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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12 호
단기 4340. 1. 20 (음력 12.02) / 발행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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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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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창비장편소설상 공모
한국문학의 흐름을 이끌어온 창비에서 우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장편소설을 공모합니다.
참신한 상상력과 힘찬 서사로 침체된 한국소설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작품을 고대합니다.
미등단 예비작가는 물론 기성작가에도 문호를 열어놓으니 많은 관심과 응모 바랍니다.
마감 2007년 9월 30일
분량 단행본 1권 분량(200자 원고지 800매 내외)
고료 3천만원
응모자격 신인 및 기성작가 제한 없음.
발표 2007년 11월 15일 본사 홈페이지(www.changbi.com) 및 계간『창작과비평』 2007년 겨울호
(입상자에게는 개별 통지)
시상 2007년 11월말
보낼곳 413-832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13-11 (주)창비 문학출판부
기타
1. 수상작은 단행본으로 출간합니다.
2. 출간후 고료를 웃도는 인세(정가의 10%)가 발생할 경우 초과분의 인세를 지급합니다.
3. 응모시 겉봉에 ‘장편소설상 응모작’이라고 명기하고, 원고에 성명, 주소, 전화번호를 꼭 써주십시오.
4. 응모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5. 마감일 소인이 찍힌 작품까지 유효하고 우편접수만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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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남자들은 어리석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적시에 바보인 척할 줄 아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 필요한 때 바보인 척할 줄 아는 것은 슬기로운 여자의 기본적 자질. / 폴 엘드리지(미 작가 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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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一章 |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차양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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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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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
직역
도를 도라고 규정지으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고 규정지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모든 것의 어미이다.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는 것으로 그 묘함을 보고, 늘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가장자리를 본다. 이 양자는 같은 것이나 나와서 이름을 달리 했다. 같은 그 근원을 일러 그윽하다고 하고, 그윽하고 또 그윽하다고 하여 뭇 묘함의 문이다.
해석
도는 바람이다. 느낄 수는 있지만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도라는 것은 바탕이다. 도화지의 흰 여백이다.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면 여백은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그림이 완성이 되었을 때 여백은 없어진다. 여백이 없는 도화지에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도화지에 그림이 꽉차 있다. 화가는 이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럼 그림은 이제 성장을 멈춘다. 고정 되어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도 그 도화지에는 더 이상 그릴 수 없다. 그러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이다.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 비어 있는 것이 바로 바탕이다. 이 바탕의 총체가 도이다. (도화지에 그림이 꽉차면 여백은 사라지는가? 고민해 보기 바란다.)
도는 현재이다. 현재는 존재한다. 그러나 규정지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는 도를 도라고 규정짓는 것에 반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파를 위해서는 글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는 非常道라고 한 것이다.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 말을 음미하라. 늘 그러한 도가 아닐 뿐이라는 것이다. 즉 어느 순간에는 규정지은 도가 타당하다는 것이다. 단 그 순간에만 타당하다는 것이다. 만약 순간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면 노자는 非道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은 시간의 산물이 아니다. 현재이다. 도는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 순간 도는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흘러감이 도이다. 흐르는 강물을 규정지을 수 있는가. 순간적인 감정을 규정지을 수 있는가.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삶 속에서 고정된 것을 찾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따라서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 단지 현재에 자신이 느끼는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도는 과정이다. 결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대상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내속과 밖에 흐르는 생명력이다. 도는 나이기도 하고 너이가도 한 것이다. 그리고 노자의 도는 진리, 근원이라 불리우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진리 근원의 다른 말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기도 하다. 이름이라는 것은 편의를 위해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유재용 이 말은 한 인격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한 인격체는 아니다. 이 말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한 인격체를 대변할 수 는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름이 고정되어 나타나서, 이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실체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아니 이름이 실체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언어는 의사 소통의 수단이다. 책이라는 말은 한글을 아는 사람에게 통용될 뿐이다. 영어로는 book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라는 말은 보편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우리는 책이라는 말에서 책의 의미만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구분 짓지 않음이다. 이름은 사람이 붙인 것이다. 따라서 인위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인위가 내재해 있지 않은 것이 하늘과 땅 -우주- 그 자체이다.
이름을 짓는다. 하늘과 땅도 이름이다. 이름이 생기면 사물이 생긴다. 그리고 하나의 개체가 구분되어 진다. 틀을 가지지 않은 것에 어떻게 이름을 붙이겠는가. 나와 남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다면 남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 우주를 틀 지어 볼 때 이름이 생긴다. 이것이 인위이다. 틀 지어 보거나 보지 않는 것은 인간의 의식의 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이 없이 우주를 대하면 그 묘함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묘하다는 것은 총체의 모습이다. 이 총체에는 나도 들어가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경험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부분이다. 나와 우주의 구분이 사라진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묘라고 표현했다.
욕심을 가지고 보면 세상의 구체적 사물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천하다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물도 우주의 한 부분이다. 아니 우주이다. 완벽하게 우주와 구분되어 있는 것은 없다. 만약 우주와 구분 된 것이 있다고 가정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양자 무명과 유명은 같은 것이다. 우주에 대해서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사물에 이름을 지어서 천지와 만물이 다르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이 무명과 유명의 근원이 바로 道이다. 이 도는 그윽하고 그윽한 것이다. 뭇 묘함의 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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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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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로 나타낼 수 있는 도는 영구 불변의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구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무명은 천지의 시원이고 유명은 만물의 모체이다. 그러므로 영구 불변의 무에서 만물의 미묘한 이법을 보도록 해야 할 것이며, 영구 불변의 유에서 그 귀착점을 살펴보도록 해야 한다. 없는 것과 있는 것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으되 그 이름은 다르다. 그 같은 바를 신비로움이라 한다. 신비하고도 신비하여 모든 오묘한 이치가 나오는 문인 것이다.]
(주) 도: 노자의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만물의 본체요, 궁극적 실체이며, 이법임. 서구인들은 이 도를 way(길), reason(이성, 도리), logos(이성), nature(자연) 등으로 번역하고 있음. 발포르는 도를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 만물을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도와 만물의 관계를 설명한 일종의 번안이다. 또한 tao, taoism, taoist 등의 표기는 도의 중국어 원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상명: 언제나 변함이 없는 이름. 즉, 연구 불변의 이름을 뜻함. 묘: 인간의 감각으로는 포착이 불가능한 본체계의 미묘함을 말하는 것임. 만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도의 본질을 뜻함. 요: 결말, 끝, 귀착점을 의미함. 도에서 생성된 현상계를 지칭함. 현: 검다, 신비스럽다, 그윽하다, 불가사의하다, 심원하다 등으로 쓰임.
해
노자서 81장 5천여 자의 의미는 이 제1장 59자에 압축되어 있다. 이 장은 노자서의 서론이자 본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제1장의 이해 여부는 노자 사상 전체의 해석에 대한 열쇠가 되고 있다. 노자는 도는 무한하므로 인간의 유한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고 이름지을 수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만물의 본체로서 현상의 배후에 스며 있는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다. 도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으므로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지각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직관과 신비한 체험에 의해 체득되는 것이다. 도는 천지 만물을 생성, 발전, 소멸시키는 위대한 힘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절대적이요, 무차별적 세계이다. 의도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한다는 무위자연이란 표현은 도의 작용을 잘 설명하고 있다. 도가 만물을 생성케 하는 것은 창조적이라기 보다는 유출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창조주 신화와는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노자는 이 제1장에서 동서 철학의 근본 문제인 본체와 현상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의 형이상학은 도에 대한 일원론으로 일관되어 있다. 즉 우주 만물은 도에서 나와서 도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 속에서는 자연과 인간, 선과 악, 미와 추 비, 너와 나의 이분법적 발상은 지양되고 있는 것이다. 도의 세계를 직관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대립과 시비와 갈등의 상대적 가치판단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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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경제/경영/성공 |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 박태견 지음
POWER 017 식량 마피아: 카길
농가 숫자는 불과 전인구의 2p인 200만 호에 불과하나, 국제 곡물 및 사료시장의 5할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최강의 농업국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이 독하게 마음먹고 20년간 식량수출을 금지하면 미국이외의 국가는 모조리 처참하게 멸망할 것이라는' 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미국이 지닌 식량 파워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런 미국의 식량파워를 대표하는 큰 손이 다름아닌 미국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악명높은 카길Cargill이다. 세계최대 농업종합상사인 카길은 1865년 창업후 1993년도 매출액이 500억 달러(40조 원)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을 계속해왔다. 카길사를 설립한 카길가와 맥릴런가가 자손 75명에게 주식을 분산함에 따라 현재 미국 기업 중 개인소유 비중이 가장 높다. 한국 등 전세계 54개국에 100여 개 자회사의 800여 개 공장, 5만 7천여 명의 종업원을 고용해, 밀가루, 옥수수, 콩, 쌀, 식용유, 오렌지 농축액, 육류, 맥도널드 햄버거용 통닭 등 대단위 곡물산지에는 직접 대규모 자본진출도 하고 있다. 총수입의 30p는 농산품 가공생산에서 거둬들이고 있으며, 미국내 외형 3위의 통조림 자회사인 엑셀사는 농산물 가공품 외에 철강, 비료, 소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카길사의 최대강점은 각국 정부보다 먼저 각국의 농사 작황을 파악할 정도로 기민한 정보력에 있다. 이들은 인공위성과 자회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기초로 흉작이 들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해당 곡물을 매점매석한 뒤 가격을 폭등시키는 수법으로 막대한 차익을 챙기고 있다. 이들은 또한 전직 관료 등 로비스트를 동원해 미국정부를 매수하거나 외국 독재정권과 결탁해 검은 정치자금을 반대급부로 제공하면서 부당한 폭리를 취하기도 한다. 한 예로 1993년 전세계 농민의 분노를 산 미국측 우르과이라운드 협정안의 경우, 한때 미국 농무차관을 지낸 카길사의 고위임원 앰스태시가 작성한 초안이 그대로 미국정부안으로 겉장만 바뀌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장에 제출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카길을 선두로 한 분계, 드레페스, 인터콘티낸털, 쿡 등 미국의 5대 곡물 메이저는 국제 곡물수출시장 상권의 90p를 장악하고 있다. 카길 주도하에 미국 수출곡물협회라는 압력단체를 결성하고 있는 이들 곡물 메이저등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과정에 빌 클린턴 미국 정부에 다각적 로비를 펼쳐 한국의 쌀시장 개방을 관철시킴에 따라 국내농민들의 원성을 한몸에 모으기도 했다. 쌀을 제외한 한국의 식량자금률은 1994년 현재 20p를 약간 웃돌 뿐이다. 어느덧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생명선이 카길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 카길의 범지구적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식량부족에 따른 곡물가 폭등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정확한 정보 수집력과 분석적으로 명성높은 워싱턴 월드 위치 연구소의 세스터 브라운 소장은 21세기의 식량사정을 이렇게 전망하고 있다. "1950년부터 1984년까지 34년 사이에 세계의 곡물 수확량은 매년 3p씩 늘어 1인당 40p 정도 공급량이 늘었다. 그러나 1984년 이후에는 수확 신장률이 1p로 줄어들어, 인구 증가율 2p에 못미치고 있다. 그 결과 1994년도의 1인당 공급량은 1984년보다 도리어 10p 줄어들었다. 생산량 정체의 원인은 농지 감소, 수자원 고갈, 한계에 봉착한 화학비료 효율 등이다. 이는 미국, 중국, 인도 등 3대 생산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제약이다. 세계 경작지 면적은 1950년부터 1981년 사이에 24p 늘어났으나, 그후에는 공장용지와 도시시설로 전용되면서 줄어들고 있다. 또 지하수의 과잉계발로 미국 남서부와 중국 북부, 인도 펀잡의 대곡창지대는 물부족을 겪고 있다. 아울러 토양 침식, 오존층 파괴, 온난화 같은 환경파괴도 식량 생산력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현재 세계 경작지에서는 연간 240억 톤의 표토가 침식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변수는 급속한 공업화, 소득향상을 실현중인 중국의 12억 인구가 금세기말 세계의 식량수급에 미칠 영향이다. 소득이 늘수록 곡물에서 육류로 소비패턴이 바뀐다. 그러면 엄청난 곡물이 사료로 소비된다. 국내에서 증산한다 할지라도 농지면적, 수자원,비료효과라는 3대 장벽에 부딪쳐 결국은 조만간 거대한 식량수입국이 될 것이다. 쌀, 밀가루, 기타 곡물류 순서로 세계의 식량 가격을 중국이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운 소장의 전망이 들어맞는다면 21세기 카킬의 식량 파워는 과거의 석유 파워나 핵 파워를 능가하는 거대한 것이 될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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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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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유효기간
톨스토이가 여행길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한적한 어느 시골길을 지나가는데 7살 정도의 귀여운 소녀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엄마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무어라 말하며 한참 때를 쓰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슬쩍 엿들어보니 소녀는 그가 허리에 둘러맨 백합꽃 수가 놓여진 가방을 갖고 싶다는 거였다. 톨스토이는 가만히 소녀에게 다가갔다. "애야, 힘들겠지만 내일까지 기다리렴. 내일이 되면 나에게 이 가방은 소용없어질 것 같구나. 그땐 틀림없이 네게 이 가방을 선물하마. 자. 그만 울고..."톨스토이의 상냥함에 소녀는 금방 울음을 그쳤고 약속에 대한 기대감으로 빰이 발갛게 물들었다. 사실 톨스토이에게 그 가방은 매우 소중한 친지의 유품이었다. 또 가방에는 그의 책과 기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음날 저녁, 톨스토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시골길로 돌아와 일부러 그 소녀의 집을 찾아 갔다. 그런데 소녀의 집에 도착해 보니 방금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소녀의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어제 톨스토이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후 아이가 갑자기 이름모를 병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묘지까지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묘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온 소중한 가방을 무덤 앞에 바치고 엄숙히 기도했다. "이젠 그 애가 죽었으니 가방은 필요 없어요. 고맙지만 가지고 가세요." 옆에서 지켜보던 소녀의 어머니가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따."아뇨,따님은 죽었지만 나의 약속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톨스토이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 참 가슴 찡한 이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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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철학에 이르는 길 - 강영계
제 2장 철학이란 무엇인가
5.지혜에 대한 사랑
대체로 서양에서는 근대 중반까지 학문 전체를 철학이라고 불렀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고전적인 의미의 철학과 현대적인 의미의 철학 사이에는 공통된 점도 있고 서로 다른 점도 있다. 철학을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공통된 점이다. 필로소피아라는 말은 희랍 말 "지혜"와 "사랑한다"가 합친 말이다. 지혜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누구나 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지혜란 진.선.미의 통일이다. 우리들은 흔히 지식을 지혜와 동일시하지만, 실은 진.선.미의 통일과 지혜는 같은 것이다. 철학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것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철학이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1800년대 중반 "지혜에 대한 사랑"인 필로소피아를 자기네 말로 옮기기 위하여 만들어낸 개념이다. 만일 우리들이 철학이라는 말 대신에원래의 표현 그대로 "필로소피아"라고 처음부터 쓸 수 있었다면 현재 우리들이 철학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난해하다"라든가 "애매모호하다" 등과 같음은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르겠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서양의 독특한 소유물만이 아니다. 우리들은 옛부터 "필로소피아"에 해당하는 것을 학이라고 불러왔다. 사서에 속하는 대학이라든가 또는 소학등은 바로 동양적인 "필로소피아"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문장은 우리에게 낯익은 것이다. 배움에 대한 기쁨은 다름 아닌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기쁨이란 어떤 기쁨인가? 그것은 지혜를 사랑하는 기쁨이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글귀를 하나 더 예로 들어보기로 하자.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우리들은 "필로소피아"로서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앞에 놓고 그 답을 찾지 못하여 이리저리 헤매기 일쑤이다. 그러나 대학의 도는 바로 철학이 무엇인지를 가장 간결하게 답하여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밝은 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와 아름다움이다. 밝힌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배움은 곧 밝힘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것을 찾고 우리 것을 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진보된 외래 사상만을 섭취하려는 태도도 편파적인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남의 것은 도외시하고 반드시 조상의 업적만을 들먹이는 것도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나의 의식 속에서 우리들은 언제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해결책을 추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며 또한 밝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혜에 대한 사랑을 밝혀주는 또 하나의 예는 '중용' 첫머리에서도 발견된다. "천명 이것을 일컬어 성이라고 하며, 성을 따르는 것 이것을 일컬어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 이것을 일컬어 교라고 한다." 성이란 세계 원리이자 진리이다. 성을 따르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요 도를 닦는 것 역시 진리를 익히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고 닦는 것이야말로 지혜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방향을 돌려서 과연 서구적인 전통에 있어서의 지혜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살피기 위하여 플라톤의 대화편 잔치 중 사랑(eros)에 관한 논의를 직접 읽어보기로 하자.
"친애하는 아가톤, 그대가 우선 에로스 자체가 어떤 성질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해명한 다음에 그것이 행하는 것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말한 연설의 서론은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되었다. 그처럼 시작한 것에 나는 참으로 감탄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다른 점에 있어서도 에로스의 성질을 훌륭하고도 기품 있게 설명하였으므로 다음에 관해서도 말해주기를 바란다. 에로스는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의 성질을 가진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성질을 가진 것인가? 나는 그렇다고 해서 에로스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인지 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인지를 묻고 있지는 않다. 에로스가 어머니 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아버지라는 말에 관하여 이 아버지가 분명히 어떤 사람의 아버지인지 또는 아닌지를 묻고 있다. 확실히 유일하게 이성적인 답이란 아버지란 아들이나 딸의 아버지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렇지요라고 아가톤이 답하였다.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예. 좋다. 그러면 만일 그대가 한두 가지 물음에 대하여 대답할 생각이 없다면 생각컨대 그대는 내가 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이다. 형제로서의 형제에 대해서는 어떤가라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분명히 어떤 사람의 형제인가 또는 아닌가? 물론 그는 어떤 사람의 형제입니다. 그대가 뜻하는 것은 그가 분명히 형제 또는 자매의 형제라는 것이지? 바로 그렇다고 아가톤이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어디 똑같은 관점에서 나는 그대가 사랑을 바라보기를 원한다.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인가 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사랑인가? 물론 어떤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다음처럼 말한다. 사랑이란 어떤 것의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게나. 그리고 다음을 말해보게, 에로스는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것을 욕구하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물론 에로스는 그것을 욕구합니다. 그리고 에로스는 그가 욕구하는 것을 소유했을 때 그것을 욕구하며 사랑하는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욕구하며 사랑하는가? 아마도 그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일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음처럼 말했다. 욕구하는 자가 자신이 안 가진 것을 욕구하며, 없지 않을 경우에 욕구하지도 않는 것은 아마도가 아니라 반드시가 아닐까? 아가톤이여, 내 생각에 이것은 특히 반드시 그래야만 하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다. 그러면 나에게 말해주게. 키 큰 사람은 키가 크기를 원하고 또한 강한 사람은 강해지기를 원할까? 지금까지 동의해온 것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것들을 결여하고 있지 않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지.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만일 강하면서 강하기를, 빠르면서 빠르기를, 그리고 건강하면서 건강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아가톤, 그대가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욕구하든 안 하든간에 반드시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과연 어떤 사람이 그것을 욕구하겠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건강하지만 건강하기를 원한다. 부자이지만 부자이기를 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바로 그것을 소유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면 그에게 우리는 다음처럼 말할 것이다. 여보게 그대는 현재 소유한 재물, 건강, 체력을 계속하여 소유하겠다는 것이군. 왜냐하면 천사든 아니든간에 적어도 지금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그대가 현재 소유한 것을 소유하기를 원한다고 말할 경우 그것은 현재 소유한 것을 계속해서 소유하기를 바란다는 말이 아닌가? 그 사람도 이렇게 말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겠지?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음처럼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것은 아직 제 마음대로 되지도 않으며 소유하지도 않을 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계속해서 자신의 소유로 있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아가톤이 말하였다. .......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의 연설에서 에로스가 어떤 것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는지 회상해보기 바란다. 그대가 바라면 내가 회상시켜 주겠다. 그대는 대체로 다음처럼 말했다. 곧 추한 것에 대한 사랑이란 없으므로 신들의 일도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으로 정리되었다고 그대는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말했다고 아가톤은 대답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 옳았어. 만일 그렇다면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며 추함에 대한 사랑은 아니겠지? 그렇습니다. ...... 나는 다음처럼 말했다. 그렇다면 에로스의 양친은 누구입니까? 그 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히려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말하겠습니다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날 신들이 잔치를 벌렸는데 그 가운데에는 다른 신들과 같이 메티스의 아들인 포로스도 있었습니다. 잔치가 끝난 후 흔히 있듯이 페니아가 구걸하러 문 앞에 와 있었습니다 이때 포로스는 아직 포도주가 없었을 때이므로 신주에 취하여 제우스의 정원에 들어가서 제멋대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페니아는 자신이 가난하므로 포로스를 이용하여 애를 낳으려는 생각을 품고 그의 옆에 누워 에로스를 임신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에로스는 아프로디테를 추종하며 모시는 자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 여신의 생일날 출생하였으며 출생시부터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였고 또한 아프로디테 자신이 아름다운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로스는 포로스와 페니아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므로 다음과 같은 운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선 항상 가난하고 누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상냥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거칠고 초라하고 맨발이며 집이 없고 항상 이불도 없이 땅 위에 누우며 텅빈 문턱이나 길가에서 잠을 잡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편의 성질을 물려받아서 언제나 가난한 상태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아버지를 닮아서 항상 아름다운 것 및 선한 것을 갈구하며 용감하고 담력이 있고 기개있으며 익숙한 사냥꾼이고 실수를 범하지 않고 일생 동안 지혜를 사랑하며 탁월한 요술사요, 마법사이고 학자입니다. 더우기 그 본성은 죽지 않는 것도 아니요, 죽는 거도 아니어서 때때로 죽기도 하지만 하루에도 사정이 좋으면 꽃을 피워 살아 있고 때때로 죽기도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에 따라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소유하게 되면 항상 잃어버리기 때문에 에로스는 결코 궁핍하지 않지만 풍요롭지도 못합니다. 또 한편 그는 지혜와 무지 사이에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신이란 모두 지혜를 사랑하지 않으며 이미 지혜가 있으므로 지혜있는 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외에 어느 누구든 지혜를 가진 자는 지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지한 사람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으며 지혜있는 사람이 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무지가 매우 다루기 어려운 것은, 아름답지도 선하지도 그리고 분별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결함이 없다고 무지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전혀 그것을 욕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디오티마, 지혜있는 사람도 무지한 사람도 아닐 경우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음처럼 말했다. 그것은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 둘 중에 있는 자들이며 에로스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인즉 지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이며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며 또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그 원인도 그의 출생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아버지는 지혜롭고 지모가 출중함에 비하여 어머니는 지혜롭지 못하며 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소크라테스여, 대체로 이와 같은 것이 이 신령의 본성입니다. 물론 당신이 에로스가 어떻다고 생각한 것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을 보면 당신은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를 에로스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에로스가 매우 아름다운 자로 생각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유인즉 사랑받을 만한 자는 실로 아름답고 섬세하며 완전하고 부러울 정도로 복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한 것처럼 사랑을 주는 자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나는 <잔치>에 나오는 에로스에 관한 묘사를 매우 길게 인용하였다. 서양철학의 전통에 있어서의 지혜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한 것이 첫째 목적이었으며, 다음으로는 동양적인 의미의 지혜에 대한 사랑과 서구적인 것이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것이 다음 목적이었다. 에로스(Eros)는 포로스(Poros)와 페니아(Penia)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포로스는 풍요로움 또는 부유함의 신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술수가 더할 수 없이 많다. 여기에 비해서 페니아는 가난과 궁핍의 신이다. 결국 풍요와 궁핍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에로스이다. 플라톤은 에로스에 관한 신화를 <잔치>에서 왜 그토록 지루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일까? 포로스와 페니아는 단지 에로스의 부모일 뿐만 아니라 에로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두 측면이다. 사랑이란 정지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사랑은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는가? 사랑은 궁핍으로부터 풍요로움으로 움직인다. 여기에서의 궁핍과 풍요로움은 오로지 물질적인 궁핍과 풍요로움만이 아니다. 이 양자는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 모두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에로스의 의미는 불완전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으로부터 완전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무수하게 많은 의미로 쓰여진다. 중고등 학교 시절 등교길에 만난 여학생을 무조건 다시 한번 만나고 싶고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보고 싶어서 끙끙 앓다가 며칠이고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배회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청년이 되어 싱싱한 스물 초반의 여인과 데이트하면서 냉전을 하다가 화해를 하다가 무한한 미래의 설계도를 그려보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결혼과 함께 서로의 장단점을 구석구석 알면서 티격태격하면서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세월에 삶을 맡기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에미가 굶고 헐벗으면서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맏며느리가 되어 하루 종일 마당과 안방과 부엌을 설치면서 시동생, 남편,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친구를 이해하고 감싸며 아끼는 것도 사랑이다. 꽃이나 나무나 새를 돌보는 것도,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꽁생원처럼 연구실에 틀어박혀 돋보기 안경을 끼고 책이나 읽고 원고지나 메꾸는 것도, 틈있는 대로 절이나 교회에 가서 기도드리는 것도, 산이나 강을 한 폭의 화선지에 그리는 것도, 그리고 자신을 망각한 채로 피아노를 신들인 것처럼 연주하는 것도 모두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혜에 대한 사랑은 사랑들 중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혜란 완전한 앎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앎은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고전적인 의미이든 아니면 현대적인 의미이든간에 철학의 참다운 의미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첨가해서 말하자면 사랑이란 배움이며 닦음이다. 그것도 지혜를 배우는 것이며 지혜를 닦는 것이 사랑이다. 지혜를 완전한 앎이라고 할 때 이미 그것은 행복을 전제로 하며 그렇기 때문에 지혜에 대한 사랑은 완전한 앎에 대한 추구이자 행복에 대한 추구이기도 하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지혜는 깨달음이며 행복함에 도달하는 것이다. 깨달음과 행복은 나와 세계의 원리를 밝혀주면서 동시에 구성하여 준다. 지혜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비로소 나(Atman)는 전체(Brahman)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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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
'지아비' '지어미'의 '지'는 '집'...곧 '집아비, 집어미'의 뜻
'지아비'와 '지어미'는 특히 한자의 석과 음에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즉 '부'를 '지아비 부', 그리고 '부'를 '지어미 부'로 알고 있는데, 이때에 '아비, 어미'는 그 뜻을 알겠는데, '지'의 뜻은 알 길이 없어졌지요. 원래 '집'의 소유격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습니다. 즉 '한 것입니다. 그래서 15세기의 문헌에 보면 '짓아비, 짓어미'였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에 와서 '짓'의 '지아비, 지어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아비, 지어미'는 원래의 뜻은 '집아비, 집어미'인 셈이지요.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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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2. 너 자신을 알라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기원전 5세기 초에 페르시아의 침입을 막아낸 그리스인들, 특히 아테네인들은 민주정치를 발전시키면서 고전문화를 꽃피웠다. 민주정치, 즉 데모크라티아는 데모스(:민중)와 크라티아(:지배)가 합쳐진 복합어이다. 간단히 말하면 민중의 지배체제인데, 이는 일인 지배체제인 왕정이나 소수귀족 지배체제인 귀족과두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체제이다. 오늘날도 자유주의 국가이건 사회주의 국가이건 거의 모든 나라들이 공식적으로는 민주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민주정치의 뿌리인 아테네 민주정치는 현대와는 차이가 있었다. 아테네 민주정치는 철저하게 민회 중심의 정치체제였다. 민회는 18세 이상의 성년 남자시민들의 모임으로 최고결정기관이었다. 민회는 법안의 승인에서 중요관직의 선출, 외교정책, 전쟁과 평화의 문제, 외국인에 대한 시민권 부여, 식량 문제 등 모든 사안이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또한 아테네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사실상 참여의 기회를 주었다. 민회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발언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졌다. 또한 최고정무관인 집정관들을 포함해서 모든 정무관직을 시민들이 민회에서 추첨으로 선출했다. 아테네 민주정치는 시민들의 능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직접민주정치였다. 요컨대 서로가 서로를 다스리는 체제였다. 이는 오늘날의 대의민주정치와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추첨이 공평하기는 하나 모든 시민이 공평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비록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국사를 담당하는 일이 그리 단순한 일은 아니다. 모든 시민들이 대중 앞에서 연설할 기회가 많았다. 우선 자기의 주장을 명백히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고, 어느 때는 타인의 반론에 대해 잘 논박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단순히 말을 많이 해가지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론 전개의 방법과 함께 정치나 윤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했고, 또 상당한 연습과 기술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변론술이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소피스트였다. 소피스트라는 말은 '지혜가 있는 사람' 또는 '지혜롭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교사인 동시에 요즈음 말하는 평론가의 역할도 했으며 또 저널리스트이기도 했고 계몽사상가 노릇도 했다. 그들 가운데는 외국을 여행하여 견문을 넓힌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모든 문제를 요령있게 새겨서 논할 줄 알았다. 따라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소피스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고, 수업료도 비싼 편이었다.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민주정치가 발달한 아테네에는 그리스 각지로부터 많은 소피스트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아테네에서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선 거리의 교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우주에 대한 사색은 무익하며 무관한 것이라고 거부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지상에서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그들의 관심을 돌렸다. 소피스트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트라키아의 아브데라 출신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80?-411?)였다. 그의 수업료는 당시 최고 수준이었다. 그는 스스로 '나는 소피스트이며, 인간의 교육을 담당한 자'라고 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일을 잘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자라고 힘있게 주장했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지도자 페리클레스와 가까운 친구였던 프로타고라스는 일찍이 "신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소피스트의 제1인자격인 프로타고라스의 이 말은 당시 전통적인 철학자들에게는 불경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신들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회의적인 태도는 귀족정치시대부터 계승된 종교관과 윤리관을 흔들어 놓았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은 이 말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인간을 중심으로 가장 중시하고 인간의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최고 과제로 삼은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당시 민중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던 사람들에게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간주하면서 보편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성도덕이나 종교에 회의를 느끼고,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과 토론에서 승리하는 기술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후에 '궤변가들'이라고 오인되기도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무릇 소피스트라는 것은 정신의 양식이 되는 것을 상품화해서 도매도 하고 소매도 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았다. 이러한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는 펠로폰네소스전쟁 후의 아테네 사회의 혼란과 민주정치의 타락 속에서 아테네 시민, 특히 청년들을 오도할 위험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인 아르케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집중했다. 그래서 아르케를 물이라고 본 탈레스를 시작으로 혹은 공기, 혹은 불, 혹은 원자라는 등 여러 라지 답변이 나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의 관심을 자연에서 인간사회로 돌린 것이 소피스트들이었다. 요컨대 그들은 철학을 땅으로 끌어내리고, 그리스 젊은이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친 대중 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소피스트들이 '근대적인 합리성'을 추구하고 당시 민주정치에 필요한 시민들의 교양교육을 담당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이 즐겨 사용한 말투는 그리스인의 표현 능력을 자극하여 풍부하게 만들었고 철학, 정치학, 역사 그리고 문학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아테네 민주정의 전성기인 페리클레스 시대에 그리스 고전문화가 활짝 꽃핀 것은 소피스트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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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세계사 - 안효상
66. 채플린은 공산주의자였나?
큰 구두에 중산 모자, 지팡이를 든 콧수염의 신사 찰리 채플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던 타임즈>에서 보이는 웃음 속에 비수처럼 감추어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유를 향한 절규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1912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30년이 넘게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활동하던 채플린은 1952년 고향인 영국 여행을 떠나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출세시켜 준 미국을 버렸는가? 아니면 미국이 이 천재 예술가를 버렸는가? 20년대 `빨갱이 소동(Red Scare)`을 한차례 치른 미국은 2차대전 후 소련과 냉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다시 한번 그러한 소동을 겪게 된다. 이때의 빨갱이 소동을 매카시 선풍이라고 한다. 이는 극단적인 우인 반공주의자인 공화당의 상원 의원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y, 1909~57)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형편 없는` 상원 의원이란 평판이 자자했던 인물로 1950년 선거가 다가오자 돌파구를 반공 선전에서 찾았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적 동기에서 출발한 반공 선동이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1950년 2월 매카시는 미국 국무성 안에 수많은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이후 1954년경까지 상원의 위원회를 무대로 하여 진보적인 지식인과 뉴딜 파의 정부 인사들을 차례로 `빨갱이`라고 몰아 그 직위에서 추방했다. 그런데 이러한 매카시 선풍은 사회 각 분야로 퍼져 교육 기관, 노동 조합 나아가 헐리우드까지 확대되었다. 채플린이 미국을 떠난 것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였다. 사실 채플린이 공산주의 활동가라는 혐의로 감시의 대상이 된 것은 1921년 부터였다. FBI의 채플린에 관한 파일은 1,900페이지가 넘으며 거기에는 독일의 유명한 망명 시인 브레히트 등 좌파 인사들과의 친교가 기록되어 있다. 채플린은 어느 정치 조직에도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진보적 운동에 적지 않은 자금을 주었으며 이따금 정치적인 발언도 했다. 하지만 그가 감시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영화 속에 담겨 있다.
`빨갱이`라는 비난은 <모던 타임즈>를 만들 때쯤부터 일기 시작했다. 그 후 <위대한 독재자>, <무슈 베르두> 같은 작품과 함께 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도 매스컴 특히 우익계 잡지는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그런데 비난의 초점은 주로 사생활에 관한 흥미거리이거나 또는 탈세 혐의 등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채플린은 당시 `빨갱이 사냥`의 도구를 활용된 반미행위 조사위원회의 출두 요구를 여러 차례 받지만 모두 거부하고 다음과 같은 회답을 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어떤 정당이나 정치 단체에 가입한 일도 없다. 나는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평화주의자이다.” 하지만 굳은 신념의 소유자인 채플린도 `빨갱이`라는 사회의 비난을 감내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라임 라이트>를 촬영할 무렵 그는 막다른 골목으로 쫓긴 상태였다. 1952년 이 영화를 완성한 후 시사회를 위해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떠날 때 그는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법무성은 채플린의 재입국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는 미국에 오래 살기는 했지만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후 죽을 때까지 스위스에서 평온하게 살았다. 하지만 채플린은 1972년 그러니까 그가 죽기 5년 전 `빨갱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72년 4월 2일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았다. 영화 산업을 예술로 바꾸어 놓았다는 찬사와 박수 갈채 속에서 오스카 상을 받은 채플린은 감격의 인사를 했고 사람들은 <모던 타임즈>마지막에 나오는 `스마일`을 합창했다. 쫓기듯 미국을 떠났던 채플린으로서는 감격에 겨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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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4장 생각하고 나서 행동하는 중국 - 꾸칭생(古淸生).자유기고가
19. 중국 여인을 성추행하는 더러운 손들
현재 중국주재 외국기업이 중국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공장에서의 규칙을 구실삼아 공원에게 신체적 구속, 예를 들면 공장을 나갈 때 몸수색을 하는 것등이다. 심지어 한국기업체 사장이 공원들에게 벌로 무릎을 꿀게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러한 추악한 행위는 중국법률에 저촉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국 공원들의 인격과 존엄성도 무시한 것이며, 동시에 중국인의 눈에 그 업체의 국가에 대해서도 좋지 못한 인상을 남겨 놓는다. 그러나 가장 허용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성추행일 것이다. 중국에서 소위 외국기업이라 하는 것은 국외에서 온 투자자가 창설한 기업 혹은 상업상의 업무를 대리하는 곳을 말한다. 현재 이러한 기업 중 대다수가 서구 및 아시아의 일본과 한국, 소위 자유세계의 민주국가에서왔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법률은 모두 업주가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성추행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중국에서의 인식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져서, 이제 보통의 중국사람들로 하여금 외국기업이 가장 더러운 곳이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어느 중국 어머니가 그의 딸이 외국기업에 들어 가려는 것을 눈물로 말리면서 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얘야, 내가 제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게 해다오.' 베이징과 기타 여러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젊고 예쁜 아가씨가 외국기업에 가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것은 바로 외국 사장의 '정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는 그곳이 젊은 아가씨가 타락하기 쉬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취업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외국기업은 여전히 크나큰 유혹이다. 임금이 높고 업무환경이 좋으며, 심지어는 출국해서 여행할 수 있는 기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혹 때문에 외국 사장 또는 상무대리인들은 '달콤한 떡'을 만들어 순진하고 꿈 많은 아가씨들을 향해 던진다. 외국기업에서의 성추행은 거의 '공개적인 비밀'이 되었고, 신문지상에도 여러 번 보도되었다. 쌍하이의 [칭넨빠오(靑年舊)는 일찍이 이러한 것을 보도했다. 난징(南京) 출신의 외국어대학을 막 졸업한 여자 대학원생이 인력시장을 통해 외국기업에 추천되었다. 그러나 면접시험이 끝나고 월급도 적당하여 며칠 동안 출근을 하다가 갑자기 그만두었다. 아무 탈 없는 직장을 그만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력시장을 관리하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이나 물었으나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다. 나중에 가서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한 마디 불쑥 내뱉았다. '그곳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요'라고. 현재 외국기업에 다니는 여성을 성추행하는 사람은 주로 소속회사의 외국인들로, 그들은 주로 회사에서의 자기 위치를 이용한다. 고국을 멀리 떠나 있는 그들은 늘상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수하에 있는 여비서, 접대원, 행정조수 및 부서의 경리를 성추행한다. 어떤 이는 성과 관계된 사진과 글을 보내고, 어떤 이는 외설적인 편지를 보내고, 어떤 이는 과분하게 고용원의 환심을 사려하거나 성관계의 대가로 그들의 대우를 개선해 주며. 혹은 계속하여 비정상적인 약속을 제의한다. 일단 고용원들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들은 아주 쉽게 강직이나 해고 등등의 수단을 동원한다. 어떤 회사에서는 거의 매달 여직월들이 이유 없이 사직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의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성추행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사직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추행을 거절하여 사직당한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분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긴 하지만 우리의 각종 간행물에는 외국기업에서 여직원을 모집하는 광고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하나같이 나이가 젊고 용모가 단정하며 성격이 명랑한 여성을 요구하며 보수도 후하다. 베이징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을 한다. '요즘은 거리에서 예쁜 아가씨를 볼 수가 없어. 그녀들은 모두 지엔구오먼에 있거든. 지엔구오먼이 어떤 곳이냐구요? 외국대사관과 외국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랍니다.' 중국인들이 강력한 법집행과 엄정한 성추행 징벌을 요구하자, 외국기 업측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한마디 지껄였다. 존슨 해리스라는 미국회사의 베이징 주재 상무대리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였다. '너희 나라의 여자들은 우리들이 성추행하는 것을 환영한다. 우리들은 돈도 많고 신체도 아주 건장하다. 그녀들이 너희 중국남자들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너희 중국남자들이 질투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여자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절대다수의 중국여성들은 결코 이러한 미국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기업에서의 성추행을 참지 못해 사직하고 지금은 신문사에 다니는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은 모두 색마예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한번은 외국인 상사와 햄버거집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아파트에 가서 함께 침대에 눕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외국인들은 중국여자의 마음속을 꿰뚫고 있어, 외국에서 돌아올 때는 외제 향수. 립스틱, 초콜릿 같은 것을 꼭 가지고 오며 이것을 구실삼아 자신의 아파트에 가자고 한다고 한다. 이것은 여기자의 친구가 겪은 일인데, 그녀에게 프랑스제 껌을 준다고 초청해 놓고는 그녀의 치마를 들췄다는 것이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창가로 달려가 살려 달라고 외치고서야 비로소 몸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의 결과는 물론 당연하게 다음날로 해고되었다. 외국인들은 모두 미치광이라고 전제를 한,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외국회사의 비서로 있을 때는 하루종일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고, 다만 어떻게 해야 외국인에게 틈을 안 보일 수 있을까만을 생각했어요.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마치 수용소에서 보내는 것 같아 매일 퇴근할 때야 비로소 한숨을 쉬며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떤 때는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었는데, 예를 들면 그가 펜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건네주면 그는 펜은 받지 않고 털이 수북한 큰 손으로 저의 손을 잡고는 놓지 않았어요. 어떤 때는 절더러 컴퓨터에 저장해 두지 않은 문서를 찾으라고 하여 한참 동안 문서를 찾게 했습니다. 찾지 못해 걱정하고 있을 때 그는 '당신을 도와줄게요'라고 하며 다가와서는,한 손으로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어깨를 껴안고 얼굴도 갖다대었습니다. 누린내가 정말 사람을 기절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만약 반항을 하면 그는, '너는 일에 대한 책임감도 없고, 문서 하나도 찾지 못하는 멍청이'라고 하면서 문서를 찾을 때까지는 퇴근도 하지 말라고 할 것이 뻔했어요." 이것은 매우 냉엄한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외국인들이 제멋대로 성추행을 계속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사무직 여성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성추행을 참고 견디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현상이 없었고 혹은 있다 하더라도 심하지 않아 사법처리가 없었다. 지금은 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개방은 외국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려 한 것이지 성추행을 도입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심지가 바르고 곧은 외국인은 분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국내에 있을 때는 성실하고 신사적인데 외국으로 나오면 변해서 그야말로 수캐가 됩니다.' 비교적 이름난 외국기업은 매우 엄격한 내부규정을 제정하여 성추행을 금지하고 있으며. 외국 직원과 언어희롱, 신체접촉 등의 성추행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보고하여 사직시킨 뒤에 귀국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매우 유감인 것은 대다수의 외국기업들이 이윤만을 생각하고 직원들의 도덕성은 고려하지 않으며, 직원들의 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얼굴은 갈수록 더 두꺼워진다. 한 중년의 외국인은 여직원을 성추행하다가 상사에게 들켜 한바탕 훈계를 듣고 나서는 자신의 추악한 행동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라는 돼먹지 못한 나라는 개방이 안 되었고. 기생집도 없어서 성적 갈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논리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서구 선진국 사람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진국을 동경하는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외국사람들의 특정 관점까지 무작정 좋아하여, 예컨대 외국의 성해방까지 좋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지금 봉건시대가 아니고 국제결혼도 특별한 뉴스거리가 못 되지만, 성추행은 응당 법률의 제재를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들이 우리의 누이를 유린하는 것을 돕게 되는 것이다. 교양 있는 서구인이란 것이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고상하지도 않다. 그들은 외국기업에 존재하는 성추행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경제가 발전되면서 응당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다. 너희들이 그들의 성추행을 막으면 그들은 너희 나라에 오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오지 않으면 외국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는 너희들의 목표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개발도상국이 이러하니 너희들은 크게 놀라지 말라'고 말이다, 심지어 중국학을 연구하는 한 서구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추행은 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망치는 것은 경제낙후이다. 영국인이 너희 나라를 침공했었고 일본인이 너희 나라를 점령했던 것은 모두 경제가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성추행으로써 경제발전을 바꾼 것이니 이것은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바꾼 것이다.' 이러한 식민주의적인 말은 사람을 분노하게 만든다. 베이징대학에 유학하고 있는 일본 유학생은 뜻밖에 서양적인 발상을 얘기한다. '중국에는 성억압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성억압이 존재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성교육하는 것은 중국 텔레비전에서 요리강습을 하는 것만큼이나 정상적인 것이다. 중국인은 늘상 성억압의 고민과 그늘 속에서 생활하고있다. 중국의 문학만 보더라도 이것은 중성문학이다. 너희들은 짱센량(張賢꽈)의 [남자의 반은 여자]라는 소설을 비난했고. 그 후 첩에 대한 총서가 나오자 그것 또한 비난했다. 단지 중성적이라야 당신네 문학계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 일본 유학생의 말은 그야말로 함부로 지껄여 댄 것이고 허튼소리이다. 그의 단편적이며 왜곡된 시각은 괘씸하기도 하지만 무지하기도 하다. 중국의 남성작가 중에서 많은 수가 실력 있는 문학가라고 칭찬받는다. 모란 莫然 朱蘇進 리촌빠오 쩌우타오 샤오썽 등 공인받은 실력있는 문학가이며 그들의 문학에는 강한 기개가 넘쳐 흐른다.또 저명한 여성작가로는 찬쉬에(. 쉬샤오우 짜오닝, 린바이, 첸란(陳染) 등이 있는데, 선명한 여성의식이 흐르며 그녀들의 작품 또한 문학계의 공인은 얻었으니 중성문학이란 말은 궤변일 뿐이다.
외국인들이 뭐라고 변명하든 성추행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중국에서든 그들의 본국에서든 모두 도덕과 법에 의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시간문제이다. 현재 외국기업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은 대다수가 우수한 인재이며 학력도 높고 총명하고 아름답다. 차라리 중국의 우수한 여성인력은 모두 외국기업에 몰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계속 성추행을 하며 중국의 도덕과 법률을 무시한다면 그들도 똑같이 제재를 받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결코 젊은 여성들의 고통을 담보로 할 수는 없다. 그 더러운 손을 치워라. 우리는 성추행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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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승의 조선사 나들이
나라를 세웠으면 역사를 고쳐야지
쿠데타
* 백성이 가장 무겁고 중하며, 나라는 그 다음이며, 임금이 제일 가벼우니라. (맹자)
우왕 14년 5월, 요동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저 유명한 '4대불가론'을 외치면서 위화도회군을 단행하자, 개경(개성) 거리에는 '목자득국'이라는 풍설이 난무하였다. 목자와 자자를 합치면 이가 된다, 즉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얻어 임금이 된다는 뜻이었다. 쿠데타의 시나리오 그러한 것처럼 이성계도 이미 권력형 부정 부패의 원흉인 염흥방 임견미 등을 글형에 처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으로 민심을 등에 업어 둔 바가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자신의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을 반대세력들인 이른바 정적의 제거에 나선다. 기울어 가는 고려왕조의 마지막 버팀목이나 다를 바가 없는 당대 명장이자 수구세력의 두령격인 최영과 높은 학덕으로 그 명성을 일세에 풍미한 석학 우현보 등을 제거하더니 끝내는 정몽주마저 선죽교에서 주살하는 것으로 쿠데타의 장에 요소를 모두 해소하는 데 성공한다. 이젠 누구도 이성계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었을 때, 쿠데타의 완성이 그러하듯 그는 혁명의 실세들에게 등을 떠밀려 수상의 자리에 오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미 경험한 바와 같이 쿠데타의 실세가 수상의 자리에 오르면 임금은 허수아비가 되게 마련이다. 우왕은 강화도에 부처되었다가 강원도 강릉으로 옮겨지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고,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창왕 또한 강화도에 추방되면서 서인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창왕에 이어 임금으로 추대된 공양왕은 스스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신하인 이성계와 다음과 같은 문안으로 동맹을 맺기까지 하였다.
경이 없었던들 내 어찌 이에 이르렀으랴. 경의 덕을 내 어찌 잊으랴. 황천과 후토가 내 위에 있고 내 곁에 있으니 대대의 자손들은 서로 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경에게 저버림이 있으면 이 맹세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의 실세들에게 이 같은 동맹의 약조문은 휴지 조각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약조문의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금상이 혼암하여 군도를 이미 잃었고, 인심이 이미 그에게서 떠났으니 사직과 생령의 주가 될 수 없으므로 구실을 붙여서 강원도땅 원주에 부처하였다. 장장 34대, 475년 동안이나 왕권을 이어 온 고려왕조는 이렇게 종말을 고했다. 쿠데타의 실세들은 이성계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간청하지만, 이성계는 '학덕을 갖추지 못한 자질로 어찌 왕위에 오를 수가 있는가'를 되풀이 강조하며 극구 사양하다가, 마침내 7월 17일 또다시 실세들에게 등을 떠밀리어 용상에 오른다는 구색을 갖추면서 수창궁 화평전에서 스스로 임금의 자리에 올라 새나라의 창업을 선언하였지만, 실상은 나라의 이름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1월 27일에 이르러 비로소 새 나라의 국호를 거론하게 하였더니, 여러 의논들로 분분하다가 마침내 '조선'과 '화령'의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조선'이야 예로부터 동이의 나라로 불리어 왔으니 당연히 거론되어 마땅하지만, '화령'이라는 지명이 국호로 등장한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화령은 영흥부 이니 지금의 함흥이다. 영흥부는 태조 이성계가 태어난 곳,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의 주변에는 아첨하기를 좋아하고, 줄 서기에 능한 위인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전하, 화령은 전하께서 탄신하신 성스러운 곳이오니, '화령'으로 새 나라의 국호를 삼으심이 옳은 줄로 아옵니다."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으로 '조선'과 '화령'의 두 가지 국호가 끝까지 남아서 경합하게 되었다.
이에 태조 이성계는 '조선'과 '화령'중에서 국호를 정하기로 하고 명나라 황제에게 재가를 청하는 사신을 보내게 된다. 쿠데타로 나라를 세웠으니 국호를 묻는 것은 무례할 수도 있다. 그래서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해 주기를 청하는 편법을 쓰면서 자신이 가장 신임하고 있던 한상질(칠삭둥이 한명회의 조부)을 주청사로 선임하여 명나라로 보냈다. 이 같은 와중에서 태조 이성계는 천도를 서둘게 되었다. 새 나라의 수도를 새로운 곳으로 정한다는 당위성은 있었지만, 그 것보다는 고려의 유민들이 뿜어 내는 따갑고 원한에 찬 눈초리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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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열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 살도록 한 다음, 다른 나무의 열매는 따 먹어도 좋으나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의 나무' 만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 죽어 버릴 터이니 먹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다. 원래 사람이란 보지 말라면 보고 싶고 먹지 말라면 더욱 먹고 싶어지는 법.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마침 악마가 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저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선악을 구별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하고 유혹하자 '이브'는 곧 그 꾀임에 넘어가서 그 열매를 따먹었을 뿐만 아니라 '아담'에게도 권했다. 그 결과 그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알몸임을 깨닫고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무화과나무로 앞을 가렸다. 또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죄로 낙원에서 쫓겨났으며 괴로움과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었고 다시 그 죄는 자손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흔히 신문의 삼면 등에서 "한번 금단의 열매를 맛본 젊은 남녀는 걷잡을 수 없는 향락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다..." 운운하는데 금단의 열매란 허용되지 못한 환락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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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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