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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03 호
단기 4340. 1. 10 (음력 11.22) / 발행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 연재되던 글이 다른 글로 바뀌면 그 책의 내용이 끝난 것입니다. 별도로 표기하지 않습니다. - 인포메일의 발행지제한 용량은 64Kb입니다. 발행지는 그날 그날 내용의 분량이 다릅니다. 길어질 경우 용량제한으로 발행지의 페이지가 잘려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발행지 원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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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모니터 수리로 일주일간 뵙지 못했네요. 복짓는 나날 이어 지시기를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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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2007 '문학동네신인상' 공모
문학의 순수성과 존엄을 지켜나갈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품을 모집합니다. 미등단의 예비문학인은 물론 젊은 문학인들 모두에게 응모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야심찬 문학인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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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부문 |
중단편소설 2편 이상 / 시 5편 이상 / 평론 1편 이상 |
분량 |
소설부문 : 200자 원고지 각 80장에서 200장 사이 |
상금 |
소설 1,000만원 / 시 500만원 / 평론 500만원 |
응모마감 |
2007년 6월 20일 |
발표 |
『문학동네』 2007년 가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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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낼곳 |
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13-8 (주)문학동네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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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
소설 | 김현영 류소영 이현수 시 | 진수미 최갑수 평론 | 김수이 |
제2회 |
소설 | 김종렬 김은경 시 | 김종훈 |
제3회 |
소설 | 김종광 시 | 이영수 김충규 |
제4회 |
소설 | 김숨 이만교 시 | 김근 |
제5회 |
소설 | 김숙 시 | 문석암 박은희 |
제6회 |
소설 | 도태우 시 | 전남진 |
제7회 |
시 | 이영주 정영 평론 | 김형중 |
제8회 |
소설 | 강설애 시 | 안현미 |
제9회 |
소설 | 박영선 한성우 시 | 조동범 |
제10회 |
소설 | 천명관 시 | 송승환 |
제11회 |
소설 | 김유진 시 | 조영석 평론 | 김미정 |
제12회
제13회 |
시 | 강성은
소설 | 박주현 백모 시 | 조인호 평론 | 김나정 |
우편으로만 접수합니다. 마감일 소인이 찍힌 응모작까지 접수합니다. 겉봉투에 ‘문학동네신인상 응모작’임을 명기해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 소설부문은 200자 원고지 80장에서 200장 사이의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합니다.
- 당선자에게는 집필활동을 적극 지원합니다.
- 신인상은 미등단의 젊은 신인을 우대합니다. 응모시 출생년도와 등단 여부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 자세한 사항은 게시판에 문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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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남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건강을진단할 수 있다. 후한 사람 치고 정신 질환이 있는사람은 드물다. / 칼 메닝어박사 (미 정신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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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경제/경영/성공 |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 박태견 지음
POWER 009 정보 초고속도로 건설자: 앨 고어
"정보야말로 국가의 가장 중요한 경영자원이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은 물론이고 국가경제의 안정과 안전보장을 위해서라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정보이다. 세계시장과 국제경쟁에서 정보를 창출, 조작,관리, 이용하는 기술의 개발이 미국의 중요전략이 됐다. 이런 기술을개발하면 미국기업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높은 보수를 주는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아울러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그 결과 국민의 생활수준도 착실하게 향상시킬 수 있다."
엘 고어Ale Gore가 1993년 9월 수천 명의 정보업계 대표들을 모아놓고 그 유명한 '정보 초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건설을 위한 행동계획'을 발표하며 한 연설 중 일부이다. 스스로를 정보사냥꾼이라고 부를 만큼 평소 정보통신혁명의 진행과정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온 미국의 앨 고어(46)는 1993년 1월 미국부통령이 되자, 자신이 십여 년간 준비해온 매머드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21세기 패권장악'과 '텔레데모크라시 실현'을 위해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이 먼저 건설해야 한다고 평소주장해온 '정보 초고속도로', 곧 '미국정보기반(NII)' 건설작업이 그것이다. 정보 초고속도로란 한마디로 광섬유통신망과 디지털 기술, 기가비트급 울트라 컴퓨터 등 정보기술혁명의 3대 성과물을 하나로 결합해 미국의 모든 가정, 학교, 기업, 연구소, 정부기관 등에 미국이 선진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최고급 정보자원을 무한정 염가로 공급해줌으로써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비약적으로 높이자는 야심찬 구상이다.
"아울러 정보 초고속도로는 미국을 21세기의 최강국으로 만들 것이다. 미국기업은 이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국제시장에서 승리하고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경제성장을 실현할 것이다. 아울러 국민들이 취직이나 취학을 할 때 지리적 조건, 신체적 장애, 경제사장 등의 제약을 크게 완화하여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어젠다' 중에서)
고어는 또 이런 기본망이 구축되면 멀티미디어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빈부나 인종, 지역, 신체장애의 차별 없이 모두가 뛰어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의료, 유통, 레저 등 인간의 복지생활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행동할 때이다. 정보 초고속도로만 건설되면 21세기의 학생들은 장소나 거리, 재산의 많고 적음, 신체적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최고의 학교, 최고의 교사로부터 최상의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가정과 직장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살고 싶은 곳에서 편히 살면서 일할 수 있게 된다. 의료 서비스도 지금처럼 병원에 가 지루하게 줄서서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어젠다'중에서) 고어는 1993년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보 초고속도로 건설의 5대 원칙을 천명했다. #1 모든 국민에게 좋은 서비스를 낮은 가격으로 #2 경쟁의 촉진과 유지 #3 정보 네트워크로의 자유로운 접근 #4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정보이용 차별 방지 #5 탄력적 규제환경 창출. 고어는 이 가운데서도 네번째 원칙, 즉 빈부격차를 초월한 정보의 고른 이용이야말로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고 핵심원칙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정보 초고속도로 건설의 청사진이 완성된 것이다. 오랜 설득과정을 거쳐 여론의 공감을 얻은 고어는 구체적으로 오는 2000년까지 우선 1천억 달러(80조 원)를 투자해, 현재 3천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지상최대의 정보통신망 인터네트보다 100배나 전송능력을 강화한 울트라 광통신망을 미국의 모든 기업, 가정, 학교,연구소에 깔기 위한 구체적 작업에 착수했다. 고어의 이런 구상에 대해 정보통신 및 멀티미디어 관련업계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열렬했다. 한 예로 광통신망 구축과 관련, 미국의 지역 전산전화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7대 벨사가 오는 2015년까지 4,500억 달러(260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매머드 청사진을 밝혔다. 여타 방송사, 통신사, 케이블TV, 소프트웨어업자, 컴퓨터업자 등의 반응도 이들 못지않았다. 이들은 대신 현재 방송과 통신간 상호참여를 금지하고 있는 독점금지법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어는 1994년 이들 민간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방송사가 통신사업에 참여할 수 있고 전화전신회사들 역시 방송사업에 참여하는 일이 가능하도록 종전의 독점금지법 조항을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의회는 기꺼이 이를 통과시켰다. 정부와 기업, 의회가 21세기 패권을 위해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고어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광통신망을 지구 규모로 확대해 지구촌의 모든 대륙을 잇는 '지구촌 정보 초고속도로', 즉 '지구정보기반GII'도 깔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1994년 7월 서방선진 7개국 정상이 모인 나폴리 서미트에서 이에 대한 기본합의를 얻어냈다. 그러나 고어의 이같은 구상은 GII를 명분으로 내세워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미국 정보산업체의 첨단 기술을 전세계의 표준 정보기술로 만듦으로써 건설시 최소한 수백조 원대의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될 GII 건설공사를 미국이 독점하는 동시에, 21세기 세계경제도 계속 주도하겠다는 야심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어서 전세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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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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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버스 기사 아저씨의 마술
얼마 전이었다. 하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탄 나는 운전기사 아저씨 바로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많은 손님이 탔다. 학생들이 먼저 버스에 탔고 마지막에 할머니 한 분이 올라오셨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선뜻 요금을 내지 못하고 운전 기사의 눈치만 보셨다. '왜 저러실까?' 하고 의하해했지만 나는 곧 할머니가 주저하고 있는 이유를 눈치챘다. 할머니 손에는 동전이 삼백 원뿐이어서 차비 사백 원 중 백 원이 모자랐던 것이다. 나는 이제 기사 아저씨가 버럭 화를 내면서 한마디 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때 기사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아이구! 할머니, 차비는 사백 원인데 왜 칠백 원을 내세요. 오백 원짜리 동전을 백 원짜리로 착각하셨군요."
뭔가 이상했다.내가 보기엔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돈은 분명히 백 원짜리 세 개였는데 갑자기 백 원자리 동전이 오백 원짜리로 둔갑한 것이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한술 더 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다음 정류장에서 손님한테 잔돈 받으면 삼백 원 돌려 드릴게요."
무안해하는 할머니를 위해 그런 친절을 베푸는 기사 아저씨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아저씨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박찬근 님/충남 금산군 금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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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철학에 이르는 길 - 강영계
제1장 철학에 대한 그릇된 생각들
우리들 인간이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모습은 가지각색이어서 꼭 집어서 한마디로 사람들은"이렇게" 살아간다고 이야기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러나 일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사람들은 적어도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각자 나름대로 지니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1불확실한 것을 물리치고 확실한 것을 찾으려 하며 #2악한 행동을 피하여 선한 행위를 하고자 하며 #3변화무상한 것으로부터 불변하는 것을 추구하고 나아가서는 #4추한 것을 떠나서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 한다. 우리들은 사람들이 대체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돌이켜보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음미해보면 우리들은 "인간의 삶"이 두 가지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번째 차원은 자연적인 차원이고 두번째 차원은 인간적인 차원이다. 자연적 차원에서의 인간은 동물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도 자연적 차원에서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욕과 성욕의 본능에 따라서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적 차원에서만 살아가는 것이아니다. 동시에 인간적인 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사람들은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싫어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행복에 도달하려고 하기도 한다. 자연적인 차원은 본능의 세계라고 할 것 같으면 인간적인 차원은 의식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가리켜서 "줄타기 광대"라고 하거나 또는 "짐승과 신 사이의 다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적인 차원과 인간적인 차원의 두 면을 모두 소유하는 것을 잘 나타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동시에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하나는 본능이라는 얼굴이요, 또 하나는 이성이라는 얼굴이다. 예컨대 어떤 청년이 매우 심한 폐결핵에 걸려 있을 경우, 이 청년은 본능적으로 성욕을 만족시키려는 충동에 사로잡히면서도 이성적으로는 억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므로 본능과 의식의 두 얼굴 사이에서 고뇌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의 긴 역사 과정은 한마디로 본능과 이성의 투쟁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본능과 이성의 갈등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문제를 해결하여 해결책을 얻으려고 노력하여 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성을 부인하고 본능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애썼으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참다운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본능과 이성의 갈등을 피하여 본능의 세계에서 쾌락을 추구하려고 하였으며, 또 일부는 하늘의 달과 별, 들의 새와꽃처럼 자연 그대로 살아가기를 염원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제아무리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하여도 인간이란 언제나 본능과 이성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숙명적인 존재이므로, 짐승이나 새나 꽃처럼 산다는 것은 인간의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시인과 화가와 음악가가 꽃을 읊고, 산수를 그리고, 새를 노래한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본능과 이성의 복합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증명하여 준다. 시인은 꽃이 아니며 꽃이 될 수 없기에 꽃을 읊은 것이요, 화가는 산수가 아니기에 자신의 심혈을 기울여 산수를 그린 것이며 음악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육체를 떠나서 순수한 정신만을 추구하였으며 또한 순수한 정신을 소유하고자 하였다. 앞에서 내가 본능과 이성의 복합체를 인간이라고 불렀는데 이 표현을 바꾸어 말한다면 육체와 정신의 복합체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인 자연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순수한 정신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들은 종교에 몰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정신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육체가 "정신의 감옥"이거나 아니면 인간을 악에 물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들에게는 인간이 태어났다가 죽는 것, 살아가는 동안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 등 모두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육체로 인해 이러한 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에 육체를 벗어나서 순수한 정신만을 수유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육체란 바람직하지 못한 본능을 소유한 것이며 정신은 순수한 이성으로서의 영혼을 소유한 것이다. 그들의 극단적인 예로서 우리들은 희랍 시대에 화산의 불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져 영원한 영혼을 찾고자 한 철인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식욕이라든가 성욕과 같은 육체적인 욕망을 감소시키거나 또는 없애버리기 위하여 단식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심한 경우에는 육체에 온갖 학대를 가함으로써 정신의 순수함을 찾으려는 예도 볼 수 있다. 이 책이 전개됨에 따라서 점차로 문제의 성격이 드러나겠지만, 정신을 무시하고 육체적인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든 또는 육체를 무시하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든 간에 이들 두 입장은 인간이 육체와 아울러 정신(육체와는 질적으로 다른)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육체와 정신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느 한 면만을 취하고자 한 것이다. 정신만을 추구하는 입장도 결국 육체를 떠날 수 없는 것이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을 근본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순수한 정신 세계를 추구한 것인지 모른다. 세번째로 이야기할 수 잇는 부류의 사람들은 육체와 정신을 조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본능과 이성 두 가지를 다 인정하고 이들 양자의 갈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우리들은 일상적인 삶에서도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라든가아니면 "정신이 맑아야 몸이 튼튼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인간은 짐승과 신 사이의 다리"라는 말도 실은 인간이 본능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인간은 확실히 중간존재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즐겁게 웃기만 하는 사람이란 없다. 언제나 슬프기만 한 사람도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항상 진리만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도 없으며 일생 동안 행복만을 소유한 인간도 없다. 중간존재란 무엇을 말하는가?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인간은 다름 아닌 중간존재이다. 짐승처럼 먹고 마시고 잠자며, 자신이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을 의식하는 인간이 바로 중간존재이다. 그렇게 의식하면서 "반복하여" 다시 먹고 마시고 잠자며 지루함을 느끼는 인간이 바로 중간존재이다. 짐승과 신의 중간에 있으면서 자신이 짐승에 가까울 수도 있고 신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자신은 짐승도 신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인간은 중간존재이다. 짐승도 아니고 신도 아니면서 한번은 짐승이 되려고 또 한번은 신이 되려고 뒤뚱거리는 인간은 중간존재이다. 인간은 짐승과 신 사이에 그리고 본능과 의식 사이에, 말하자면 육체와 정신 사이에 흔들거리는, 흔들거리면서도 멈추려고 하는 시계추와도 같다. 어느 곳에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는 숙명을 타고 난 것, 그것은 중간존재인 인간이다.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기에 육체와 정신을 조화시키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을 자연적인 차원과 인간적인 차원의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3가지 일반적인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처럼 살펴본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말하자면, 인간이 의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고찰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곳의 나를 의식하며 그곳의 너를 의식하고 나아가서 우리들을 의식한다.
내가 나와 너와 우리들을 의식하는 것은 인간의 "사람됨"을 의식하는 것이다. 나의 의식은 나 속에서 사회와 세계를 의식한다. 나의 의식은 내 속에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세계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나의 의식은 내가 철학의 이름 밑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사정이 허락하는 한 "철학함"의 길을 끊임없이 걸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앞에서 되풀이하여 말했거니와 인간은 본능과 이성의 복합체이다. 우리는 이러한 복합체를 인간이라고 부르지만 또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본능과 이성의 복합체는 의식이다. 인간은 의식인 한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 의식으로서의 인간은 현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자기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자기 의식으로서의 우리들 인간은 본능과 이성의 갈등을 통찰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현실을 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기 의식은 자신이 서 있는 바탕인 현실에 대한 자기 반성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문제의 범위를 축소시켜서 우리들의 철학적 현실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리들의 구체적인 과거를 돌이켜볼 때, 지나간 오랜 날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심원하고 웅대한 사색의 발자취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체로 #1우리는 사색보다는 하루하루의 삶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고 #2개인개인이 시민 의식을 가지기보다는 특수한 사회 지배층이국가와 사회를 좌우하여 왔으며 #3유교나 불교와 같은 정신적 뿌리인 종교를 보더라도 내면적인 종교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차원에서 움직이는 종교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오늘의 입장에서 어찌하여 우리들은 철학을 "철학답게"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철학함"이 제대로 스스로를 전개시키지 못할 때 인간의 의식 역시 자신의 현실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철학이 기초학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경우 우리들은 아직 현실 속에서 자기 반성의 과정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보더라도 소년기는 방황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소년기에는 아직 성숙한 "사람됨"을 지닌 수 없다. 소년이 밖으로든 아니면 안으로든 자기 자신의 전체를 바라보며 구성하는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소년은 가정 문제, 학업 문제, 이성 문제 등으로 매일을 번민과 함께 보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철학도 성숙할 수 있는 반성의 계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방황과 방랑을 되풀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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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
'귀고리'는 귀에 거는 '고리'...'귀거리'는 틀린 말
요즈음은 여성들이 '귀'에 '고리'를 '걸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보지요. 그래서 곧잘 '귀고리'를 '귀'에 '거는' 것으로 인식을 해서 '귀걸이' 또는 '귀거리'로 인식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귀고리'는 원래 '귀'에 거는 '고리'라는 뜻입니다. '귀'에 '거는' '골희'여서 '귀옛골희'였었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귀고리' 또는 '귀골희'가 되었다가 요즈음은 '귀고리'로 변했습니다.
최근에 정한 표준말에서도 '귀고리'로 결정되었습니다. 귀에 '거는' 것이 아니라 귀에 거는 '고리'라는 뜻입니다. 요즈음은 '귀고리'가 '고리'가 아닌 다른 모양들도 많더군요. 그래서 아마 '귀고리'를 '귀거리'로 이해하시는 것 같군요.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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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1. 빛은 오리엔트에서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
이집트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라. 대지를 가르는 하나의 띠처럼 황토색 나일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도도하고도 유연한 모습이 우리를 압도한다. 또한 나일강을 따라 폭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농경지와 나무숲들이 아름답다. 그러나 좀 더 바깥쪽을 보면 모습은 매우 달라져 평평한 사막, 끝없는 바위와 모래가 메마른 죽음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강 상류로 가면 폭이 좁아지고, 거꾸로 강 하류로 향하면 드넓은 델타, 비옥한 옥토가 펼쳐진다. 강의 하류에 있는 델타지대는 하이집트, 강 상류지역은 상이집트로 불린다. 때로 중이집트라는 용어도 쓰이는데 이는 오늘날 카이로 근처 멤피스 주변지역과 서쪽 파이움호까지의 지역을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이 지역은 바다 수면보다 낮은 분지기 때문에 강이 범람할 때는 호수가 형성된다. 5천년 전에도 이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나일강 유역에서 일어났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 라는 말은 기원전 5세기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 BC 484?-425?)의 '역사'에 나온다. 그러나 그가 문자로 기록하기 전에도 이 말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이 없는 삶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드룸 항구 앞에 서있는 헤로도토스 상.
첫째로 나일강은 그 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식수원이었다. 나일강은 동아프리카에 있는 빅토리아호에서 시작하여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거의 5,760km에 달하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강이다. 이 강 상류에서 물의 흐름에 따라 하류에 이르기까지 90여 일이 걸리는데 마지막 반은 비가 거의 안 오는 사막을 통과한다.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은 고사를 전한다. 쇠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포고문이 이집트에 나붙었을 때, 리비아 국경에 사는 주민들이 우리는 리비아인이니까 이 금령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청했다. 자기들은 델타지역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이집트 말을 할 줄도 모른다는 이류를 덧붙였다. 그러나 엘레판티네(아스완 근처)부터 그 아래 지역에 살며 나일 강물을 마시는 자는 모두 이집트인이라는 신의 계시가 있어서 그 요청이 거절되었다는 것이다. 이 고사는 나일강의 물이 이집트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식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동시에 그들이 한 국민으로서 동일시한 범위, 즉 국토의 경계마저 나일강과 관련시킨 것을 말해 준다. 그들은 나일 강물이 미치지 않는 광대한 사막은 자신들의 국토로 여기지 않았다. 나일강은 이집트인들에게 물고기나 조류와 같은 식용동물을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농경에 필요한 물과 옥토도 마련해 주었다.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매년 기적처럼 일어나는 나일강의 홍수와 범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물은 6월이 되면 어김없이 불어나기 시작해서 9월이면 절정에 이르고, 그런 다음 다소 수그러들지만 10월까지는 그래도 높은 수위를 유지한다. 나일강을 따라 흐르는 이 엄청난 양의 물은 이집트인들의 농경생활을 가능케 한 젖줄이었던 것이다. 갈라진 땅에 물을 공급하는 것만이 나일강의 선물은 아니다.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하류에다 충적토를 만들었다. 이로써 충적토는 토양을 새롭게 갈아 주고, 농경에 필요한 기름진 옥토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농경민족에게는 무엇보다도 좋은 선물이었다. 범람이 정기적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이 그것을 토대로 달력을 만들 수 있었다. 흔히 이집트인들이 최초로 태양력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달력은 태양의 운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집트인들은 대부분의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태음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오랜 경험에서 나일 강물이 정기적으로 불어난다는 것을 알고는 이집트인들은 1년을 365일로 정한 달력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것은 기원전 2770년경 통일왕국이 성립될 무렵의 일로 생각된다. 이집트인들은 1년을 12개월(각 월은 30일), 그것을 다시 2계절, 즉 범람기, 파종기, 그리고 수확기로 나누었고, 그 해의 끝에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5일을 추가해서 합계 365일로 했다. 나일강은 또한 교통로로도 중요했다. 사람들은 강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바람이 연중 대부분 물의 흐름과는 반대로 남쪽으로 불었기 때문에 상류지역으로 강물을 거슬러 갈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일찍부터 파피루스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이동했다. 나일강은 또한 이집트인들이 영혼불멸의 사상과 종교에 대한 관념을 심어 주었다. 나일강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었다. 매일 뜨고 지는 태양, 한 점의 구름도 없는 하늘, 광대하게 펼쳐진 사막과 함께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에서 이집트인들은 변하지 않는 질서, 더 나아가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범람은 재생의 관념을 갖게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나일강과 농경의 신 오시리스가 사악한 동행 세트에 의해 살해당했다가 그 아내인 이시스에 의해 부활했다는 신화는 바로 나일강에서 그 소재를 얻은 것이었다. 나일강은 이집트인들에게 물질적인 것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 어머니와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집트인들에게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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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세계사 - 안효상
57. 1920년대 중국 여대생들의 브래지어벗기운동
1915년 잡지 <신청년>의 전신인 <청년>지가 창간되면서 늙은 대국 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굳어 온 인습에 대한 힘겨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 도전의 선봉은 1905년 신식학교제 설립에 따라 형성된 대도시의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마침내 1919년 5,4운동으로 분출해서 중국 반제 반봉건 역사에 또렷한 이정표를 남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전국을 분할하여 지배하고 있던 군벌들은 5,4운동의 격량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건재했다. 학생들에게 중국의 미래는 암담해 보였다. 5,4운동이 시들고 2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학가는 좌절과 무기력한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중국 학생들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치열한 정치 투쟁 대신 중국을 병들게 하고 있는 반인간적인 전통과 관습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인간 해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당시 대학문이 여성에게도 개방되면서 남녀관계라는 새로운 문제가 이 시기 대학생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자극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수업중 여학생에게 신경이 쓰여 “한 시간 수업이 마치 자유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저 여학생은 아무런 교태도 부리지 않는데 왜 이리 신경이 쓰이는 걸까”라며 상사병을 앓았다. 1년 반 동안에 200여 통의 사랑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은 여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전통 부정의 일환으로 성욕의 긍정, 자유연애 옹호를 주장했다. 학생 잡지에는 수음, 몽정, 생리 등 성지식을 제공하는 칼럼이 생기고 서점에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연애와 사랑을 찬양하는 소설들이 즐비했다. 한편 1919년 북경여자고등사범학교는 설립된 이래 여학생의 수가 꾸준히 늘어 1922년에는 665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여학생의 목소리도 커졌다. 이 때 나타난 것이 `방흉운동` 즉 브래지어벗기운동이다. 물론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브래지어가 아니라 천으로 가슴을 눌러 묶는 것이었다. 젊은 여인의 발달된 젖가슴을 천으로 묶는 것은 가슴을 압박하여 폐활량을 감소시키고 기포가 확장할 수 없게 만들어 건강을 헤치고 여성의 활동력을 약화시킨다고 여학생들은 주장했다. 그들은 자연적으로 솟아오른 젖가슴을 추하게 여겨 억지로 감추도록 강요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이 운동은 젖가슴을 묶지 않고 입을 수 있는 복장의 개혁으로 이어졌다. 전족으로부터 여성의 발이 해방된 지는 이미 오래였고 여자만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야 하는 관습에 저항하여 단발을 주장하는 여학생도 나왔다. 1927년 무한에서는 여성들이 단발하고 옷소매를 짧게 하며 양말을 벗고 다니는 풍조가 유행했다. 그리고 주위의 눈총을 무릅쓰고 외모상의 혁명을 실현시킨 여성은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유명한 소설가 파금의 소설에는 단발한 여학생 허천여의 심정이 그려져 있다. “단발을 하기란 쉽지 않아. 오늘 나도 등교길에서 남학생과 건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지. 길 가는 사람들도 모두 나만 쳐다봤어. 하지만 난 두렵지 않았어. 일부러라도 내 용기를 시험하고 싶었지. 내가 왜 남을 두려워해야 하지? 나도 어엿한 한 사람의 인간이야.” 여학생들의 방흉, 단발운동은 단순히 외모 변화의 운동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부터 여성을 옥죄는 지배권력, 관습과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무척이나 힘겨운 투쟁이었다. 전통의 보루인 가정과 고향마을에서 이런 여성들은 `요괴`로 배척당했다. 결국 양측의 대립은 `이초사건`에서 충돌한다. 북경여자고등사범학교 학생인 이초는 보호자인 양오빠가 결혼을 강요하자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양오빠는 경제적인 지원을 끊었다. 그녀는 생활의 곤궁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결핵에 걸려 2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녀의 동료와 지식인들은 이 죽음에 분노해 `이초여사추도회`를 열며 전통의 포학에 항의했다. 또 장사지방의 여성 조오정은 부모가 강요한 결혼에 저항, 시집가는 가마 속에서 면도칼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1927년 무한에서 벌어진 공산당 숙청 때는 단발한 여학생은 무조건 공산당으로 간주해 살육한 뒤 발가벗겨 길거리에 전시하는 일까지 생겼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상해 대학의 여학생이자 유부녀인 양지화는 뒷날 공산당 지도자가 되는 상해 대학의 젊은 교수 구추백과 결혼을 하면서 전 남편과의 이혼, 새 남편과의 결혼, 그리고 이 두 남자가 계속 우의를 지켜 나간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 알려 전통 관습을 우롱했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전통과 관습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던 학생들 또는 그 압박에서 갈등하고 불안에 시달리던 젊은이들은 북경 군벌 타도를 목표로 하는 손문과 장개석의 북벌이 시작되자 고향과 부모를 떠났다. 그들은 국민당에서 또는 공산당에서 봉건세력과 외세를 쓸어 내기 위한 투쟁에 젊은 열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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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4장 생각하고 나서 행동하는 중국 - 꾸칭생(古淸生).자유기고가
10. 바보 라도 미국의 속셈을 모르랴
미국은 가장 강력하고 공식적인 테러주의 국가이다. 이 지구상에서 하루라도 미국의 테러위협을 느끼지 않는 곳은 없다. 미국의 테러세력은 전세계에 퍼져 있다. 만일 당신이 워싱턴 당국자들의 공연한 말과 상스러운 영어가 듣기 싫어 조용한 곳을 찾고자 한다면, 그런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에 실망할 것이다. 미국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세계어디에서나 군사개입을 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전세계 어느 지역. 어느 국가에나 적용되는 자기들만의 법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공공연히 '인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은 아마 전세계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인 것 갔다. 파나마. 아이티, 소말리아, 페르시아. 발칸반도에 진군한 것도 전세계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아시아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전세계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유럽, 미주, 아프리카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전세계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이런 '전세계의 이익'이라는 것은 미국인이 만들어낸 특허이며, 또한 미국인들만이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다. 예를 들면 중국이 대만해협 부근에서 군사훈련을 할 때 미국의 겅리치는, 중국의 군사훈련은 테러주의자의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돌은 '중국은 집에서 조용히 지낼 것이지 나와서 말썽을 피우지 말라!'고 더욱 심한 말을 했다. 미국은 매년 2천6백억 달러의 군사예산을 유지해야 하며,절대적인 핵공격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두 곳에서 동시에 발생한 국지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미국만이 할 수 있다는 자만이 그 같은 말을 내뱉는 자들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미국이 대륙과 대만의 양안관계에 끼어드는 것도 전세계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란 점이다. 그러나 대만문제는 중국의 내부문제일 뿐이며. 미국이 이것을 전세계의 이익이란 명분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미국의 그릇된 생각일 뿐이다.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미국이 항공모함 '니미츠'와 '인디펜던스'를 대만해협으로 항진하게 한 것은 전형적인 테러주의자의 위협행위라는 점이다. 미국은 곧잘 다른 나라의 군사훈련을 무력과시라고 하는데. 여기서 우리들은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쉽게 말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군사훈련이 가장 많으며 그 훈련지역이 가장 넓은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때문이다. 미국은 태평양 저편에서도 군사훈련을 하며 나토에서도 군사훈련을 한다. 아시아에서 미국은 매년 한국, 일본, 필리핀 등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도 이런 군사훈련을 무력과시라고 자연스럽게 결론지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국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옴진리교 등과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극단적인 테러조직이라면 미국도 극단적인 테러국가이다. 오히려 미국의 다양한 테러수단과 그 악랄함은 여타의 테러조직과는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의 제7함대는 아시아국가의 골칫거리이며. 이 지역의 평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은 중동지역에도 화약을 묻어두었다. 발란지역에서 미국의 그자는 내전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모호전략'이 각 방면에서 쉽사리 형세를 오판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사위협을 가함과 동시에 유럽의 동맹국가들로 하여금 미국이 싫어하거나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경제봉새를 강행토록 하여 봉쇄국가의 국민경제를 파괴시키고 국내 혼란을 조장하도록 협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할지라도 정치, 외교, 경제, 문화를 생각할 때. 이 지구상의 국가들 특히 약소국은 미국의 군사적인 간섭이나 경제제재의 화를 피하려는 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든 미국은 계속해서 소란을 피운다. 그들은 전인류의 이익이란 명목으로 타국을 간섭하는 권리 외에도 다른 나라에 간섭하는 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중 .미 관계를 예로 들면, 미국의 페리 국무장관은 '우리의 대중국정책은 이른바 중 .미 합동성명에 잘 나타나 있다. 즉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동의하며. 이것은 역대 6명의 미국 대통령이 일관해 온 정책일 뿐만 아니라 현 미국 대통령이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우리의 대만정책은 '대만관계법'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우리들이 제공한 무기시스템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지며 자주방위가 필요하다면 이 무기시스템이 대만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런 법을 가질 수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대치하고 있는 한쪽에 무기를 제공할 수 있으며 또한 이것은 합법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쪽에 무기를 제공하고 싶다면 똑같은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법을 만드는 것은 우리 중국 사람들이 만두 하나를 빚는 것보다 더 쉽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식민주의와 테러주의적인 말투에 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페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은 서태평양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를 철수하거나 감축하지 않을 것이며 또 그렇게 할 의향도 없다. 서태평양에는 약 10만명의 미군이 있다.그 중 일본에 4만7천 명, 한국에 3만7천 명이 주둔하고 있으며 또 군함에 2, 3만 명의 승무원이 있다. 이는 아주 강력한 군대이며 어느 지역에서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대를 감축하지 않을 것이며 또 감축해서도 안 된다. 이 최전선의 주둔군과 최전선에 배치된미군은 지금까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왔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이 지역의 대부분 국가들도 미군의 주둔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힘, 이 지역의 군비경쟁을 억제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그들의 군대가 평화의 사자이며, 어떤 나라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태평양 주변국들이 진정 미함대의 거대한 포신 아래서만 평화를 영위할 수 있는지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실질적인 문제이다. 동시에 미국이 말하는 '이 지역의 군사력 경쟁억제' 작용은 다른각도에서 설명하자면 '너희들은 군사력을 가져서는 안 되며 우리 미군이 보호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런 보호란 조건이 없는 것인가? 그러나 전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는 없으며, 저마다 속으로 자신의 주판을 퉁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이런 미국의 전략목표에서 미국을 지탱해 주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적인 전략목표에서 미국은 그들이 영원히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것은 세계를 독차지하려는 제국주의적 친입이다.미국이 말하는 평화란 다름 아닌 '미국통치하의 세계평화'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미국의 패껀에 반항하지 않으며, 나아가 어쩌면 개별 국가 저마다는 미국의 일개 주가 되는 것이 상책일지도 모른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미국은 끊임없이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일단 대문을 지켜 주는 척하다가 때가 되면 집을 통째로 삼키려 들 것이다.
10만 미군은 당연히 아시아 테러의 화근이 되고 있다. 아시아 사람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아마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미군이 태평양 저쪽으로 건너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우방인 일본마저도 그러하다.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지존무상의 제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주 우려할 일이라고 역사는 말해 주고 있는데, 이런 우려가 지금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침에 문을 열었을 때 미국의 탱크 한 대가 문 앞에 버티고 서서 모든 재산과 층성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영국의 제국주의도 그랬고 그 뒤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스트도 그랬다. 다음에는 당연히 미국이 그럴 것이다.왜냐하면 현재 우리는 미국의 제국주의의 꿈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과감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아시아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아시아국가도 아니고 또한 다른 나라를 예사로 침략하는 미국이 아시아에 주둔함으로써 생기는 군사적 위협을 제지해야 한다. 미국이여, 바보천치인들 네 속셈을 모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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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64가지 믿음 - 정호승
딸의 어머니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서울로 보냈다. 딸이 서울로 가서 남의집살이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선뜻 허락하는 말을 했다. 딸이 보내 주는 돈으로 논밭이라도 몇 마지기 마련하고 싶어서였다. 딸은 아름답고 영리했다. 처음에는 이 집 저 집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일을 했으나, 그런 일을 하지 않고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남들이 천대하는 궂은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녀는 젊음과 미모로 돈 많은 남자들을 끌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이 남자 저 남자한테로 옮겨 다녔다. 옮겨 다니면 옮겨 다닐수록 그녀에게는 돈과 쾌락이 주어졌다. 사고 싶었던 옷과 보석과, 타고 싶었던 고급 승용차와, 살고 싶었던 집을 마련하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고향에 있는 어머니마저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곧 늙음이 찾아왔다. 그녀의 젊음과 미모만을 사랑하던 남자들은 더 젊고 더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을 찾아갔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 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고향을 떠난 후 단 한번도 어머니를 찾지 않은 일이 후회되었다. 그녀는 서둘러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녀가 고향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깊은 밤이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자 잠겨 있어야 할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어머니의 방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웬일일까. 이렇게 늦은 시각에 어머니는 아직도 주무시지 않는 것일까. 그녀가 조용히 마루로 올라서자 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순아, 너냐?" "네, 어머니!"
어머니가 활짝 방문을 열었다. 몰라볼 정도로 늙은 어머니였다. 그녀의 가슴은 무너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어머니, 절 용서하세요." "용서는 무슨, 이렇게 에미를 잊지 않고 찾아온 것만으로도 고맙다." "왜 아직도 주무시지 않으셨어요?"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은데, 대문이 열려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나는 네가 집을 떠난 후 지금까지 대문을 잠가 본 적이 없다." "어머니 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무슨 일이 있는가 했어요." "지금까지 내 방의 불도 끈 적이 없다. 난 항상 널 기다리고 있었다." "아, 어머니."
그녀는 한동안 어머니의 가슴에 묻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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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사상 유례없는 3.15 부정선거는 마침내 마산의 유혈데모를 몰고 왔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자유당 정권에게는 아직 사태수습의 길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자유당의 모 고위층은 서슴없이 말했다.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이 아니다.' 총칼을 휘두른 결과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결국 그들은 총칼에 의하여 망하고 만 것이다.
'예수'가 '유다'의 배신으로 제사장들에 잡혀가려 할 때 함께 있던 사나이 하나가 칼을 뽑아들어 제사장의 종의 귀를 내리쳤다. 그러자 '예수'는 칼을 든 사나이를 보고 말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아라. 검을 쓰는 사람은 모두 검으로 망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당장에 열 두 군단 이상의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제 내가 당하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리고는 조용히 제사장들에게 끌려 갔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걸핏하면 힘으로 국민을 억압하려 들기 쉬운 위정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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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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