽다는 듯이 내 무릎을 탁탁 치며 말한다. 우리는 둘이 나란히 그랜드 브르타뉴 호텔의 로비 소파에 앉아 있다. 그녀는 일단은 영어로 얘기하는데 뭐에 감동을 받거나 무언가를 강조하거나 할 때면, 단어의 중간에 있는 모음을 기이이이이이이이일게(길게) 늘어 뜨리는 버릇이 있다. 그 버릇은 알게 모르게 내 쪽으로도 옮아 온다. 전염성이 있는 버릇인 모양이다.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그리 곰살갑지 않은 호텔 보이가 다가와 "뭘 마시겠습니까?" 하고 분별없이 주문을 요구한다. 그런데 발렌티나는 그 자리에서 "노!" 라고 대답한다. 이런 때, 그녀의 모음은 아주 간결하고 명쾌한 발음이다. "그러고 말이죠, 그 집 근처에는 그 또한 비유우우우우티플한 비치가 있거든요. 그런데 당신 수영복은 가지고 왔겠죠." "에에, 그야 물론." "당신, 반드으으으으으시 그 집이 마음에 들 거예요."
발렌티나의 나이는 겉으로 봐서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스무 살이나 되는 아들이 있다고 하니까 제법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그리스의 중년 여성치고는 드물게 야위었고, 그리고 대부분의 야윈 여성이 그러하듯, 아아아아아주 에너지에 넘쳐 있다. 화장도 옷차림도 그 에너지를 흡수했는지 상당히 화려한 편이다. 나는 그녀와는 첫 대면이다.
"드미트리가 당신을, 일본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하던데 그 말 정말이에요?"라고 발렌티나가 내게 질문한다. 간단한 인사말과, 날씨에 관한 의례적인 대화가 오고 간 후 얼마간 의심스럽다는 듯 그녀는 그렇게 말을 꺼냈다. 드미트리는 내게 그녀의 이름을 알려준 도쿄에 사는 그리스 사람이다. 아무래도 드미트리가 그녀에게 전한 정보에 오해 내지는 정서적인 혼란이 있었던 모양인지, 그녀는 나를 다니자키라든가 미시마 같은 타입의 반고전적인 문호라고 예상한 듯 했다. 그런 터에 내가 색바랜 티 셔츠에 낡아빠진 진 차림의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조금은 훙이 깨진 듯싶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로서도-딱히 내 탓은 아니지만-죄송스러워 할 말이 없다.
가끔 생각하는 일인데, 아무래도 내게는 작가로서의(혹은 예술가로서의) 오라라고나 칭해야 할 무언가가 약간은 부족한 것 같다. 일본에서도 빵집 배달부나, 슈퍼마켓의 점원으로 오인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을 보고 있노라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봐요, 고춧가루 어디 있죠?" 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그리고 또 나는 어디어디에 있다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복장 탓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다 반듯하게 넥타이를 매고, 검정 양복을 입고 호텔 로비에 서 있으면, 낯모를 아저씨가 "어이 자네, 학실이 어디지?" 하고 묻는다. 따라서 나는 발렌티나를 책망할 수가 없다. 오라라고 하는것은-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 도무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있어야 할 곳에는 반드시 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전혀 없는 것이다. 온천이나 유전 같은 것처럼.
"예, 그렇습니다. 작가예요." 라고 나는 변명을 하듯 말한다. "유명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죠, 일단은. 어찌됐든 드미트리가 내 얘기를 좀 과장되게 당신한테 전한 것 같군요. 일단 글을 쓰기는 하지만, 그리 대수로운 작가는 아닙니다." "흠" 하고 그녀는 다시 한 번 내 복장을 보고는 말한다. "저, 하지만 전업작가죠. 풀 타임의?" "예, 그래요. 풀 타임 작가입니다. 뭐 그건 그렇고."라고 나는 대답한다. 뭐, 그건 그렇고. "글을 쓰기 위해서 그리스에 왔습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실은 나도 시를 쓰거든요."라고 발렌티나가 말한다. "그런가요, 몰라봤습니다. 드미티리가 안 가르쳐 줘서." "당신, 시는 어때요, 쓰나요?" "써본 적이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흠흠 하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스는 시가 아주 발달된 나라예요. 소설보다 시 쪽의 활동이 더 활발할 정도이죠. 그리스에 있어서 시는 역사적인 것이어서-참 당신, 그리스가 노벨 문학상을 두 번이나 탄 사실 알고 있어요?" "아니오, 몰랐는데요." 라고 나는 겸연쩍게 말한다. 발렌티나는 다시금 내게 "당신 정말 작가야?"라는 시선을 힐끗 보낸다. 그래봐야 난 그런 거 모른다구. 일본인 작가가 몇 명 노벨상을 탔는지조차 나는 모른다. "하지만 시의 문제점은,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죠. 시인이란 직업이 될 수 없어요."라고 발레티나는 말한다. "그래서 나 역시 달리 일을 갖고 있는데-그런데 드미트리가 당신한테 내가 뭐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던가요?" "글쎄요, 유감스럽게도 나랑 드미티리는 길이 어긋났어요. 지난달 그가 그리스에 돌아왔을 때는 나는 아직 일본에 있었고, 이번 달에 내가 이렇게 그리스로 오고 보니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더라구요. 그래서 그와 제대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테네에 도착하면 하여튼 당신한테 전화를 하라고, 그러면 다 알게 될 거라고 그런 말만 했습니다. 그 이상 자세한 것은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어요." "아아, 그랬어요. 흠흠. 아무튼 당신을 만나서 기뻐요. 웰 아임 해애애애애애피 투 미이이이이이이이이잇추." 그리고 그녀는 또 나의 무릎을 탁탁 친다. 이 여자, 내가 아는 누군가와 아주 닮았다, 싶은 생각이 내 머리를 가로지른다. 그것도 누구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고, 복수의 사람과 닮았다. 뭐라 설명은 잘 할 수 없지만,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경우에 취하는 특정의 행동을 서너 가지 합하여, 그것을 하나로 뭉뚱그린 후 다시 조금씩 여러 각도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인 것이다. 기묘하게 리얼하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보고 있는 듯한, 그런 타입의 유사성이다. 하지만 결코 불쾌한 인상은 아니다. 그녀와 얘기하고 있으려니, 어떤 종류의 정겨움조차 느껴진다. 아하, 그러고 보면 세계는 정말 좁군, 이란 식으로.
"드미트리는 헤어진 남편의 동생이에요," 라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이혼한 후에 줄곧 혼자라서 그래서 우린 아직 성이 같거든요. 드미트리는 요렇게 조그만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자아아아아아알 알고 있죠. 아 참 집 얘기를 해야 하나. 당신 집을 찾고 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집을 찾고 있어요." 간신히 얘기가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렇다. 우리는 그리스에 살기위해 집을 찾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찾고 있는 집의 조건을 대충 제시한다. (1) 침실2 (2) 부엌과 목욕탕이 있을 것 (3) 가구가 딸려 있을 것 (4) 조용할 것-일을 해야 하므로 대략 그런 정도이다.
"음 글쎄..."라며 발렌티나는 잠시 생각에 젖는다. 볼펜을 손안에서 빙빙 돌리고 있다. "조용하고 침실이 두 개 있고... 응 그렇지, 스페체스 섬이 어떨까? 스페체스라면 내가 아는 사람의 서머 하우스가 있는데. 스페체스 섬 알아요?"
스페체스라면 일단은 알고 있다. 실제로 가본 적은 없지만, 이도라 바로 근처에 있는 섬이다. 이도라에는 몇 번인가 간 적이 있다. 크기로 봐서도 적당하고, 피레에프스에서 떠나는 뱃길도 편하다. 더구나 이도라처럼 한 시간마다 크루즈선이 방정맞게 왔다갔다하지도 않으니, 관광객에게 그다지 각광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아테네에 사는 그리스인이 서머 하우스를 지니고 있으면서, 여름 주말에 잠깐 놀러 왔다 가는 그런 섬이다.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어떤 집이죠?" 라고 나는 질문한다. "나도 몇 번 그 집에 머무른 일이 있는데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정말 비유우우우우우우티플한 집이에요."라고 발렌티나가 말한 것은, 바고 그때이다. "그러고 말이죠, 그 집 근처에는 그 또한 비유우우우우우우티플한..." 운운. 발렌티나는 백에서 메모 용지를 끄집어내서는 볼펜으로 지도를 그린다. 우선은 그리스의 지도. 그런데 그게 또 기묘한 지도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살이에서 몇몇 여성이 그린 지도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한 번도 지도를 정확하게 그리는 여성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발렌티나 역시도 부정확한 지도를 세상에 뿌리고 다니는 종족의 일원이었다. 라고 할까. 나로서는, 이 사람은 그 중에서도 상당히 정도가 심한 중환자라고 분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지도에 따르자면, 그리스 본토(즉 마케도니아에서 스니온 곶에 이르는 부분)는 축 늘어진 유방 같은, 아니면 구운 떡을 잡고 힘껏 잡아당긴 것 같은 원추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그 왼쪽으로 비틀린 장갑같은 꼴로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양자를 가르고 있는 코린트 운하는 도버 해협만한 폭이다(실제로는 백 미터나 이백 미터 정도이다). 그것이 발렌티나가 본 그리스이다.
"이게 그리스예요," 라고 말하고 발렌티나가 그 죄많은 지도를 내 쪽으로 향한다. "알겠어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나는 할 수 없이 동의한다. 지금 새삼스레 저항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 "그리고, 여기가 스페체스예요."라고 그녀는 말하고, 바다 위에다 조그만 원을 그린다. 그리고 그 다음 페이지에 섬의 지도를 그린다. 섬은-그녀의 지도에 의하면-양송이 버섯을 세로로 잘라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식을. 그러나 후일 지도를 사서 보니, 섬은 실제로는 이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보면 아시겠지만 그 섬은 모양도 전혀 다르고, 항구의 위치도 남북이 전혀 반대이다. 어째서 이렇게 커다란 차이가 나는가 하면-내가 생각하기에-요컨대 그녀는 섬 생활에 있어서 항구의 중요성을, 지형적인 중요성에 오버랩시켰기 때문에, 그래서 항구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점점 커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그녀는 동서남북이라는 절대적인 위치 관계도 전혀 인식 못하고 있었다. 즉 그녀에게 있어, 혹은 많은 여성들에게 있어, 지리적인 전체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들이 무엇보다 존중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컬러풀한 세부이며, 세부의 인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지형적인 중요성도 정비례하여 팽창해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정작 그때는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여하튼 "어째 좀 이상한 모양을 한 섬이군."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지도를 다 그리고는 거기에다 화룡점정이라도 되듯 집이 있는 위치를 그려 넣더니, 사뭇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띠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 이 섬 아아아아아주 좋아해요."라고 소리치고는 그 지도 위에다 쪽 하고 입을 맞춘다. 그리고 그 종이를 내게 건네 준다. 지도 위에는 그녀의 립스틱 색깔이 확연하게 찍혀 있다. 이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편견과 몰이해로 일그러진 섬은, 립스틱으로 멋들어지게 봉인되고 만 것이다. 그녀가 그 정열적인 입맞춤에 대해 내가 어떤식으로 반응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나는 그때 전혀 알 수 없었으므로(지금도 모른다), 좌우지간 "예,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지도를 받아 힐끗 보고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 이상 지도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항구에 도착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항구에서 이 집까지는 걸어서 한 십오분쯤 걸려요."라고 발렌티나는 말한다. "경치좋은 바다를 끼고 있는 길이니까 걸으면 기분도 상쾌하겠지만, 짐이 많을 것 같으면 택시를 타는 편이 편리할 거예요. 하지만 섬에는 택시가 한 대밖에 없으니까, 만약 그 택시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마차를 타고 가면 돼요. 아니면 수상택시를 이용해도 되고." "한적한 곳인 것 같군요." "그야 무우우우우우우울론, 한적한 곳이죠."라고 발렌티나는 강조한다. "아무튼 자동차 같은 것이 거의 다니지 않으니, 일을 하기에는 최상 아니겠어요."
나는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는 발렌티나의 말을 상당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였다. 음, 이거야말로 이상적인 그리스 생활이겠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름다운 해변, 자동차가 없는 섬, 조용한 나날(그런데 나중에 정작 그 섬으로 건너가고 나서는 그 시끌벅적함에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과연 자동차는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오토바이가 유난히 많은데다, 그것도 소음기가 달려 있지 않은 엉터리 오토바이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타타타타타타타 하고 달린다. 어린아이가 양철 지붕을 막대기로 힘껏 두들기며 장난을 치고 다니는 것 같은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온 섬을 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 소리는 정직하게 말해, 어떤 의미 에서는 산겐자야 네거리에 서 있는 것보다 더 신경에 거슬렸다. 사방이 조용한 만큼 그 소리만이 유난스레 모오오오오오옵시 거슬리는 것이다. 하지만 발렌티나의 말에는 그런 뉘앙스는 조금도 없었다. 아하, 자동차가 없다구, 그것 잘됐군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누가 오토바이가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으랴!) 발렌티나는 이번에는 다른 종이에 집 주변의 약도를 그려 준다.
"슈퍼마켓이라든가, 우체국이라든가, OTE(전화국)라든가, 생활에 필요한 것은 항구에 가면 다 있고, 레스토랑 같은 것도 즐비하니까 생활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지만, 십오분을 걸어야 하는 것이 성가시다면 집 주변에도 가게가 다앙하게 있어요. 여기에 조그만 슈퍼마켓이 있고(아나르기로스 경영), 여기에 생선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주점이 있고(파토라리스 경영), 여기에 카페니온이 있고(판델레스 경영). 생선 가게는 없지만, 카페니온에는 어부들이 늘 모여 있으니까, 직접 교섭하여 신선한 생선을 사면 되구오." "아주 좋은 곳인 것 같군요." 정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이게 중요한 바로 그 집이에요." 라고 그녀는 집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한다. "이런 식으로 집이 두 채 이어져 있는 집이에요. 옆에는 주인인 타키스 씨의 매제 할리스 씨가 살고 있죠. 할리스씨는 아테네에 집이 있는데, 이 섬의 전화국에 출장 근무중이라서 주말이면 아테네로 돌아가요. 그는 영어를 할 줄 아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편리할 거예요." "그렇겠군요."라고 나는 동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집의 내부 배치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 집의 외관이나 근처의 지리에 관해서는 숙지하고 있는 데 반해 집의 내부에 관한 그녀의 지식은 어쩐지 애매모호하고 믿을 수가 없다. 그 지도 역시 맥락을 잃어 내게 그다지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화단에 핀 꽃은 문보다도 크고(앞에서도 말했듯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필요 이상 크게 그리는 것이 이런 종족의 특징이다), 그런 형편이니 방과 방 크기의 비율도 결코 정확하지 않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녀가 어째서 집 주변에 관해서는 그다지도 상세하게 알고 있으면서, 집 내부에 관해서는 그다지 상세하지 못한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나로서는 좋은 장소에 좋은 집이 있어 타당한 가격에 빌릴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녀의 설명을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은 얘기가 된다. 일층에는 거실과 부엌과 욕실과 조그만 어린애 방이 있다. 이층은 절반이 침실. 그리고 약간의 정원이 있다. 몇 가지 문제는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재가 일을 할 수 있는 독립된 방이 없다는 것(어린애 방에는 안 쓰는 가구가 꽉 들어차 있다). 두 번째로 욕조가 없다는 것 (서머 하우스라서 그런 것은 없어요, 라고 그녀는 말한다). 세 번째로 전화가 없다는 것(전화국에 가면 된다고 발렌티나는 주장한다). 네 번째로, 그런 셈치고는 집세가 결코 싸지 않다는 것(팔만 도라크마를 그들은 요구하고 있다. 팔만 도라크마라면 그리스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발렌티나와 섬에 관한 얘기를 하는 사이에 나는 점점 거기서 살고 싶은 기분이 농후해졌다. 게다가 이제부터 다시 집을 찾는다는 것도 조금은 성가시다. 그리스에서 집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인 것이다. 일단은 여기에서 살아보기로 할까, 얘기는 그렇게 돌아간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섬인 것 같으니까.
나는 그 집으로 정하겠노라고 발렌티나에게 말한다. 그러고는 한 달치 집세를 수표로 선불한다. 그것으로 얘기는 끝. 간단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리스에서 우리가 살 집이 정해진 것이다. 헤어지기 전에 발렌티나는 나를 근처에 있는 책방에 데려가 영역된 그리스 현대 작가의 소설을 몇 권 골라 주었다(그런데 하나같이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미안하지만 도중에 읽기를 그만두었다). 책방 앞에서, 그녀는 군밤 파는 아저씨한테서 군밤을 한 봉지 산다. 시월이 되면 아테네 거리는 군밤을 파는 아저씨들의 포장마차로 가득하다. 거리는 군밤이 풍기는 고소한 냄새로 충만해진다. 그녀는 그 아저씨와 얼굴을 아는 사이인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다. 그녀가 웃자 아저씨도 웃는다.
"이걸 가지고, 아들애한테 점심을 만들어 줄 거예요."라고 발렌티나가 내게 말한다. 구운밤들 가지고 도대체 어떤 점심을 만드는지 나는 몹시 궁금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갈 길을 서두르는 것 같아 물을 수가 없었다. 점심 시간이 멀지 않은 것니다. 언뜻 느끼기에 아들애를 굶기는 것은, 그녀에게 가장 괴로운 일인 듯싶다. 우리는 거기서 헤어진다.
"시이이이이이인나게 즐기고 오세요." 라고 발렌티나가 말한다. "아아아아아아아주 아름다운 곳이니까."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라고 나는 예를 표한다. 그리고 발렌티나는 원색의 나비처럼 화려한 색상의 치맛자락을 팔락거리며 아테네의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후 발렌티나와는 전화로 딱 한 번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만나지는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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