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0호 2023.5.31 수요일 (음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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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슬픈 일이 닥칠 때마다 오, 하필이면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고 질문을 하지만,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 한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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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
지난 며칠 동안 인터넷에서 난데없이 ‘김 여사’가 화제였다. ‘김 여사’는 운전이 미숙한 중년 여성들을 비꼴 때 쓰는 신조어다. 의미가 확대되어 불특정 다수의 여성 운전자들을 비하하는 말로도 곧잘 쓰인다.
‘김 여사’가 다시 이목을 끈 까닭은 한 유명인이 오래 전 자신의 SNS에 올렸던 사진 때문이었다. 그는 잘못 주차된 자동차 사진에 ‘대한민국 김 여사님들 파이팅’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았었다. 누리꾼들은 운전자가 누군지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김 여사’라는 표현을 쓴 건 여성차별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글을 올린 이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사과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이 자그마한 소동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웃자고 만든 ‘김 여사’ 같은 표현이 여성차별이라고 하는 건 지나친 게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다 보면 어느새 여성은 남성보다 무능력하고 부족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될 것이므로 경계해야 한다. 사실 남녀를 불문하고 능력이 부족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무리들 중에 유독 여성을 비롯한 특정 계층에 초점을 맞춰 그 집단 전체를 비하하는 표현을 만들어 쓰는 것은 명백히 차별적이다.
남성들 중에도 운전 실력이 부족하거나 난폭 운전으로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행동은 운전자 개개인의 탓으로 돌릴 뿐 남성들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보아서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을 따로 만들어 쓰지는 않는다. 이와 비교해 보면 왜 ‘김 여사’ 같은 말들이 여성 차별적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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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신 때 - 한용운
당신이 가실 때에 나는 다른 시골에 병들어 누워서
이별의 키스도 못하였습니다.
그때는 가을바람이 처음으로 와서
단풍이 한 가지에 두서너 잎이 붉었습니다.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끌어내겠습니다.
그러면 시간은 두 도막이 납니다.
시간의 한 끝은 당신이 가지고, 한 끝은 내가 가졌다가
당신의 손과 나의 손이 마주 잡을 떼에 가만히 이어 놓겠습니다.
그러면 붓대를 잡고 남의 불행한 일만 쓰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당신의 가신 때는 쓰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끌어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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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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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7. 군인은 군인의 임무에 따른 뿐이다(위청, 곽거병)
1) 흉노 토벌의 명자(위청)
어두웠던 소년 시절
위청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기구했다. 그의 아버지는 정계라는 사람인데 한무제의 동생이던 평양공주의 집사로 지내다가 그 집의 첩인 위오와 눈이 맞아 아들을 낳았으니, 바로 청이었다.(그의 동복 누이는 후에 무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던 위자부였다) 청은 그 집에서 자랐는데, 종살이를 해야만 했다. 나이가 들어서야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 양치는 소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청이 다른 사람을 따라 감천궁의 감옥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죄수 중에 한 사람이 청의 관상을 보더니, "너는 귀인의 상을 가지고 있다. 벼슬은 제후에 이르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청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종놈으로 태어나 매나 맞지 않고 욕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제후가 되다니 말도 안됩니다."
청은 장년이 되자 자기가 태어났던 평양공주의 집에 호위병으로 들어갔다. 당시 무제는 장모나 부인 등 주위에 온통 드센 여자들만 있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은 오직 누이 평양공주밖에 없었다. 평양공주는 무제를 자기 집에 불러 자주 잔치를 벌여주었는데, 어느 날 위자부로 하여금 술시중을 들게 했다. 무제는 그녀를 몹시 마음에 들어했다. 이를 눈치챈 평양공주는 그녀를 궁으로 보내 후궁으로 삼게 하였다. 이때부터 청도 위자부의 성을 따라 위청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그때 황후는 아기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위자부가 무제의 사랑을 받고 그 뒤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황후가 그 사실을 알고 매우 질투하였다. 화가 몹시 난 황후는 보복하기 위해 위청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위청이 잡혀 들어가 목숨이 위태로울 때 위청의 친구인 공손오가 청년들을 이끌고 달려와 그를 구원해줬다.
대장군 위청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위청을 보호해주기 위해 그를 불러들여 벼슬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위씨의 동복 형제 모두에게 벼슬과 상금을 내렸다. 공손오도 위청을 도와준 공로로 벼슬을 얻었다. 몇 년 후 위청은 드디어 장군이 되어 흉노 정벌에 나서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위청은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장군이었다. 그 이듬해에 위청의 누이 위자부는 아들을 낳고 정식으로 황후가 되었다. 이후에도 위청은 흉노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이에 황제는 위청에게 엄청난 땅을 주고 거기장군으로 삼았다. 한무제 5년 봄, 무제는 다시 대규모의 흉노 토벌을 결심하고 거기장군 위청에게 기병 3만을 이끌고 출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위청의 목표는 흉노의 우현황이었다. 그런데 우현왕은 한나라 군사가 어차피 여기까지는 오지 못하리라 업신여기고 본영에서 술에 만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 군사는 전격적으로 야습하여 우현왕을 일거에 포위했다. 그러자 우현왕은 당황하여 애첩 하나와 수백의 정예만을 데리고 야음을 틈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간신히 북방으로 도주했다. 한나라 병사들은 수백 리나 추적했으나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한군은 우현왕의 부왕 10여 명, 흉노의 남녀 1만 5천여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가축 수십만 두를 포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위청이 국경의 요새까지 철거해 버리자 무제는 즉각 위청을 대장군으로 승격시켰다. 이렇게 하여 모든 장군의 군대는 위청의 지휘하에 들어오게 되어 그는 대장군의 격식을 갖추고 늠름하게 장안으로 개선했다. 실로 오랜만에 흉노를 대파한 것이었다. 이때 무제는 친밀하게 말을 건넸다.
"대장군 위청, 그대는 스스로 병사의 선두에 서서 크게 승리하고, 흉노의 왕 10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이에 그대에게 6천 호를 더 하사함과 아울러 그대의 아들 모두에게 제후의 직위를 주겠노라."
그러나 위청은 굳이 사양했다.
"신은 황송스럽게도 장군으로 등용되어 폐하의 위광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하오나 이는 오로지 장수들의 분전의 결과이옵니다. 지금 폐하께오서는 저에게 영지를 늘려주시온 데다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아무런 공도 없는 변변찮은 자식놈들에게까지 황송하게도 제후로 봉하시겠다 하시었습니다. 하오나 이는 저를 장군으로 임용하시어 장병의 사기를 돋구시려는 의도에 어긋나는 처사가 아니시옵니까. 어찌 이러한 은혜를 받자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무제가 대답했다.
"아니, 나도 장수들의 전공을 잊은 것은 아니오. 당장이라도 조처할 작정이오."하고는 바로 다음과 같은 조서를 어사에게 내렸다.
"호도군위 공손오는 세 차례 대장군을 따라 흉노를 쳤고, 본대를 잘 원호하여 부대장과 함께 적을 생포했다. 이로써 1천 5백 호의 영지를 주고 합기후에 임명한다. 도위 한열은 대장군을 따라 흉노 우현황의 본영을 습격하여 백병전을 결행했다. 이로써 1천 3백 호위 영지를 주고, 용액후에 임명한다. 기장군 공손하는 대장군을 따라 적의 부왕을 잡았다. 이로써 1천 3백 호의 여지를 주고 남교후에 임명한다. 경거장군 이채는 두 번 대장군을 따라 적의 부왕을 잡았다. 이로써 1천 6백 호의 영지를 주고, 낙안후에 임명한다."
이렇게 하여 모든 장수에게도 영지와 제후의 직위가 내려졌다.
부하를 아끼는 마음
이듬해 봄, 대장군 위청은 또다시 흉노 토벌에 출격하여 수천 명을 목베었다. 또다시 한 달 후, 토벌에 나선 위청은 수급과 포로를 합해 1만여의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이 무렵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우장군 소건과 전장군 조신의 군사 3천여 기가 단독으로 선우의 주력군을 만나 하루 동안의 격전 끝에 전멸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조신은 원래 흉노 출신으로 한나라에 귀순해서 부장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고전의 틈바구니에서 흉노로부터 끈질긴 투항 권유를 받은 끝에 드디어 나머지 병사 8백을 데리고 선우에게 항복했다. 또한 우장군 소건은 전 병사를 잃고 제 몸 하나만 도망쳐 대장군에게 돌아왔다. 당연히 소건은 책임이 문제되었다. 위청은 부하들을 모아 놓고 그 처리에 대해 의논했다. 한 부하가 입을 열었다.
"대장군께서는 출진한 이래 부장을 벤 적이 없습니다. 지금 소건은 군을 버린 것입니다. 이 기회에 그를 베어서 장군의 위광을 보이셔야 합니다."그러나 다른 부하들은 반대했다.
"그것은 안됩니다. 소군이 아무리 견고해도 대군에게는 대적하지 않는다는 것이 병법의 상식입니다. 소건은 겨우 수천의 병력으로 선우의 수만 대군과 대적하여 분전하기를 하루 남짓, 병사를 모조리 잃으면서도 항복치 않고 스스로 귀대한 것입니다. 만일 이를 문제삼아 처형시킨다면 금후 이같은 경우에 돌아오지 말라는 것을 뜻합니다. 절대 베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위청이 결단을 내렸다.
"나는 폐하의 친척이기 때문에 장군직을 명령받고 있는 자이다. 내 위엄 따위를 문제삼지 말라. 위엄을 보이라는 의견은 말도 안된다. 그야 부장을 베는 것도 내 직권에는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폐하의 은총을 받들고 있을수록 요새 밖의 땅에서 멋대로 주벌을 행하기는 싫다. 폐하께 이러한 사정을 상세히 보고 드린 연후에 재가를 받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하로서 권한을 조심하는 것이 될 줄 아는데 어떻게들 생각하는가?"
그러자 모두 찬성했다. 그리하여 소건은 목숨을 건지게 되어 황제에게 보내어졌고, 전투를 중단한 채 국경 안으로 철수했다. 서울로 송환된 우장군 소건은 관직을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었다.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위청은 흉노 토벌에서 귀환하여 천금을 하사 받았다. 그리고 당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어 있던 평양공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옛날 위청은 평양공주의 집에 노예의 신세나, 혹은 기껏 호위병에 지나지 않았었는데, 이제 주인 마님을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그 무렵, 무제의 마음은 위청의 누이인 위황후를 떠나 왕부인을 총애하고 있었다. 이때 영승이라는 자가 위청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군은 뛰어난 공훈도 없이 1만 호의 녹을 먹고 자제들은 셋이 모두 제후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만 한 가지, 귀공이 황후의 집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폐하는 지금 왕부인을 총애하시지만 왕부인의 일족은 아직 불우한 채로 있습니다. 하사금 천금으로 왕부인의 부모를 위해 장수를 축수하는 잔치를 베푸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위청은 그 말을 따라 5백 금을 들여서 잔치를 베풀었다. 그 소문을 들은 무제는 기뻐하면서 위청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위청은 영승의 진언을 그대로 왕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무제는 영승을 동해군의 도위에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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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군자(梁上君子)
梁:들보 량. 上:위 상. 君:임금/군자 군. 子:아들/사람 자.
[출전]《後漢書》〈陳寔專〉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 곧
① 집안에 들어온 도둑의 비유.
② (전하여) 천장 위의 쥐를 달리 일컫는 말.
후한 말엽, 진식(陳寔)이란 사람이 태구현(太丘縣:하남성 내)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늘 겸손한 자세로 현민(縣民)의 고충을 헤아리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현민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모았다. 그런데 어느 해 흉년이 들어 현민의 생계가 몹시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진식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웬 사나이가 몰래 들어와 대들보 위에 숨었다. 도둑이 분명했다. 진식은 모르는 척하고 독서를 계속하다가 아들과 손자들을 대청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인이라 해도 모두 본성이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 어느덧 성품이 되어 악행을 하게 되느니라. 이를테면 지금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梁上君子]’도 그렇다.”
그러자 ‘쿵’하는 소리가 났다. 진식의 말에 감동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는 마룻바닥에 조아리고 사죄했다. 진식이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얼굴을 보아하니 악인은 아닌 것 같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나.”
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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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부적은 사랑을 싣고
봄이라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즐거운 저는 올해 스물다섯 살의 봄 쳐녀랍니다. 제가 사는 대구에서는 봄가을이 없는 도시라고도 하죠. 그만큼 봄 가을이 짧답니다. 특히 봄은 더더욱 짧아서 다른 도시 사람들보다 봄에 대한 아쉬움이 많지요. 제가 왜 이렇게 봄타령만 하냐구요?. 봄만되면 바람난다는 봄처녀이기 때문만은 아니구요. 언제나 봄처럼, 처녀처럼 사는 저희 큰 이모님 이야기를 하려니 서두가 길었어요. 저희 큰 이모는 딸 부잣집 맏딸이시지만 하시는 행동은 부잣집 되동딸 같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계신 이모는 자신의 일에도 열심이면서 인생을 즐기시는 모습이 참 보기에는 좋지만, 어떨 때 한 번씩 일으키는 푼수는 언제나 웃음을 부릅니다.
오늘은 그 푼수사건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해요. 지독한 공주병에 걸리신 이모는 탤런트 강부자씨 같은 외모에 몸매 또한 강부자씨 못지 않은데, 하루는 시장에 가셔서 굽이 10cm가 넘는 통굽구두를 사오신 거예요, 저는 제것인 줄 알고 말했지요.
"아휴, 이모, 뭐 이런 걸 다 사주능교?"
"아이다. 이거 내 신으면 이쁠 것 같사서 하나 샀다."
이모는 그러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날 그 구두를 신고 나가신 이모는 내리막길에서 엄청 고생하셨답니다.
"아이고 야야 내 좀 잡아도. 어-어어. 아악! 내 죽는데이-"
그 다음부터는 그 구두가 제것이 되었답니다. 과부생활 어언 10년째지만 싱글은 언제나 화려해야 한다며 외모에도 관심이 많으신 우리 이모님. 그래서 언제나 제 화장대를 호시탐탐 노리시더니 저 없는 동안 일을 벌이셨더군요. 저희집에 놀러오신 이모는 엄마를 꼬셔서,
"야이야! 이거 정이 화장대에 있던 것인데 한번 발라보자."
평소에 제 물건은 안 만지시던 저희 엄마께서 이러시더군요.
"이기 뭔데?"
"몰라. 그래도 젊은 아가 바르는 거니까 좋은 거겠지!"
그러면서 쓰다 남은 헤어용 스트레이트 크림을 팔다리에 골고루 바르셨대요.
"이건 또 뭐꼬?"
"희야(언니), 우리 정이 오면 내 혼난다. 자꾸 바르지 마라."
"아이다. 이건 더 좋은 거지 싶다. 내 쪼매만 바를게."
그러면서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을 얼굴에 그것도 아낀다고 눈밑에 잔주름 있는 데만 바르신 거예요. 그날 저녁 팔다리가 당기고 눈 주위가 따갑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하루는 밖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랑 큰 이모가 하얗게 질려서 누워 계시는 거예요.
"엄마, 와카는데예?"
"아이고, 정아! 니 가가(가서) 고기 좀 사온나?"
"고기는 와예?"
"오늘 너거 이모랑 다이어트한다고 하루종일 굶고 채소만 묵었디만 힘없어 죽겠다."
방안에는 다 뜯어먹은 배추 두 포기가 뒹굴고 있었어요. 정말 엄청나더군요. 큰이모께 눈길 한번 안주는데도 이모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내만 쳐다보는 것 같데이." 라든지, "우리 학교 교장이 아마 나를 좋아하는것 같데이." 등등. 그래서 한때 별명이 '착각의 여인','환상의 여인'이라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야기는 다음에 나올 이야기의 맛보기구요. 푼수 공주 큰 이모께 정말 사건이 생긴 거예요. 언제나 이라크의 후세인 같은 애인을 사귀고 싶어하시는 큰 이모지만 60이 다 된 할머니에게 웬 후세인! 웬 애인! 교장선생님은 고사하고 버스 안의 할아버지조차 이모에게 눈길 한번 안 주자 이모는 최후의 방법으로 철학관을 찾아갔어요.
"아저씨예, 제가 과부가 된 지 10년이 지나도 이때까지 애인이 없는 데 무슨 수가 없능교?" 라고 점쟁이에게 묻자,
"마, 아줌마는 곧 애인이 생길 낀데, 부적 하나 하시면 애인이 더 빨리 생길 낍니데이."
이 말에 귀가 솔깃해지신 이모는 거금을 주고 애인 빨리 생기는 부적을 사셨답니다. 그런데 이 부적을 보관하는 방법이 참으로 요상한게 세상에 팬티 밑에 넣어서 다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밑에 부적을 넣으시고 콧노래르 부르며 우리집에 자랑하러 오신 우리 큰 이모. 마침 엄마를 비롯해 셋째 이모, 다섯째 이모께서 와 계셨는데, 다섯째 이모만 빼고 모두 과부랍니다. 큰 이모의 '애인 생기는 부적'을 둘러싸고 네 과부의 싸움이 시작 되었어요.
"희야(언니), 나도 한번 해보자. 으잉?"
"야는 봐레이. 내가 먼저다."
"이 가스나들아, 부정탄다. 저리 가라 마."
"희야, 나는 구경만 하고 주께. 함만(한번만) 보자."
"안된다. 내가 효험 보면 니 주꾸마."
이러시면서 꿋꿋이 밑에 부적을 깔아 놓으셨어요. 그러시기를 4개월. 한달이 지나도 두달이 지나도 큰 이모에게 후세인 같은 멋진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던 그 어느 날, 큰 이모께서는 평소와는 달리 풀이 죽어서 저희집으로 오셨어요. 저희 엄마께선 "희야, 어디 아프나? 와 그리 힘이 없노?" 하시며 안부를 묻자 큰 이모께서 말씀하시기를..."내 이놈의 점쟁이 만나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둘끼라." 하시며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시는데.. 그 무더위에도 (대구는 특히 덥잖아요) 애인 생기는 부적을 비가오나 땀이나나 신주단지 모시듯이 깔고 다니셨는데, 자꾸 가려워서 산부인과를 갔더니 치료를 마친 의사선생님이 묻더래요.
"아주머니는 여름에도 내복같은 속옷을 꼬박꼬박 챙겨 입습니까?"
"아이지예. 여름에 내복은 무슨 내복예."
"아주머니는예, 통풍이 잘 안돼서 곰팡이가 슬었습니데이. 앞으로 바람 좀 잘 들어가구로 통풍 좀 잘 시켜주이소."
그 말을 들은 우리들은 위로는 뒤로하고 웃느라고 다 뒤집어졌다는거 아닙니까? 이것은 네 명의 과부 이모들에게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큰 이모는 그 이후로 다시는 부적 얘기는 안 하셨지만, 과연 그 부적의 힘인지 올해 초, 봄에 우연히 들른 부동산 중개소에서 만난 아저씨와 지금 한창 핀 벚꽃처럼 열애에 빠져 계신답니다. 이모니까 그런 모습이 보기 좋고 응원도 하지만, 저는 요즘 저희 엄마 동정 살피기에 바쁘답니다. 또 사랑을 실은 부적을 사오시면 어쩌나 하구요. 봄은 아가씨들만의 계절은 아닌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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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4장 올림포스 신 시대 및 그 외 신들
5. 아이아코스
아이아코스(Aeacus)는 제우스와 아소포스의 딸 아이기나 사이에 난 아들이다. 오이노피아 섬의 왕으로 섬 이름을 어머니 이름을 따서 아이기나로 바꾸었다. 그런데 섬에 질병이 돌아 섬 사람들이 모두 멸망하게 되자 제우스 신에게 자기 영토에 다시 사람이 늘게 해주기를 탄원하였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 소원대로 참나무 고목에 있는 수많은 개미가 모두 사람으로 변하였다. 이들 족속을 개미족이라는 뜻의 뮤르미돈족이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아내 엔데이스와의 사이에서 델라몬(살라미스의 왕으로 테우케로와 아옉스의 아버지)과 펠레우스(아킬레스의 아버지)를 두었으며 그 외 네레이데스의 처녀 프사마테로부터 아들 포코스를 얻었다. 아이아코스는 성실한 성품을 지녀 옛 그리스 세계에서는 미노스, 라다만 토스와 더불어 지하계의 재판관으로 추앙받았다.
6. 튜폰
튜폰(Typhon, Typheus)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타르타로스의 교합으로 실리시아의 동굴에서 태어난 전무후무한 괴물이다. 그는 거인족을 멸망시켜 신권 장악에 성공한 제우스의 세력을 꺾기 위하여 도전하는데, 이는 가이아가 자신의 아이들인 거인족이 패망한 데 분개하여 제우스에게 보복을 하도록 보낸 것이었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튜폰은 뇌성과 흰 머리를 지닌 괴물이었지만 제우스가 벼락으로 공격을 퍼부어 타르타로스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다른 주장에 의하면 제우스와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아 처음에는 제우스에게 패하여 동방으로 도망쳤으나 시리아 경계에서 반격을 가하여 도리어 제우스를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제우스의 칼(우라노스를 거세한 반달형 낫)을 빼앗아 제우스 손발의 건을 잘라 힘을 못쓰게 만들고는 절망적인 제우스를 실리시아 산속 동굴로 떠밀어 넣었다. 참혹하게 패배한 제우스는 마침내 소식을 듣고 찾아온 헤르메스와 판의 도움으로 잘린 건을 다시 훔쳐와 복원시키고 올림포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튜폰과의 싸움을 계속하였다. 이 때 튜폰은 뉴사산에 있었는데, 운명의 여신 파테스는 하루살이 곤충이 먹는 물기 많은 열매가 힘을 기르는데 효과가 있다고 속여 튜폰에게 권하였다. 이 열매는 죽음을 면치 못하는 인간의 음식으로 먹으면 허약해지는 것이었다. 튜폰은 트라키아의 하이모스 산에서 제우스와 최후의 격전을 벌였으나 큰 상처를 입어 그의 피가 온산의 계곡을 넘쳐 흐르니 이에 연우하여 이 산을 피의 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승자가 된 제우스는 시칠리아로 패주한 튜폰을 마지막으로 에트나 산으로 덮어 눌러 처치하였다. 지금도 산이 들먹거리고 연기를 뿜으며 화산이 터지고 있는 것은 튜폰이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튜폰의 형상은 날개달리 거대한 괴물로 허리 위는 사람 모양, 그 아래는 두 개의 용 꼬리로 되어 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튜폰은 상체 세 개가 하나의 허리에 붙어 있는 괴물로 묘사되어 있으며, 날개와 용 혹은 뱀꼬리가 달려 있다. 상징적으로 물과 이삭 및 새를 들고 있으며 청색 머리(중간은 회색 머리)와 청색 수염(콧수염과 구레나룻)이 특이하다.
7.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란 선견자라는 뜻이다.이아페토스와 오케아노스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에피메테오스와 아틀라스 및 거만하고 잔인하여 제우스에 의해 타르타로스로 내던져진 메노이티오스는 모두 친동기간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크로노스와 제우스 부자 간에 벌어진 대격전에서 현명한 제우스에 가담하여 승리를 이끌어 내게함으로써 제우스에게 가장 신임받는 측근이 되었다. 또한 그는 보이오티아 지방 파노페아에서 흙으로 빚은 물건에 아테나로 하여금 생기를 불어넣게 하여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더 널리 알려진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이미 그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천상에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주었으며, 신에게는 항상 좋은 고기를 바쳐야 하는데도 황소를 잡아 비계 덩어리를 제우스에게 보내고 살코기를 넣은 위 뭉치는 사람에게 보내었다. 이것이 결국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카우카소스 산꼭대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찍히게 되었다. 후에 그는 테티스의 아이가 앞으로 천상을 황폐화시키고 대신의 자리를 찬탈할 것이라는 예언을 해준 대가로 제우스로부터 풀려나게 되었다. 이처럼 프로메테우스는 항상 인간을 보호하고 짐승보다 나은 생활을 하도록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으며 특히 도공을 도와주어 아테네 사람들에게 크게 존경을 받았다. 천문에서 이아페토스는 토성의 제 2위성이다.
에피메테오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으로 에피메테오스(Epimetheus)는 후각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판도라와 결혼하여 딸 퓨라를 두었다. 퓨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결혼하였고 제우스가 내린 대홍수에서 살아남았다.
아틀라스
짊지는 자라는 뜻의 아틀라스(Atlas)는 이아페토스와 테미스의 아들로 프로메테우스, 에피메테오스와는 형제간이다. 원래는 천공의 기둥을 보호하는 감시자인데 티탄족의 내란 때 제우스에 항거한 죄로 천공을 양 어깨에 짊어지게 되었다. 헤라클레스가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찾아다닐 때 아틀라스 대신 천공을 짊어지고 이 사과를 얻었는데, 천공을 그대로 떠맡기려 한 아틀라스에게 천공을 고쳐 짊어지게 도와달라고 꾀어 다시 떠넘겼다. 후기에는 페르세우스가 고르곤의 머리를 보여 아틀라스를 돌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대서양은 아프리카 북단의 아틀라스 산맥이 하늘을 떠받쳐 푸른 바다가 되었다고 하여 아틀란틱 해라 부르게 되었다. 해부학에서는 머리를 받치고 있는 제 1경추를 아틀라스라고 하는데 이는 천공을 메고 있는 아틀라스에서 연상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판도라
판도라(Pandora)는 인간세계의 첫 여인으로, 천상의 제우스 신이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흙으로 여신처럼 빚어내어 매우 아름답고 우아한 용모를 갖추었다. 제우스는 당시 신들에게 불경하고 술수를 쓰는 프로메테우스를 벌주기 위하여 그녀를 배우자로 주고자 하였다. 모든 신은 판도라가 교양을 지니도록 기여하고 선물을 주었는데, 특히 아프로디테는 여성미와 상대를 기쁘게 하는 기교를, 카리테스는 매혹적인 능력을, 아폴론은 노래부르는 법을, 헤르메스는 애교의 기량을, 아테나는 최고로 값나가는 찬란한 장신구를 주었다. 판도라라는 이름은 이처럼 모든 신에게서 귀한 선물을 받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으로, 제우스는 후에 그녀에게 아름다운 상자를 주며 결혼 상대자에 주라고 지시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흙을 빚어 만든 인간에게 생활할 능력을 주기 위하여 천공에서 태양의 불을 훔쳐다 준 일이 있어 신들의 노여움을 사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헤르메스가 판도라를 이 프로메테우스에게 데려왔다. 그러나 속임수에 민감하고 제우스를 비롯한 모든 신을 믿지 않았던 프로메테우스는 그녀에게 매혹당해 고민하게 되리라는 것을 눈치채고 거절하였다.
반면 그의 동생 에피메테오스는 형과는 달리 영특한 데가 없고 신중하지도 않아 형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와 결혼하였다. 과연 제우스가 준 선물상자를 궁금하게 여긴 판도라가 급기야 선물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에서 모든 병과 재앙의 불씨가 튀어나와 온 인간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 순간부터 인간세상은 끊임없이 치명적인 재앙과 고난에 시달리게 된다. 판도라는 황급히 뚜껑을 닫았지만 안에 든 것은 다 빠져 나가 버리고, 단 하나 희망만이 상자 밑바닥에 남아 인간이 고난에 빠질 때마다 힘이 되어 고통을 줄이고 갈등과 슬픔을 덜어주었다. 일설에는 역설적으로 희망도 악한 것으로 보는데 그것을 절망상태에서도 요행에 매혹되는 도박심리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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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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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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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베르테르, 테스와 같은 인물들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시대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접하게 된다.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그들이 겪었던 고뇌의 흔적은 신문이나 잡지에 남아 있을 뿐이며 사랑을 위해 선택한 그들의 죽음은 동사무소 호적 담당 직원의 손에 의해 신속하게 처리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영원히 살아남게 된다. 그런 그들의 갈등과 고통이 세상 사람들에게 한낱 불장난이나 치부 정도로 비추어질 수도 있지만, 사랑을 위해 외롭게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 선택한 그들의 죽음이 구원의 빛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희망의 빛으로 살아남는 일은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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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확신하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사랑 때문에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두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주위의 환경이나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 그들은 용감하게 일어나 사회의 폐습을 끊어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모든 굴욕을 달게 받으면서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죽음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다. 절망에 빠진 나머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포기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랑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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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항상 인류에게 새로운 과제였다. 지금까지 사랑에 대하여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던 철학자는 플라톤이다. 플라톤은「향연」과 「파이드로스」에서 사랑에 대한 문제를 논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사랑의 문제에 대하여 말한 내용은 신화와 우화 그리고 비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루소도「불평등 기원론」이라는 저서에서 사랑에 대해 언급했지만, 그의 견해에는 오해의 여지가 많았다. 사랑에 대한 칸트의 이론은 「미와 숭고한 감정에 대하여」에 기록되어 있다. 반면 스피노자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매우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연애는 외부적인 원인이 관념에게 안겨 주는 쾌락이다.”
그러나 사랑을 정확하게 정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후세에도 불가능할 것이다. 사랑의 가치는 너무나 크고 다양해서 어느 누구도 완전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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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우리의 내부로 들어온다. 우리의 삶은 사랑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랑은 형이상학적이며 절대적인 요소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특히 연인들의 사랑은 이성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그녀가 태어난 해보다 18년 전에 일찍 태어났다고 해도 나는 그 여인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연인들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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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사랑은 성적 본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성욕은 자기 보존의 본능과 함께 우리의 생활에 가장 강렬하게 작용하는 본능 가운데 하나이다. 성욕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가장 활동적으로 만드는 요소인 것이다. 성욕은 청춘기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정력과 열정을 자극하고 있다. 성욕의 영향은 대단해서 인생의 목표를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정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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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열중하고 있던 일을 너무나 쉽게 포기해 버린다. 경우에 따라서 사랑은 세상을 보는 지혜에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고 시끄러운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가까운 친구 사이의 의리와 우정도 배반하도록 만든다. 맹세의 서약도 사랑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변하며 견고한 사슬도 끊어져 버린다. 사랑은 때때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생명과 건강, 재산, 지위, 행복 등을 한 순간에 빼앗기도 한다. 사랑은 정직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충신을 반역자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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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기에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한사람의 인생을 망쳐 버리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가장 중요한 지혜와 의지를 꺾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을 얻는 대신에 때때로 자신의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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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진지하고 열렬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모든 연애 사건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존재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거나 희극으로 끝나거나 사랑은 인생의 여러 가지 목적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신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모든 존재가 달려 있는 일이기에 우리는 사랑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사랑과 성욕은 아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지속시켜 나가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혹한 형벌이자 축복이다. 불행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것과 동시에 사랑으로 그 불행을 견딜 수 있게 하는 두 가지의 길을 신을 인간에게 내려 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사랑의 방식과 정열의 정도에 따라 우리의 후손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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