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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15 호
단기 4340. 7. 7 (음력 5.23)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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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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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단, 10월5일까지 작품공모
부천지역의 역량 있는 신인작가를 발굴하고 부천문학의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부천 신인문학상’ 작품 공모가 시작됐다. 지난 2004년 제정돼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부천 신인문학상은 시, 소설, 수필, 동화, 희곡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되며 장르별 당선자에게는 최고 200만원에서 최소 1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부천 신인문학상은 2007년 7월을 기준으로 부천에서 1년 이상 거주했거나 2년 이상 부천소재 직장에 근무한 사람이어야 하며 연령제한은 없다. 문학지망생 및 등단 3년 이하의 신인작가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며 미발표 순수 창작품에 한한다. 시는 5편, 소설·수필·동화·희곡은 1편을 공모하며 작품접수는 10월5일까지 받는다. 신청서, 작품 원고, 원고가 저장된 디스켓 1부 등 구비서류를 첨부해 방문 또는 우편(경기도 부천시 상1동 394-2 복사골문화센터 4층 부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제4회 부천신인문학상’)으로 제출하면 된다. 당선작은 11월 초에 발표되며, 시 1백만원, 소설(200자 원고지 100매 이내) 2백만원, 동화(200자 원고지 50매) 1백만원, 수필(200자 원고지 15매) 1백만원, 희곡(200자 원고지 100매) 2백만원 등을 시상한다. ☎320-6332, www.bcf.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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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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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란 사람이 최선을 다할 기회. / 듀크 엘링턴(미 흑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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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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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나라를 걱정하라
우리의 시는 마땅히 두보의 것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시인들의 시중에서 두보의 시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경"에 있는 3백 편의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경"에 있는 모든 시는 충신, 효자, 열녀, 진실한 벗들의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의 발로로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착함을 권장하고 악함을 징계하는 그러한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의 시는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뜻이 세워져 있지 아니하고, 학문은 설익고, 삶의 큰 길을 아직 배우지 못하고, 위정자를 도와 민중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시를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니, 너도 그 점에 힘쓰기 바란다.
두보의 시는 역사적 사건을 시에 인용하는 데 있어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지어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 출처가 있으니 두보야말로 시성이 아니겠느냐? 한유의 시는 글자 배열법을 모두 출처가 있게 하였으나 어구는 스스로 많이 지어냈으니 그분은 바로 시의 대현(뛰어나게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소동파의 시는 구절마다 역사적 사실을 인용했는데 인용한 태가 나고 흔적이 있어 얼핏 보아서는 의미를 알아볼 수도 없으나 겨우 알아낼 수 있으니 그의 시는 시인으로서는 박사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소동파의 시로 말하면 우리 세 부자의 재주로써 죽을 때까지 시에만 전념한다면 그 근처쯤 갈 수는 있겠지만 세상에서 할 일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그따위 작시나 일삼고 있겠느냐?
그러나 시에 역사적 사실을 전혀 인용하지 않은 채 음풍농월이나 일삼고 장기나 두며 술먹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시를 짓는다면 이거야말로 벽지의 시골, 서너 집 모여 사는 촌선비의 시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시를 지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도록 하여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일이나 베껴 내고 있으니 이 또한 볼품없는 짓이다. 아무쪼록 "삼국사기" "고려사" "국조보감" "여지승람" "장비록" "연려실기술" 및 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 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 뒤에 라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것이며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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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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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4. 근대의 사상
1. 전기/개항기-3.1 운동기
2. 개화 사상과 서구 사상의 유입
개화 사상
1. 초기 개화파의 형성과 계승 문제
개화 사상은 19세기 후반기에 형성되어 20세기 초반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외래의 문물, 특히 서양식의 문물 도입을 주장하던 사상이었다. 외래의 문물을 수용하는 폭이나 시기 및 태도에 따라 개화 사상은 몇 개의 분파로 나뉘어졌다. 이러한 개화 사상은 우리의 전통 철학이 서양의 충격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 직면하여 변형하고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적으로는 18세기 후반기 실학자들인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파의 사상과, 19세기 중엽의 김정희, 이규경, 최한기의 사상과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이 개화파의 사상은 그 원형을 실학 사상, 그 중에서도 북학파의 사상을 주로 계승하였다. 이들은 그것을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맞게 발전시킴으로써 근대 개혁 사상으로 부각시켰다. 실학과 개화 사상을 이어 주는 상징적인 인물로서 초기 개화파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한 인물은 박규수이다. 그는 신분상 중인인 오경석, 유홍기 등과 함께 개국을 주장하고 서양식 화포와 화륜선의 수용을 주장하여 최초로 개화 사상가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유길준 등 대부분 노론 계열의 서울 양반촌 명문사족의 자제들인 촉망받는 젊은이들을 모아 박지원의 "연암집"이나 중국의 위원이 쓴 "해국도지" 같은 책을 함께 읽고 시무를 토론하며 그들을 대화 사상가로 길러 내었다. 박규수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경석 및 유홍기와의 접촉과 지도 아래 초기 개화파들은 그 사상적 결속을 굳혀 나갔다.
2. 변법 개화파의 형성과 좌절
1876년 개항 이후의 역사는 개국론자들이 전망했던 대로 전개되지 못하였다. 우선 1876년 체결된 병자수호조약부터가 그 당시 민씨 정권의 정권유지적인 성격을 갖는, 조선에 불리한 불평등한 것이었다. 당시 민씨 정권은 청과 사대 관계를 강화하여 봉건적 특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보강하는 범위 안에서 개화에 대한 이해를 보이는 정도에 그쳤다. 게다가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종래의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데서 실질적인 내정 간섭으로 변하여 갔다. 일찍이 "정치와 교육과 법령은 자주"라고 했던 것이 실질적 예속으로 바뀌고, 군란 후의 서울 주둔 청군의 행패도 더욱 극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집권파 민씨 정권은 이러한 만행에 대해 항의조차 제대로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옥균을 위시한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박영교 등 일단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청의 조선 독립에 대한 침해가 조선의 발전에 큰 저해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청으로부터 자주독립이 제일의 과제라고 보아 개화에 대한 의지와 인식을 심화시켜 나갔다. 박영효는 이러한 자기들의 입장을 "새로운 것에 나아가 스스로 주인 노릇 한다"는 '취신자주'임을 밝히고, 그 반대파들의 입장을 "옛것만 지키고 남을 의지한다"는 '수구의뢰'라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일본의 명치유신을 조선 사회의 개혁 모델로 삼는 대신 청에 대하여는 자주 의식을 가졌으며, 당시의 집권 민씨 척족과도 대립함으로써 과거의 전통을 청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변법 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옥균은 실사구시의 철학적 태도를 견지한 사상가이자 개혁가였다. 그는 "내 생각으로는 실사구시만 한 것이 없으니, 곧 한두 가지 긴요한 것들을 급히 시행해야 하지, 원대한 책략을 편다고 하여 한갓 헛말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또 "치도략론"에서는 "오늘날 우선 힘쓸 것은 실사구시 이상이 없다"고 하였다. 이런 사고에 입각하여 현실 문제를 구체적으로 탐구한 결과, 그는 위생, 농업, 양잠, 도로 등에 관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그는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도 부정하는 철저한 무신론을 표방하였다. 나중에 그는 서양 기독교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것 역시 기독교가 백성을 교화하는 수단으로서 현실적 유용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사구시의 태도는 박영효에게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동도'니 '서기'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동양의 학문이건 서양의 학문이건 '실용'을 먼저 하고 '문화'를 뒤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용을 중시하는 입장은 곧 "병은 그 실제적인 증상을 진찰하여 그에 적합한 약을 복용한다면 낫지 않을 것도 없다"는 생각과 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역시 근본을 취하느냐 말단을 취하느냐에 따라 학문의 성격과 성쇠가 결정된다고 보아 '실학'이냐 '허학'이냐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그는 "모든 종교는 인민이 의지할 바이며 교화의 근본이다"라고 하고, 어느 종교를 믿든 간에 그것은 인민의 자유에 맡겨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대체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였던 변법 개화파들은 새로운 사회를 전망하는 데 좀더 철저하고 근본적일 수 있었다. 그들은 우선 정치적인 측면에서 근대 민족 국가로의 지향을 드러내 보였다. 그들은 청에 대한 조공과 허례를 폐지하고 자주권을 확보하며, 국왕의 권리를 제한하는 일종의 유사 내각제(입헌 군주제)를 설치하고자 했으며, 문벌을 폐지하고 인재를 두루 등용함으로써 인민의 평등권 확보에 한 걸음 진전코자 하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지조법을 개혁함으로써 국민의 부담을 경감하고, 혜상공국을 혁파함으로써 상공업의 자유로운 발전을 추진하는 등 근대적인 산업 체제의 기초를 닦으려고 하였다. 그 외에 규장각을 혁파함으로써 국왕 중심의 봉건적 문화 교육 체제를 개선하고, 근대적인 경찰 제도와 군대를 창설함으로써 군사 방면에서 근대적인 개혁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사상적으로는 그들은 전통적인 유학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을 취했고, '실용'에 도움이 되는 서학을 총체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논리를 개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주도한 갑신정변은 외형에서만 살펴볼 때 집권 세력을 옹호하던 청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일본의 견제력에 기대하려다 실패한 쿠데타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변법 개화파가 진보와 자주를 실천하고자 애쓴 근대화 운동의 기수였다고 하는 평가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와 함께 소수 엘리트의 개화 사상이 광범한 민중 속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군주 측근의 집권파를 제거하거나 군권 변법에 의해 위로부터 개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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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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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본뜻 : 옛날 관직의 하나로 교수의 임무를 맡아보던 벼슬이었다. 백제 때는 시, 서, 역, 예기, 춘추의 오경 박사를 두고, 고구려 때는 태학에, 신라 때는 국학에, 고려 때는 국자감에, 조선조 때는 성균관, 홍문관, 규장각, 승문원에 각각 박사를 두었다.
바뀐 뜻 : 학문 연구에 우수한 성과를 올린 사람에게 주는 학위, 또는 그것을 취득한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때로는 진짜 학위를 받지는 않았지만 어떤 분야에 대해 널리 알고 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보기글" -김 선생님이 이번에 신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며? -그 사람 참 다방면에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야
방편
본뜻 : 방편은 원래 불교 용어였다. 방은 방법을 말하는 것이고 편은 편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근기에 알맞는 방법을 이용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즉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묘한 방법을 말한다.
바뀐 뜻 :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일시적인 수단이다 편리한 방법을 말한다.
"보기글" -열차를 놓쳤으면 다른 방편이라도 찾아 봤어야지 -시험이 없어졌다면 다른 방편이라도 있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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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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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미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 아메리카 인디언
조작된 평화의 상징, 포카혼타스
16세기 이후 본격화된 유럽 국가의 신대륙 개척 과정에서 선두 주자는 단연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 그리고 현재 미국의 남서부 지역을 점령했다. 특히 1520년을 전후해 멕시코의 아스텍 제국을 정복함으로써 스페인 국왕의 창고는 금은보화로 가득 찼으며 이 때문에 주위 국가들의 시기와 부러움을 샀다. 포르투갈은 현재의 브라질 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했고 초기 프랑스인들은 오대호 근처에서 인디언들과 모피 등을 교역하면서 주로 캐나다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수난사에서 주된 가해자가 된 영국은 신대륙 개척에 뒤늦게 참여하였다. 아메리카의 동부 해안 지역을 개척하던 초기의 영국 정착민들은 인디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두 인디언 부족이 온화한 인디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 하나인 왐파노아그 부족은 현재의 매사추세츠, 버몬트, 뉴햄프셔 등을 포괄하는 지역인 뉴잉글랜드에 거주했다. 또 다른 부족은 버지니아 주에 살던 알골킨 언어 부족들의 연합체였는데, 이들을 이끌던 이가 포와탄 추장이다. 낯선 이름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포와탄은 포카혼타스(1595?~1617) 덕분에 덩달아 유명해진 인디언이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마이크 가브리엘 감독, 1995년)를 통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아메리카 원주민 처녀 포카혼타스. 그녀는 아버지 포와탄에게 읍소하여 백인과 인디언 사이의 전쟁을 막은 평화주의자이자, 첫눈에 반한 백인 청년 존 스미스와의 애절한 사랑에 눈물짓는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다. 16세기 아메리카의 역사를 서술한 문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영화는 중요한 역사서 구실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16세기 미국 동부 해안 지역에서 평화와 애절한 사랑이 만개했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과연 실제 사건에 기반했다는 이 영화의 역사 서술이 진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 스미스, 포카혼타스 그리고 포와탄 등은 실존 인물이며 그들이 수백 년 전 미국 동부 해안 지역을 함께 거닐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한 나머지 상황 설정은 전적으로 허구이다. 포카혼타스는 존 스미스와 열애를 나눈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애는 백인과 인디언의 평화 대신에 비극적인 인디언 멸망사를 예고했다. 16세기에 벌어진 아메리카 인디언과 영국인의 역사적인 조우 그리고 포카혼타스의 실제 생애를 살펴보기에 앞서 영화 <포카혼타스>의 `역사 왜곡`에 어떤 곡절이 있었는지 짚어 보자. 우선 사건의 발단은 로맨스의 주인공 존 스미스에서 시작된다. 존 스미스는 영국 링컨셔 출신으로 모험가이자 사업가일 뿐 아니라 작가로서도 활동해 여행 기록을 여러 책으로 남겼다. 그는 버지니아 주에 최초의 영국 정착촌인 제임스타운을 세울 목적으로 1607년 출발한 영국 원정대의 일원이었다. 존 스미스는 1608년에서 1609년까지 제임스타운의 대표로서 상당히 효과적인 지도력을 행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척박하고 낯선 아메리카 대륙에서 기력을 잃어 가던 영국 이주민들을 다독거리고 때로는 가혹하게 이끌었다. 그가 남긴 구호 “일하지 않으려면 먹지도 말라.”가 지도자 존 스미스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1609년 제임스타운이 화재로 불타자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존 스미스는 포카혼타스와의 극적인 인연을 여행 기록에 남겼다. 제임스타운을 습격한 포와탄 부족이 존 스미스를 납치했고, 죽음의 위기를 맞은 그를 포카혼타스가 눈물의 호소로 구해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포카혼타스>의 중심 줄거리이며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이야기를,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사실로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선 그가 아메리카를 떠난 지 십수 년이 지난 후이고 포카혼타스가 숨진 뒤 7년 후인 1624년에 와서야 포카혼타스와의 극적인 악연을 공표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즈음 포카혼타스는 이미 영국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발표 시점이 애매한데다 진술의 일관성도 없기 때문에 존 스미스의 술회를 사실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존 스미스가 포카혼타스와의 로맨스라는 인상적인 헛소문을 퍼뜨렸다면, 월트 디즈니는 아예 둘이 사랑에 빠지도록 설정해 버린다. 영화 <포카혼타스>에서 두 사람은 애절한 사랑을 나누었고 가슴 미어지는 이별을 감내해야 하는 연인이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인디언과 백인의 평화를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랑도 평화도 모두 역사적 거짓이다. 포카혼타스가 백인 남성과 사랑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상은 존 스미스가 아니었고, 더군다나 그 사랑은 백인의 폭력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포카혼타스는 1613년 새뮤얼 아겔이라는 영국인에게 납치되어 제임스타운에 억류되었다. 그녀는 영국인들이 인디언들과 협상할 때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잡아 놓은 볼모의 몸이었던 것이다. 제임스타운에서 지내던 포카혼타스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인다. 1614년 백인 남성 존 롤프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그녀는 아들 하나를 낳은 후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또한 레베카란 이름으로 창씨개명까지 하기에 이른다. 1616년 영국에 도착한 포카혼타스는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영국은 그녀를 공주의 신분으로 대우했으며 영국 국교회의 런던 주교까지 포카혼타스와의 만남에 직접 나설 정도였다. 포카혼타스가 유명인인 된 배경은 비교적 간단하다. 영국인과 평화를 유지하던 인디언 부족의 추장 딸이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포카혼타스의 변신이 영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영국인들은 인디언이 미개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포카혼타스는 백인 문화에 참으로 놀라운 속도로 동화된 것이다. 그러니 백인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하기까지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포카혼타스는 당시 유럽 사회에서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름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포카혼타스는 행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디언과 백인의 행복한 화해는 헛된 꿈이었다. 백인은 인디언들의 영토권 주장을 완전히 부정했고, 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때까지 퇴거 명령과 학살을 반복했다. 포카혼타스의 개인사도 인디언의 비극적 역사를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아버지에 앞서 영국 땅에서 숨지는데 그 사인은 천연두였다. 천연두는 결핵과 함께 유럽인들이 옮겨온 질병으로 면역력이 없던 수백만의 인디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글자 그대로 병마였다. 그렇다면 포카혼타스도 엄밀히 말해서 백인에 의해, 혹은 아메리카 발견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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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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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4.남자의 마음을 도마 위에 놓고
남자의 마음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해
정복형의 남자와 의존형의 남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한쪽의 특성이 다른 한쪽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정반대의 행동 양식이 고개를 드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난폭한 남자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문득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눈물을 흘리고 비참한 패자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여느 때는 눈에 뛰지도 않는 얌전한 남자가 때로는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일도 있다. 남자는, 아니 사람은 모두 내부에 여러 가지 모순을 품고 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도 여러 가지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존경할 만한 어머니를 갖지 못했던 남자는 대개 어머니에 대해서 상반된 감정을 품고 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으면 서도 한편으로는 경멸한다.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어머니가 이상적인 여성상에 근접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그대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이해를 받을 수 있는가를 터득하고 있는 셈이지만, 그러면서도 과연 어머니는 기뻐해 것인가를 걱정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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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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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우리 집에도 선조의 문집이 있다고 익살을 부린 강맹경
강맹경(1410-1461)의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이다.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고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세조 임금이 맹경의 집을 보고 말했다. "저 썩은 서까래를 빨리 갈아야겠다. 사람 상하겠다. 영상의 집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이계전이 중국에 갔을 적에 주객 낭중이 시를 청하였다. 갑자기 시가 떠오르지 않은 계전은 자기 선조의 문집인 '목은집' 가운데 있는 '조조대명궁시'를 써 주었다.
활짝 열린 명당에는 새벽 공기가 차고 우뚝 솟은 깃발은 난간에서 나부낀다.
시를 본 주객은 칭찬을 마지않았다. 강맹경도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이계전이 맹경을 보고 농담 삼아 말했다.
"만약 중국 사신이 자네에게 시를 청하면 대책이 있는가?"
맹경은 그 말을 받아 즉시 대답하였다.
"우리 집에도 선조의 문집 '통정집'이 있지?"
그 말을 들은 방안의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이계전은 목은의 자손이요, 강맹경은 통정의 후손이다. 맹경의 시호는 문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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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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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아내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심술이 사납고 항상 바가지를 긁어서 위대한 철인의 속을 썩혔다고 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남편이란 자가 철학을 한답시고 집안 일은 통 돌보지 않으니 화가 날만 했는지도 모를 일.
하루는 어떤 사람이 "어째서 저런 부인을 맞이하셨습니까"하고 물었다. "마술을 익히고자 하는 사람은 사나운 말을 골라서 탄다. 사나운 말을 다룰 줄 알게 되면 다른 말을 다루기는 쉬운 일이다. 내가 이 여자를 견디어 낼 수만 있다면 천하에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란 없어질 것이다"하고 대답했다. 또 "쉴 새 없는 부인의 투정을 용케 참으시군요"하자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익고 나면 듣기 싫은 줄 모른다"
한 번은 그의 아내가 욕설을 퍼부은 끝에 '소크라테스' 머리 위에 물을 뒤집어 씌우자 '소크라테스'는 태연히 "천둥이 친 다음에는 큰 비가 쏟아지게 마련이지"라고 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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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2장 내가달라져야 하는 이유
간단합니다
독일 북부 아이네나흐에서 태어난 바흐는 어렸을 대 부모를 잃고 열 다섯 살 무렵부터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했다. 형에게 음악의 초보를 배운 바흐는 음악을 배우자마자 빼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게다가 일단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 마는 집념까지 지녔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곳이라도 닥치는 대로 기억하여 연주했다. 어느 날 함부르크에서 네덜란드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라인켄이 연주회를 연다는 말을 들은 바흐는 그것을 듣기 위해 일부러 6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함부르크까지 갔다. 그는 이렇듯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이윽고 바흐는 훌륭한 오르가니스트가 되어 서른 두 살 때는 라인켄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한 번도 남의 연주를 칭찬한 적이 없는 독설가인 라이켄도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작곡가로서도 유명해져 종교적인 깊이를 가진 갖가지 명곡을 남겼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멋진 명곡을 만들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자 바흐는 이렇게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내가 했던 만큼만 공부하고 노력하면 누구든 나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유전학이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듯이 재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일화가 잘 보여 주듯이 타고난 재능을 어디까지나 조그만 싹이자 조그만 인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싹이 반드시 무럭무럭 자라 소담스런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천적인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에 조금도 매달릴 필요가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재능을 키워나가고, 없으면 후천적으로 재능을 개발하고 무럭무럭 키워 소담스런 꽃을 피우면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정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초점을 맞춰 정진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바흐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그것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정면으로 맞서 끝내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력으로 공부에 공부를 거듭하는 것을 뜻한다.
"간단합니다."
바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간단치가 않다. 조금만 괴로운 일에 부딪치면 맥없이 뒷걸음치거나, 조금만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고개를 푹 숙여 버리는 풋내기 정신이나 육체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준엄한 경지라는 사실을 눈을 똑바로 뜨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통해서 어떠한 장해가 있어도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불태울 때 비로소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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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풍경 - 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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