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 A.J. 크로닌
제3부 성공하지 못한 보좌 신부 - (3/3)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그들에게만 통하는 침묵을 지키면서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프랜치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에서 샬로트 닐리의 이야기를 했다. 탈록은 무표정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꾹 찔러 넣고 옷깃을 세운 채 하늘만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으음." 그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나도 어떤 사람한테 들었네."
"자네, 어떻게 생각하나, 그 일을?"
"왜 나한테 묻는 거야."
"그야 자네라면 정직하게 대답해 줄 테니까 그렇지."
탈록은 묘한 얼굴을 하고 프랜치스를 보았다. 매우 겸손하고 자기의 지성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는 탈록이었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의 태도에는 이상하리만큼 적극적인 데가 있었다.
"종교는 나의 전공이 아니야. 철저한 무신론을 아버지한테서 이어받았고......그것을 또 해부학 교실에서 더욱더 확고하게 했단 말이야. 그렇지만 굳이 내 의견을 듣고 싶다면-아버지의 흉내를 내지 않더라도 나는 그 사건을 부정하고 싶네. 그러나 어떨까, 한번 그 애를 진찰해 보면. 그 애의 집은 여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가. 함께 가 보세."
"그런 일을 해서 브라인 박사와 일이 생기지는 않겠는가?"
"좋아, 브라인과는 내가 좋게 말할 테니까. 동업자와 교제를 하려면 무조건 하고 나서 사과하면 된다는 것이 나의 방침이야."
그는 프랜치스에게 묘한 미소를 던졌다.
"물론 자네의 윗사람이 두렵지 않다면야."
프랜치스는 몹시 난처해 망설이다가 말했다.
"두렵긴 하지만 어쨌든 가보자구."
생각과는 달리 쉽게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미세스 닐리는 간호에 지쳐서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점포에 나가고 집에 없었다. 작달막하고 온순하며 교양 있는 테레사 수녀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타인카슬 출신이 아니었으므로 탈록을 알지 못했으나 프랜치스와는 구면이기 때문에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두 사람은 수녀의 안내로 깨끗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몸을 청결히 하고 하얀 잠옷을 입은 샬로트가 번쩍번쩍 빛나는 놋쇠 침대에 누워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소녀에게로 몸을 구부렸다.
깔끔하게 청소된 방이 그녀는 적지 않게 자랑인 것 같았다.
"샬로트 양, 치셤 신부님이 만나러 오셨어요. 브라인 선생님과 친하신 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샬로트 닐리는 방긋 웃었지만 좀 귀찮은 것 같은 의도적인 것이 엿보였다. 그러나 어딘가 신들린 것 같은 데가 있었다. 베개에 반듯이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창백하지만 맑은 얼굴을 그 미소가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프랜치스는 마음속으로 가책이 되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조용한 하얀 방에는 일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진찰을 해도 괜찮지, 샬로트?" 탈록은 상냥하게 말했다.
소녀는 그대로 미소를 띄운 채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녀는 누가 봐도 환자라고 할 수 없었다. 태연하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사람의 태도였다. 자기가 자기 내부의 힘,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힘을 의식하고 있으며, 보고 있는 사람에게 외경의 마음을 일게 할 수 있다는 듯한 묘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창백한 눈까풀이 두세 번 깜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소리는 조용히 어딘가 먼데서 들려 오는 것 같았다.
"괜찮고 말고요, 선생님. 기쁩니다. 나는 하느님의 선택을 받지 않았을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그렇지만 선택을 받은 이상 기꺼이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공손히 탈록에게 진찰할 것을 허용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군, 샬로트."
"네, 선생님."
"식욕이 없어서?"
"먹을 것은 생각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의 은혜로 살아 있는지도 모르죠."
테레사 수녀가 조용히 말참견을 했다.
"제가 여기로 온 이래 무엇 하나 입에 넣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방안이 일순 조용해졌다. 탈록 의사는 몸을 반듯하게 눕도록 하고 곱슬곱슬한 머리를 손으로 빗어 올리면서 간단하게 말했다.
"참 감사해요, 샬로트. 테레사 수녀님, 감사합니다. 참으로 친절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프랜치스가 그 뒤를 따라 나오려고 하자, 샬로트의 얼굴에 문득 그늘이 서렸다.
"보시지 않겠어요, 신부님? 자, 이 손......발도 마찬가지예요."
그녀는 제물의 희생처럼 양팔을 펴 보였다. 그 새하얀 손바닥에는 이미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못자국 모양의 혈흔이 보였다. 발바닥도 마찬가지였다. 밖으로 나온 탈록은 신중한 태도를 지키고 있었다. 그 동네의 끝까지 왔을 때까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헤어져야 할 길목에 와서 황급히 지껄이기 시작했다.
"내 의견을 듣고 싶을 테지......그 소녀는 이미 위험한 한계를 넘어섰단 말이야. 항진 상태에 있어서의 조울병이라는 거야. 혈흔도 확실히 병적 흥분 때문에 생긴 거야. 다행히 정신병원에 가지 않게 되면 성녀로 추앙되겠지."
그는 여느 때의 침착성을 잃고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예의고 뭐고 없었고 말을 하는데도 헐떡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생각만 해도 화가 치미는군. 밀가루 포대를 입은 빈혈증의 천사처럼 침대에 누워서 성녀인 체 방실방실 웃고 있는 소녀가 있는가하면, 더러운 지붕밑 다락방에 누워 괴저에 걸린 다리가 자네가 말하는 지옥의 겁화의 고통은 고사하고 악성 육종에 시달리는 소년 오웬 워렌이 있단 말야. 자네도 기도를 올릴 적에 그 일을 잘 생각해 보라고. 곧 기도하러 가겠지. 그럼 나도 집으로 돌아가 한잔하기로 할까."
프랜치스가 대답할 틈도 없이 그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날 저녁 프랜치스가 수난절의 기도(테네브레. 부활절 전 1주일간 등불을 끄고 행하여지는 그리스도 수난을 추모하는 저녁과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니, 사제관의 현관에 걸려 있는 게시판에 긴급 소집 안내가붙어 있었다. 그는 이상한 예감을 안고 2층 서재로 올라갔다. 거기엔 주임신부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융단이 찢어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방안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치셤 신부! 나는 어안이벙벙해서 말도 못할 정도야. 사실 자네라고 하는 인간은 어딘가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라고, 하필이면 무신론자 의사를 데리고 가서 진찰을 해? 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프랜치스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만 저는......아닙니다. 그 사람은 저의 친구였기에 데리고 간 것입니다."
"그것부터 틀려먹은 거야. 나의 보좌 신부 한 사람이 닥터 탈록과 같은 인물과 교제를 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돼먹지 않은 거야."
"우리들은......우리들은 어렸을 적부터 친구입니다."
"그런 것은 구실이야. 난 자네에게 실망할 대로 실망했네. 자넨 처음부터 이 위대한 사건에 대해 냉담했고 또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었어. 틀림없이 자네는 최초의 발견자라는 명예가 밀리 신부에게 돌아간 것을 질투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공공연히 반대하는 무슨 이유라도 잇단 말인가?"
프랜치스는 자신이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이 옳은지도 모른다. 그는 중얼거리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죄송하기 짝이 없는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무관심한 건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탈록을 데리고 갔었습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곳이 있어서......"
"미심쩍게 생각했다고! 자넨 루르드의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건가?"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종파의 의사들이 확언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럼 묻겠는데, 우리가 여기에 이 교구 안에 새로운 신앙의 증적을 만들려고 하는 기회를 왜 자네는 부정하려고 하는 건가?"
피츠 제랄드 신부의 얼굴이 어둡게 흐려졌다.
"영적 존재의 의미는 고려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다못해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만이라도 존중하라고."
그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병약한 소녀가 전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9일간이나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을? 더구나 건강하고 충분히 영양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별도의 자양분을 취하지 않고서 그럴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이야."
"별도의 자양분이라니요?"
"영적인 양식!"
제랄드 신부는 새삼스런 분노를 느낀 듯 거칠게 말했다.
"시에나의 성 카타리나(1347~80. 신비 사상을 가진 도미니코파의 성녀)도 지상의 어떤 음식보다 신비로운 영적 음식을 취하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야? 자넨 참으로 의심이 많아. 내가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는 거지. 그렇잖은가?"
프랜치스는 머리를 떨구었다.
"성 토마스(또는 토마. 12사도의 한 사람. 주의 부활을 의심했음)도 의심했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도가 보고 있는 앞에서 말입니다. 주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러 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노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해 버린 프랜치스는 자신도 놀랐는지 문득 입을 다물어 버렸다. 피츠 제랄드 신부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으나 곧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프랜치스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고 뭔가 서류 같은 것을 찾고 있었다. 이윽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성당 일을 방해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야. 본당 내에서도 자네의 평판이 좋지 않아. 이제 돌아가게나."
프랜치스는 자기의 결점이 자신도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방을 물러나왔다. 그러자 불현듯 이 고충을 마그냅 주교에게 호소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 기분을 억눌러 버렸다. 라스티 맥은 이젠 옛날의 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주교라고 하는 높은 지위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자기와 같은 비참한 한 신부의 고뇌 따위에 주교가 관계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튿날은 토요일이었다. 피츠 제랄드 신부는 열한 시 장엄미사 때, 지금껏없었던 격렬한 설교를 하고 마침내 이 사건을 공개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신자들은 성당밖에 몰려 선 채로 은밀하게 속삭이며 집으로 돌아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지 자연히 행렬을 이루어 밀리 신부를 선두로 '마리아의 샘'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닐리의 집 앞은 군중들로 들끓었다. 샬로트가 가입되어 있는 소녀회 회원들이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합창했다. 그날 저녁 때 제랄드 신부는
신문기자단과 회견한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신문기자단은 모두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 도시에서는 상당히 존경받고 있었으며, 공공 정신이 투철한 성직자로 간주되고 있었으므로 매우 유리한 인상을 주었다. 이튿날 각 신문들은 회견 내용을 비교적 큰 지면을 할애하여 보도하고 있었다. <트리뷴>지는 제 1면에 이를 게재하고, <크로브>지는 2면에 3단 짜리 기사로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 외에도 <노산바란드 헤럴드>지는 '제 2의 디그비'라고 보도하고, <요크션 에코>지는
'기적의 바위샘, 수천의 병자에게 희망을 주다'라고 했으나, 신교의 <하이앵그리칸>주간지는 '다시 증적을 기다리자'는 애매한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런던 타임스>는 신학자의 말을 실어, 에단(에단 오브런디스판. 아일랜드의 성인. 7세기 전반의 수도승. 성스런 샘과의 관계는 불분명함)과 성 에제룰프(또는 에켈볼트. 영국의 성인. 10세기 초의 인물)에까지 소급하는 '기적의 샘'의 역사를 문예란에 게재할 정도였다. 제랄드 신부는 희열에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밀리 신부는 아침 식사도 못 먹을 정도였고, 말캄 그레니는 너무나도 기뻐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날뛰었다. 그런 소란 속에서 8일이 지난 후 프랜치스는 저녁 때 시의 북쪽 끝에 있는 크라몬트의 폴리의 작은 아파트를 방문하려고 나섰다. 담당 구역의 지저분한 연립 주택을 하루 종일 돌아다닌 후였기 때문에 피곤하였고기분도 대단히 우울한 참이었다. 그날 오후 탈록 의사로부터 워렌 소년이 위독하다는 편지가 도착했다. 다리는 악성 육종이 되어 버려 이제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빈사 상태에 빠진 워렌은 이 달을 넘길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크라몬트에서 폴리는 여전히 억척을 부리고 있었으나, 네드는 전보다
더 까다로워진 것 같았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서 모포로 무릎을 감싼 채 지껄이고 있었으나 그것이 어쩐지 이상했었다. 유니온 주점에 있는 네드의 이권의 나머지에 대하여 길포일과의 사이에 최후의 결정을 간신히 마무리 지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것도 대단한 액수는 아니었으나, 그러나 네드는 그것을 큰 재산이나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쓸데없는 불평을 너무 많이 늘어놓은 탓인지 혓바닥까지 이상하게 되어 애처로울 정도로 발음이 확실하지 않았다.
프랜치스가 갔을 때 쥬디는 이미 자고 있었다. 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표정으로 보아 쥬디가 또 나쁜 장난을 하여 초저녁부터 침실로 쫓아 버린 것 같았다. 그런 일을 생각하니 그는 한층 마음이 무거웠다. 아파트를 나왔을 때 시계는 이미 열한 시를 가리켰다. 타인카슬행 차는 벌써 떠난 후였기 때문에 걸어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모든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낙심천만한 표정으로 그렌빌 거리로 접어들었다. 건너편에 닐리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층엔 아직 등불이 켜져 있었다. 거기는 샬로트의
방이었다. 노란 블라인드에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것을 보자 프랜치스는 갑자기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새삼스럽게 자신의 미련함이 뼈아프게 느껴져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문득 닐리 가의 사람들을 만나서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죄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서 거리를 가로질러 현관 계단을 올라갔다. 놋으로 된 문고리를 잡아당기려다 그는 고풍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것은 문득 환자를 방문할 적에는 안내를 요청하지 않고 들어가도 좋다고 하는 의사나 성직자의 공통된 특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좁은 현관으로 통하는 침실에서 가스등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멍청하게 돌처럼 서 버렸다. 침대에 일어나 앉은 샬로트가 닭고기와 빵을 담은 접시를 무릎에 올려놓고 한참 꾸역꾸역 먹고 있었던 것이다. 낡은 잠옷을 입은 미세스 닐리는 근심스러운 듯이 몸을 굽혀 조용히 스타우트를 곁들여 주고 있었다. 처음 프랜치스의 모습을 본 것은 미세스 닐리였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려 스타우트를 침대에
쏟아 버린 것이다. 그러자 샬로트가 접시에서 시선을 돌렸다. 파란 눈동자가 커다랗게 되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침대에 미끄러지듯이 누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버렸다. 무릎 위에 놓였던 접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도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미세스 닐리의 목줄기의 동맥이 경련을 일으킨 것처럼 파닥파닥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스타우트의 병을 잠옷 속으로 감추려고 어리석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겨우 신음 소리 같은 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먹여서라도 기운을 되찾아 주고 싶었습니다......그런 일이 있은 후이므로......이것은 환자용 스타우트입니다."
그의 죄인 같은 놀란 표정만으로도 모든 것은 명백했다. 그는 속이 뒤집혀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크게 모욕을 당한 느낌이었다. 말을 하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매일 밤 이렇게 먹을 것을 주고 있는 거죠......테레사 수녀님이 잠든 틈을 타서."
"그런 일을 없습니다, 신부님. 하느님이 증인이십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부인하려고 했으나 자기가 생각해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울음을 터뜨리며 완전히 실성한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왜 나쁩니까. 불쌍한 이 애가 배를 곯아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을 보고 내버려 둘 수 는 없는 것이 아닌 가요. 이 애에게 이런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큰 소동이 될 줄 알았다면......와글와글 사람들은 몰려오고, 신문은 떠들고.....이제 이것으로 이 고통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제발 우리들에게 관대히 대해 주십시오, 신부님."
프랜치스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들을 공박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미세스 닐리."
그녀는 다시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프랜치스는 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손에 들고 있던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녀의 울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리석은 행동, 아니 이런 때에 모든 인간이 행하는 어리석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울음을 그치자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번 일을 빠짐없이 이야기해 주시오."
샬로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띄엄띄엄 새어나왔다. 그녀는 언젠가 교회의 도서관에서 성녀 벨라뎃다(1858년, 루르드에서 성모 마리아의 환영을 보았다고 하는 벨라뎃다 스필을 말함)의 이야기를 쓴 책을 빌려다가 읽은 적이 있었다. 그후 어느 날 '마리아의 샘' 옆을 지나가는데 문득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는 그녀가 즐기는 산책길이었는데, 이상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거기서 그 물과 벨라뎃다와 자기가 우연히 일치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큰 충격이었다. 그러자 어쩐지 성모 마리아의 모습 같은 것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또한 갑자기 무서워지기도 했다. 전신이 새하얗게 질리고 떨리는 것이 그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침대에 누워 버리고, 빨리 밀리 신부를 와 주도록 했다. 그리고 전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신부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날 밤은 밤새도록 황홀 상태에 빠진 채 온몸이 경직되어 마치 나무토막 같았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몸에 성흔이 나타나 있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부상을 입은 적은 있었으나 이번의 것은 전연 달랐다. 그래서 신념은 더욱 굳어졌고
음식을 먹으려고 기를 써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너무나 벅찬 행복감, 너무나도 큰 흥분으로 인해서 무엇을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성자들은 식사를 하지 않고서도 살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이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밀리 신부와 피츠 제랄드 신부가 찾아왔을 때 자기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했다-그때는 정말 그런 상태였다. 그것은 굉장한 감정을 그녀의 가슴에 심어 주었다. 그런 후부터 그녀는 주목의 과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물론 시간이 지나자 심한 공복을
느꼈다. 그러나 밀리 신부나 피츠 제랄드 신부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특히 밀리 신부가 그녀를 보는 눈은 참으로 경건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에게만 사실대로 고백했고 그의 어머니도 딸의 거짓말을 숨겨 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샬로트는 매일 밤 한 번 때로는 두 번 듬뿍 식사를 한 것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사태는 그 이상으로 발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 말씀드린 대로 신부님, 처음에는 참으로 근사했어요.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근사했던 것은 소녀회의 여자아이들이 창 밖에서 나를 위해 기도를 드려 준 것입니다."
그러나 신문이 그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하자 그녀는 차츰 겁이 난 것이다.제발 하느님, 이번 일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싶었다. 테레사 수녀의 눈을 속이는 것도 좀처럼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두 손바닥의 성흔도 점점 희미해지고 흥분이나 황홀 상태도 점차로 비참하리만큼 무겁고 침울한 기분으로 바뀌어 갈 뿐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다시 심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속악하기 짝없는 이야기며 어리석은 인간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비극의 단편인 것이다. 샬로트의 어머니가
옆에서 말참견을 했다.
"이 일을 제랄드 신부님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으시겠지요, 신부님?"
프랜치스는 이제 화도 나지 않았다. 다만 불쌍하고 측은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이 정도까지 발전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가 먼저 말하지는 않겠어요, 미세스 닐리. 한 마디도 하지 않겠소. 그러나......" 말을 잠깐 끊었던 프랜치스는 샬로트를 향해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네가 직접 신부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러자 다시 그녀의 눈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아닙니다. 할 수 없어요......제발 신부님, 살려 주세요."
프랜치스는 애원하는 두 사람에게 고해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제랄드 사제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은 바로 본색이 드러날 거짓말 위에 꾸며질 수 없는 일이라고 간곡하게 타일렀다. 그렇게 되면 9일간의 기적도 바로 열이 식어 잊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두 사람을 위로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 반드시 충고에 따르겠다는 샬로트의 확답을 받은 프랜치스는 닐리의 집을 나왔다. 텅 빈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서 잠들어 버린 사제관에 발소리를 죽여 들어서면서 문득 제랄드 신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이튿날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그는 하루 종일 외출을 했었기 때문에 그와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사제관의 내부에는 뭔가 이상한 공허한 분위기, 일종의 가사와 같은 공기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는 분위기를 감지하는 데 민감했었다. 오늘은 그것이 특히 강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오전 열한 시경 말캄 그레니가 그의 방으로 찾아왔다.
"프랜치스! 좀 도와 다오. 제랄드 신부가 모든 계획을 취소한다는 거야. 부탁이니 제발 중간에 들어서 뭐라고 좀 해 다오."
그레니는 가련할 정도로 기가 꺾여 있었다. 얼굴은 핏기를 잃고 입술은 떨리고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 그는 더듬거리면서
"왜 제랄드 신부의 계획이 그렇게 됐는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어. 머리가 이상해진 건 아닐까. 이런 근사한 계획은 다시는 없을 텐데 말이야. 대단히 잘 되어 갈 텐데......"
"나에게는 주임신부를 설득할 힘이 없어요. 불가능한 일이에요."
아야, 그럴 리가 있나. 그 사람은 자네를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네. 더구나 자네는 신부가 아닌가. 자네가 신부로 있는 것은 신도들의 덕택이 아닌가. 이 일이 잘 되면 카톨릭 신자를 위해 복지를 가져오는 것이 될 텐데 말이야."
"그런 것은 전혀 당신과 관계가 없는 일이 아니오, 말캄."
"아니야, 크게 상관이 있네." 그레니는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열심히 지껄여댔다.
"나는 자유주의자가 아닌가. 카톨릭도 근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훌륭한 종교라고 생각해. 부탁이야, 프랜치스. 늦어지지 않도록 빨리 가서 말좀 해줘."
"안됐지만 이번 일은 틀렸어요. 우리 모두에게 말예요."
그는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려 버렸다. 그러자 그레니는 완전히 자제심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느닷없이 프랜치스의 팔을 붙잡고 비굴한 콧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를 불필요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말게. 자네가 오늘날 이렇게 된 것도 우리 덕택이 아닌가 말이야. 나는 그 땅을 사는 데 내 재산을 전부 쏟아 넣었어. 만일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 그게 모두 날아가 버린단 말이야. 우리 집을 파산시키지 말아 다오. 우리 어머니가 불쌍하지 않는가. 어떻게 어머니가 자네를 길렀는가 생각해 보라고, 프랜치스. 제발 부탁이니 그 사람을 설득해 다오. 그러면 뭐든지 해줄 테니. 카톨릭 신자가 되라면 되겠어."
프랜치스는 한 손으로 커튼을 움켜 쥔 채 성당 지붕 위로 우뚝 솟은 대리석 십자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인간은 돈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것인가. 자기의 영혼을 파는 일까지도 하겠다는 말인가. 그레니는 드디어 지쳐 버린 것 같았다. 프랜치스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겨우 깨달은 그는 이번에는 하다못해 자신의 체면이라도 지키려고 태도를 표변시켰다.
"그럼 도와주지 않겠다는 거로군. 그래, 알았어. 오늘 일은 잘 기억해 두겠네."
그는 문 쪽으로 갔다.
"언젠가는 너희들 모두에게 복수해 줄 테니 두고 보라고. 그렇게 되면 죽어도 내가 상관할 바 아니야."
그의 창백해진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기를 개에게 물린다는 것쯤은 알았어야 하는데, 더러운 네놈들에게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는 문을 꽝 닫고 나가 버렸다. 사제관은 여전히 공허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것은 본래의 자기를 상실한 것 같은 모든 것이 허무로 변해 버린 듯한 진공상태와 같은 것이었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상가에라도 와 있는 것처럼 발걸음마저도 조심했다. 리투아니아인 신부는 오로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밀리 신부는 눈을 내리깔고 돌아다녔다. 그는 심한 충격을 받았으나 꾹 참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도 천성적으로 활발한 그를 또 우아한 품위로 감싸 더욱 고상하게 느끼게
했다. 입을 열어도 딴 말만 하고 일체 그 일에 대한 것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리고 해외 포교단의 일에 몰두하여 생각을 딴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프랜치스는 그레니가 행패를 부린 후 일주일 이상이나 제랄드 신부와는 얼굴을 맞댈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제의실에 들어가니 그가 막 수단을 벗고 있었다. 합창대 소년들은 돌아가고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개인적인 체면 손상이야 어찌됐건 그의 사건 처리 방법은 완벽한 것이었다. 실제 그의 손에 의하는 것은 사건도 사건이 아니었고
재난도 재난이 아니었다. 홀리스 대위는 자진해서 계약을 파기했고, 닐리에게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주선해 주고 이것을 기회로 닐리 일가는 아무도 모르게 살그머니 이사를 해 버렸다. 악착같은 신문의 비난도 교묘히 진정시켰다. 이윽고 일요일이 되자 제랄드 신부는 다시 설교단에 올라섰다. 그리고 물을 끼얹은 것 같은 회중을 앞에 놓고, '그대들 믿음이 적은자들이여' 하고 성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조용한 가운데도 격렬한 어조로 연제를 부연해 나갔다. "교회는 이 이상 어떠한 기적을 필요로
하는가? 교회는 이미 기적으로 그 정당함이 입증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기적 위에깊이 확고부동하게 서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샘과 같은 현시를 만나는 것은 영광된 일이고, 의심할 것도 없이 우리를 고무 격려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포함해서 그것을 위하여 열중했다. 그러나 냉정히 반성해 보면 이미 천상의 꽃이 여기, 이 교회 가운데 우리의 눈앞에 피어 있는데도 다만 한 송이의 꽃을 더 찾았었다고 해서 그와 같은 대소동을 벌여야 했을까? 이 이상 더 물질적 증거가 필요할 만큼 우리의 신앙은 약하고 무기력한
것이었다는 말인가? '보지 아니하고 믿는 자는 행복하느니라.' 이 엄숙한 말씀은 사람들은 잊었단 말인가?"
그것은 더할나위없는 웅변이었다. 지난 주 일요일에 얻은 승리 이상의 것이었다. 이 설교를 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희생이 있었던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 단상에 서 있는 제랄드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제의실에서 처음 부딪쳤을 때 제랄드 신부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밖으로 나갈 준비가 다 되어 까만 상의를 어깨에 걸쳤을 때 그는 갑자기 뒤돌아보았다. 제의실의 밝은 광선으로 프랜치스는 사제의 잘 생긴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과 둥근 회색의 눈 속에서 피로한 표정을 읽고 불현듯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거짓말은 하나만 한 게 아니더군. 마치 거짓말로 뭉쳐진 사람 같아. 하여간 난처했지만 최후에는 정의가 이기는 거야."
그는 잠깐 말을 중단했다.
"자넨 퍽 좋은 청년이야, 치셤. 자네와 내가 배짱이 맞지 않은 것은 유감천만이야."
그는 의젓하게 제의실을 나갔다. 부활절이 끝날 무렵에는 사건은 거의 잊혀지고 있었다. 제랄드 신부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샘 주위에 둘러 친 울타리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입구의 작은 문은 자물쇠도 걸지 않고 봄의 상쾌한 미풍에 뭔가 감상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때때로 몇 사람의 선남선녀가 기도를 하러 와서는 깨끗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물로 몸을 씻고 가기도 했다. 프랜치스는 바쁜 성당 일에 쫓겨 그 일을 잊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자연히 잊어버린 것을 기뻐했다. 그 사건이 남긴 오점도 점차로 희미하게 엷어져
갔다. 다만 마음 속 밑바닥에 약간의 추한 응어리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될 수 있으면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노력을 했다. 성당의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운동장을 만들자는 그의 제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시의회에서는 공원의 일부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가 나왔다. 거기다 제랄드 사제의 승낙도 얻었다. 이제 그는 여러 가지 운동기구 안내서에 파묻혀 운동기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스도 승천 축일 전날 밤 갑자기 오웬 워렌을 방문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연락은 그의 얼굴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러한 연락이 있으리라고는 벌써 몇 주일 전부터 예감하고 있던 일이었으나 역시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그는 서둘러 성당으로 가서 노자 성체(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성체)를 모시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그렌빌 거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워렌의 집 앞에서 탈록이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것을 보고 그의 표정은 금세 슬픈 빛으로 변해 버렸다. 탈록도 역시 오웬을 귀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랜치스가 다가가니 그는 완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이젠 최후가 온 건가?" 프랜치스가 물었다.
"으응." 그리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어제 동맥이 막혀 버렸어. 이미 늦었어. 절단해 봤자 틀렸어."
"너무 늦었는가?"
"아니."
탈록의 태도에는 뭔가 광포한 기분을 억제하고 있는 데가 있었다. 그는 어깨로 프랜치스를 난폭하게 떠밀었다.
"난 자네가 꾸물대며 오는 동안 세 번이나 오웬을 보고 왔네. 자네가 들어가 볼 마음이 있다면 어서 들어가 보게."
프랜치스는 탈록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미세스 워렌이 문을 열어 주었다. 회색 옷을 입은 그녀는 쉰 살쯤 된 몹시 야윈 모습으로, 요즘 수주일 동안의 심로로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위로했다.
"참으로 안 됐습니다, 미세스 워렌."
그녀는 힘없는 소리로 흐느끼듯이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신부님."
그는 깜짝 놀랐다. 슬픔이 그녀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미치게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웬은 침대에 누운 채 붕대를 풀고 환부를 드러내 놓고 있었다. 몹시야위고 왜소해진 다리였다. 그러나 그의 양 다리는 완전하고 환자 같은 티가 전혀 없었다. 프랜치스는 탈록이 오웬의 오른쪽 다리를 쳐들고 완전하게 곧은 정강이를 손으로 만져 내려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다리는 어제까지만 해도 곪아터져 고름이 더덕더덕했던 곳이다. 탈록의 도전적인 눈이 일부러 아무 설명도 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어지러운 눈을 미세스 워렌 쪽으로 돌렸다. 그때서야 그녀의 눈물이 기쁨에서 나오는 눈물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저는 이 애를 따뜻하게 감싸고 낡은 유모차에 태웠습니다. 저희들은 도저히 체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애는 신심이 두터운 애니까요......어떻게든 마리아의 '샘'까지만 갈 수 있다면 하고 보챘기 때문에 그곳에 데리고 간 것입니다......우리는 기도를 올리고 이 애의 다리를 물에 적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오웬이...... 스스로 붕대를 풀어 본 것입니다."
방안은 한참 동안 조용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오웬이었다.
"잊지 마시고 저를 새로운 크리켓 팀에 넣어 주세요, 신부님."
밖으로 나온 윌리 탈록은 프랜치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건 틀림없이 현대 의학의 한계를 초월한 뭔가 신비스런 그 무엇이 있을 거야. 회복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세포의 심리적 재생 말이야."
그는 갑자기 멈추어 서서 그 커다란 손으로 프랜치스의 팔을 잡았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렇다, 하느님이여! 신이 만일 있다면! 하여간 이 일에 대하여는 절대로 딴 말은 하지 않기로 하겠네."
그날 밤 프랜치스는 아무래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커다란 눈을 멀뚱히 뜨고 물끄러미 방안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기적이다. 그렇다. 믿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인 것이다. 욜단의 물, 루르드의 물, '마리아 샘'의 물-어느 곳의 물이든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흙탕물일지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라 한다면 믿는 마음에 보답이 있는 것이다. 마음속의 지진계가 격동을 기록해 간다. 그것은 신의 불가 지성에 대한 인식의 빛이었다. 그는 열렬히 기도했다. "오, 하느님이여! 우리들은 이 세상의
시작마저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의 작은 개미와 같은 존재입니다. 몇백만인지도 알 수 없는 두꺼운 막에 덮여서 오직 한결같이 하늘을 우러러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 신이시여......신이여, 저에게 겸손과......그리고 신앙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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