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1호 2023.3.9 월요일 (음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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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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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덕은 그 비상한 노력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상적인 행동에 의해서 측 정되어야 할 것이다.
- 파스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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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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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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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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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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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보내며 - 한용운
그는 간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요.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간다.
그의 붉은 입술, 흰니, 가는 눈썹이 어여쁜 줄만 알았더니,
구름같은 뒷머리, 실버들같은 허리,
구슬같은 발꿈치가 보다 아름답습니다.
걸음이 걸음보다 멀어지더니 보이려다 말고 말려다 보인다.
사람이 멀어질수록 마음은 가까와지고,
마음이 가까와질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보이는 듯한 것이 그의 흔드는 수건인가 하였더니,
갈매기보다도 작은 조각 구름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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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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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9. 여걸 천하(여후, 진평)
2) 도대체 여자의 욕심이란 그 끝이 어디일까?(여후)
외아들을 잃고도 눈물이 없는 까닭은?
한편 효혜제가 세상을 뜨자 국상이 발표되어 모든 신하가 관 앞에서 곡을 했다. 그러나 여후는 겉으로 곡하는 소리만 낼 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때 장량의 아들인 벽강은 아직 나이 열 다섯밖에 되지 않았으나 매우 똑똑했다. 그는 바로 승상이던 진평을 찾아갔다.
"태후께서 지금 외아들을 잃고도 조금도 슬픔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아시겠습니까?"
"왜 그럴까?..."
"효혜제에게 성장한 아들이 없기 때문에 태후가 중신들에게 위협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승상 어른께서 이 기회에 태후의 조카분들을 장군으로 임명하고, 여씨 가문에게 요직을 주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태후의 두려움도 풀릴 것이며, 중신들도 화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평이 즉시 그 말대로 하니, 과연 여후는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목놓아 울며 눈물을 비오듯이 흘렸다. 그 후 여후는 노골적으로 정사를 자기 마음대로 주물렀다. 여후는 효혜제의 상이 끝나자 태자를 왕위에 앉혔다. 그런데 그 태자 역시 나이가 너무 어려서 할머니인 여후가 완전히 황제의 권한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 나이 어린 황제는 소제라 불리웠는데, 사실 그는 효혜제의 정실 부인에게서 난 아들이 아니었다. 정실 부인에게 아들이 없자, 여후가 자기 집안의 미인 한 명을 후궁으로 들여서 낳은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 생모를 죽이고 정실 부인이 낳은 태자로 꾸몄다. 그 뒤 소제가 4, 5세쯤 되었을 때, 누군가가 이 사실을 그에게 얘기했다. 화가 난 소제는 주먹을 꼬옥 쥐고, "다음에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고 말 테다."하며 분개하였다. 이 말이 그대로 여후의 귀에 들어갔다. 그를 그대로 두어서는 앞날이 불안하다고 여긴 여후는 소제를 전에 척희를 잡아 가뒀던 영항에 유폐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소제가 병이 깊어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얼마 후 소제는 원인 모르게 죽었다.
천하의 주인은 유씨인가, 여씨인가?
이어 여후는 다음 황제로 유홍을 내세웠는데, 그 역시 아직 나이가 어려 소제라 불렀다. 그리고는 여전히 여후가 황제의 권한을 휘둘렀다. 어느 날 여후가 자기 친정 식구를 제후로 삼을 생각으로 우승상 왕릉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왕릉은,
"선제께서 '유씨가 아닌 사람이 제후로 되는 것을 목숨을 걸고 막으라' 하셨습니다. 선제의 유지를 받들어야 합니다."라고 반대했다. 이에 크게 화가 난 여후는 이번엔 좌승상 진평과 대신인 주발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여후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조정에서 물러나온 왕릉은 진평과 주발을 비난하였다.
"어찌 선제와의 약속을 어긴다는 말입니까. 그리고서 무슨 낯으로 선제를 뵙겠소?"
그러자 그들은 담담하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용기있게 태후에게 맞서는 면에서는 우리가 당신보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 유씨 권력을 지키는 데에는 당신이 우리만 못할 것이외다."
그 후 여씨 일족은 계속해서 제후로 임명되었고, 여후의 여동생인 여수 역시 제후로 임명되었다. 여수는 이로써 중국 역사상 최초로 제후 자리에 오른 여성이 되었다.
유씨 남편들을 감시하는 여씨 아내들
여후는 황실인 유씨와 자기 친정인 여씨 간에 권력 다툼이 격화되자, 한 가지 꾀를 냈다. 즉 여씨의 딸들을 유씨의 제후들에게 시집을 보내 아예 가정에서부터 유씨를 꽉 잡아 버리자는 심산이었다. 이때 조나라 왕으로 봉해져 있던 유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유씨 문중에서 시집온 본처에게 정이 가지 않아 다른 첩에게 사랑을 쏟았다. 그러자 질투심 많았던 여씨 성의 본처는 이 사실을 여후에게 고하고, 또 있지도 않은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남편에게 뒤집어 씌었다. '여씨 성에게 제후 자리를 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 여후가 죽는 날이면 내 반드시 여씨 일족을 멸하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여후는 분기탱천했다. 곧바로 유우를 잡아들이고는 그를 연금시킨 채 일체의 음식을 못 먹게 만들었다. 그에게 음식을 갖다 주는 사람은 무조건 처벌되었다. 유우는 굶주림 속에서 원한에 사무친 시를 읊었다.
여씨가 권세를 잡으니 유씨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제후라는 건 이름 뿐, 아내까지 강요당했다.
아내가 질투 끝에 나를 팔아넘기니
계집의 밀고가 나라를 어지럽히는데
황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아! 이 나라 충신들은 어디로 갔는가!
차라리 자결할 것을, 어찌 미리 깨닫지 못했던고,
이렇게 굶어 죽는데도 인정을 베푸는 자조차 없구나.
하지만 여씨의 무도함을 하늘의 힘을 빌어 기필코 보복하리라.
유우는 이렇게 시를 읊고 드디어 굶어 죽었다.
정부와 동성연애자
벽양후 심이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래 유방과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항상 유방의 부하 노릇을 했으며, 이 후에도 이른바 '가신'이었다. 특히 그는 일찍이 유방이 항우에게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을 때, 항우가 유방의 가족을 체포하려 하자 여후 및 유방의 아버지와 함께 도망가다가 같이 포로가 된 적도 있었다. 천하 통일 후 유방이 죽고 나자, 여후는 심이기를 가까이 하였다.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은 깊은 관계에 빠졌다. 이 소문은 소리도 없이 퍼져 나갔으며, 마침내 어떤 자가 여후의 아들인 황제 효혜제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쳤다. 그러자 효혜제는 크게 화를 내고 당장 심이기를 체포하여 감옥에 처넣고는 처형시키려 했다. 여후는 그토록 세도가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이 사실만은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때 주건이라는 현명한 선비가 있었는데, 그는 말재주가 좋고 변론을 잘 하며, 청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장안에 그 명성이 높았으며, 심이기도 그와 사귀려고 몇 번이나 해 봤지만 주건은 만나 주지 않았었다. 그 후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그의 집은 너무 가난해 장례 비용조차 마련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심이기가 그의 집을 찾아가 열심히 일을 거들고 부의금도 후하게 내며 성의를 보였다. 그러자 주건도 차츰 심이기를 좋게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감옥에 갇혀 위기에 몰린 심이기는 주건에게 사람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주건은 냉정히 거절했다.
"사사로이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는 주건은 효혜제가 사랑하고 있던 남자인 굉적유를 찾아갔다. 굉적유는 미소년으로서 효혜제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효혜제는 동성 연애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마 사나운 어머니 여후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굉적유를 찾아간 주건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황제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 것이오. 그런데 지금 벽양후 심이기가 태후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옥에 갇혀 있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당신이 모함해서 그를 죽이려 한 것이라 믿고 있소. 지금 만일 심이기가 죽게 된다면, 바로 다음날 여후께서 당신을 죽이려 할 것이요. 그런데 왜 당신은 심이기를 구해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오? 황제께 말씀드려 심이기를 풀려나게 한다면 태후께서 크게 기뻐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당신은 황제와 태후 두 분의 사랑을 몽땅 차지하게 될 터인데 말이오."
이 말을 들은 굉적유는 크게 두려워하여, 황제에게 심이기를 풀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황제도 할 수없이 풀어 주었다. 한편 심이기는 주건이 자기 부탁을 거절하자 매우 원망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사실을 알고는 주건을 찾아가 후한 선물을 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 후 여후가 죽고 여씨 천하가 몰락하자 심이기도 당연히 처벌 대상이었다. 그러나 역시 주건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후에 결국 회남왕에게 철퇴로 맞아 죽었다. 회남왕의 어머니는 반란의 혐의를 받고 자살했었는데, 그때 여후와 심이기가 도와 주었으면 살 수 있었던 것을 전혀 손을 써 주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회남왕은 언제나 심이기를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장례에 마음을 빼앗기면 천히도 빼앗긴다
소제 유흥 8년 3월에 여후는 패수 기슭에서 제사를 모시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파란 개 같은 것이 나타나서 여후의 옆구리를 물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도 괴이하여 점을 쳐 보니 죽은 척희의 아들 여의가 복수를 하고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날 이후 여후는 옆구리의 통증 때문에 무척 시달려야 했다. 7월에 접어들면서 여후의 병세는 더욱 깊어만 갔다. 다시 일어날 수 없음을 안 여후는 자기 조카인 여록과 여산을 불렀다.
"선제는 천하를 통일한 다음, 모든 대신들을 모아놓고 '유씨 아닌 자가 왕이 되었을 때는 모두 힘을 합해 이를 무찌르라'고 서약을 시켰다. 때문에 우리 여씨 문중이 권세를 잡았다 해도 중신들이 마음 속으로 복종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내가 죽으면 그들은 반드시 반격을 해 올 것이다. 정신 차리고 우선 군사를 모아 궁궐을 지켜야 한다. 장례에 정신을 빼앗기면 천하를 빼앗길 것이다. 명심하도록."
드디어 8월 초하루에 여후는 세상을 떠났다. 여후의 유언에 따라 여산이 상국으로 임명되었으며, 여록의 딸이 황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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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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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
十:열 십. 六:여섯 륙. 計:꾀할 계. 走:달아날 주. 爲:할 위. 上:위 상.
[유사어] 주여도반(走與?飯).
[출전]《資治通鑑》〈卷百四一〉,《齊書》〈王敬則專〉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에서 피하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란 뜻으로, 일의 형편이 불리할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
남북조 시대, 제(齊:南齊, 479~502)나라 5대 황제인 명제(明帝) 소도성(蕭道成)의 종질(從姪:사촌 형제의 아들)로서 고제의 증손(曾孫)인 3대/4대 황제를 차례로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簒奪)한 황제이다. 그는 즉위 후에도 고제의 직손(直孫)들은 물론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잡아 죽였다. 이처럼 피의 숙청이 계속되자 고조 이후의 옛 신하들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개국 공신인 회계(會稽) 태수 왕경측(王敬則)의 불안은 날로 심해졌다. 불안하기는 명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부 장괴(張壞)를 평동(平東)장군에 임명하여 회계와 인접한 오군(五郡:강소성 내)으로 파견했다. 그러자 왕경측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도읍 건강(建康:南京)을 향해 진군하여 불과 10여 일 만에 건강과 가까운 흥성성(興盛城)을 점령했다. 도주에 농민들이 가세함에 따라 병력도 10여 만으로 늘어났다. 한편 병석의 명제를 대신하여 국정을 돌보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패전 보고서를 받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경측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단장군(檀將軍)의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三十六計走爲上計]’이었다고 하더라. 이제 너희 부자(父子)에게 남은 건 도망가는 길밖에 없느니라.”
이 말은 ‘단장군이 위(魏:北魏)나라 군사와 싸울 때 도망친 것을 비방한 것이다’라고 주석을 붙인 책도 있다. 그 후 관군에게 포위 당한 왕경측은 난전중(亂戰中)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주] 단장군 : 송(宋:420~479)나라 무제(武帝:420~422)의 건국(建國)을 도운 명장 단도제(檀道濟)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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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특명이다! 밑을 막아라
이종환, 최유라씨! 안녕하세요?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인사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언제나 소박한 일상의 얘기로 전 국민의 웃음을 책임지시는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만약 두 분이 저희 지역구에 출마하신다면 웃음이 묻어나는 새로운 정치 구현을 위해 소중한 저의 한 표를 이행할 것입니다. 저는 서른 네살의 주부로서 사랑스런 일곱 살박이 아들과 바로 이 얘기의 주인공인 동갑내기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우선, 그이의 특이한 체질을 소개해야겠네요. 덩치는 김국진, 식성은 강호동 즉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않는 희귀한 체질입니다. 저희가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때, 그이는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에 군대를 가야만 했습니다. 아직 신혼이던 그 당시, 3년이라는 긴 시간의 이별을 결코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고민 고민 끝에 그이는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육군학사 장교를 지원하였고, 장교의 자격 요건을 판정키 위한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몸무게였습니다. 장교가 되기 위한 Cut-Line은 54kg, 그이의 몸무게는 48kg.
“우째 이런일이-!!”
신체검사 일을 겨우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무려 6kg의 체중을 늘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무지하게 먹였고, 그이는 무지하게 먹었습니다. 한끼에 밥 2그릇과 고기 1접시씩, 하루에 5끼. 간식으로 아이스크림 큰 것 1통, 초코릿 1박스. 그 외에도 살이 찔 만한 음식은 무조건 먹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이의 체중이 저녁이면 1kg정도 늘었다가 다음날 아침 응아를 하고 나면 도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이의 신기한 소화기관은 먹는 모든 것을 응아로 생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이의 체중은 응아의 무게만큼 늘었다줄었다 하는 것이죠. 그러기를 20여일, 그이의 몸무게는 겨우 2kg이 늘어난 50kg이 되었습니다. 신체검사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늘려야 할 몸무게는 4kg. 절망적인 그 순간에 저는 비장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몸무게를 늘리는 것은 살만이 아니다!
부족한 4kg을 응아로 채우자!
그이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 아래 남은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첫째, 눈으로 밥풀이 튀어나올 때까지 먹는다.
둘째, 국물은 뽑되 건더기는 절대 뽑지 않는다.
셋째, 체중이 소모될 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특히 밤엔 딴짓 않고 잠만 잔다.
밑빠진 독에 밑을 막은 채 저는 그이의 예술품을 계속 만들어갔고, 그이가 뿜어대는 예술의 향기는 하루가 다르게 독해져 갔습니다. 저는 그이의 그 향기를 맡으며 먼저 것이 석나 보다 라고 태연히 여겼으며 오히려 제 노력에 대한 보람으로 느꼈답니다. 드디어 신체검사 당일 아침. 아침 밥을 잔뜩 먹은 그이의 몸무게는 52.5kg 이미 그이의 대장, 아니 소장까지도 거시기로 가득 찼을 텐데, 무슨 수로 1.5kg을 채우나 그래 기왕에 채우기 시작했으니, 위장, 십이지장, 맹장, 식도에 오줌보까지 꽉꽉 눌러 채우는 거야! 급기야 저는 이런 엄청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이와 함께 타고 갈 승용차에 바나나 8개와 물이 가득 찬 한 말짜리 석유통을 싣고 신체검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입장 15분 전, 그이는 물과 바나나를 정신없이 먹었고, 승용차 안의 그런 진풍경을 구경하게 된 행인들은 우리를 마치 외계인 보듯 하였습니다. 물 반통과 바나나 8개를 먹은 그이는 목구멍까지 바나나 주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누렇게 뜬 얼굴로 엉거주춤하게 걸어가던 그이는 화이팅이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결전의 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앞뒤로 밀려나오려는 고통을 겨우겨우 견뎌내며 입장한 그이에겐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 라는 말 아시죠? 불쌍한 그이는 몸무게를 맨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지옥의 줄에 섰답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그이는 재빨리 줄을 바꾸려 했으나 야속한 통제 요원들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속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는 딱한 처지의 그이는 양손으로 거시기의 두 출구를 꼭 부여잡은 채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답니다. 이종환, 최유라씨! 그이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고통으로 흘린 식은땀을 뒤집어쓴 채 체중계에 올라섰고, 그이는 54.5kg이라는 훌륭한 신기록으로 악몽의 관문을 통과하였답니다. 장하다 내 남편. 위대하다 내 남편. 체중 측정이 끝나자마자 그이는 화장실로 달려갔고, 다리가 저리도록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는군요. 그해 7월, 그이는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입관하였고, 3년 뒤 중위로 무사히 전역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뒤, 그이는 제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 무지막지한 자연의 힘을 막고 버티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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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과학/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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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운명 빅뱅과 그 이후 - 트린 후안 투안
제 5장 행성의 탄생
태양계 밖의 행성들의 생명체를 찾아서
그러면 전 우주에서 인간 외에는 지적 생명체 없는 것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우주에는 약 1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에는 약 1천억 개의 별이 있다. 이 별들이 모두 태양처럼 10여 개의 행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주에는 10²³개라는 어마아마한 수의 행성이 있는 셈이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우리의 위치가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오늘날 천문학자들에게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 일은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의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할 일일 따름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외계인을 만날 수 있는가? 한 가지 방법은 표류하는 사람이 구조의 메시지를 담은 탐사선을 우주 공간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태양계 바깥으로 여행할 최초의 우주탐사선인 파이어니어 10호(1972)와 11호(1973)에 각각 남자와 여자의 그림이 그려진 알루미늄판을 실었다. 이 판에는 우리를 알기 원하는 외계인에게 은하계 내의 지구 위치를 알려주기 위한 모형도도 그려져 있다. 그 다음 우주탐사선은 보이저 1호와2호인데, 여기에는 지구 생명체의 모습은 담은 비디오 디스크와 지구의 소리를 담은 구리로 된 레코드판이 실려있다. 특히 레코드판에는 베토벤의 교향곡부터 재즈, 심지어는 인간의 입맞춤 소리까지 들어 있다. 그러나 메시지를 담은 우주탐사선을 우주로 보내는 것은 외계인을 만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우선 외계인들이 탐사선을 회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리고 탐사선이 끝없는 우주 공간 속을 달팽이 걸음으로 가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비록 우주탐사선이 지구에서 만든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지만,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 데에도 여전히 8만 년이나 걸린다.
[목성의 대적점]
"우주로 보내는 지구"
외계인을 만나기 위한 좀더 효과적인 방법은 전파를 보내거나 받는 것이다. 전파에 실린 메시지는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 이 전송방식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 메시지를 보내는데 4만 년이 아니라 4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에 있는 수많은 행성과 별, 은하들 중에서 어디로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가? 어떤 주파수를 사용해야 하는가? 어쨌든 1975년에 지구의 메시지가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전파망원경을 통해 전송되었고, 같은 내용이 지금까지도 전송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잠재적인 수신자들을 목표로 하여 헤르클레스 자리의 M13을 향해 전파를 보냈다. '채널'은 자연 상태의 수소가 복사하는 에너지의 주파수를 사용했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이므로 외계인도 우리처럼 수소의주파수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모두 2진 기호로 되어 있는데, 1부터 10까지의 숫자, 기본적인 몇몇 원소들의 원자번호, DNA 분자의 형태와 태양계의 모형도가 들어있다. 우리가 이 책을 보는 동안에도 아레시보에서 보내는 우주 메시지는 M13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메시지는 앞으로 2만 4000면 후에나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M13의 전파망원경들 가운데 우연히 태양을 향해 포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외계인이 있어서 메시지를 포착하고, 그 내용을 이해한 후 즉시 회답은 보낸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4만 8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허큘리스 대성단(M13, NGC 6205)은 허큘리스자리에 있는 구상 성단이다. 1714년 에드먼드 핼리가 처음 발견하였고 1764년 6월 1일 샤를 메시에가 메시에 천체 목록에 넣었다. 허큘리스 대성단은 지구에서 25,100광년 떨어져 있으며, 겉보기 등급은 5.8등급이다. 시직경은 23분으로 약 75광년정도의 크기이다.]
우주에서의 도청 공작
메시지를 전송하는 대신 외계인이 보낸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은 어떨까? 지금 이 순간에도 외계 문명이 보낸 전파가 우주 공간을 휘젓고 다닐지 모르는 것이다. 1992년 10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 NASA는 외계 문명이 보낸 전파신호를 찾으려는 두 가지의 전파수색 계획에 착수했다. 하나는 특별한 주파수대를 이용해 태양과 같은 별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백만 개의 채널로 덮여 있는 광범위한 하늘을 뒤지는 계획이다. 언젠가 우주의 불안한 침묵은 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인류 역사의 위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외계의 메시지를 해독하지 못한다. 해도 메시지 자체가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외톨이가 아니라는 인식은 인류가 물질 세계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줄 것이다. 우주는 좀더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외계의 다른 생명체들도 우주가 고향이라는 것은 알게 될 것이므로.
기록과 증언
우주의 시
여기에 인용한 글에서 생텍쥐페리는 천문학자들이 천체에 대해 언급할 대 이름 대신 기호와 숫자를 사용하는 태도를 조롱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 어린 왕자가 있던 행성이 겨우 집한 채보다 클까 말까 한 정도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은 내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는 지구, 목성, 화성, 금성과 같이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커다란 행성들 외에도 수많은 다른 행성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너무 작아서 망원경으로도 거의 보기 힘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천문학자가 그런 것 가운데 하나를 발견하게 되면,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번호를 매긴다. 예를 들면, '소행성325'하고 부르는 것이지. 나는 어린 왕자가 떠나온 행성이 소행성B-612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소행성은 망원경을 통해 단 한차례 보였을 뿐이다. 그것도 1909년에 터기의 천문학자에 의해서였다. 이 천문학자는 자기의 발견을 국제천문회의에서 매우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있지. 그러나 그는 터키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말하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어. 어른들은 늘 그렇지...... 그러나 소행성B612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터키의 한 독재자가 전통의상을 양복으로 바꿔 입으라는 법을 만들었지.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한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그 천문학자가 1920년에 관찰 결과를 다시 설명하게 되었을 때는 멋있고 품위 있는 옷을 입고 있었지. 그러자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그의 보고를 믿어주었어. 그 소행성에 대하여 이렇게 자세하게 말을 하고, 숫자까지 이야기한 것은 어른들과 그들의 습관 때문이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지. 여러분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그 사실을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아. "그 아이의 목소리는 어떠니?"라든가, "그 아이가 어떤 놀이를 제일 좋아하니? 그 아이가 나비를 채집하니?"하는 따위는 결코 묻지 않지. 대신에 어른들은 "그 아이가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 되니? 그 애의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니? 그 애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버니?"하고 물어. 이런 숫자들을 통해서만 어른들은 그 친구에 대해서 알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만일 여러분이 어른들에게 "제가 붉은 벽돌로 된 멋진 집을 보았는데, 그 집 창문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앉아 있었어요."라고 말을 하더라도, 어른들은 그러한 지을 전혀 상상해 내지 못하지. 여러분이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만 어른들은 그제서야 "아, 정말 멋진 집이로구나!"하고 외치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른들에게 "멋진 어린 왕자가 웃으며 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어린 왕자가 있었다는 중거예요. 만일 어떤 사람이 양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게 어린 왕자가 있었다는 증거란 말예요."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여러분을 어린애 취급할 뿐이지. 하지만 여러분이 "어린 왕자가 있던 곳은 소행성 B-612였고......" 하고 말하면, 이번에는 어른들이 믿어줄 것이고, 어른들의 질문 공세로부더 벗어나 편해질 수 있다. 어른들은 늘 그런 식이지. 아무도 어른들의 그런 생각을 막을 수 없어. 그러니까 어린이들은 어른들에 대해 언제나 질긴 인내력을 발휘해야 해.
인간의 욕심
네 번째 행성은 장사꾼의 것이었지. 이 사람은 너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어린 왕자가 왔는데 고개조차 들지 않았어. "안녕하세요?" 어린 왕자가 장사꾼에게 말했어. "담뱃불이 꺼졌네요." "셋에 둘을 더하면 다섯. 다섯에 일곱을 더하면 열둘. 열둘에 셋을 더하면 열다섯. 안녕? 열다섯에 일곱을 더하면 수물둘. 수물둘에 여섯을 더하면 수물여덟. 다시 불을 붙일 시간이 없단다. 수물여섯에 다섯을 더하면 서른하나. 휴! 그러면, 오억일백육십이만 이천칠백삼십일이구나." "오억이라뇨?" 어린 왕자가 물었지. "어? 너 아직 거기 있었니? 오억일백만-멈출 수가 없단다... 할 일이 너무 많거든. 나는 일에만 계속 관심을 쏟지. 쓸데없는 소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단다. 둘에 다섯을 더하면 일곱..." "오억 일백만이 뭐예요?" 한번 던진 질문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어. 장사꾼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54년 동안 이 행성에 살면서 지금까지 딱 세 번 방해를 받았다. 첫 번째는 22년 전인데,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풍뎅이가 떨어졌을 때였지. 그놈이 내는 끔찍한 소리가 온통 사방으로 퍼지는 바람에 네 번이나 덧셈을 잘못했지 뭐니. 두 번째는 11년 전이었는데, 류머티즘 때문이었단다. 운동 부족이었지. 빈둥거리며 돌아다닐 틈이 없었거든.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지금이란다. 으음, 오억 일백만이라고 했었지." "뭐가 억이냔 말이에요?" 장사꾼은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으면 결코 편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하늘에 보이는 저 작은 물체들이 수억개나 된다는 말이란다." "파리?" "아니, 아니. 반짝이는 작은 것들 말이란다." "벌?" "아니라니까. 게으름뱅이들을 공상에 빠뜨리는 조그만 금빛 물체들 말이야. 나는 이제 일을 계속해야겠구나. 꿈속을 헤맬 시간이 없단다." "별들을 얘기하는 거군요?" "그래, 맞았어. 별들." "그러면, 아저씨는 오억 개의 별로 무얼 하나요?" "오억 일백육십이만 이천칠백삼십일개란다. 나는 끊임없이 일을 하지. 정확한 사람이거든." "그런데 이 별들을 가지고 뭘 하냐고요?" "내가 별을 가지고 무얼 하냐고?" "예." "아무것도 안 해. 그냥 별들을 가지고 있는 거란다." "아저씨가 별을 갖고 있는 거라고요?" "그래." "그렇지만 벌써 저는 왕을 보았는데......" "왕은 별을 가지고 있지 않단다. 왕들은 다스리는 거지. 그건 아주 다른 거란다." "그러면 아저씨는 별들을 가지고 있으면 뭐가 좋은데요?" "별들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니까 좋지." "그러면 부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발견해 놓은 별들을 더 많이 살 수 있거든." "이 사람도 술꾼처럼 거의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린 왕자는 속으로 말했어. 그렇지만 어린 왕자는 좀더 질문을 던졌지. "하지만 사람이 별들을 어떻게 가질 수 있어요?" "별들에게 주인이 있니?" 장사꾼이 짜증내며 되받았다. "모르죠.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별들을 내가 가질 수 있는 거란다. 내가 그걸 생각한 첫 번째 사람이거든." "정말 그렇게 되는 거예요?" "물론이지. 네가 주인 없는 다이아몬드를 주으면, 그것은 네 것이 되겠지. 또 네가 주인 없는 섬을 찾아내면, 그것도 네 것이 되지. 네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생각을 해내면, 특허를 얻을 수 있지. 그것도 네 것이야. 나도 마찬가지란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별을 가질 수 있는 거란다." "그건 그렇군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뭘 할 거예요?" 어린 왕자가 말했지. "별들을 관리하지." 장사꾼이 대답했다. "나는 별들을 세고 또 센단다. 그건 힘든 일이지. 그러나 나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하나 사람이지." 어린 왕자는 아직도 만족할 수 없었단다. "내가 만일 비단 목도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목에 두르고 다닐 수 있지요. 또 꽃을 가지고 있으면, 그 꽃을 따서 가지고 다닐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아저씨는 하늘의 별을 딸 수 없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나는 별들을 저축해 놓을 수 있단다." "무슨 소리예요?" "그건 내가 작은 종이에 내 별들의 번호를 기록한 후, 그 종이를 서랍에 넣고 서랍을 열쇠로 잠가둔다는 뜻이지." "그게 다예요?" "그러면 충분하지." 장사꾼이 말했어. "그거 재미있군." 어린 왕자는 생각했지. "조금 시적이야.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잖아." 어린 왕자는 중요한 일에 대해 어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저는 꽃을 한 송이 가지고 있는데 매일 물을 줘요." 어린 왕자는 장사꾼과 얘기를 계속했다. "또 세 개의 화산도 가지고 있는데, 매주 청소를 하죠. (사화산까지도 청소를 한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화산한테는 유익한 일이구요.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한테 유익한 일을 하지 않잖아요......" 장사꾼은 입을 열었으나 대답을 하지 못했어. 그래서 어린 왕자는 그곳을 떠났어.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어린 왕자는 여행을 계속하면서 혼자 중얼거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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