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 A.J. 크로닌
제3부 성공하지 못한 보좌 신부 - 1
1월 어느 토요일 저녁때 프랜치스가 타인카슬에서 40마일이나 되는 셀즈리 역에 닿았을 때는 운 나쁘게도 비가 세차게 내렸다. 그러나 그 비마저도 그의 마음속에 불타고 있는 정열을 식히지는 못하였다. 타고 온 기차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린 후에도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지붕도 없는 플랫폼에 서서 황량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마중 나온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프랜치스는 낙담한 빛도 없이 가방을 들고 탄광촌의 한길로 나아갔다. 구세주 성당을 못 찾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보좌 신부가 된 후 여기가 첫 임지인 것이다. 프랜치스는 아직도 뭐가 뭔지 실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드디어 임명되어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는 싸움터에 나갈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곳의 이야기는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걸으면서 보는 현재 이 비참하고 지저분한 전경은 상상보다 훨씬 더 심했다. 셀즈리 거리는 음울한 회색 지붕과 허술한 점포들의 길다란 행렬이라 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사이의 공터에서는 산더미 같은 석탄 찌꺼기가 빗속에서도 연기를 품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회색빛 지붕 위에 렌쇼 탄광의 새카만 굴뚝이 여러 개 솟아 있었다. 프랜치스는 자신의 흥미는 거리의 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 있다고 생각하며 밝은 기분으로 자기 자신에게 일러주었다. 카톨릭 교회는 마을 동쪽 끝에 있는 탄광 회사에 인접해 있어 주위의 풍물과 잘 조화되고 있었다. 빨간 벽돌로 된 커다란 건물이며 유리창에는 고딕풍의 파란 스테인드글라스가 끼워져 있고, 검붉은 양철 지붕엔 꼭대기를 잘라 버린 것 같은 녹슨 탑이 서 있었다. 학교처럼 보이는 건물 옆으로 사제관이 보였는데, 그 앞도 잡초가 우거진 뜰이고, 그 주위는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으나 이것도 이가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부서져 있었다. 태연하려 한 마음이 긴장감으로 위축되는 것을 애써 참으며 프랜치스는 그 쓰러질 것 같은 집으로 가까이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있다가 다시 누르려고 하자, 파란 줄무늬 앞치마를 두른 건장한 여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당신이셨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신부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입니다."
그녀는 순직하고 말수가 적고 호인과 같은 얼굴로 응접실 문을 가리켰다.
"정말 무슨 날씨가 이런지 모르겠어요. 나는 가서 연어 구이를 준비해야지."
프랜치스는 그녀가 가리킨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하얀 식탁보가 덮인 식탁 위에 벌써 저녁 식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식탁 앞에 오십 살쯤 돼 보이는 땅딸막한 신부가 앉아 있었다. 식사를 기다리기에 지쳤다는 듯이 나이프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던 손을 멈추고 새 보좌 신부에게 말을 걸었다.
"드디어 오셨군. 자, 어서 와요." 프랜치스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키저 신부님이시죠?"
"그래요. 나를 윌리엄 3세인 줄 알았나. 자, 마침 저녁 식사에 맞춰 왔군. 맛있을 거야."
그는 몸을 뒤로 젖히고 옆방에다 대고 소리쳤다.
"캬퍄티, 어찌된 거요. 밤새워야 하는 건가?" 그리고 프랜치스를 향하여, "앉으라고. 그렇게 미아 같은 얼굴을 하고 서 있지만 말고. 트럼프는 할 줄 알겠지. 나는 밤이 되면 그것을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지."
프랜치스가 식탁에 앉자 이윽고 미스 캬파티가 훈제 연어와 달걀 구이 접시를 가지고 황급히 들어왔다. 키저 신부가 달걀 두 개에 연어 두 토막을 자기 접시에 놓자, 그녀는 프랜치스 앞으로 접시를 옮겨 주었다. 키저 신부는 입안에 가득히 넣고 먹으면서 큰 접시를 프랜치스 쪽으로돌려주었다.
"자, 많이 들게. 사양할 것 없어요. 여기선 힘껏 일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많이 먹어야 한다고."
그는 까만 털투성이 손과 턱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조금도 쉬지 않고 허둥지둥 먹고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야무진 입매, 코는 넓적하고 큰 콧구멍에는 코담배로 물들은 진한 털이 들여다보였다. 전체적으로 정력적이고 위신 있게 보이며 자신이 넘쳐 보였다. 달걀을 반으로 나누어 하나를 입에 넣고, 그는 백정이 소 흥정을 하는 것처럼 작은 눈으로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프랜치스를 살폈다.
"자넨 그다지 건강한 것 같지 않군. 70킬로도 되지 않지? 요즘은 보좌 신부도 많이 달라졌어. 자네 전임자도 말라깽이였고 전혀 패기가 없었어. 대륙적인 체하고 놈이 다 망쳐 놓았지. 우리 시절에는 말이야-그래 메이노스(성 페트릭 신학교의 소재지) 출신들은 모두 사나이다웠는데......"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몸은 건강하니까요" 하고 프랜치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야 곧 알게 되겠지" 하고 키저 신부는 중얼거렸다.
"식사가 끝나면 가서 신자들의 고해를 받아 주지 않겠나? 나는 나중에 가겠네. 이렇게 비가 오면......오늘밤에는 많이 오지는 않을 거야. 그들에겐 좋은 구실이겠지. 모두 근본적으로 게으름뱅이들이니까......여기 놈들은."
프랜치스에게 주어진 이층의 방에는 튼튼한 침대와 커다란 옷장이 있었다. 그는 그 방의 더러운 세면대에서 손과 얼굴을 씻고 서둘러 교회로 내려갔다. 키저 신부의 인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처음 본 인상은 흔히 잘못 보기 쉬운 것이라고 프랜치스는 자신을 타이르며 오랫동안 추운 고해실에서-아직도 전임자인 리 신부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런 후 거기를 나와 텅빈 교회 안을 돌아다녔다.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창고처럼 텅 비었고 더구나 청결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안쪽을 대리석으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진한 녹색 페인트를 칠했던 흔적이 너저분하게 남아 있었다. 한쪽 팔이 떨어진 성 요셉 상은 매우 서툴게 수선되어 있고, '십자가의 길'을 표시한 성화는 물감을 더덕더덕 칠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재단 위의 녹슨 놋쇠 꽃병에는 야한 조화가 꽂혀 있어 보기만 해도 모욕을 당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잘한 결점들은 그만큼 그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셈이 된다. 프랜치스는 감실(성체를 안치해 놓은 곳) 앞에 꿇어앉아 진심으로 자기의 생애를 하느님에게 바칠 것을 기도 드렸다. 그러나 런던, 마드리드, 로마간을 왕복하는 고귀한 신분의 성직자라든가 학자나 선교사 등의 숙사로 되어 있는 산 모랄레스의 문화적인 분위기에 익숙한 프랜치스에게는 처음 4, 5일 동안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더해 갈 뿐이었다. 키저 신부는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원래가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성격인데다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신자들의 경애를 얻지 못한 원한에서 마치 철못을 박아 놓은 것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도 한때는 이스트크리프 해변 피서지에서 훌륭한 본당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를 좋게 안 본 유지들에 주교에게 탄원하여 전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당시는 몹시 분개했으나 그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생적 행위였다고 생각하게 되어 체념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난 내 왕좌를 스스로 버리고 낮은 의자에 앉은 거야......그러나......어쨌든 그 무렵은 좋았어."
가정부인 미스 캬파티만이 그의 편이었다. 그녀는 벌써 여러 해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성격이나 기질이 비슷해서 그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큰 소리로 꾸지람을 듣고 무표정으로 응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는 없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서로 상대를 소중히 하고 있었다. 신부가 매년 6주간의 휴가로 하로 게이트에 여행할 때는 그녀도 휴가를 얻어 자기의 집에 돌아가는 혜택을 받고 있었다. 키저 신부의 태도나 동작에는 조금도 세련된 데가 없었다. 침실 바닥을 요란하게 탕탕 구르기도 하고 목욕탕 문을 열어 놓은 채 물소리를 심하게냈기 때문에 성냥통 같은 집은 그럴 때마다 메아리치듯이 울렸다. 키저는 무의식중에 자기의 종교를 하나의 공식으로 환원시켜 버리고있었다. 그것은 내적인 의미라든가 정신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완고한 자기 고집이었다. '이것을 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이것이 그의 마음에 새겨진 말이었다. 성당에는 말과 물, 혹은 기름과 소금을 사용해서 행하는 의식이 있는데, 그것을 게을리 하면 지옥이 타오르는 불꽃의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그는 편견이 심해서 다른 교회는 무조건 매도하는 바람에 그는 친구가 없었고 언제나 외로웠다. 자기 교회에 오는 신자들까지도 그를 바로 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교구가 가난한데다가 교회에는 적지 않은 빚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절약을 해도 수지 균형을 잘 맞출 수가 없는 때가 있었다. 이것은 마땅히 신자들이 협력해야 할 것이지만 그는 붙임성 없이 행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고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나 화를 버럭버럭 낼뿐이고, 설교를 할 때에도 거만하게 버티고 서서 도전적으로 신자들에게 성의가 부족하다고 책망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집세와 세금과 보험료를 지불하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지금 당신들은 이 교회를 어떻게 해서 존속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전능하신 하느님께 바치라 이겁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잘 들어주기 바라오. 나는 헌금 상자에 은화가 넣어지는 것을 보고 싶은 거지 너절한 동전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오. 당신들 남자는 거의 조지 렌쇼 경의 덕택으로 일하고 있소. 그러니까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겁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입는 것에 돈을 적게 들이고 헌금을 하라고 하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소."
그는 이런 식으로 부르짖고선 직접 헌금 상자를 들고 책망하는 눈으로 노려보면서 그것을 신자들 코앞에다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러한 강압적인 요구가 그와 신자들과의 사이에 반목을 불러일으켜 헌금의 액수는 점점 줄어들 뿐이었다. 그러자 화가 치민 그는 꾀를 내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갈색 봉투를 배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신자들이 돌아가고 나면 봉투를 거둬들였다. 혹시 봉투에 돈이 들어 있지 않으면 몹시 화를 내면서 중얼거렸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을 대하는 놈들의 태도란 말인가."
이러한 재정상의 음산한 구름이 뒤덮여 있었지만 하나의 빛나는 태양은 있었다. 셀즈리 탄광만이 아니라 주 내에 열 다섯 개나 되는 탄광을 가지고 있는 조지 렌쇼 경은 큰 부자이고 카톨릭 신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이름난 자선가이기도 했다. 그의 저택은 70마일이나 떨어진, 셀즈리와는 반대쪽에 있었으나 어찌된 까닭인지 구세주 교회는 그 기부 명부에 실려 있었으므로크리스마스에는 빼놓지 않고 1백 기니의 수표가 교회에 전달되는 것이었다.
"1백 기니다! 이봐." 키저 신부는 기니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쩨쩨한 파운드 따위가 아닐세. 이게 진짜 신자라고 하는 거야." 그는 조지 경을 수년 전 타인카슬의 신도 대회 때에 두 번 만났을 뿐인데, 이야기할 때에도 존경과 외경을 잊지 않았었다. 더구나 이유도 없는데도 기부가 끊기지나 않을까 하여 늘 걱정하고 있었다.
셀즈리에서 한 달이 지날 무렵 프랜치스는 키저 신부와 얼굴을 맞대는 것부터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는 매사에 안달복달하며 짜증만 부리고 있었다. 전임자인 젊은 리 신부가 심한 신경쇠약에 걸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정신생활이 둔화될 뿐이었고, 사물의 가치판단을 확실하게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키저 신부에 대한 불같은 적대감이 끓어올랐다. 그럴 때면 그는 정신을 번쩍 차려 남모르게 신음하면서 순종과 겸손을 생각하곤 했다. 성당의 일은 특히 겨울철에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미사를 올리거나 고해를 듣거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이나 먼 브라우톤과 그렌반의 빈한한 두 한촌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슨 말을 지껄여도 도저히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고, 그만큼 일하기가 까다롭고 곤란함만 더할 뿐이었다. 어린애들까지도 무기력하고 게을렀다. 가난뱅이가 대부분이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교구 전체가 무신경하고 열의도 신앙도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프랜치스는 절대로 이 상태로 내버려두지는 않겠다고 마음에 맹세를 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자기는 결국 패배자인 것이다. 자기의 능력이 부족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 가난한 마음에 구원의 손을 뻗쳐 어떻게 해서든지 갱생을 도모하고 싶다는 불타는 욕망이 타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의 마음에 불꽃은 점화하여 죽은 재가 타오르게 하고 생명을 불어넣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활하고 조심성 많은 키저 신부가 프랜치스가 맞닥뜨린 곤경을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그는 프랜치스의 이상주의가 자기의 실제적인 상식에 항복하는 것을 은밀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프랜치스가 심한 눈보라 속을 10마일이나 자전거를 타고 브라우톤까지 병자의 위문을 갔다가 흠뻑 젖어 돌아오니 키저 신부는 모멸에 찬 시선에 웃음을 띄우면서 그를 조롱했다.
"어떤가, 공덕을 베푼다는 것이 생각한 대로는 되지 않지, 안 그래?" 그리고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모두 변변치 못한 것들 뿐이야." 프랜치스는 순간 발끈하여 얼굴을 붉혔다.
"그리스도는 그 변변치 못한 것들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프랜치스는 완전히 의기소침해 버려 그 이후로 고행을 스스로 단행했다. 식사량을 줄이고 홍차 한 잔에 토스트를 먹는 것으로 자신을 단련시켰다. 한밤중에 눈이 더질 때에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발소리를 죽여 가면서 성당으로 향할 때가 많았다. 어두컴컴하고 쥐죽은듯이 조용한 성당 안은 파란 달빛에 씻기어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몸을 내던지듯이 무릎을 꿇고 이 최초의 시련을 이겨낼 용기를 주십사 하고 간곡히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면 온화하고 괴로움을 참고 있는 그리스도의 상처 입은 십자가상을 응시하고 있는 동안에 평화가 자기의 몸에 충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날도 잠을 이룰 수 없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당에 갔다가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가든 중 멈칫 놀라고 말았다. 계단 위에서키저 신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옷 위에 외투를 걸친 그는 괴상한 모습으로 손에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털이 덥수룩한 맨발로 버티고 서서 노한 얼굴로 프랜치스를 흘겨보았다.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건가?"
"제 방으로 돌아가는 참입니다."
"어디를 갔다 오는데?"
"기도실에요."
"뭐라고! 이 한밤중에......"
"왜 잘못입니까?"
프랜치스는 억지로 웃으려고 했다.
"하느님을 깨울 작정이라도 한 건가?"
"아닙니다, 잠을 깬 것은 저입니다."
키저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내일부터 당장 그만두게. 이렇게 어리석긴. 이곳을 수도원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해. 기도하고 싶으면 낮에 하면 될 것 아닌가? 자네가 나와 함께 있는 한밤엔 잠을 자란 말일세."
프랜치스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반발심을 꾹 참았다. 그리고 잠자코 침실로 돌아갔다. 이 교구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려고 하면 자신을 억제하고 윗사람과 타협을 잘 하기 위하여 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키저 신부의 정직하고 배짱이 있는 것, 엉뚱하고, 소탈하고, 정직한 것 등 그의 장점에만 주의를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던 며칠 후, 적당한 시기를 잡아 프랜치스는 사교적 수완을 발휘할 양으로 신부에게 접근했다.
"신부님, 벌써 생각한 것입니다만......여기는 벽촌이고 어디를 가나 보잘것없고, 그렇다고 적당한 오락장도 없으니까......한번 교구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클럽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 하하" 하고 키저 신부는 매우 만족한 듯이 웃어댔다. "과연 그렇군. 대중의 인기를 얻자는 거로군."
"아니, 천만 에요."
어떻게 해서든지 승낙을 받으려고 프랜치스는 진지한 마음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그럴 생각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클럽이 있으면 젊은이들은 거리를 방황하지 않을 것이고 나이든 사람도 술집 같은 데에 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도 계몽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성당에도 나올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호오-"키저 신부는 비웃음 섞인 웃음소리를 냈다.
"자넨 아직 멀었어. 리 군보다 더 심한 것 같군. 하고 싶은 것은 해도 좋지만 말이야......여기 변변치 못한 것들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다간 계산 착오야."
"감사합니다. 저는 다만 허가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프랜치스는 설레이는 가슴으로 계획을 당장에 실행했다. 스코틀랜드인이며 확고한 카톨릭 신자인 렌쇼 탄광 감독인 도날드 카일이 당장에 찬성하고 호의를 나타내 주었다. 그 외에도 현장 직원이며 아내가 가금 사제관의 일을 도와주는 검사계의 모리슨, 또 폭약계 주임인 크리덴의 구급실을 주 3회, 밤에만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얻었다. 그리고 현장의 두 사람의 도움으로 계획 중인 클럽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로 했다. 교구 사람들의 도움은 청하지 않았다. 자기 주머니를 몽땅 털었으나 2파운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윌리 탈록에게 편지를 띄워-윌리는 일 관계로 타인카슬의 시립 스포츠 센터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거기에서 필요 없는 헌 운동기구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첫 출발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한 결과 젊은이들에게는 댄스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댄스 파티를 열기로 했다. 마침 탄광 구급실에는 피아노도 있었고 크리덴은 바이올리스트로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프랜치스는 클럽 문에 붉은 포스터를 붙여서 날짜와 시간을 알리고, 목요일이 되자 전 재산을 털어서 케이크와 과실, 레모네드 등으로 뷔페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한 기분이었으나 그날 밤은 예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카드릴(4인조의 춤)을 출 수 있는 팀이 여덟 팀이나 모인 것이다. 청년들은 모두 구두가 없어 갱내에서 일할 때 신던 장화를 신고 춤을 추었다. 댄스의 막간에는 기쁨에 들뜬 얼굴로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여자들은 파트너에게 케이크나 레모네드를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왈츠를 추면서 다같이 합창을 하기도 했다. 탄광에서 교대 시간이 되어 돌아온 광부들도 입구에 서서 가스등 불빛으로 숯검정투성이의 얼굴에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들여다보았다. 나중엔 그들도 함께 합창을 하는 등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참으로 즐거운 밤이었다.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고 "안녕!"하고 소리치며 헤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프랜치스는 충만한 만족감에 뛰는 가슴을 누르며 생각했다. '이제야 모두들살아난 것 같다. 하느님, 하여간 출발은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튿날 아침, 키저 신부가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서 식당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어찌된 건가. 대소동이 아닌가 말이야. 훌륭한 착상이군 그래. 자넨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가?" 프랜치스는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듣지 않아도 알 게 아닌가. 엊저녁의 미치광이 놀음 말이야."
"허락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일주일 전에 말입니다."
키저 신부는 느닷없이 큰 소리를 쳤다.
"남자와 여자가 한 패가 되어 놀아난 소동을 성당 문 앞에서 하라고 허락한 기억은 없어. 문란하게 껴안고 히히덕거리는 짓은 자네가 거들지 않아도 돼. 난 젊은 여자의 순결을 지켜 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단 말이야."
"엊저녁의 모임은 의심할 여지없이 순수한 모임입니다."
"순수하다고! 어안이벙벙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군." 키저 신부는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모르겠단 말인가. 자네는-그렇게 껴안거나 손을 잡거나 몸뚱이나 다리가 달라붙거나 하는 것이 결국에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바보 천치야. 젊은 놈들이 나쁜 생각을 갖게 하는 첫째 이유가 된단 말이야. 욕정으로 인도하는 도화선이라고."
프랜치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의분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신부님은 욕정과 순수한 이성 교제를 혼동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요?"
"뭐라고! 그게 그거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마치 병과 건강만큼이나 다릅니다."
키저 신부의 두 손이 경련을 일으켰다.
"도대체 자네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프랜치스도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이곳에 와서 두 달 동안 쌓이고 쌓인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 버린 것이다.
"누구도 자연의 힘은 거역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간 오히려 역효과만 낼뿐이고 자신을 망치고 맙니다. 젊은 남자와 여자가 어울려 함께 댄스를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훌륭한 것입니다. 구애와 결혼의 자연스러운 서곡입니다. 성이라고 하는 것은 썩어 가는 시체처럼 더러운 시트 밑에 감추어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추어 두는 데서 괴이한 악과 문란한 행위가 비롯되는 것입니다. 잘 교육하여 성이라고 하는 것을 좀더 공명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독사나 되는 것처럼 목을 졸라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오직 실패할 뿐입니다. 순결하고 아름다운 것을 더욱 추하게 할뿐입니다. 무겁고 두려운 침묵이 계속 흘렀다. 키저 신부의 목에 있는 혈관이 파랗게 부풀어올랐다.
"벌받을 말은 그만 지껄이게. 풋내기 주제에. 젊은 남녀를 한 조로 만들기만 하면 이젠 절대로 그 댄스홀에 출입시키지 않을 테니까."
"그럼 젊은 남녀를 한 조씩-이건 신부님의 말씀입니다만-어두운 골목길이나 후미진 밭으로 내쫓겠다는 말씀이군요."
"입 다물게. 나는 이 교구의 처녀들을 문란하게 놀아나게 하지는 않고 있어. 잔말 말게. 내 일은 내가 잘 알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프랜치스는 비꼬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면 어째서 통계에 나타난 셀즈리의 사생아 수가 이 관구에서 최고입니까? 오직 순결만을 가르친 신부님의 그 신조 덕분 인가요?"
잠시 동안 키저 신부는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 같았다. 손을 꼭 쥐거나 또 펴거나 하여 누군가의 목이라도 조르고 있는 것 같은 동작을 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주먹을 흔들어댔다.
"통계라면 나도 할 말이 있네. 이곳에서 5마일 내에는 클럽따윈 한 군데도 없어. 자네의 대견스러운 계획은 오늘로써 끝장이야. 절대로 안 돼. 알았어? 이것이 나의 최후 명령이야."
그는 말을 끝내고 식탁 앞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화를 참으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새파랗게 질린 프랜치스는 황급히 식사를 마치고 이층의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더러운 유리창 너머로 구급실이 있는 건물이 보였다. 어제 탈록이 보내 준 복싱 글러브와 체조용 곤봉이 들어 있는 상자가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픔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리고 불굴의 기분으로 생각했다-이대로 복종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하느님도 이런 굴종은 강요하시지 않는다. 어떻게든지 싸우는 것이다. 키저 신부가 끝까지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 완강히 대처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미 성당을 떠나 버린 신자들과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한 프랜치스는 별의별 생각을 다해 봤지만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셀즈리의 반이나 줄어 버린 교구민을 위해서다. 그는 넘칠 것 같은 사랑과 여기의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야겠다고 하는, 지금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첫 사업이란 생각이 들자 가슴 뿌듯한 사명감이 솟구쳤다. 그 후 며칠 동안 여느 때와 같이 성당 일에 쫓기면서 어떻게든 클럽을 다시 열 길은 없을까 하고 궁리를 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다시키저심부를 움직이는 것은 도저히 곤란하다는 생각이 되었다. 프랜치스가 온순해진 것을 자기 멋대로 패배한 것으로 생각한 키저 신부는 승리의 기쁨을 누를 길이 없었다. 저따위 풋내기를 굴복시켜서 순종케 하는 것은 문제없다. 이러한 인간들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자기의 능력을 주교도 알아주었으면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비꼬는 미소는 더욱 짙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프랜치스는 느닷없이 근사한 생각을 한 것이다. 성공의 가망은 적을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만의 하나 성공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쁨에 가슴이 떨렸다. 창백한 얼굴이 약간 불그레해지고 자칫하면 큰 소리를 칠 뻔했다. 그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그는 결심을 했다. 하여간 해보자. 어떻게 해서든지 하는 거다......폴리 아주머니가 온다고 하니 아주머니가 다녀가신 후에 바로 실행을 하자.
폴리 아주머니와 쥬디는 6월 말 일주일간의 휴가를 셀즈리에서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셀즈리는 휴양지는 아니었으나 지대가 높고 건조한 땅이어서 공기가 좋았다. 평상시는 살풍경한 이곳도 6월에는 신록으로 뒤덮여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었다. 더구나 프랜치스는 꼭 폴리 아주머니를 모시고 즐겁게 해 드리고 싶었다. 지난겨울 폴리 아주머니는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난삽한 겨울이었다. 아주머니의 말을 빌리면 길포일은 주점을 망칠 작정인지 파는 것보다는 자신이 마시는 것이 더 많았고, 들어오는 돈은 보여 주지도 않고, 더군다나 뭐든지 자기가 독점해 버리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네드의 병은 더욱 악화되어 두 다리마저도 쓸 수 없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장사 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정신마저 이상해져 꼭 미친 사람 마냥 히죽거리기까지 했다. 어떤 때는 아첨하는 길포일에게 자기는 중기 요트가 있다느니 더블린에 양조장을 가지고 있다느니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폴리 아주머니 몰래 스캔티의 부축을 받아 크라몬트까지 가서 모자를 두 타스나 주문한 일이 있었다. 프랜치스의 부탁을 받은 탈록 의사의 진단 결과 네드의 병은 중풍이 아니라 뇌종양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탈록의 권유에 따라 남자 간호사를 두게 되어 폴리 아주머니가 일주일간 휴가를 얻게 된 것이다. 프랜치스는 폴리 아주머니와 쥬디가 오면 어떻게 해서든지 사제관의 내빈실에서 지내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키저 신부의 요즘의 태도로 보아 그런 것을 부탁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프랜치스는 미세스 모리슨의 집에 적당한 방을 하나 얻어 놓았다. 6월 22일이 되자 폴리아주머니와 쥬디가 왔다. 두 사람을 역으로 마중 나간 그는 가슴이 몹시 아팠다. 아직 건강하고 활기를 잃지 않은 폴리 아주머니가 가무잡잡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 모습이 옛날 노라의 손을 잡고 올 때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 폴리 아주머니!" 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아주머니는 별로 변한 데는 없었으나 어쩐지 복장이 전보다는 조금 허술하고, 볼이 훨씬 야윈 것 같았다. 옛날에 입던 옷과 장갑, 그리고 똑같은 모자였다. 아주머니는 자기를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남을 위해서만 쓰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네드와 쥬디에게만 신경을 쏟는 것 같았다. 전혀 자기라고 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은 그 모습에 그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황급히 뛰어가서 폴리를 껴안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참 잘 오셨어요......아주머니......조금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오, 프랜치스!" 그녀는 가방 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여기는 바람이 심하구나. 눈 속에 뭐가 들어간 것 같아."
프랜치스는 아주머니와 쥬디의 손을 잡고는 미세스 모리슨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두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밤에도 늦게까지 폴리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프랜치스가 성직자가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려운 집안 이야기는 그다지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걱정스럽게 꺼내 놓은 이야기는 쥬디에 관한 것이었다. 쥬디는 올해 열 살이 되며, 크라몬트의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복잡한 성격의 아이였다. 겉으로는 애교가 있고 정직했으나 매우 의심이 많은데다가 남의 것을 잘 감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자기 침실에 감추는 버릇이 있었고, 그것이 발견되면 어쩔 도리가 없을 만큼 화를 내는 것이다. 흥분을 잘하고 변덕이 심하며 자기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그런 때에는 태연히 거짓말을 하고 어디까지나 시치미를 뗀다. 그리고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책망이라도 하게 되면 분해서 엉엉 울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프랜치스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쥬디의 신뢰를 얻으려고 했다. 쥬디는 자주 사제관에 와서 키저 신부의 방에 들어가서 소파에 앉아 놀기도 하고 파이프나 문진 등을 만지거나 했다. 프랜치스는 그것이 몹시 걱정스러웠으나 키저 신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랜치스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휴가 마지막날이 되어 폴리 아주머니는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하며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쥬디는 프랜치스의 방에 차분히 앉아서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가정부 미스 캬파티였다. 그녀는 프랜치스를 향해서 말했다.
"신부님이 지금 만나셨으면 합니다."
뜻하지 않는 말에 프랜치스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키저 신부는 방 한가운데 우뚝 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몇 주간 동안 처음으로 프랜치스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했다.
"저 애는 도둑이야."
프랜치스는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밸이 뒤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여기에서 제멋대로 놀게 한 거야. 귀여운 애라고 생각했는데."
키저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무엇을 가지고 갔습니까?"
프랜치스가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보통 도둑은 뭘 훔치지?"
키저 시누는 벽난로 위쪽을 향했다. 그 위에는 그가 언제나 정중하게 하얀 종이에 쌓아 두는 12페니씩의 동전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그는 그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 속에서 훔친 거야. 보통의 도둑보다 나쁘단 말이야. 성물 절도죄야. 이것을 보라고."
프랜치스는 꾸러미를 조사해 보았다. 봉함을 뜯고는 돈을 꺼내고 그 자리를 비틀어 놓았다. 3페니가 부족했다.
"어떻게 쥬디가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난 바보가 아니야." 키저 신부는 물어뜯을 듯이 응수했다.
"이 일주일 동안 동전이 없어진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보고만 있었지. 이 꾸러미 속의 돈에는 모두 표시를 해 놓았어."
프랜치스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키저 신부가 그 뒤를 따라 왔다.
"쥬디, 네 지갑을 보여 다오."
쥬디는 깜짝 놀라는 것 같았으나 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웃어 보였다.
"모리슨 아주머니 방에 두고 왔어요."
"아니, 여기 있잖아."
프랜치스는 몸을 구부리고 그녀의 포켓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것은 휴가가 되기 전에 폴리 아주머니가 사준 가죽으로 된 작은 지갑이었다. 프랜치스는 맥이 풀리는 기분으로 지갑을 열었다. 그 속에 3페니가 들어 있었다. 모두 동전 뒤쪽에 십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키저 신부의 씁쓸한 표정에는 노기와 함께 승리를 기뻐하는 빛이 역력했다.
"말하지 않을 수 없군. 이봐, 하느님의 것을 훔치다니, 나쁜 아이야."
그리고 그는 프랜치스를 노려보았다.
"버릇을 고쳐 주어야 해. 내가 맡고 있는 애라면 당장 경찰에 넘겨 버리겠네."
"싫어요, 싫어요." 쥬디는 갑자기 울어 버렸다. "돌려 드리려고 생각했어요.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프랜치스는 새파랗게 질렸다. 매우 난처했다. 그렇지만 두 손에 힘을 주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럼"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이 애를 데라고 경찰서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하밀턴 경부에게 넘기겠습니다."
쥬디는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키저 신부는 깜짝 놀랐으나 조소하는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좋겠지."
프랜치스는 모자를 쓰고 쥬디의 손을 잡았다.
"자, 쥬디,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경찰한테 가서 키저 신부님한테서 3페니를 훔쳤습니다, 하고 말하고 오자꾸나."
프랜치스가 어린애의 손을 끌고 나가려고 하자, 신부는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 색이 변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좀 지나친 말을 해 버린 것이다. 신교도인 하밀턴 경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정치적으로도 의견을 달리해 심하게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 하찮은 일로 경찰 신세를 지게 되면......또 마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황급히 중얼거렸다.
"갈 필요 없네."
그러나 프랜치스는 못 들은 척 여전히 시뻘건 얼굴로 문을 열었다.
"기다려!"
그는 자기가 자기의 노기를 진정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쥐어짜는 소리로 말했다.
"가지 않아도 되겠네......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치자구. 자네가 잘 타일러 주게나."
그렇게 말하고서 신부는 무뚝뚝한 화난 얼굴을 하고 나가 버렸다.
폴리 아주머니와 쥬디가 타인카슬로 돌아가 버리자 프랜치스는 갑자기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쥬디의 도벽에 대하여 신부에게 진심으로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사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키저 신부의 얼굴을 대하고 나면 그런 기분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기분이 키저 신부를 한층 외고집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곧 휴가로 요양을 떠나게 되어 있었다. 그 전에 프랜치스를 절대로 버릇없이 굴지 않도록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입을 다문 채 아예 프랜치스가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미스 캬파티에게 일러 식사도 프랜치스보다 먼저 혼자서 했다. 휴가를 떠나기 바로 전 주일에는 제 7계명인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한 마디 한 마디 프랜치스에게 들어보라는 것 같이 격렬한 어조로 설교를 했다. 그 설교가 프랜치스의 결심을 굳히게 했다. 미사가 끝나자 프랜치스는 탄광 감독인 도날드 카일을 방문하여 그를 한쪽으로 불러내어 귓속말로 자기 계획을 털어놓았다. 카일은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프랜치스의 적극적인 설득에 차츰 흥미를 보였다.
"글쎄요, 과연 잘 될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어디까지나 힘이 되어 드리겠어요."
두 사람은 굳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월요일 아침 키저 신부는 6주일간 예정으로 광천지인 하르게이트로 요양차 출발했다. 그날 저녁때는 미스 캬파티도 고향인 로스레아로 떠났다. 그 이튿날인 화요일에 프랜치스는 아침 일찍 약속대로 카일과 역에서 만났다. 카일은 묵직한 서류철과 경쟁 상대인 노팅검 탄광 회사의 팜플렛을 안고 있었다. 깨끗한 신사복으로 정장을 한 카일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두 사람은 열한 시에 셀즈리발 기차에 올라탔다. 긴 하루가 좀처럼 저물지 않았으나 그래도 두 사람이 돌아온 것은 밤이 이슥해서였다. 두 사람은 앞만 향한 채로 나란히 말없이 걷고 있었다. 프랜치스는 피로한 듯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자, 그럼 안녕히" 하고 헤어지는 인사를 했을 때 감독의 얼굴에 엄숙한 미소가 떠올랐는데, 그것만이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4일간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 다음날 갑자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일이 탄광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탄광 바로 옆에 새 건물이 신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랜치스는 교회 일을 보면서 틈틈이 카일에게 달려가 의논을 하고 설계도를 검토하거나 일꾼들이 일하는 것을 바라보거나 했다. 건물은 빠르게 완성되어 갔다. 보름 후에는 위생실 옆에 골조가 세워지고 한 달이 지나자 대체로 건물이 완공되었다. 그리고 목수와 미장이가 일을 시작했다. 쇠망치 소리는 프랜치스의 귀에 기분 좋은 연주로 들렸다. 톱밥의 냄새는 코를 간지럽혔다. 프랜치스는 때로는 목수들의 일을 도와 주었다. 모두들 프랜치스에게 호의를 가졌다. 그는 아버지의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이다. 시간제로 성당 일을 맡은 미세스 모리슨이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텅빈 성당에 혼자 있는 프랜치스는 키저 신부로부터 귀찮은 잔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더없이 유쾌해져 일에 대한 열의는 끝없이 불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도 훨씬 친해진 느낌이었고, 교회에 대한 그들의 쓸데없는 억측도 풀리고 서서히 그들의 단조로운 생활에도 파고들어 잠자고 있는 그들의 영혼을 일깨워 하느님의 품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위를 에워싼 빈곤과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쳐 사랑으로 감싸주어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로 인도해야 할 사명감에 또 다른 긍지와 자신을 느끼며 무한한 용기가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목적을 세워 사업을 완성하는 빛나는 감격 바로 그것이었다. 키저 신부가 성당에 돌아오기 5일 전 프랜치스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조지 경 귀하
귀하가 친절하게도 셀즈리에 기증해 주신 새로운 레크리에이션 센터는 이제 완성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이 건물은 탄광 종사자는 물론 그 가족, 널리 계급이나 신앙의 여하를 불문하고 이곳 공업 지대에 거주하는 모둔 주민들에게 커다란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운영 위원회도 결성되어 여러 차례 회의 결과 운영 강령도 결정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동봉하는 것은 동계 프로그램입니다. 이것에 의하여 회관 활동의 전모를 상상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복싱, 검술, 체육, 그리고 응급처치법 훈련과 매주 1회 목요일에는 댄스 파티를 열도록 되어 있습니다. 카일 씨와 제가 돌연히 방문하여 외람된 청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쾌히 승낙을 해주신 것에 오직 감격할 따름입니다. 어떠한 감사의 말을 늘어놓아도 도저히 이 기분은 전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하에 대한 참다운 감사는 오직 셀즈리 주민에게 주신 행복과 이것에 의하여 촉진되는 그들의 사회적 결합에서 얻어지리라고 믿는 것만이 그것을 전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9월 21일에는 개관 축하의 밤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만사를 미루시고 참석해 주시면 더할나위없는 영광이겠습니다.
구세주 교회 보좌 신부
프랜치스 치셤
프랜치스는 흥분으로 긴자오딘 채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다. 편지의 내용은 감사의 뜻을 담았을 뿐이지만 프랜치스의 다리는 왠지 떨리고 있었다. 가정부 캬파티가 돌아온 이튿날 19일 점심 무렵에 키저 신부도 돌아왔다. 광천에서 원기를 회복하여 돌아온 그는 정력이 충만한 것 같았다. 그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시커먼 털투성이 몸으로 사제관이 좁다는 기세로 들어와선 큰 소리로 미스 캬파티에게 인사를 하고는 당장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명하고 주재중에 온 편지를 모두 읽었다. 그것이 끝나자 두 손을 비벼대면서 식당으로 당당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접시 위에 놓여 있는 봉투를 보고 봉함을 열더니 인쇄된 안내장을 꺼냈다.
"이건 뭐야?"
프랜치스는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이면서 용기를 내서 말했다.
"아, 그것은 이번에 새로 생긴 셀즈리 레크리에이션 클럽 개관 축하의 밤 초대장이 아닌 가요. 저한테도 와 있습니다만......"
"레크리에이션 클럽이라.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지?"
그는 팔을 쭉 뻗치고 얼굴이 빨개지며 초대장을 노려봤다.
"뭐야, 이것은?"
"대단히 근사한 클럽입니다. 저 창문에서도 보입니다." 프랜치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조지 렌쇼 경이 기증한 것입니다."
"조지 경이......"
키저는 놀란 표정으로 말을 끊고 성큼성큼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당당한 새 건물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서 있다가 자리로 돌아와선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몹시 시장해 서두르던 아까와는 달리 식욕이 가신 듯 가끔가다 실눈으로 프랜치스 쪽을 힐끔거릴 뿐 식사가 끝나도록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프랜치스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태도는 몹시 온순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확실히 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댄스 모임이나 남녀 공동의 레크리에이션을 신부님은 금지하셨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교구 사람들이 모두 협동을 하지 않았다던가 클럽을 배척하거나, 혹은 댄스 파티에 모이지도 않거나 하면 조지 경은 대단히 기분이 상하실 것 아닙니까." 프랜치스는 자기의 접시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목요일 개관 축하에는 조지 경도 오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키저 신부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막 구어낸 맛있는 비프스테이크가 마치 더러운 걸레 조각처럼 보이는지 먹던 것을 밀어 놓고는 초대장을 무섭게 찢어 버렸다.
"그런 더러운 악마의 축하 따위에 누가 나간단 말이야. 천만에 말씀. 알겠나, 절대로 가지 않을 테니 그리 알게."
그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러나 목요일 밤이 되자 그는 수염을 깎고 새하얀 목셔츠에 외출용 수단을 입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는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얼굴을 하고 축하식에 참석했다. 프랜치스는 그의 뒤를 따랐다. 새로 생긴 회관은 휘황한 등불과 흥분으로 들끓고 탄광의 노동자와 주민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단상에는 유지들이자리하고, 도날드 카일 부부, 탄광의 의사, 국민 학교장, 거기에 종파가 다른 교회의 목사 두 사람의 얼굴도 보였다. 프랜치스와 키저 신부가 자리에 앉아 와하고 환성이 오르더니 이어서 몇 마디의 야유가 있자 높은 웃음소리가 폭발했다. 키저 신부는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이빨을 갈았다. 밖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 군중들은 술렁대기 시작했고, 그 다음 순간 일동의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조지 경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예순 살 정도의 보통 키에 적당히 살찐, 대머리가 약간 벗겨진 백발의 노신사였다. 하얗게 쉰 수염에 혈색이 좋아 보였다. 노인들에게서 간간이 이렇게 눈에 띄게 건강한 얼굴을 볼 수도 있으나, 이처럼 백발이 두드러지게 훌륭한 느낌을 주는 것은 드물다. 복장도 태도도 온화한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러한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조지 경은 축하식의 진행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카일 씨로부터 환영의 말을 듣자, 이번에는 자기가 일어나서 짧은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어조로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이 매우 가치 있는 계획을 최초로 계획하신 분은 프랜치스 치셤 신부님이며, 직접 신부님의 창의와 광대한 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히 저는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만장은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박수 소리에 휩싸였으나 프랜치스는 빨개진 얼굴로 탄원과 후회가 뒤섞인 눈을 키저 신부에게로 돌렸다. 키저 신부는 기계적으로 손을 들어 내키지 않는 박수를 두어 번 쳤으나 얼굴은 험상궂게 일그러지며 쓰디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축사가 끝나고 장내가 조용해지자 댄스 파티가 시작되었다. 키저 신부는 선 채로 조지 경이 카일의 딸 낸시와 춤을 추고 있는 것을 잠시 바라보고 있더니 어느 사이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뒤를 쫓는 것처럼 바이올린의 연주 소리가 이어졌다. 프랜치스가 늦게 돌아와 보니 키저 신부는 불도 켜지 않은 응접실 의자에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앉아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활기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투지가 완전히 없어져 버린 모양이었다. 20년간 헨리 8세가 왕비를 갈아치운 것보다 많은 보좌 신부를 갈아치운 그는 이번에는 자기가 보좌 신부에게 쫓겨날 판국이 된 것이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우 입을열었다.
"자네의 일을 주교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네."
프랜치스는 가슴속에서 심장이 뒤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기세에 물러나지는 않았다.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키저 신부의 권위는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키저 신부는 우울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자네가 다른 데로 가는 것이 좋을 거야. 그것은 주교가 결정하는 일이지만 말이지. 피츠 제랄드 신부가 타인카슬 성당에 보좌 신부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한 것 같은데......자네 친구 밀리도 분명히 거기에 있을 텐데 말야......"
프랜치스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교구를 뒤에 두고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렇게 되기 마련이라면 자기의 후계자에게는 사태가 용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클럽은 계속 성황을 이룰 것이다. 아직 시작의 첫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니까 여러 가지로 변화가 있을는지 모른다. 자신을 결코 그것만을 자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거의 몽상가와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침착하고 낮은 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혹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시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싶었습니다......그 너절한 것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했습니다."
두 신부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키저 신부는 얼른 눈을 감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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