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5. 현대의 사상/해방 이후-현재
3. 북한의 전통 철학
계급성과 역사주의를 통해 본 철학사
위에서 살핀 연구 원칙은 구체적으로 철학사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먼저 시기 구분을 보자. 북한은 1950년대 중반의 다양한 논의를 거쳐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5단계설에 맞추어 역사를 원시 공동체, 노예 소유제, 봉건 농노제,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생산 방식에 상응하는 시기로 나누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을 노예 사회로, 삼국 시대부터 17세기까지를 봉건 사회로, 실학파와 임성주의 철학 시기를 '봉건 사회 분해기'로, 동학, 척사위정, 개화파, 의병 운동, 애국 계몽 운동 등의 시기를 '자본주의적 관계 발전기'로 보았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들어온 1920년대 후반부터 현대 철학 발전 단계라고 하였다. 철학사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유물론과 관념론에 대립 투쟁이다. 이 관점은 각 시대마다 적용되며, 전체적으로는 유물론적 세계관이 승리하는 과정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선적이 아니라 실제로는 관념론과 유물론 두 진영 여러 변종 사이의 투쟁으로도 나타난다. 구체적으로는 불교와 주자학의 투쟁, 주자학 내부 여러 조류 사이의 투쟁, 주자학과 기타 철학 여러 조류 사이의 투쟁이 그것이다. 불교 안에서도 교종과 선종의 투쟁이 있었고, 14세기를 전후해서는 불교와 주자학적 투쟁이 생겨났다. 조선에 들어오면 서경덕 중심의 유물론 진영과 이황 중시의 관념론 진영이 대립하다가, 다시 관념론 진영 안에서 이황 중심의 주리론과 이이 중심의 주기론이 대립하였다. 특히 주리--주기 논쟁은 비록 스콜라적인 것이긴 하지만 주기론자의 유물론적 견해들이 한국 철학사의 유물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보았다. 이 같은 분석은 리는 관념적이고 기는 유물적이라는 도식을 낳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주자학의 사유 구조 가운데 기를 강조한 철학을 중시하게 되었다. 특히 주자학 전반에 대한 유물론적 논의는 다음과 같다. 리는 기의 내적 필연성으로 간주되며, 지와 행은 제한된 의미이기는 하지만 인식과 실천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마음은 사유 기관 또는 인식의 생리적 기초이며, 인식 과정 또는 인식 내용의 의미로 파악하였다. 또한 성도 마음과 마찬가지로 기의 작용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철학사의 여러 사상 유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1960년대 나온 "조선철학사"(상)는 기원전 3세기에 소박한 유물론인 기론이 나왔다고 했지만, 민족의 우월성이 강조되면서 기원전 10세기로 소급되었다가, 다시 1990년대 들어와서는 기원전 6세기라고 수정, 보완되었다. 고대 시기 주목받은 또 다른 사유 체계는 선 사상이다. 고대 부분의 서술이 강화된 1986년 "조선철학사개요"는 선 사상을 한의학이나 약학에 기초하여 발생한 무신론적 사상으로 규정 지었다. 이 사상은 종교 관념론적 견해에 일정한 타격을 주었지만, 공상적 신비주의적 요소 때문에 지배 계급의 이용물이 되었다고 한다. 삼국 시대에는 자연 과학의 철학적 기초가 된 소박한 유물론 사상이 있었으며, 진보적 귀족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 화랑도 사상이 도교, 유교, 불교와 유사한 측면을 가진 고유 사상 체계로서 삼국 통일에 진보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선 사상은 환상적인 내용과 함께 계급적 성격이 담기면서 두 방향으로 분화되었으며, 아울러 귀족 계급과 봉건 질서를 유지, 강화하는데 기여한 교종도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후기신라와 고려 시기는 불교 관념론이 지배하는 가운데서도 궁예나 묘청의 사상 같은 유물론이 발전하였다고 본다. 또 비판 대상인 관념론에 속하는 불교도 그 속에 변증법적 요소가 있음을 주목한다. 특히 지눌의 철학에 대해서는 반동적 신앙 철학인 교종을 반대하였다고 긍정하면서도 계급 의식을 마비시켰다고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선 사상은 현실 도피적이며 신비적인 성격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고려 말부터는 주자학에 주목한다. 그러나 안향, 백이정, 우탁, 권보 등은 이론적 저술이 없다고 하면서, 중세 유물론의 독자적인 체계와 내용을 갖춘 사람으로 이규보를 꼽고 있다. 13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는 불교 관념론에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권근과 정도전 등을 높이 쳤다. 15세기에서 16세기까지는 유학과 불교, 도교의 조선화가 진행된 시기로 규정하며, 유교에서 그런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사림파였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초기에는 인민적 요소를 가진 도덕 이론으로 평가되지만, 훈구파를 제거하고 집권자로 등장하면서 반동화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 가장 주목받은 철학자는 김시습과 서경덕이다. 그들은 기 일원론적 유물론의 대표자로서 하층 양반과 피지배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였으며, 서경덕의 일정한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는 허엽, 박순, 이지함, 조식, 이항 등이 거론되었다.
16세기에는 서경덕의 유물론에 대한 반동으로 이황과 이이를 비롯한 관념론자들이 객관적 관념론을 강화하였으며, 그 구체적인 전개가 지배 계급내의 주기론과 주리론의 투쟁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이의 철학에는 유물론적 요소도 있으며, 사단칠정과 인물성동이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독창적인 견해가 적지 않게 제기되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주자학을 반대한 진보적 조류들로 실학, 한학, 양명학 및 임성주의 기 일원론적 유물론이 나온다고 말한다. 특히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가장 주목받은 사상은 유물론 입장에서 진보적 계급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선진직, 유물론적 자연관과 탁월한 사회 정치적 견해를 수립한 실학이라고 한다. 또한 실학 사상은 과학 발전의 수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실학파는 초기, 중기, 말기로 나뉘는데, 초기에는 리수광, 류형원, 리익, 중기에는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말기에는 리규경, 최한기를 두었다. 실학 사상은 그 뒤 개화 사상을 거쳐 애국 계몽 운동의 사상적 원천이 되었다고 본다. 19세기 도시 평민층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새로운 자연 과학 사상에 기초하여 독창적인 유물론 철학 체계를 수립한 최한기가 나왔으며, 19세기 후반에는 자본주의적 관계를 반영한 부르주아 철학 사상이 발전하였다고 한다. 특히 계몽 사상은 유기론, 양명학, 서구 부르주아 철학, 사회 진화론 등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사회, 경제적 조건들과 자연 과학 발전의 미약, 신흥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및 정치적 취약성 때문에 선진적인 부르주아 유물론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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