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8호 2023.6.27 월요일 (음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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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경험, 내일은 희망, 오늘은 경험을 희망으로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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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쓰는 왕자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생각과 취향은 어디에서 올까? 부질없는 욕심은 스스로 자라나는 걸까? 돈의 존재가 돈에 대한 생각을 부추기듯, 표준어의 존재는 표준어에 대한 열망을 부른다. 표준어 중심의 사회는 표준어를 추앙하게 만들었다. 사투리는 보존 대상일지는 몰라도, 욕망의 대상은 아니다. 사투리는 반격과 복권의 기회를 얻을까?
2년 전 포항의 독립출판인인 최현애씨는 여러 소수 언어로 <어린 왕자>를 번역하는 독일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 ‘경상도 사투리판’ <애린 왕자>를 펴냈다. 그해 가을, 언어학자 심재홍씨는 ‘전라도 사투리판’ <에린 왕자>를 냈다. 지난해엔 제주에서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이광진씨가 ‘제주도 사투리판’인 <두린 왕자>를 펴냈다.
이들 책은 결코 눈으로만 읽을 수 없다. 고유한 억양과 장단음을 섞어 소리 내어 읽게 된다. 비로소 말은 평평한 표준어에서 빠져나와 두툼한 질감을 갖고 출렁거린다. 정말 그런지 잠깐 읽어보련?
“니가 나를 질들이모 우리사 서로 필요하게 안 되나. 니는 내한테 이 시상에 하나뿌인기라. 내도 니한테 시상에 하나뿌인 존재가 될 끼고.”(경상도, <애린 왕자>)
“니가 날 질들이믄 말이여, 우덜은 서루가 서루헌티 필요허게 될 거 아닌가잉. 넌 나헌티 시상서 하나밲에 없게 되는 것이제. 난 너헌티 시상서 하나밲에 없게 되는 거고잉.”(전라도, <에린 왕자>)
“만약 느가 날 질들이민 그땐 울리는 서로가 필료허여지는 거라. 나신디 넌 이 싀상에서 단 호나인 거주. 너신디 난 이 싀상 단 호나뿐인 거곡.”(제주도, <두린 왕자>)
생각은 어디에서 올까? 다르게 말하면 다르게 생각한다.
얽히고설키다
일이나 관계, 감정 따위가 복잡하게 꼬여 있을 때 ‘얽히고설키다’란 말을 쓴다. 그런데 그 표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왜 ‘얼키고설키다’나 ‘얽히고섥히다’로 적지 않고 ‘얽히고설키다’로 쓰는 걸까? 같은 ‘키’ 소리가 반복되는데 앞의 것은 ‘히’로, 뒤의 것은 ‘키’로 적는다.
‘얽히고설키다’, 이 말의 표기엔 우리말 맞춤법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알면 다른 웬만한 것들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소리대로 적는다는 것은 ‘구름, 하늘’처럼 우리말의 발음에 따라 그대로 표기하는 것이다. 어법에 맞게 적는 것은 ‘구르미, 하느리’로 소리 나는 말들을 ‘구름이, 하늘이’로 구분해서 적는 것이다. 이것은 ‘구름’과 ‘하늘’에 ‘이’가 결합해서 그 말들이 문장의 주어 역할을 한다는 것을 쉽게 나타내 준다. 만약 소리대로만 적는다면 ‘구름과, 구르미, 구르믈’처럼 같은 뜻을 나타내는 말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적힐 것이다. 그러면 ‘구름과, 구름이, 구름을’로 적을 때처럼 뜻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읽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같은 뜻을 지닌 말은 항상 같은 형태로 적는 것이 어법에 맞도록 하는 원칙이다.
‘얽히고설키다’에서 ‘얽히다’는 ‘얽다’에서 온 말이다. ‘이리저리 관련이 되게 하다’를 뜻하는 ‘얽다’에 ‘히’가 붙어서 된 말이므로 어법에 맞게 쓰는 원칙에 따라 ‘얽히다’로 쓴다. ‘설키다’는 ‘섥다’가 우리말에 따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섥히다’로 적을 이유가 없다. 따라야 할 어법이 없으므로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설키다’로 적는다. 그래서 ‘얽히고설키다’란 표기가 생겨난 것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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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 - 한용운
세상은 비방도 많고 시기도 많습니다.
당신에게 비방과 시기가 있을지라도 관심치 마셔요.
비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태양에 흑점이 있는 것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대하여는 비방할 것이 없는
그것을 비방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조는 사자를 죽은 양이라고 할지언정,
당신이 시련을 받기 위하여 도적에게 포로가 되었다고
그것을 비겁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달빛을 갈꽃으로 알고 흰모래 위에서 갈매기를 이웃하여
잠자는 기러기를 음란하다고 할지언정, 정직한 당신이
교활한 유혹에 속아서 청루에 들어갔다고,
당신을 지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에게 비방과 시기가 있을지라도 관심치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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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석혼효(玉石混淆)
玉:구슬 옥. 石:돌 석. 混:섞을 혼. 淆:뒤섞일 효.
[동의어] 옥석혼교(玉石混交), 옥석동가(玉石同架), 옥석동궤(玉石同?).
[유사어] 옥석구분(玉石俱焚), 옥석동쇄(玉石同碎).
[출전]《抱朴子》〈外篇 尙專〉
옥과 돌이 뒤섞여 있다는 뜻. 곧
① 훌륭한 것과 쓸데없는 것이 뒤섞여 있음.
② 선과 악, 현(賢)과 우(愚)가 뒤섞여 있음.
동진(東晉:317~420)이 도사(道士)인 갈홍(葛洪:호는 포박자, 283~343?)은《포박자(抱朴子)》〈외편(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경(詩經)》이나〈서경(書經)〉이 도의(道義)에 대해(大海)라 한다면 제자백가(諸子百家:춘추 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의 글[書]은 그것을 보강하는 냇물의 흐름이라 할 수 있으며 방법은 달라도 덕을 닦는 데는 변함이 없다. 옛사람들은 재능을 얻기 어려움을 탄식하여 ‘곤륜산(崑崙山:중국 전설상의 산)의 옥이 아니라 해서 야광주(夜光珠)를 버리거나 성인(聖人)의 글이 아니라 해서 수양에 도움이 되는 말’은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漢)/위(魏) 이래 ‘본받을 만한 좋은 말[嘉言]’이 많이 나와 있는데도 식견이 좁은 사람들은 자의(字義) 해석에만 사로잡혀 오묘한 점을 가볍게 보며 도외시한다. 또한 소도(小道)이므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거나 넓고 깊어서 사람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티끌이 쌓여 태산이 되고 많은 색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이룬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다. 또 천박한 시부(詩賦)를 감상하는가 하면 뜻 깊은 자서[子書:제자(諸子)의 서(書)]를 가볍게 여기며 유익한 금언(金言)을 하찮게 생각한다. 그래서 참[眞]과 거짓[僞]이 전도(顚倒)되고 ‘옥과 돌이 뒤섞이며[玉石混淆]’ 아악(雅樂)도 속악(俗樂)과 같은 것으로 보고 아름다운 옷도 누더기고 보니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주] 갈홍 : 동진의 도사. 강소(江蘇) 사람. 자는 치천(雉川), 호는 포박자(抱朴子), 소갈선옹(小葛仙翁)이라 불리기도 함. 고학으로 유학(儒學)을 배웠으나 신선술(神仙術)에 통달한 재종조부(再從祖父:할아버지의 사촌 형제) 갈현(葛玄:별명-갈선인)의 영향을 받고 갈현의 제자 정은(鄭隱)으로부터 연단(煙丹)의 비술을 전승함. 동진의 시조(元帝:317~322)가 진(晉:西晉)나라 승상으로 있을 때 무공을 세워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짐. 만년에 교지(交趾:북베트남)에서 단가[丹砂:주사(朱砂)-수은과 유황의 화합물]를 채광하여 선약(仙藥)을 만들었다고 함. 평소부터 갈홍을 흠모하던 광주 자사(廣州刺史) 등악(鄧嶽)이 “스승을 찾아 멀리 떠날까 하네.”라고 쓴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가 보니 앉은 채로 죽은 갈홍의 얼굴색은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입관(入棺)할 때의 시체도 부드럽고 가벼웠다고 함. 그래서 세인은 61세로 세상을 떠난 갈홍이 껍데기인 시체만 남겨 놓고 신선이 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함. 저서로는 신선의 도를 설(說)한 내편(內篇)과 정치/도덕을 논한 외편(外篇)의《포박자》《신선전(神仙專)》등이 있음.(283~343).
연단(煉丹) : 도사(道士)가 단사로 황금이나 선약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 연금술(鍊金術)의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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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 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2. 아스클레피오스
플레슈아스의 딸 코로니스는 아폴론과 신의를 저버리고 이스큐스와 관계 하였다. 이것을 전해들은 아폴론은 백조 크로우(Crow)에게 그녀를 감시하라고 지시하였으나 허사로 돌아가자 감시를 소홀히 한 이유를 물어 백설 같은 크로우를 까만색의 까마귀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이스큐스는 아폴론이, 코로니스는 아르테미스가 사살하였는데, 화장할 때 코로니스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음을 안 아폴론은 태에서 아들은 구해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Aesculapius)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켄타우로스족의 케이론에 맡겨 길렀다. 아스쿨레피오스는 커 가면서 약초와 치료하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또 다른 탄생설도 있다. 즉 에피다우로스 사람들에 따르면, 코로니스의 아비 폴레규아스는 그리스의 용맹한 무사들을 모아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시를 건설하고 다시 에피다우로스를 넘보기 위하여 딸을 데리고 신분을 감춘 채 지세와 군력을 염탐하였다. 그런데 딸 코로니스가 아폴론의 아이를 가진 뒤 아비 몰래 아기를 낳고 티티온 산에 내버렸다. 그러나 버려진 아기는 암산양의 젖을 먹고 살아났으며 이것을 목격한 목동 아레스타나스가 아기를 끌어안으려 했으나 광채가 사방으로 비치니 놀라 손을 대지 못하였다. 목동은 신비한 일에 참견하는 것을 삼가고 겸손히 물러났다. 아기는 아폴론의 가호 아래 성장하여 아폴론과 케이론으로부터 질병의 치료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메세네 사람은 아스클레피오스가 트리카 출신이라 하고, 아르카 출신이라 하고, 아르카디아 사람은 텔푸사 출신이라고도 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외과처치와 약처방이 신묘하여 의술의 창시자로 존경받고 있다. 병치료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아테나가 준 고르곤 자매 메두사의 피가 들어 있는 두 개의 약병도 지니고 있었다. 우측 정맥에서 받은 피는 죽음에서 생명을 소생시키는 효력이 있었으며 좌측에서 받은 피는 사람을 즉사 시키는 효력을 갖고 있었다. 다른 설에 의하면 아테나와 함께 메두사의 피를 나누어 가졌는데 아스클레피오스는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하고 아테나는 죽이는 데 사용하여 싸움을 부추겼다고 한다. 아테나는 이미 피 두 방울을 에릭토니움에게 주어 한 번은 죽이고 또 한 번은 살렸다고 한다. 이 약병은 데리고 있는 뱀의 몸에 황금끈으로 매어져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 예로는 류쿠르고스, 오아파네오스, 튠다레오스, 글라우코스, 히폴류토스 등이 있다. 이 때문에 명계의 하데스는 제우스에게 아스클레피오스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았고, 결국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일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제우스는 그를 벼락으로 쳐서 죽게 하였다. 아들의 죽음을 안 아폴론은 격분하여 제우스에게 벼락을 만들어 죽게 하였다. 아들의 죽음을 안 아폴론은 격분하여 제우스에게 벼락을 만들어 준 큐클로페스를 참살하여 복수하였다. 그러나 아폴론은 이 일에 대한 속죄로서 아드메토스 왕의 양치기로 9년간을 일하였다. 제우스는 그 후 아스클레피오스를 다시 살려내었고 일찍이 케이론의 딸 에우이페가 예언한 바와 같이 신으로 숭배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에피오네와 결혼하여 마카온과 포달레이리오스의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 다 의술을 익혀 트로이 공략 때 그리스측에 참가하여 부상병을 치료하였다. 후기에는 그의 소생으로 휴기에이아, 파나케이아, 이아소 및 아케소도 첨가되었다. 휴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는 원래 만물에 젖을 주는 모신 레아의 두 쪽 유방을 지칭하는 명칭인데 아스클레피오스의 숭배자가 이를 화신시켜 의신의 딸로 추앙하였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은 그리스 세계에 널리 세워졌고 에피다우스에는 기원전 8세기부터 신전과 극장 및 경기장이 건립되어 병치료와 건강을 위한 축제 및 행사가 대를 이어 거행되었다. 뱀을 성스러운 동물로 믿어 아스클레피오스의 단장에는 뱀이 감겨 있고 현재도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원전 3세기 아스클레피오스 숭배가 에피다우로스에서 로마로 건너갔을 때 뱀을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여 뱀의 모습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원래 의미는 끊임없이 자비롭다는 말이다. 소아시아 페르가몬에서는 나라 최고의 주신으로 모셨다.
[아스클레피오스, 그의 상징인 한 마리의 뱀이 감겨있는 지팡이가 보인다.]
마카온과 포달레이리오스
마카온과 포달레이리오스(Machaon & Podaleirius)는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 형제이다.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메로페의 딸 에피오네라고 하지만 다른 설에는 아르시노에, 크산테, 람페티아(헬리오스의 딸) 혹은 심지어 코로노스라고도 한다. 테살리아의 세 도시, 즉 트리카.이토네.오이칼리아를 통치하고 있던 이들 형제는 모두 헬레나의 구혼자였으므로 트로이 원정에 동조하여 30척의 병선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하였다. 아비로부터 치료술을 전수받은 형제는 전쟁중에 의료 활동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하여 부상병과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테레포스의 상처, 판다로스의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한 메넬라오스도 치료해 주었다.
마카온도 파리스가 쏜 화살에 어깨를 맞아 부상을 당하여 곧 네스토르 진영으로 부축되어 헤카메데의 간호를 받았다. 헤카메데는 아킬레스가 테네도스에서 포로로 끌고 와 후에 네스토로에게 배당한 낭자로 간호술에 뛰어난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마카온은 필록테테스의 상처(헤라클레스의 유언을 어긴 벌로 발에 큰 부상을 입었다)도 포달레이리오스와 함께 치료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전투에서도 용감성을 발휘하여 목마용사 명단에 끼여 있었는데 트로이 전쟁 막바지에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 혹은 텔레포스의 아들 에우류퓰로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도 한다. 후에 네스토르가 그 유골을 메세니아 마을 게레니아로 가져가 매장해 주었다. 트리카에는 포달레이리오스와 합동으로 추모하는 사당이 세워졌다. 마카온은 디오클레스의 딸 안티클레이아와의 사이에 니코마코스의 고르가소스의 두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의업을 계승하였다. 그 밖의 아들로는 알렉사노르, 폴레모크라테스, 스퓨로스 및 알콘 등이 알려져 있다.
외고 의술에 능한 마카온에 비해 포달레이리오스는 유능한 내과의사로 전해지며 특히 10년 전쟁 중에 매우 많은 환자를 치료하였다고 추측된다. 아킬레스 장례식의 추모경기에서 벌어진 권투시합으로 심한 상처를 받은 아카마스와 에페이오스(목마를 조립한 파노페오스의 아들로 월등한 역사였으나 전사로는 시원찮았다)의 응급처치를 해준 것도 바로 그였다. 형보다 더 오래 살았던 그는 후에 형의 죽음에 대해서도 복수하였다. 트로이 함락 후에는 원정군 최대의 예언자 칼카스와 암필로코스, 라피테스족의 용사 레온테오스(목마에 들어간 용사)와 폴류포이테스(피리투스의 아들로 수백 명의 적을 쓰러뜨리고 목마에도 참가한 용사)와 함께 육로를 택하여 이오니아의 콜로폰에 와서 머물렀다. 그 곳에서 칼카스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원래 칼카스에게는 자신보다 현명한 예언자를 만나게 되면 죽게 될 것이라는 계시가 있었다. 칼카스는 그 고장에서 테이레시아스의 딸 만토의 아들인 몹소스의 초대를 받았다가 알아맞추기에서 뒤지고 다시 예언에서도 패배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포달레이리오스가 그리스에 와서 델포이에 정착할 고장을 물었더니 신탁이 내려준 답은 "하늘이 그대의 주위를 둘러싼 지역이면 아무 어려움 없는 곳"이라 하였다. 그러한 고장이 바로 산 언덕이 둘러앉아 하늘과 땅의 지평선이 주위를 둥글게 에워싼 카리아의 케르소네소스 반도였고 그는 여기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카리아 해안에서 만난 폭풍에 날려 해안으로 떨어진 포달레이리오스를 양치기가 구하여 그 지역의 왕 다마이토스에게 데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마침 지붕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고 신음하는 왕의 딸 슈르나 공주를 포달레이리오스가 치료해 주어 왕은 기쁘게 그를 왕실에 받아들였다. 공주의 상처가 완치되자 왕은 그를 딸과 결혼시켰고, 포달레이리오스는 카리아 반도를 할애받아 부인의 이름을 붙인 도시 슈르노스를 건설하였다 한다. 포달레이리오스는 소아시아와 테살리아에서 명의로 이름을 떨치며 크게 존경을 받았다. 이탈리아 드리온 산록에는 이 포달레이리오스의 사원이, 산마루에는 칼카스 사원이 있는데, 이 두 성소에서는 검은 숫양을 공양하고 양피를 덮고 자면 꿈에 예언을 받는다고 전해진다.
[포달레이리오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이다. 형제인 마카온과 함께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아카이아 연합군 소속으로 테살리아 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아버지에게 의술을 배워서 마카온처럼 그는 매우 뛰어난 의사였다. 신탁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이 필요했는데 그 활을 가지고 있던 포달레이리오스는 필록테테스를 치료했다고 한다.]
3. 크로이소스
크로이소스(Croesus)는 메름나다이 민족(가계)의 5대로 마지막 왕이며, 리디아를 통치한 알류아테스 2세의 아들이다. 인류가 나타난 이래 최고의 부자로 이름 높으며 그리스의 동방에서 리디아까지 지배한 최초의 왕이다. 궁성은 배움의 전당이 되고, 저명한 철학자나 우화작가인 아이소포스(이솝)을 위시하여 많은 인재를 환대하였다.
그는 철학가 솔론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인류의 가장 행복한 인물로 추앙해 주기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솔론은 이는 잘못된 생각이며 "죽음이 올 때까지 아무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며 검소와 미덕을 중시해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후에 그는 페르시아의 왕 큐도스에 도전하여 42만의 군대와 6만 필의 군마를 이끌고 페르시아를 침입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548년 대패를 당하여 수도는 함락되고 스스로는 포로가 되어 생화장에 처해지게 되었다. 장작더미에 불이 타오르자 승리한 군주 큐로스는 불 속에서 크로이소스가 슬픈 목소리로 세 번이나 "솔론!"하고 부르짖는 것을 듣고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이 때 크로이소스는 과거 그가 철학자 솔론과 나누었던 인간의 행복에 관한 대화를 이야기 하였고 그 말에 감동한 큐로스는 모든 인간사가 순간적임을 깨닫고 크로이소스를 살려주고 절친한 친구로 대하였다. 어쨌든 리디아 제국은 멸망하여 페르시아에 종속되고 크로이소스도 큐로스의 나라에서 살았으나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크로이소스는 인간으로서 최대의 부를 누린 인물로 선망되었으나, 할류스 강을 넘어가면 위대한 제국이 파멸할 것이라는 델포이의 신탁대로 결국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솔론에게 보물을 보여주는 크로이소스, 유화]
오라클
오라클(Oracle, Oraculum)이란 신탁, 탁선 혹은 신탁이나 계시를 받는 곳을 의미한다. 인간의 물음에 대한 신의 답변인데, 신탁은 대개 애매하여 어떤 방향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 사람들은 나라의 중요한 일에서부터 개인의 사소한 생활까지 일일이 신탁을 받았다. 따라서 델포이, 델로스, 도도나, 암몬 등에 이름난 신탁소가 있었고 전성기에는 그리스 세계 도처에 신탁소가 생겨 보이오티아에는 25개소나 되었으며 이는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신탁소 수와 맞먹었다. 신탁은 6보격 시문이나 여러 형태의 암시, 예컨대 참나무잎의 소리나 조각상 머리의 끄덕임, 또는 호수에 있는 물고기의 헤엄으로도 지시되었다. 그러나 신탁은 신의 의지를 전달해 주는 매개체였을 뿐이고, 원래 신은 무슨 일이 닥칠 것인가를 명확히 진술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숨기지도 않았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사제나 여사제를 매수하여 원하는 신탁을 받는 타락행위까지 있었다 신탁을 잘못 판단한 예로는 크로이소스의 일화가 유명하다. 즉 만약 할류스 강을 건너게 되면 위대한 제국이 멸명하리라는 델포이의 신탁을 받고 그 제국을 적국으로 해석하였으나 불행히도 멸망한 것은 자신의 제국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신탁을 전한 사제들이 그리스 사회의 생활양식을 지속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적어도 페리클레스 시대에 오면 식자층 그리스인은 신탁을 다만 공식 종교의 일부로만 시인할 뿐 믿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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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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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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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경이로운 인간의 능력이다. 우리는 시나 소설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부모의 방해를 극복하는 장면을 읽으면 커다란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을 위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은 다른 어떤 일보다 고귀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거의 모든 시나 소설에서 기본적인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 사랑하는 연인이 행복을 위협 당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연인의 사랑은 매장 당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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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위대하다. 사랑의 가치는 바로 이 희생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때때로 사랑은 연인에 대한 증오심과 결합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생기는 증오심은 버리기가 몹시 힘들다. 사랑이 깊은 만큼 증오심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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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다른 사람을 내 방식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자신의 삶을 보다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사랑의 유형은 서로 생명을 줄 수 있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을 나누는 사랑의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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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을 한 사람은 삶이 차가운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하는 슬픔을 대가로 치른다. 결혼을 하면 연애 시절의 환상은 깨어지고 현실의 벽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사랑의 환상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러나 중매로 결혼을 한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슬픔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 결혼은 환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파탄에 빠지는 경우가 드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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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영원한 생존에 대한 의지의 발현이다. 우리의 사랑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통해 계속 이어진다. 새로운 생명을 존속시키려는 의지 앞에서는 죽음도 그 힘을 잃는다. 우리의 인생은 궁핍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며 불행을 피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면서도 생존의 순간이 조금이라도 더 유지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남녀가 서로 애정의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인류의 생명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영원한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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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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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 30년 - 이영신
제 1 부 쿠데타의 새벽 (1)
1. H아워에 출동하라!
"참모장, 부사단장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알았으면 하는데 참모장이 알고 있는 대로 얘기해 봐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갑영이 작전참모 이백일에게 포섭되었다고는 하나 핵심세력과의 접촉이 없었다. 그러니 박상훈 이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가 말하는 대강의 내용은 박상훈의 얘기와 같았다.
"각하, 오늘 밤 행동개시 직전, 30사단장과 6관구 사령관 숙소를 포위해서 두 분을 감금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상국의 가슴이 섬뜩해지는 정보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나하고 서종철 장군을?"
"네."
이상국은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 친구가 나하고 서 장군을 체포해서 직결처분해 버리기로 되어 있는 것을 에누리를 해서 말한 것은 아닐까?) 그런 느낌도 들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쿠데타를 모의한 자들로서는 으레 그런 계획을 세울 만한 일이었다.
1936년 2월 26일. 일본의 국수주의적 사건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총리대신 고나저로 침입, 경비장관 4명을 사살 또는 찔러 죽이고, 총리대신 오까다 게이스께(岡田啓介)를 일도양단하려 했으나 그가 재빨리 몸을 숨기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자, 대신 그의 매부 마쯔오 덴조오(松尾傳藏:예비역 육군 중령)을 사살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 내대신(內大臣)사이또오 마꼬도(齊藏實)를 죽이려다가 중상을 입혔고, 육군 교육총감 와다나베 죠오따로오(渡邊錠太郞), 오오꾸라 대신(재무대신), 다까하시 시세이(高橋是淸) 등을 사살했다. 쿠데타란 이런 것이다. 쿠데타의 원인 제공자 그리고 방해꾼이 될 만한 자는 죽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상국은 생각해 보았다. 제6관구 사령관 서종철은 수도를 경비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이고 이상국은 그 임무를 분담하고 있는 제6관구 휘하의 제30사단장이다. 쿠데타 모의자들이 서종철하고 이상국을 제거하려 들 것은 상식이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제30사단이 쿠데타 행동부대로서 출동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금이 아니라 직결처분해 버리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그놈들이 언제 내 부대에 마수를 뻗쳤지?) 이상국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물었다.
"무슨 일을 치르겠다는 거요?"
"글쎄 말입니다."
이갑영의 대꾸는 다분히 애매모호하기만 했다.
"딴생각 말고 참모장이나 부사단장은 모두 내 지시에 따르도록 하시오."
이상국은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지프는 어느덧 화신 앞을 가로질러 광교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반도호텔 809호실 장면의 거실에는 밖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각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고 있었다.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밤 8시.
필동 연합참모본부 앞에 자리잡고 있는 아스토리아호텔 커피숍에는 육군 대령 계급장을 단 제6관구 사령부 참모장 김재춘이 구석진 곳에 앉아 시켜놓은 커피를 마실 생각도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비장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성공하면 모르되 만일 실패할 경우 내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아니 내 운명은 어찌돼도 좋다. 사나이로 태어나 신념에 살다 죽는다면 그 이상 영광되고 보람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될 것이 아니겠는가?) 김재춘은 가족의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쑤셨다. (제발, 제발 성공해 다오!) 그는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어쩌면 오늘 내일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다. 문득 동기생 동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일었다. 그는 그의 동기생 동지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이었다. 제12사단장 육군 준장 박춘식(朴春植), 국방대학원 육군 준장 송찬호(宋贊鎬), 제5사단장 육군 준장 채명신(蔡命新), 문재준(文在駿), 제2군사령부 공병참모 육군 대령 박기석(朴基錫), 제1공수특전단 단장 육군 대령 박치옥(朴致玉), 육군항공학교 교장 육군 대령 이원엽(李元燁), 육군보병학교 참모장 육군 대령 최재명(崔載明) 등 같은 5기생들이지만 벌써 선두그룹은 별을 달고 <장군(將軍)> 칭호를 듣고 있었다. 누가 먼저 별을 달고 안 달고 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김재춘은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태반의 5기생들은 육군 소령으로서 대대장직을 맡고 실전 경험을 쌓아 갔었다.
5기생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그들 5기생들이 육군사관학교에 4기생까지는 일본군을 위시해서 만주군, 광복군 등 군사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입교했었으나 5기생부터는 군사경험이 없는 민간출신자들 중에서 뽑았었다. 이때 5기생으로 입교한 사람은 모두 380명. 만 9개월간의 교육훈련을 받고 그들이 육군 소위로 임관한 것은 1948년 4월 6일이었다. 6.25 전쟁 때 그들이 벌써 육군 소령으로까지 진급해 있었던 것은 한국군의 성장속도가 그만큼 빨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이 휴전으로 매듭지어진 1953년 7월에는 벌써 빠른 사람은 대령으로 진급한 사람들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진급이 더디기 시작했다. 인사적체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담하게 되었던 것도 인사적체의 불만도 구실의 하나가 돼 주고 있었다. 표면에 내세운 명분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그건 그렇고, 김재춘의 경우에는 언젠가는 별을 달게 되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은 진급문제에 그리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제발, 제발 좀 성공으로 이끌어 다오.) 김재춘은 거듭 빌고 또 빌고 있었다.
밤 8시, 같은 시각. 해병 여단장 김윤근은 제2연대장 해병 대령 박승도(朴承道)와 여단 작전참모 정태석, 두 사람을 여단장실로 불렀다.
"두 사람을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오. 나는 오늘 오정근 대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그는 오늘 밤의 거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두 사람의 눈이 놀라움에 휘둥그래졌다. (쿠데타, 쿠데타를 한다고?) 두 사람은 숨이 닥 멎어버리는 듯한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김윤근은 어떻게 해서 쿠데타에 가담하게 됐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두 사람은 자못 긴장해 있으면서도 김윤근의 쿠데타론을 긍정하는 눈빛이었다. 설명을 끝내고 나자 김윤근은 명령했다.
"나 없는 동안 여단 지휘를 박 대령이 맡아 해주시오."
그러자 박승도는 상기된 얼굴로 간청하는 것이었다.
"여단장님, 부대 지휘는 다른 사람한테 같이 하도록 해주십시오."
"저 역시 똑같은 심정입니다. 저도 거사부대에 합류시켜 주십시오."
정태석도 간청하고 나섰다.
"고마운 일이오만, 두 사람이 여단지휘를 맡아줘야 내가 안심하고 나갈 수가 있단 말이오!"
김윤근은 좋은 말로 두 사람을 달랬다. 박승도와 정태석이 물러나자 김윤근은 부관 홍경식(洪景植)을 불러,
"지금부터 숙소로 돌아가서 잠시 눈을 붙일 테니까 11시 정각에 깨우도록 해."
하고는 여단장실을 나섰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이것이 해병대의 슬로우건이다. 이런 정신으로 뭉쳐져 있기 때문이었을까? 이날 김윤근은 두 사람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쿠데타 계획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쿠데타에 가담해 있는 주체가 휘하의 부하에게 쿠데타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간접으로나마 협력을 구했던 사람은 오직 김윤근 한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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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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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욕망 - 마르틴 콜랭
제1부
정념passion을 극복하라
욕망:영혼과 육체간의 매개
이러한 설명은 욕망-원래 육체에 밀착되어 있던-이 영혼의 지배에 종속되는 순화작용으로, 욕망은 그의 힘을 유지하면서 아름다움이라는 망망한 바다의 거대한 수평선을 향해 눈을 뜨는 진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작용양식을 바꾸면서도 욕망의 본성은 남아 있는가? 육체에 연결되었던 관계가 그 본성이 바뀌지 않고도 단절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육체에 대한 욕망의 관계가 욕망 자체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우유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욕망은 정념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육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욕망은 본능에 의해 영혼을 육체에 복종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떠한 관계에 의해 육체가 영혼을 구속하고 육체의 법칙, 즉 그 무질서함에 복종하게 되는가? 보통은 욕망과 정념들에 의해 가능하다. 그런데 욕망이나 정념은 육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파이톤"의 몇몇 페이지를 참조하자:"육체는 우리에게 수많은 장애를 일으킨다. 애욕과 욕망, 공포로 우리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육체는 욕망으로써 그를 유혹한다" 위의 참조문들은 욕망의 근원에 대해 애매함을 이야기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문헌 전체로 보면 욕망은 영혼의 표현임을 보여준다. 욕망의 본성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육체적 욕망"이란 표현은 그 대상(근원이 아닌)이 육체인 욕망, 그 실행이 육체적인 욕망이란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쾌락, 고통, 공포에 대하여 플라톤은 이렇게 썼다.
"좀더 높은 관점에서 영혼이 육체의 구속에 속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감정내에서가 아닌가?-어떻게 말할까?-모든 쾌락과 모든 고통은 일종의 못을 가지고서 영혼을 육체에 못박아 영혼이 육체 위에 붙박혀 있도록 한다. 그 결과 영혼은 하나의 유형을 가지고 육체가 주장하는 대로 사물의 진리를 판단한다" - 플라톤, "파이돈"
문헌의 끝부분은, 욕망이 환상과 무지에 관련되었다는 중요한 문제를 끄집어 낸다. 앞에서는 육체적인 욕망의 본성과 기능이 강조되었다:욕망이란, 애정을 본떠 "향연"에서의 정의를 따르자면, 육체와 영혼 사이의 매개물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대상이 감각적인 것이라면-예를 들어 아름다운 육체라면-이러한 욕망의 형태는 육체에 의해 감지된다. 그러나 그 표상은 영혼 안에 있어서, 영혼을 사로잡을 때까지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욕망은 욕망을 느끼게 하는 육체를 향한 육체의 충동으로 감지될 것이고 영혼은 혼란되어져 심지어는 욕망에 굴복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절차에 의해 욕망은 영혼의 문지기가 되며 영혼은 육체적 욕망의 매개에 의한 육체와의 접촉으로 흘려지며 마비된다.
영혼의 문지기인 욕망
그러므로 영혼을 육체 쪽으로 완전히 유인해 가는 것은 욕망, 즉 영혼의 표상이다. 이는 본성에 대한 전복이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있을 때, 본성은 후자에게는 예속과 복종을, 전자에게는 명령과 지배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영혼은 육체가 시키는대로 움직이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무절제로 빠지게 된다. 욕망의 결과로 스스로 멸망해 버리는 영혼에 관해서는 "파이돈"에 요약되어 있다.
"그들의 영혼이 철학의 손아귀에 잡혔을 때엔, 육체 안에 얽어 매어지고 육체에 달라붙게 된다는 것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육체는 영혼에다 일종의 울타리를 쳐놓고, 영혼이 자신의 방식대로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울타리를 통해서만 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영혼은 완전히 무지해진다. 그런데 철학이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매우 놀랍게도 이 울타리는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의 사슬에 영혼을 연결시키는 데 가장 많이 기여한 것도 욕망 자체일 것이다" - 플라톤, "파이돈"
육체와 밀착된 영혼은 그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알지 못하게 된다.
"영혼이 항상 함께 하는 것은 육체이며 영혼이 마음을 쏟고 사랑하는 것도 바로 육체이다. 육체는 그의 욕망과 쾌락으로 영혼을 매혹시켜 버려서 그 결과로 영혼은 형태를 갖는 것,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먹고 마시며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불분명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반대로, 철학에 의해서는 이해되고 포착된다. 영혼이 늘 증오하고 두려워하면서 피하려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플라톤, "파이돈"
그러므로 육체와 영혼이 대립하는게 아니라 영혼의 내부에 두가지 욕망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육체적 욕망과 진리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그 대상과 결과가 감각적인 육체적 욕망은 영혼 전체를 동요시키고 꼼짝못하게 가두며 심지어 지배하기 까지 한다. 육체에 대한 이 독특한 욕망은 영혼을 타락시키고, 그렇게 되면 영혼은 더 이상 그 욕망의 유일한 목표인 진리를 연구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를 소유하고, 우리의 영혼이 이런 좋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지는 한에서 우리는 절대로 욕망의 대상을 마음껏 소유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대상을 우리는 진리라고 부른다. 실제로 기본적인 욕구에 관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근심거리가 육체에 의해 야기될 뿐 아니라 여러 병폐 또한 닥쳐온다. 이것은 우리에게 현실을 좇는 데 있어 새로운 방해가 된다. 애욕, 욕망, 공포, 모든 종류의 상상, 셀 수 없이 많은 부질없는 것, 이러한 것들로 우리를 가득 채워서 우리는 육체에 의해(이 말은 정말로 흔하게 쓰인다) 진실로 양식 있는 어떠한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절대로 생각할 수가 없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전쟁, 불화, 알력을 일으키는 것은 육체와 탐욕밖에 없다. 부의 소유는 실제 모든 전쟁의 근원이 된다. 만약 우리가 이 부를 손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면 이는 육체 때문이고 우리가 부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는 게 된다" - 플라톤, "파이돈"
육체에 연결된 욕망은 주권을 잡으려고 한다. 육체의 요구는 이 맥락에서 단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야망(상상을 전제로 하는), 또는 더욱 쾌락을 위한 더 큰 영예나 더 큰 부에 대한 추구이다. 따라서 육체에 대한 광기는 인간의 행동에 있어서의 규칙처럼 작용하여, 이 인간은 종 노릇에 고용된 하인이 된다. 그의 규칙 엄수는 타락하고 그의 명분, 그의 양식, 그의 목표에 대해 장님이 된다. 그리하여, 거기에 열중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속박이 부추기고 계속 유지되도록 하여) 영혼과 육체에 대한 정당한 -조화스러운- 관계를 뒤엎어 버린다. 영혼이 마비되고 사고가 극도로 황폐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영혼이 육체와 전혀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도록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육체의 호의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한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육체적 욕망을 멀리 해야만 한다. 육체에 관계하는 욕망(배고품, 목마름, 부, 명예, 생존하고자 하는 욕망 등)은 강제로 그 대상을 향해 끌려 가며 무질서의 힘을 형성한다, 이 욕망은 끊임없이 질서의 힘을 위협하고 진리로 향해 나아가려는 영혼의 고유한 욕망을 억누른다. 실제로 격렬한 감정에 의해 정념은 환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을 망가뜨리고 지배하며, 육체와 가깝게 만들어서 무기력해지도록 한다. 그래서 정념에 들뜬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이 공상적인 것이든지 일반적인 헛된 환상이든지간에, 그것이 현실로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환상과 망상적인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들뜬 마음은 이것들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완전히 미혹되고 그 힘을 잃어버린 영혼은 상위의 악에 대한 먹이가 된다. 그러므로 가장 큰 악은 정념 자체로서, 이는 맹목과 무절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정념은 영혼으로 하여금 실제로 현존하는 대상, 즉 이데아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으며 상상 속에서 좋아 보이는 것이 실재한다고 믿도록 영혼을 흥분시켜서 빗나가도록 한다. 육체에 대한 접촉은 영혼이 그의 고유한 욕망, 즉 진리를 추구하고 그의 독특한 힘(지적 작용)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없애 버려야 할 족쇄가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잘 알기 위해서, 또 영혼 그 자체 속에 혼자 자발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영혼은 더러움을 스스로 정화시켜야 한다. 깨끗해진 영혼은 정화된 것, 즉 이데아를 포착할 수 있다.
육체적인 욕망들, 즉 정념을 거절해 버리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는 그 상호작용이 각각의 무절제한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반대 정념의 작용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념에는 조절 및 이로운 효과도 있다고 보겠다. 실제로 정념은 그 반대되는 것들의 작용에 의해서 조절될 수 없는가? (희망은 공포를 없애 주지 않는가?) 혹은 그것이 반대되는 것으로 전환될 수는 없는가? (불안이 용기로 전환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일종의 불규칙이 그들의 절제 원칙이 되지는 않는가?" "쾌락에 대해서 불규칙을 속박이라고 해도 소용없지만 이는 사실이다. 어떤 쾌락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결국 다른 쾌락을 지배하게 된다" - 플라톤, "파이돈"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이론에다 급격한 전환의 필연성을 대립시킨다.
"아마도 이 모든 정념들의 정화가 절제와 정의, 용기를 이룬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사고자체가 정화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 플라톤, "파이돈"
그러므로 진정한 덕은 학문이며, 그것이 어떤 학문이든 정념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부정한 정념도, 덕스러운 정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념과 덕은 무지와 지식처럼 서로 대립한다. 그러나 이 대립자들은 영혼의 발전단계에 있어서의 양극을 구성하고, 그의 임무는 점진적으로 먼저의 것에서 나중의 것으로 고양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욕망은 중요한 추진자 역할을 한다. 욕망은 영혼이 진리로 향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홀가분한 영혼(육체의 사슬에서 풀려났으므로)의 순수하고 정화된 욕망은,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이 불합리하고 탐욕스러운 부분을 이길 때에만 효과적이다. 영혼의 내부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그 결과로 무절제나 절제, 속박과 자유, 의견이나 인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성과 욕망의 투쟁
어떻게 이러한 힘이 영혼 속에서 생겨나는가? 영혼은 자기 속에 머물면서 그 힘의 내부로부터 서서히 침식해 들어오는 욕망과 싸울 만한 충분한 힘을 자발적으로 갖고 있는가? 이러한 투쟁의 양식들에 대해, 플라톤의 "공화국"에서 우선 목마름이라는 육체적 욕망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만약 목마른 사람이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면 그의 마음속에 두가지의 원리가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1. 그를 욕망하도록 만드는 원리, 2. 이 욕망에 대해서 저항하도록 시키는 원리.
"그런데, 이런 경우에 있어서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만약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 이론적인 생각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반대로 영혼을 인도하고 유인하는 행동들은 건전하지 못한 감정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지각된 인상의 결과에 의해서도 나타나는가? 물론 그렇다. 그러므로 영혼 속에는 두 가지 기능이 존재하며, 이 기능들은 서로 구분된다. 그래서 영혼의 기능 중, 이론적인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이치에 맞는다고 말하며, 영혼이 사랑을 하고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며 자기의 다른 욕망에 대한 격정을 체험하게 하는 것을 이치에 맞지 않고 욕구적이다라고 하고, 이 기능이 요구충족과 기쁨을 동반한다고 보았다"
- 플라톤, "공화국"
영혼 속에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기능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두가지 기능의 결과를 알고 있으며, "동일한 주체가 자신의 동일한 부분 속에서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반대되는 사물을 자신이 행하는 동시에 받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플라톤, "공화국"
그렇지만 영혼 속에서 이렇게 이성적인 부분과 탐욕스런 부분이 대립하는 사건은 세번째의 작용이 개입하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극복하도록 돕지 않는다면 발생할 수 없다. 실제로 이성은 욕망의 강함 때문에 마비되어져 우세해지지 못하고 짓눌려져 버린다. 그러므로 이 각각의 부분 사이에는 어떠한 동맹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기개 또는 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격렬한 행동원리이다. 이 원리는 비록 본래부터 이성보다 욕망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은 그 자체로는 소란스럽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것으로서 적절한 교육을 받게 되면 강력한 힘을 내주는 이성과 결합하게 된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이 그의 격렬한 욕망에 의해 이성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되었을 때엔, 그 자신을 모욕하고 그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을 향해 화를 내며 그 폭력을 감수한다는 것을 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이 두 부분 사이의 투쟁에 관계하기 때문에 이성이 그를 자극시키는 강렬한 감정 속에 결합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플라톤, "공화국"
문헌은 합리성과 나아가 덕을 돕기 위해 그 원래의 것들을 버리는 이 세번째 요소가 구성되는 것은 욕망 자신의 양분에 의해서라고 말한다. 이런 격렬한 생동감은 육체적인 욕망을 억누르면서 영혼을 고양시킨다. 이것은 그의 힘이 영혼의 합리성과 결합하는 것이 모든 욕망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육체적 욕망을 진리에 대한 열망으로, 즉 육체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린 단독의 영혼에 의해 움직여지는 욕망으로 전환시키려는 목적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파이드라"의 훌륭한 설명이 이 싸움을 비유적으로 언급한다:하나는 유순하고 다른 놈은 난폭한 두 필의 말이 끄는 수레의 마부는 진리를 향하는 힘과 시선에 의해 정념을 나타내는 놈을 복종시켜야 할 것이다.
"더욱더 난폭하게 그 마부는 재갈을 뒤로 벗기고는 사나운 말의 이를 뽑아 버려 그놈의 성난 주둥이와 턱을 피투성이로 만든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여러 번 다루어진 못된 짐승은 결국 제멋대로 하려는 고집을 버리게 된다" 플라톤, "파이드라"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수레를 지적 세계로 몰고 가는 반면에, 그 해로움이 문헌의 첫머리에서 설명된 감각적 미에 대한 애욕, 정념은 숙고(이성)에 의해 공박되고 정복된다. 욕망은 가장 훌륭한 것으로 이끄는 일종의 열광이다. 이 열광은 무절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육체에 대한 광증이 아닌 지식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로운 것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은 열광의 중개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이며, 열광은 확실히 숭고한 재능을 우리에게 부여해 준다"
이러한 형태의 열광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월하며 무한히 풍부한 창조력을 지닌다.이런 식으로 사랑은 영혼을 절대미에 대한 명상으로까지 고양시키고 영혼은 불멸성에 관여하게 된다.
결론:욕망과 죽음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 주며, 그 영혼을 육체와 분리시켜 주는" 철학은 영혼을 육체에 속박시키려는 욕망을 영혼으로부터 정화시킨다. 그러므로 이것을 활성화시키는 열광은 불멸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며 육체의 어지러운 욕망을 이겨 낸 이성의 결과물이다. 영혼은 지배하는 조화는 국가가 지배해야 할 조화의 본보기이다. 철학자는 전체 도시국가 안에서처럼 자신에게 덕과 지식을 실천한다. 불멸성에 훈련된 그의 영혼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숭고함을 양식으로 삼고, 죽은 후에는 그와 유사하며 조화가 되는 것, 즉 예지적인 세계로 가게 되므로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혼의 이러한 전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철학은 욕망을 그의 감각적인 대상으로부터 비껴 가게 하여 그 힘을 이용한다. 그러면 욕망이란 그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파생되어 나오는 잠재적 능력에 불과한가? 더욱이 욕망은 "공화국"의 4권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의 능력 자체를 잃지 않고도 합리성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가? 욕망의 무한한 풍부함은 그가 향해 나아가는 대상의 재현과 다양성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육체의 욕망을 세분하고 고유의 대상(존재 그 자체)에 고정시킴으로써 이성은 욕망의 감시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욕망은 그의 부정에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핍에서부터 생긴 욕망은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본질을 소유하면서 충족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욕망의 움직임은 명상을 통해서 그리고 순수한 사상이나 정화된 영혼과 충돌하게 되면서 소멸한다. 그의 실행 안에서 불멸에 대한 욕망은 욕망의 죽음을 실현한다. 존재에 기여하는 욕망이란 단지 죽음에 대한 욕망의 상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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