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 에세이선
나의 명상록
정리에 대하여
논리와 대조되는 것에 상식이 있다. 상식이라고 하기보다 정리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정리를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 문화에 있어서 가장 건전한 최고 이상으로 그 정리를 아는 사람은 최고 문화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다만 정리를 분별하는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하여 노력할 뿐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개인적 문제에 있어서든지 국가적 문제에 있어서 실제로 이 정신을 체득할 시대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리를 아는 국민은 평화스런 생활을 할 수 있고, 정리를 아는 부부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신랑감을 구하는 데는 표준이 단 한 가지뿐이다. 그 사람이 정리를 아는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그것만이면 끝난다. 싸움을 하지 않는 부부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다만 알맞게 이해를 할 줄 아는, 정리에 있는 인간 세계에서만이 우리는 평화의 행복을 즐길 수 있다.
정리시대라고 할 만한 것이 언젠가 온다고 하면 그야말로 참으로 평화시대이며, 정리의 정신이 널리 퍼지는 시대일 것이다. 인생의 정리를 존중히 여기는 정신은 중국이 서양에 제공해야 할 최선의 것이다. 하기야 50년이나 앞의 세금을 중국 군벌들이 국민에게 징수하고 있는 소행은 정리를 깨달은 정치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여튼 이 정신이야말로 중국문명의 정수이며 그 최선의 측면이라고 나는 말하는 것이다. 내가 발견한 것은 우연하게, 다년간 중국에 재류한 두사람의 미국인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중 한 사람은 중국에 30년간 재류한 경력을 가진 사람인데, 중국의 모든 사회생활은 '강리(도리를 강설함)'라고 하는 말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 중국인이 싸움에서 마지막 판에 결말짓는 소리는,"자, 이것이 도리에 맞는 말인가?"라고 하는말이다. 누구나가 다 흔히 하는 가장 통렬한 선고는 '불강리'한 놈이라는 말 즉,"이치에 맞는 말을 하지 않는 놈이다"라는 한마디 말이다. 자기가,"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싸움은 벌써 이 편이 진 것이다. 나는 '나의 조국, 나의 겨레'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서양인은 한 가지 명제가 완전히 논리적으로 되면 대개 그것으로 족하게 여긴다. 그러나 중국인에게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정확하다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것과 동시에 인간성에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에 있어서 이 "인간성에 일치한다"는 것, 즉 진정(즉 인간적인 것)은 논리적인 것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영어의 reasonableness에 해당되는 중국어는 정리인데, 정, 인정 즉 인간성과, 이(천리) 즉 불역의 도리와의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 정이 신축성 있는 인간적 요소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는 우주불역의 법칙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양 있는 사람이라 함은 심정과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을 말한다. 유학자는, 인간의 심정과 대자연의 운행에 조화된 생활을 영위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성인이라 함은 주로 공자처럼 그 평명한 상식과 그 자연스러운 인간성, 즉 인간미 때문에 경모를 받고 있으며 또한 정리를 깨닫고 있는 사람 외에 아무도 없다. 인간미가 있는 사고방법이라 함은 정리를 분별하는 사고방법이라는 말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항상 자기가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간적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 그러나 정리를 아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그러므로 항상 바른 것이다. 편지의 추신에 보면 이 두 가지가 같이 나타나는 수가 있다. 나는 언제나 친구의 편지의 추신을 좋아하는데 본문과 전혀 어긋나는 내용을 쓴 추신은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다. 이 추신 속에는 본문을 쓴 후에 가슴에다 손을 얹고, 여러 가지 세상 정리에 비추어 생각한 것이나, 주저나 기지나 상식 등이 한데 섞여 있다. 어떤 명제를 긴 논의로 증명하려고 고집하던 뒤에 돌연히 어떤 직각에 부딪쳐 언뜻 상식이 머리에 떠오르므로 이제까지의 논의는 없어지고 자기가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이러한 사람이 온정 있는 사상가다. 또 이러한 사고방법이 소위 내가 말하는 인간미 있는 사고방법인 것이다. 편지 본문에는 이론적인 인간으로서 내용을 쓰고, 그 추신에는 참으로 인간적 정신과 정리를 깨달은 사람으로 글을 쓰고 있는 편지를 상상할 수 있다.
이제 어떤 아버지가, 여자대학에 가게 해 달라고 조르는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고 하자. 그는 펜을 달려 왜 딸을 여자대학에 진학시키지 못하는가, 그 이유를 제1, 제2, 제3으로 조목을 들어서 누가 보더라도 그럴 듯하게 생각되는 여러 가지 논거를 열거하였다. 이론정연하게 늘어놓아 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내용인즉, 현재 벌써 세 명의 오빠들을 대학에 보내고 있고, 어머니가 병중이니 누가 집에있어서 어머니를 돌보지 않으면 큰일이라는 둥 늘어놓았다. 편지 끝에 이름을 쓰고는 간단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줄리야! 상관없다. 올 가을에 입학할 작정으로 준비하고 있거라, 어떻게 해 볼 테니."
또는 이혼의 결의를 아내에게 전달하는 남편의 편지를 상상하여 보자. 이혼할 적당한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제1은 남편에 대하여 성실치 못하고 제2는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 때에 따뜻한 식사를 준비한 일이 없다는 등 모두가 당당하고 유력한 이유가 되고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바도 있었다. 만일 변호사에게 의뢰한다면 논리는 더욱 완전하게 되고 사정은 한층 더 정정당당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편지를 다 쓴 후에 갑자기 생각이 고쳐져서 겨우 알아볼 만한 글씨로, "오, 나의 사랑하는 소피아! 나야말로 할 수 없는 인간이구료, 꽃다발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겠소."라고 써 놓는단 말이다.
이 두 편지 본문에 있는 논의는 그야말로 완전하고 정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한 개의 논리적인 인간의 말이다. 그런데 추신에서 말한 것은 참된 인간정신-인간적인 아버지와 인간적인 남편인 것이다. 조금만이라도 정리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쓸데없이 의론 따위에 머리를 아파할 것 없이 상극하는 충동과 감정과 욕망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닷속에서 건전한 키를 잡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인간적 정신의 책무이다. 우리를 진실하게 만드는 것, 진실이라는 것이 인간계의 진정한 모습이다. 반박할 여지없는 이론에도 인정만은 마주 서고, 정당한 것이라도 애정 앞에서는 말없이 무력해진다. 그러므로 가장 확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논리에 맞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다. 법률까지도 그 주장하는 절대적 정의를 불완전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법률은 흔히 조문의 "조리 해석"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최고행정장관에게 사면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명백하다-아브라함 링컨은 어떤 어머니의 아들에게 대하여 이 사면권을 퍽 유효하게 행사하였다.
이렇게 정리를 존중하는 정신은 모든 사고법을 인간적으로 하여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감퇴시킨다. 그것은 우리의 관념을 원숙케 하여 행위의 모난 곳을 둥글게 하여 주는 것이다. 이에 대립하는 것은 사상과 행위-개인생활, 국가생활, 종교, 정치 등에서의 모든 종류의 광신과 독단이다. 나는 감히 주장한다, 중국에서는 지적 광신과 독단이 다른 나라보다 적다는 것을. 중국의 폭민은 매우 흥분하기 쉬운 점이 있으나-1900년의 권비가 그 실례이다-강리의 정신은 중국의 전제 군주제, 종교, 또는 소위<여성의 억압>을 매우 인간미 있는 것으로 본다. 하긴 이런 일은 모두 다 조건부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좌우간 진리인 것이다. 정리라는 것이 중국의 황제를 단순한 인간으로 끌어내려, 단순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중국의 황제는 일본의 통치자처럼 반신적인 존재는 아니다. 중국의 역사가는, 황제는 천명에 의하여 통치하는 것이요, 실정이 있을 때는 천명을 잃었다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황제가 악정으로 정치할 때는 중국 백성은 주저할 것 없이 황제의 목을 베어버린다. 융체흥망이 수많은 왕조의 왕이나 황제의 목을 너무나 많이 베어 버렸으므로, 황제들이 '신성'하다든가 '반신적'이라고는 도무지 믿지 않는다. 중국 성현은 신으로 숭배받는 일은 없고 다만 지식의 스승으로서 존경을 받을 뿐이다. 또한 중국의 신은 완전무결의 전형이 아닐 뿐 아니라 중국의 관리와 마찬가지로 돈의 힘으로 썩어버린 무리이니까, 아첨도 통하고 또 뇌물도 통할 수 있는 존재이다. 중국에서는 정리를 벗어난 사람은 누구이건간에 즉시로 불친인정(인간성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라는 낙인이 찍혀진다. 너무도 성인답거나 너무나 완전무결한 인간은 심리상태에 이상이 있다고 하여 반역자 취급을 받은 일까지 있다.
이 관점에서 정치계를 볼 때 유럽의 어떤 국가에서는 인간정신이나 사리에 대한 논리에 매우 비인간적인 점이 있다는 것이 눈에 뜨인다. 그리고 나는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의 이론에 놀라기보다는 이 이론을 인간의 머리속에 주입시키는 광신적인 정신이라든가 또는 이론을 꾸준하게 논리적 불합리 속으로 몰아넣는 방법에 한층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마지막에 오는 것은 가치의 혼란, 정치와 인류학과의 의곡된 혼합이며, 예술과 선전, 애국심과 과학, 정부와 종교와의 혼합이며, 특히 어느 것보다도 국가의 권리와 개인의 권리와의 정당한 관계를 완전히 전도하고 마는 것이다. 불건전한 정신상태만이 국가를 신의 위치에 올려놓는 수가 있고, 국가를 또한 개인의 사상.감정.행복의 추구에 대한 권리를 삼켜버리는 미신으로 만들 수 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둘 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정신의 소산물이다. 알버어트 파우필렛(Albert Pauphilet)이 말한 것처럼,"어떠한 정신상태도 극좌도 아니고 극우도 아니다."
이 양자의 제도와 이데올로기의 특색은 첫째 서구정신의 가장 어리석고도 가장 천박한 표시라고 내가 생각하는 폭력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며, 둘째는 논리의 필연성을 믿는 것이다.그 이유로는 결국 공산주의도 그렇지만 파시즘도 궁극적으로는 헤겔의 논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전반기에 있는 사람이, 수백년 전에 자기 조상들이 논리학에서 범한 죄로 인하여 이제 자기들이 그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가를 그 누군들 깨달을 수 있겠는가. 이 관점에서 오늘의 유럽을 보면 정리에 의하여 지배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고, 정리는 커녕 이성조차도 통할 수 없는 광신적 정신에 의하여 지배되어 있고 누구든지 다 신경과민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다만 국가 목적의 충돌, 국경문제나 식민지 요구의 마찰 등만이 원인은 아니다. 그것뿐이라면 이성을 활동시켜 능히 처리될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그 근원이 훨씬 더 깊은 데다가 유럽의 정치인들의 정신상태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낯선 도시에서 택시를 타기는 했으나 돌연히 운전수가 신용이 안되어 불안에 싸이는 것과 같은 불안의식이다. 운전수가 지리를 몰라서 올바른 노선으로 손님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 못한다면 다소 사리를 알 수 있겠으나, 운전수가 좌석에 앉은 손님에게 무엇인가 이상한 말로 숙덕거리는 것이 들려 의심하기 시작하면 용이치 않은 일이다. 더우기 운전수는 피스톨을 가지고 있어 손님이 차에서 내려버리지 않는 한, 손님은 필경 신경과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정신의 그 참다운 모습은 이와 같은 희화는 아닌 것이다. 모든 악역의 파도와도 같이 머지 않아 자기 자신을 태워버리고말 단순한 착란상태, 즉 일시적 발광의 상태이다. 이렇게 믿을 만한 이유가 내게는 있다.
우리는 결국 인간의 정신력에 신뢰의 뜻을 표한다. 그것은 본래 한정이 있는 것이기는 하나그 무모한 유럽 운전수의 기능보다도 무한히 높은 어떤 것이기 때문에 어느 때인가 평화로운생활을 즐길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머지 않아 정리 위에서 사물을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인과 일본인
현재 극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들은 중 일 양국의 차이점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중 일 양국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내리고자 할진대, 모름지기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동종국가여서, 이런 관계는 일언이폐지할 수 없지만 종족간의 특성은 매우 복잡할 것만은 사실이다. 때로는 한 민족 사이에도 같은 시기에 서로 모순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그 나라 역사에서 부동한 사물을 배출하는 경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때도 있다. 오랫동안 이상현상 속에서 나를 망연케 한 것은 중일 양 민족의 유우머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예술과 문학에서 일본 사람은 훌륭한 유우머를 표현했다. 그들은 자고로 유우머 문학 '이발관 한담'과 '목욕탕 잡담'을 가졌는데 이런 문학은 중국의 유우머 문학에 비교하면 앞섰을지언정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행동과 민족생활 면에서 보면 일본 사람은 독일 사람과 같은 유우머가 결핍되어 있다. 이를테면 일본 사람은 옹졸하고 거칠며 딱딱하게 논리화해 버려 걷잡을 수 없이 관료적인 것들이 많다. 하지만 중국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도리어 유우머를 지니고 있다. 그대신 고전문학에서 유우머러스하게 웃기는 장면이 적다. 이같이 한 나라에서 모순되고 일치하지 않는 사실이 나타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학전통의 원인인 줄 안다. 모든 일을 자세히 고찰해 보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는 청교도의 발상지였으나 일변해서 학술자유의 발상지로 된 하버드대학 같은 것이 그 한 예이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결론을 내림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중일 두 나라 민족의 특수성과 차이점을 알게 된다. 중 일 두 나라 민족은 동일한 점도 많으며 두 나라 사이에 관련된 점도 깊었다고 볼 수 있다. 중 일 두 민족은 영 미 민족처럼 서로 모방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을 오히려 생활의 미로 볼 수 있다. 같지 않은 데서 같은 점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종족상으로 일본과는 연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며, 일본어 자체가 인도지나어족에 속해 있지 아니하다. 우선 우리는 두 나라의 같은 점부터 꺼내어 보기로 하자. 문화면에서 볼 때 엄연히 일본은 중국과 여러 면에서 동일한 점이 있다. 일본은 본시 중국의 제자이다. 일본 문명의 근대 이전은 온전히 중국 것이었으며 중국에서 옮겨간 것이 태반이다. 도자기.그림.칠기.인쇄.서법.동전.종이.등불.총포.불꽃놀이.불도.송대이학.공자의 왕도주의.당시.요리법.꽃심기.원예.인조산등이 그러하다. 일본은 중국에서 취해 간 많은 민족 절기가 있는데 예를 들어 말하면 정월 보름의 원소절과 7월 7일의 견우직녀의 상회절, 9월 9일의 중양절같은 것이다. 나는 일본 사람이 반딧불을 좋아하는지를 잘 모르나 이것도 역시 중국에서 배워간 것이다.
중국 사람은 일본 사람에게 남자가 자신의 부인을 다루는 방법을 전수시켰다. 여자로 하여금 겸손 및 극기하는 방법도 가르쳐 줬는데 후에 이것은 도리어 중국 사람 자신보다 일본이 뛰어나게 앞섰다. 중국 사람이 일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일, 즉 일본사람이 흡수해들일 수 없었던 일은 무위이다. 일본 사람은 도교의 유전으로 배우지 못했다. 교육 철학에 의거하여 만약 이같은 것을 배울 만한 소지가 결여되어 있다면 제 아무리 교육시킨다 해도 그 수고는 허사에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이런 데서 중일 양국은 가장 뚜렷하게 같지 않은 점을 노출케 되는데, 일본 사람은 꼼지락거리며 정밀한 것을 파고드는 반면에 중국 사람은 희희낙락하는 개인주의자가 많다. 이같은 차이점은 심각한 관계를 갖고 공업화시대에 두각을 나타낸다.
일본 사람이 과거에 중국에서 배워간 것 가운데 더러는 편리하게 이용했고, 더러는 부적당한 것도 있다. 그들 역사상 어디 그럴 듯한 철학가 한 사람 난 일 있는가. 그러나 여러 방면에서 오히려 그들은 심각한 무엇을 나타냈다. 시나 그림이나, 꽃꽂이나 실내 장식 예술 같은 것은 중국 사람에게서 배워갔다. 그래서 중국은 이미 버렸을 때 그들은 이것을 그냥 보존하는 정신을 길러냈고, 또 다른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미풍양속을 창조해 냈다. 극동예술의 범위 안에서 보면, 일본은 그들 나름대로의 일가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십칠언시를 음운식으로 고쳤으니, 이를 그들의 성공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사람의 유우머러스한 문체는 중국에서 배워갔다. 가령 중국 사람이 여행기를 쓴다면, 거기에 나오는 인물은 사인교에 앉은 사람에게서 돈을 훔쳐내어 자기 포켓 속에 집어넣는 사람인데, 일단 돈을 훔쳐낸 다음에는 친구들과 음식을 같이 하고 돈은 자기가 낸다. 이같은 유우머는 일본만화 가운데도 종종 볼 수 있다. 일본만화는 8백 년의 빛나는 역사를 가졌고, 지금도 목각으로 된 만화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만화 목각에서 나타나는 이같은 감각은 일본 사람의 일상생활을 부각한 것이다.
바둑을 두는 두 사람은 바둑에 골똘하여 어떤 아이가 그의 머리 위에 물건을 올려놓아도 도시 깨닫지 못한다. 가난한 서당선생이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이 부주의해서 던진 공에 이마를 얻어맞았을 경우, 선생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능청맞게 얼굴을 찡그릴 뿐이다. 이같은 것은 일본 예술가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중국 예술가들에게 비교하면 오히려 더 많이 중국화된 솜씨이다. 일본 사람은 중국의 전통을 잘 이해하여 또 그 인스피레이션과 표현방법은 심각하다. 나는 일본 사람의 예술성과 시정을 부럽게 생각한다. 더우기 그들은 간소한 미를 이해하고 또 그같은 미가 실내 장식으로 잘 나타난다. 그 많은 중국적인 미는 이를테면 "밝은 창문에 깨끗한 책상" 같은 데 나타난다. 이 밖에 칠기도면 같은 데에 아름답게 표현된다.
만약 우리가 간단한 말로 중 일 두 나라 사람의 차이점을 말한다면, 일본 사람은 중국 사람과 같은 합리적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원대한 시야로 평화와 민주사상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말이다. 이같은 특질은 일본 국민 사이에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은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가혹한 훈련을 받아서 생존의식이 비교적 강하고, 뛰어난 의욕심에서 의식 편중에 기울어지기 쉽다. 일본 사람은 비교적 바삐 서두는 반면에 중국 사람은 비교적 총명한 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중국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어느 누가 심각하게 창조능력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일 것 같으면, 또는 대국적 문화권익을 말하려고 할 것 같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일본 사람도 과장해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국가의 번영을 도모할 때 깊은 심각성과 창조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박하고 모방 잘하는 사람도 만족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화의 화사한 면이다. 예술상으로 볼 때 일본 예술은 말쑥하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점은 적다. 일본 사람이 정밀하다는 뜻은 엉성하게 거리를 둔 정밀을 말하는 것이며, 어떤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퍽 압축된 자잘구레한 가냘픈 미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웅장한 예술이다.
일본 사람의 모든 사물은 마치 통나무로 만든 집과 같아서 단단치 못함을 면치 못한다. "합리적 정신"이란 말은 모든 차이점을 포함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사람의 호전적인 정신은 일본 사람의 의지의 견고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일본 사람의 천황에 대한 충성과 일본의 고도로 발달한 국가주의는 그들의 합리적 정신의 결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상무할 줄 모른다. 합리적인 사람은 딱딱하지는 않지만 열광적은 못된다. 중국 사람은 합리적이어서 <상무>할 줄 모르고 딱딱하지는 않으나 열광적도 못된다. 때문에 전인을 이루지 못한다. 중국에는 당쟁이 끊일 사이 없이 일어나는데 그 최후의 해결 방법은 '의리에 맞지 않는다'는 말로 어느 한 당이 '의리에 맞지 않음'을 자인할 때는 벌써 당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처럼 중국 사람은 합리적 정신을 소유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형식에 편중하지 않으며, 여자와 임금에 대한 태도도 극단적이 못된다. 중국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예절에 치중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 듯하나 이같은 관념은 잘못된 일이다. 외국 사람 중에 중국 사람의 말투가 지나치게 예절을 갖췄다고 말하는 이가 있으나, 이것은 중국 사람이 자고로 형식에 편중키보다 생활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을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말하면 중국 사람의 행동은 너무나 자유적이다. 이는 그들이 너무 낙관적이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의 눈에는 일본 사람의 다도가 이상스럽게 비친다. 일본의 신식 여자사범학교에서는 여자들에게 허리굽혀 절하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당신이 중국 여자에게 절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중국 사람이 여자에게 허용한 지위는 낮지만, 일본 남자가 기생을 집에 데리고 돌아와서 아내에게 친절히 대해 주기를 강요하는 것을 보면, 이는 "의리에 맞지 않는 짓"이라고 나무랄 것이다. 중국 여자는 남자를 부를 때 일본 여자처럼 자기를 낮추어 말하지 않는다. 이같은 습관은 일본의 어머니가 아들을 부를 때에도 매일반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공자가 제창한, 여자는 남자보다 낮고, 상인은 귀족보다 낮고, 백성은 임금보다 낮다는 말이 일본에서 성행되고 있는 정도로 중국에서 행해지고 있지는 않다. 중국 사람이 보기에 일본이 그토록 천황을 숭앙하는 것은 일종의 발광 상태에 지나지 않으며, 이같은 발광 상태가 일본의 민족역량을 더해 주기는 했으나, 그것은 그들이 머리로 사색하지 않는 소치이기도 하다. 일본은 중국이 소유하지 않은 무사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군주전제시대에 있어서조차 민주 정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실은, 일본이 2천년의 변천하는 역사를 가졌으나 그동안 다만 끊임없는 황대를 지속해 왔으나, 중국은 20여 개의 조대를 경과했다는 점이다.
봉건전쟁의 파란 속에서, 즉 1336년에서 1392년, 또한 1467년에서 1583년에 이르기까지 천황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에 있어서조차 황실의 직계와 황족의 지위는 일본에 있어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황실의 권위 또한 조금도 변동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일본천황은일종의 반인반신의 특별 대우를 받아 왔다. 이같은 사례를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사람은 의리에 맞지 않으면 아무런 특권이라도 인정하지 않으며, 중국의 역사적인 견해에 따르면 황제의 지위는 하늘이 내려준 것으로서 그가 통치를 잘하지 못하면 하늘이 내려준 권한을 포기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이 일본에 있어서는 "위험사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한 번은 일본의 어느 대학 정치학 교수가 학술 논문을 발표했는데 거기에서 말하기를, "천황은 국가의 한 개 기구이지 국가 자신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각이 벌컥 뒤집힌 일이 있다. 이 논문을 발표한 교수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고 말았다. 이같은 사고방식을 중국사람으로서는 이상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