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미사 (4)
동사에 붙어서 다른 단어로 만들어 주는 접미사들이 있다.
‘-기-, -리-, -이-, -히-’는 능동사를 피동사로 만드는 접미사이다. 능동사는 주어가 제힘으로 행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피동사는 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하여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말한다. ‘안다-안기다, 뚫다-뚫리다, 깎다-깎이다, 부딪다-부딪히다’에서 앞엣것이 능동사, 뒤엣것이 피동사이다.
‘-구-, -기-, -리-, -우-, -으키-, -이-, -이우-, -이키-, -추-, -히-’ 등은 주동사를 사동사로 만드는 접미사이다. 주동사는 문장의 주체가 스스로 행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사동사는 남에게 어떤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를 말한다. ‘솟다-솟구다, 맡다-맡기다, 살다-살리다, 깨다-깨우다, 일다-일으키다, 끓다-끓이다, 자다-재우다, 돌다-돌이키다, 늦다-늦추다, 앉다-앉히다’에서 앞엣것이 주동사, 뒤엣것이 사동사이다.
‘-뜨리-, -트리-, -치-’는 강조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더 강하거나 세찬 동작을 나타내는 말로 바꿔준다는 뜻이다. ‘-뜨리-’와 ‘-트리-’는 서로 교체해서 쓸 수 있다. ‘떨어뜨리다’가 표준어이면 ‘떨어트리다’도 표준어라는 뜻이다. ‘-치-’가 붙은 예로는 ‘넘치다, 밀치다, 부딪치다’ 등이 있다. 여기서 ‘부딪치다’는 부딪는 행동을 강조하는 말이고, ‘부딪다’의 피동사인 ‘부딪히다’과 구분해서 써야 한다. (손바닥을 부딪치며 노래를 불렀다. / 경제적 난관에 부딪혔다.)
동사를 형용사로 만드는 접미사로는 ‘-업-(미덥다), -읍-(우습다), -브-(미쁘다)’ 등이 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굳어진 말이기 때문에 접미사의 원형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대로 적는 것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표’와 ‘촛불’
선거에서 ‘표’는 유권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지만, 후보자에게 ‘표’는 잡아야 할 목표이자 유권자 그 자체다. “젊은 표를 잡기 위한 공약을 내놓다”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해 움직이는 표가 많다”는 표현에서 그런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도구’를 나타내는 말로 ‘그 도구를 지닌 사람’을 비유하는 용법은 특정 상황에서 ‘안경 쓴 사람’을 ‘안경’으로, ‘운전자’를 ‘차량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비유적 의미는 대부분 국어사전의 뜻풀이에서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현이 일반화되어 새로운 표현을 파생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표’에서 파생된 ‘표심’이 널리 쓰이자,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이를 “유권자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했다. 이미 국어사전에서도 ‘표’를 ‘유권자’로 읽고 있는 것이다.
‘촛불’도 그런 변화를 겪고 있는 말이다. ‘촛불집회’란 말에서 ‘촛불’은 ‘촛불을 든 사람’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촛불집회’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촛불’은 ‘촛불을 든 사람’보다 ‘초에 켠 불’이라는 도구의 의미로 먼저 읽혔다. ‘촛불’에서 ‘집회에 참가한 사람’이란 뜻을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은 ‘촛불집회’와 ‘촛불시위’가 거듭되면서부터다. ‘촛불집회’의 신기원을 이룬 2016년엔 ‘촛불민심’ ‘촛불시민’ ‘촛불혁명’이란 말이 등장하였다.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면서 ‘촛불’에는 ‘어떤 의지를
공유하는 사람 또는 그 의지’란 뜻까지 덧붙었다. 그런 뜻을 담은 ‘촛불’은 이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오늘도 켜졌다” “촛불들의 염원” "1000만 촛불의 뜻을 받들겠다" 등으로도 쓰인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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