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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04 호
단기 4340. 6. 25 (음력 5.11)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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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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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모이가 풍족하면 병아리들은 모이를 놓고 서로 싸우지 않는다. 우리 인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돈마키스 (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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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
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웃음 가득한 둥지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의 많은 사람을 보아 왔는데 비록 고관대작들이라도 그가 한 말을 공평하게 검토해 보면 열 마디 중 일곱 마디가 거짓말이 있더구나. 너희들은 서울 거리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어렸을 때 말씨에 잘못 물든 게 없나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거짓말을 안하도록 온힘을 기울여라. 서간문 글 중에서 한 자라도, 평소 주고받는 말 중에 한 마디라도 사실 아닌 것이 없도록 단단히 반성해야만 우리 조상들의 모범을 본받는 길이 될 것이다. 그분들을 본받으면 입에 비루하고 어긋나는 말이나, 천박한 시장 바닥의 말투를 닮지 않게 될 것이다. 특히 도시물 먹은 사람들만 간혹 나쁜 거짓말 습성이 들어 있으니, 너희들은 힘써 그런 말버릇을 고치도록 노력하여라.
사람이 집안에서 가장 힘써야 될 일은 그곳에 화기가 돌도록 하는 일이다. 일가끼리 자리를 같이한다거나 가끔 친한 손님이 찾아오면 기쁜 마음으로 맞아 대접하고 하룻밤이라도 더 주무시고 가게 하여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어야 한다. 만약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으되 마지못해 안부만 묻고 나서는 말도 않고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대하여 손님을 어색하게 만들어서 그 손님이 일어나 가겠다고 만들면 안된다. 그리고 그냥 가도록 만류도 하지 않거나 보내면서도 문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다음번엔 여러 사람이 상대해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평생의 복을 망쳐 버리는 일이 될 것이니 부디 조심하도록 해라.
무릇 사대부(벼슬이나 학식이 높은 사람)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오르거나 권세를 날릴 때에는 오히려 산기슭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선비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속히 서울에 붙어살면서 문화(문명의 호화로운 빛)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재앙과 복의 이치에 대해서 옛날 사람들도 오래도록 의심해 왔다.
충과 효를 한다 해서 꼭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방종하여 음란한 짓 하는 놈이라고 꼭 박복하지만도 않다. 그러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길이므로 군자(학덕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옛날부터 화를 피해 살면서도 더 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음을 걱정하곤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하면 마침내 노루산 산토끼처럼 문명에서 멀어진 무지렁이가 돼 버릴 뿐이다. 요컨대 부유하고 귀하고 권세 있는 집안은 눈썹을 태울 정도의 급박한 재난을 당하여도 느긋하게 걱정 없이 지내지만, 재난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먼 시골 깊은 산 속으로 몰락하여 버림받은 집안이야 겉으로는 태평이 넘쳐흐르는 듯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근심을 못 떨치고 살아간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개 그늘진 벼랑 깊숙한 골짜기에는 햇볕을 볼 수가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 없는 사람으로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 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식견이란 실속 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진정으로 바라노니, 너희들은 항상 마음을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활해서는 안된다.
너희 자손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나라를 경륜하며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둘 수 있도록 하여라.
천리(자연의 이치, 곧 하늘의 뜻)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진 사람이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 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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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
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중세의 사상
3. 해체기/양란-개항기 이전
2. 반주자학
양명학
3. 정제두
정제두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 최대의 양명학자이다. 먼저 그의 생애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그는 윤선거의 사촌인 윤홍거의 사위였고 최명길의 형 최내길의 외손서였다. 대체로 송시열 문하인 이찬한, 이상익 등에게서 초년에 배웠고, 나중에는 박세채, 윤중에게 사사하였으니, 넓게는 서인계, 좁게는 소론계에 속한 학자였다. 그가 어디에서 양명학을 배웠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득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생애는 크게 기사환국이 일어난 41세 이전의 서울 거주 시기, 기사환국 후부터 60세까지의 안산 시기, 61세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머문 강화 시기 등 거처에 따라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는 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6세에 조부상을 당하여 기울어져 가는 가운을 통탄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불우한 삶은 공교롭게도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41세 되던 해에 기사환국으로 남인 정권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로 인해 그는 처음으로 취임한 평택 현감직을 사임하고 대리문초까지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안산으로 이거하였다. 그 후로 60세까지 20년 동안을 그는 안산에 머물면서 양명학에 몰두하였다. 61세 이후로 그는 강황에 가서 세상을 멀리한 채 학문에만 전념하게 된다. 정제두는 당시 학자들이 판에 박은 듯이 주자학적 틀 안에서 안이하게 학문하는 태도를 비난하여, "오늘날 학문을 말하는 사람들은 주자를 배우는 게 아니라 거짓 주자를 배우고 있다. 아니 거짓 주자가 아니라 겉으로 전해 들은 주자를 배우고 있다. 그들의 의도는 주자란 이름을 끼고서 위세를 부려 개인 이익을 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제두는 왕수인의 근본 사상, 즉 격물치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심즉리설, 치양지설, 지행합일설 등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먼저 격물치지설의 경우 정제두는 주희의 설을 비판하고 왕수인의 설을 따랐다. 그는 마음과 양지를 체로 보고 중시하였다. 따라서 주체인 마음이나 양지가 밝아지면 온갖 이치는 저절로 밝아진다고 하였다. 마음의 이치가 밝아야 천지만물의 본성이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다음으로 지행합일설에서도 정제두는 왕수인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주희가 지와 행을 둘로 말한 것은 용렬한 사람들이 본체를 얻지 못했을 경우를 위해 말한 것이며, 왕수인이 지와 행을 하나라고 한 것은 본체를 얻은 어진 자를 위해 말한 것이라고 한다. 지와 행을 다르다고 하는 것은 근본을 잃은 것이며 공부의 본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체로서 양지를 얻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지와 행이 하나가 된다고 한다. 또한 양명학의 종지라 할 심즉리설을 옹호하여 "왕양명은 마음을 리로 여겼으니 곧 양지이다. 마음의 양지는 체가 되며 사물의 작용이 용이 되는데, 이것을 사물의 리라 부른다. 리는 모두 마음에 나타나는데, 마음에 본래 양지가 있어서 이를 알지 못하는 법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정제두는 한편으로 왕수인의 기본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주자학적 입장과 절충하는 면이 있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당시에 양명학이 독립된 학파를 형성할 수 없었고, 또 사문난적으로 몰릴 위험이 상존했기 때문에, 주자학을 치열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절충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4. 강화 학파
정제두가 강화에서 강학한 이래 이광사, 이광신, 이광명의 일족이 양명학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이 대대로 양명학적 정신에서 사학, 서예, 음운, 실학 등 여러 분야에 창조적인 결실들을 가져왔다. 대표적인 사람들만 거론해도 이긍익, 이충익, 이건창, 김택영, 이건방, 이건승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전통적인 양명학을 그대로 이은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치양지와 지행합일의 정신을 가지고 구체적인 분야에 나아가 각기 나름대로 꽃을 피웠다. 중국에서도 명대 말기에 이르러 왕수인의 재전 제자들은 경세치용, 역사, 시문 등 각 분야로 발전해 간 것이 사실이다. 양명학은 주자학과 같은 확고한 교리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반형이상학적 태도를 취하였다. 따라서 왕수인과 그 제자들은 일용의 실사 가운데서 양지에 따라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양명학의 태도는 한편으로 유학을 사대부의 전유물에서 사농공상 모두에게 개방하는 결과를 가져 왔으며, 다른 한편 자연스럽게 실사실용의 학문, 즉 실학으로 연결되는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이런 특성은 조선 양명학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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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대책
본뜻 : 옛날에 종이가 없었을 때는 글씨를 비단이나 대나무 쪽에 썼다. 그러나 비단은 너무비쌌기 때문에 서민들은 주로 대나무를 쪼개어 썼다. 책이라는 글자도 글씨를 쓴 대나무 쪽을 모아 대나무 위쪽에 구멍을 뚫고 끈으로 묶은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이처럼 대나무를가느다랗게 쪼개어 사용한 것을 책이라 했다. 중국 한나라 때의 시험 방식이 아주 특이했는데, 수험생들이 같은 문제를 놓고 푸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앞에 문제가 적힌 책을 놓고 답을 써야만 했다. 그들은 책을 마주 대하고 정답을 궁리해 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는 시험을 대책이라고 했다.
바뀐 뜻 : 상대편의 태도나 어떤 일에 대응하여 세우는 계획이나 수단, 방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북한 핵에 대해서 우리 나름대로의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 사람이 무작정 집으로 쳐들어올 경우에 대비해서 무슨 뾰족한 대책이라도 있는 거냐?
대처승
본뜻 : 글자 그대로 처를 허리에 띤 중이란 뜻이다.
바뀐 뜻 : 살림을 차리고 식구들을 거느린 중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는 화택승이라고 한다.대처승의 반대말로는 출가하여 독신으로 수도의 길을 걷는 스님을 가리키는 비구승이 있다.
"보기글" -선종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한국 불교계에서는 대처승보다는 비구승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해방 이후 불교계에 한 동안 비구승과 대처승의 대립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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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영원한 유랑 민족의 초상 - 집시
집시의 오늘
영화 <집시의 시간>(에밀 크스투리차 감독, 1988년)의 영화적 표현 기법을 흔히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른다. 이 영화가 마술처림 신비한 현상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그런 설명이 가능하다. 가령 이 영화에서 주인공 페르카니는 눈길만으로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염력을 지니고 있다. 동전 따위를 벽에 달라붙게 만드는 일은 기본이고 영화의 말미에서처럼 포크를 날려 악한을 응징하기도 하는데, 이 신비한 장면들은 마치 거리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필름에 담듯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철로 옆에서 출산을 하는 동안 그녀의 몸은 2미터쯤 공중에 둥실 떠올라 있는데, 이 모습도 역시 자연스럽게 묘사되었다. <집시의 시간>이 지향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불릴 만한 이 표현기법은, 그 내용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이 영화는 서구인들한테 이방인이며 요상한 집단인 집시를 자연스런 집단으로, 다른 민족들과 공존하고 함께 상호 작용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존재로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유일하게 집시의 시각에서 혹은 서구인들의 편견에서 벗어나 집시의 모습을 보여 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상당히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영화를 통해 현대 집시의 삶의 모양을 읽어 낼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은 옛 유고슬라비아의 한 지역 이그라주이다. 이곳에는 집시들이 정착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 주인공 페르카니는 주술사였던 할머니와 바람둥이 삼촌 그리고 다리가 불편한 여동생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년이다. 이 영화의 악당은 중년의 남성 아메드이다. 그는 아이들과 부녀자를 사들여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매춘, 앵벌이, 도둑질 등을 시키고 부를 쌓은 인물이다. 페르카니도 아메드 집단의 일원이 되어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는 돈을 벌어서 사랑하는 소녀 아즈라와 결혼하고, 동생의 다리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다. 아메드 등이 머물고 있는 지역에 경찰이 들이닥쳐 아메드의 조직은 와해되고, 병약해진 아메드는 페르카니를 후계자로 지명한다. 페르카니는 아메드와 똑같은 행위를 답습한다. 순수한 소년이었던 페르카니는 이제 일탈자 집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아이들을 도심으로 내몰아 구걸하게 하고 좀도둑질과 매춘 등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해서 숨겨 두었던 돈이 홍수에 휩쓸려 사라지고, 아메드가 그를 배신하자 페르카니는 돈도 순수함도 없이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로 변모한다. 4년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여동생과 자신의 아들을 찾은 페르카니는 자신의 불행을 불러들인 악한 아메드에게 복수하려 한다. 아메드의 결혼식 파티장으로 들어가 정중히 인사를 한 뒤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자신의 염력을 발휘하여 아메드의 목을 향해 포크를 날린다. 복수에 성공했지만 그는 또 다른 복수심을 불러일으켰다. 결혼식을 망쳐 버린 페르카니를 아메드의 새로운 신부가 쫓아와 권총으로 살해한 것이다.
영화가 보여 주는 것처럼 집시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주변인으로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정착한 집시들도 많이 있지만 정착 여부에 관계없이 집시는 사회의 가장 주변적인 부문으로 내몰려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집시의 사회 경제적인 지위에 대한 지표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왜냐 하면 집시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 통계 작업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런 통계 작업을 어렵게나마 진행할 집시의 정치 기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영국과 같은 개별 국가에서 진행된 통계가 최소한의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현재 영국에는 1만 2,600가구의 집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 중에서 전시간(full-time) 취업 상태에 있는 집시는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집시 특유의 이동 시장을 열어서 수입을 얻고 있다. 취업률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집시의 교육 기회가 다른 어떤 소수 집단보다 낮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집시에 대한 일반인들의 근거 없는 편견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집시가 범죄를 쉽게 저지른다고 믿고 집시를 고용하기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집시에 의한 범죄의 비율은 전체 평균 범죄율보다 0.46% 정도 높을 뿐이고, 1992년 영국 경찰은 집시 공동체가 범죄를 양산할 위험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집시는 천성적으로 일을 꺼리는 부랑아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의 편견도 집시의 열악한 사회적 조건을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 사회의 평균치와 비교할 때, 집시 공동체의 어린이나 여성의 가계 기여도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700년 전 유럽에 첫발을 디딘 집시들처럼 현재의 집시들도 여전히 악의적 편견의 대상이며, 그런 편견이 집시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저해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집시들은 몇 가지 국제 조직을 구성하여 자신들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동시에 집시들의 권익 보호를 추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조직이 국제 집시 연합(International Romani Union)으로 이 단체는 1971년부터 유엔 경제 사회 평의회의 일원이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유니세프와 유네스코에 집시의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인도와의 연계를 위해서도 1970년대 중반 인도 집시 연구소(Indian institute of Rom- ani Studies)라는 연구 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집시들의 조직은 무엇보다 인종주의의 극복과 집시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치의 학살과 관련된 전쟁 배상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언급되었듯이 집시가 각지에 흩어져 있을 뿐 아니라 명실상부한 정치 권력을 결여하고 있기에 이러한 국제 조직이나 연구 단체들이 힘을 얻기는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현재 집시의 정확한 인구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직도 이주하는 집단이 많으며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조사가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조사에 따라서 상당히 큰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여러 문헌들은 집시의 인구가 약300만에서 800만 명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그 중에서 많은 수의 집시가 발칸 반도나 옛 소련 등에 살고 있고 서부 유럽이나 중동 지역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에서도 집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집시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도 생활하고 있다. 집시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집단에서 평가한 집시의 수는 앞의 조사와 크게 차이가 난다. 국제 집시 연합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900만에서 1,200만 명의 집시들이 살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1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600만에서 800만이 유럽, 특히 발칸 반도지역에 살고 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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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3. 부모로부터 멋진 독립을!
부모의 방식을 다정한 시선으로 평가할 것
부모들이 자기가 바라는 유형의 인간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때, 사람은 일반적으로 분별이 생기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과거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기가 부모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여기서 모세의 십계를 인용해 볼 수 있다. 십계에서는 부모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는 아직 어리고 무력한 우리들을 다정하게 보살피고 지켜주었다. 이번에는 우리들이 그들의 인생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평가해 드릴 차례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감정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우리들 자신의 감정이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로써 결론을 지어야 한다. 부모는 우리를 부모 나름의 방법으로 길러준 것이다. 좀더 잘 교육시켜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든가 다른 사람을 부모로 만났더라면 하고 생각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기 안의 유전적인 자질은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부모나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부모에게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스스로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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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육신전'을 지어 충의를 세상에 알린 남효온
남효온(1454-1492)의 본관은 의령이고, 자는 백공, 호는 추강, 또는 행우이다. 김종직에게 글을 배웠는데 김종직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언제나 '우리 추강'이라고 불렀다. 김굉필, 정여창, 김시습, 안응세는 남효온을 형제처럼 대해 주었다. 성종 때 공은 18세의 나이로 상소하여 소릉(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능호)의 복구를 청하였는데, 상소가 받아 들여지지 않자 세상을 단념하고 명승지를 찾아 소요하였다. 세속의 일에 분개하여 모악산에 올라 통곡했으며 위태롭고 과격한 말을 거리낌없이 하였으므로 김굉필, 정여창이 늘 조심할 것을 당부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김시습은 늘 남효온을 보면 이렇게 물었다.
"나는 세종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공은 다르지 않은가? 어찌하여 세상을 등지는가?" 그때마다 효온은 이렇게 대답했다. "소릉의 일은 천지의 큰 변일세. 소릉을 복위한 뒤에 과거를 보아도 늦지 않네"
그 뒤로 시습은 다시 권하지 않았다. 남효온이 '육신전'을 짓자 문인들이 화를 당할까 두려워 적극 말렸으나 효온은 듣지 않았다.
"내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대현 충의의 이름을 매몰되게 둘 수 있는가?"
'육신전'은 드디어 야사가 되어 세상에 전파되었다. 뒷날 그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과거에 응시해 성종 11년(1480)에 진사에 합격하였다. 술을 즐긴다고 어머니가 꾸짖자 그는 지주부를 짓고 10년 동안 술을 끊었다. 성종 23년(1492)에 39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연산군 10년(1504)에 부관참시되었다. 정조조에 이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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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
사탄(Satan)
성경에서는 물론 동화, 시, 연극 등에서 악역의 대표, 악마의 총수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탄'이다. '사탄'은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것을 비롯, 인간을 유혹하여 죄를 저지르게 하고 끝내는 지옥에 빠뜨리는 등 갖은 못된 짓을 다한다. 그 모양도 뱀이나 용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박쥐 모양으로 날개를 가진 흉칙한 괴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성경에 의하면 본래는 천사였으며 타락하여 이승으로 떨어진 후 암흑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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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
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2장 내가달라져야 하는 이유
누군가가 말했듯이 모든 창조적인 일은 광기와 제정신의 사잇길에서 비로소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적인 일을 달성하게 하는 것은 그 사잇길에 있는 열정적 자세이다
달걀과 시계
뉴턴은 만유 인력의 발견을 비롯하여 수많은 연구를 완성, 18세기 과학 분야에 불멸의 업적을 남긴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다. 그의 업적은 타고난 재능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젊었을 때부터 그 무엇에도 굽히지 않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결실이었다. 연구와 독서를 시작하면 거기에 푹 빠져들어 잠자고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어느 날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시장기가 느껴졌다. 그는 달걀을 삶아 먹고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달걀을 냄비 속에 넣고 삶았다. 얼마 후 달걀이 적당히 삶아졌겠지 하고 생각한 그는 비로소 책을 덮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냄비 속에서 펄펄 끓고 있는 것은 달걀 바로 옆에 두었던 회중 시계였다. 달걀은 책상 위에 있었다. 물론 뉴턴은 회중 시계를 집었을 때 속엔 잡힌 느낌이 달걀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청년은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를 지극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아주 폭이 좁은 '자신 혼자만의 세계 속의 행복'에 집착하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인다. 따라서 선택한 일이 '자기 혼자만의 세계 속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실로 간단하게 유리한 일로 방향을 바꾸느라 정신이 없다. 극성스러울 정도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워하지도 낳고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눈금이 세밀한 저울을 품속에 넣고 그 눈금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저울로 달아보고 재보고 계산한 뒤에 결정하고 판단하다. 그런 식으로 선택한 일에 정열을 불태울 수 있을까. 물론 본질적인 문제는 선택을 너무나 안이하게 한 데 있다. 무엇보다 '자기 혼자만의 세계 속의 행복'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천직을 선택하는 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의가 높아져, 잠자고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열심히 심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에 공헌하는 업적은 항상 자신의 일에 대해 정열을 불태우는 가운데 조금씩 싹이 트지 않을까. 냄비 속에 회중시계를 넣고 펄펄 끓이는 정열을 청년에게서 엿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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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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