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96호 2022.12.10 토요일 (음 11.17)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는 모두 사회에 기여한다. 낙관론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들어 내니까.
|
|
글나눔 → 말글
|
|
|
|
|
시나눔 → 우나라詩
|
|
|
電話이야기 - 김수영
여보세요. 앨비의 아메리칸 드림예요. 절망예요.
八월달에 실려주세요. 절망에서 나왔어요.
모레면 다 되요. 二백매예요. 特種이죠.
머릿속에 特種이란 자가 보여요. 여편네하고
싸우고 나왔지요. 순수하죠. 앨비말예요.
살롱드라마이지요. 半島호텔이나 朝鮮호텔에서
공연을 하게 되요. 절망의 여운이에요.
미해결이지요. 좋아요. 만족입니다.
新聞會館 三층에서 하는게 낫다구요. 아네요.
거기에는 냉방장치가 없어요. 장소는 二백명가량
수용될지 모르지만요. 절망의 연료가 모자
란다구요. 그래요! 半島호텔같은 데라야
미국놈들한테서 입장료를 받을 수 있지요.
여편네하고는 헤어져도 되지만, 아이들이
불쌍해서요, 미해결예요.
코리안 드림이라구요. 놀리지 마세요.
아이놈은 자구 있어요. 구원이지요. 나를
방해를 안하니까요. 절망의 물방울이
튄 거지요.
내주신다면 당신 잡지의 八월호에 내주신다면,
특종이니깐요, 극단도 좋고, 당신네도
좋고, 번역하는 사람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을 하는 폭이 되지요.
앨비예요, 앨비예요. 에이 엘 삐 이 이. 네.
네에, 그러실 겁니다. 아뇨. 아아, 그렇군요.
이런 전화를, 번역하는 친구를 옆에 놓고,
생색을 내려고, 하고나서, 그 訃告를
그에게 정하고, 그 무지무지한 소란(騷亂)속에서
나의 소란을 하나 더 보탠 것에 만족을
느낀 것은 절망에 지각하고 난 뒤이다.
<1966. 6. 14>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동호지필(董狐之筆)
董:동독할 동. 狐:여우 호. 之:갈 지(…의). 筆:붓 필.
[동의어] 태사지간(太史之簡).
[출전]《春秋左氏傳》〈宣公二年條〉
‘동호의 직필(直筆)’이라는 뜻. 곧
① 정직한 기록. 기록을 맡은이가 직필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이름.
②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기는 일.
춘추 시대, 진(晉)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대신인 조천(趙穿)이 무도한 영공(靈公)을 시해했다. 당시 재상격인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영공이 시해되기 며칠 전에 그의 해학을 피해 망명 길에 올랐으나 국경을 넘기 직전에 이 소식을 듣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다.
‘조순, 그 군주를 시해하다.’
조순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고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대감이 분명히 하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감은 당시 국내에 있었고, 또 도읍으로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거나 처벌하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은 공식적으로는 시해자(弑害者)가 되는 것입니다.”
조순은 그것을 도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훗날 공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을 지켜 올곧게 직필했다. 조선자(趙宣子:조순)도 훌륭한 대신이었다.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오명을 감수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경을 넘어 외국에 있었더라면 책임은 면했을 텐데…….”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1. 진나라의 두 재상
건숙의 아들, 건병
공자 칩은 그 띳집 앞에서 수레를 멈췄다. 그리고 데리고 온 시종을 시켜 집안의 사람을 부르게 했다. 곧 기척이 들리더니 사립문이 반쯤 열리고 조그만 동자 하나가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손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공자 칩이 대답했다.
"나는 건숙 선생을 찾아뵈러 왔노라."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집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선생이 어디로 가셨느냐?"
"이웃에 사는 노인들과 함께 냇물을 보시려고 돌다리에 가셨습니다. 그러니 멀지 않아 돌아오실 것입니다."
공자 칩은 감히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앞 돌 위에 앉아서 선생이 올 때를 기다렸다. 시간이 약간 지났을 때였다. 장대한 젊은 사람 하나가 저편 논둑으로 뻗은 서쪽 길에서 오고 있었다. 그 장정은 눈썹이 굵고, 눈은 고리눈으로 등글고, 얼굴은 네모가 지고, 키가 훨씬 컸다. 그 장정은 등에 사냥하여 잡은 죽은 사슴 두 마리를 메고 당당하게 걸어왔다. 공자 칩은 그 장정의 용모가 비범한 걸 보고 일어나서 맞이했다. 그 장정은 메고 온 사슴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공자 칩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공자 칩이 공손히 답례하고 물었다.
"존함이 누구시옵니까?"
"나의 성은 건씨며 이름은 병이며 자(字)를 백을(白乙)이라고 합니다."
"건숙 선생과 혹 인척간이 아니신지요?"
"예, 그 어른은 바로 저의 부친이십니다."
공자 칩이 다시 정중히 말했다.
"실로 오랫동안 뵈옵고자 했습니다."
장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십니까? 어찌 귀한 몸으로 이 곳까지 오셨는지요?"
"선생과 전부터 친하신 백리해 선생께서 지금 진(秦)나라에 계시온데, 그 어른께서 저에게 편지를 써 주시며 건숙 선생께 갖다 드리라고 하셨기에 왔습니다."
건병이 권했다.
"그러시다면 저 초당으로 들어가시지요.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시면 부친께서 돌아오실 것입니다."
얼마 후 동자가 들어오며 아뢰었다.
"할아버지께서 오십니다."
한편 건숙은 이웃 노인 두 사람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기 집 문 앞까지 와서야 귀한 신분의 사람이 타는 수레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마을에 어찌 이런 수레가 있을까?"
이 때 건병이 집 안에서 나와 손님이 오셨다는 걸 자세히 아뢰었다. 건숙은 동네 두 노인과 함께 초당으로 들어갔다. 건숙이 공자 칩과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한 후에 말했다.
"나의 아우 백리해의 서찰을 가지고 왔다 하니 어서 보여 주시오."
공자 칩은 즉시 백리해의 서찰을 바쳤다. 건숙이 봉함을 뜯고 보았다.
- 저는 형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우나라가 멸망하는 데 같이 묻혀 버릴 뻔했습니다. 다행히 진후(秦侯)가 인물을 널리 구하던 때여서 소를 기르고 있던 이 몸을 빼내어 이제 정사를 맡기심이라.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의 식견과 재주를 따를 수 없습니다. 이제 형님께서 오시어 함께 진나라 앞길을 열어 주시옵기 바랍니다. 이미 진후는 형님의 이름을 듣고 형님이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후는 대부 공손 칩에게 명하사 폐백을 가지고 형님을 모시러 간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세상에 나오사 평생 품으신 뜻으로 진나라를 도와 주십시오. 만일 형님께서 산림을 사랑하사 그냥 머물러 계시겠다면, 저도 벼슬을 버리고 즉시 명록촌으로 가서 평생을 형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백리해의 서신을 다 읽고 건숙이 말했다.
"저의 아우가 되는 백리해가 어떻게 해서 진후께 벼슬을 살게 되었는지요?"
공자 칩은 백리해가 신부의 남자 종으로서 초나라로 도망친 것과, 진후가그 비범한 인물인 것을 듣고 염소 가죽 다섯 장으로 빼내온 자초지종을 다 말하고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 주공께서 상경 벼슬을 주셨건만 백리해는 사양하여 말하기를, '자기 재주가 선생만 못하니 반드시 선생이 진나라에 오셔야만 감히 벼슬을 살겠다'면서 굳이 받질 않았습니다. 이에 우리 주공께서 폐백을 저에게 내주시며 속히 선생을 모셔오라고 하시기에 저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명록촌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따라온 시종들에게 분부했다.
"속히 수레에 있는 예물을 이리로 들여오너라."
시종들은 가져온 예물을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와 초당 위에 늘어놓았다.
건숙, 진나라로 가다
이웃에 사는 노인 두 사람은 다 산야의 농부인 만큼 이런 굉장한 물건을 처음 보기 때문에 서로 놀랐다. 그리고 두 노인이 건숙에게 권했다.
"진나라가 이렇듯 어진 분을 존중하니, 귀인을 헛걸음하게 할 수 없습지요."
건숙이 한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지난날 우공은 백리해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끝내 나라를 잃고 말았소. 만일 진후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을 알아 보고 쓴다면 백리해 한 사람만으로도 부족할 것이 전혀 없을 것이오. 이 몸은 이제 늙어서 세상 일에 대하여 생각이 끊어진 지 오래니 죄송하나 함께 갈 수 없겠소. 이 예물을 거두시고 이대로 돌아가시기 바라오. 가거든 백리해에게 우리의 안부나 잘 전해 주시오."
공자 칩은 당황했다.
"선생이 가시지 않으면 백리해 선생도 우리 진나라를 떠나실 것입니다."
건숙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이윽고 그는 탄식했다.
"백리해는 큰 재주를 품고도 아직 기회를 못 얻어 시험해 보지 못하였음이라. 오랫동안 벼슬을 구하다가 이제야 훌륭한 임금을 만났으니 내 가서 그의 뜻을 성취시키는 데 도와 주지 않을 수 없도다. 그러니 내 다만 백리해를 위해서 진나라로 가긴 가겠으나, 오래지 않아 이 곳으로 다시 돌아와 밭을 갈면서 여생을 보내겠소."
그 때 동자가 들어와서 고했다.
"음식이 다 마련되었습니다."
"새로 익은 술과 사슴 족을 들여오너라."
술상이 들어오자, 공자 칩은 서쪽 자리에 앉고 이웃 두 노인은 건숙의 좌우에 앉았다. 그들은 술잔에 술을 따라 서로 권하며 나무젓가락으로 사슴 족을 집어올려 뜯었다. 그들은 흔연히 취하고 배불리 먹느라고 어느덧 날이 저무는 것을 몰랐다. 공자 칩은 초당에서 그날 밤을 편히 쉬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웃 두 노인이 술통을 가지고 왔다. 건숙 선생을 전송하는 의미에서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전날처럼 취했을 때 건병의 무예가 뛰어난 것을 들은지라, 공자 칩은 건병의 재주를 칭찬하고 이번 길에 같이 진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건숙은 마침내 그 아들과 함께 진나라로 갈 것을 허락하고 진후가 보낸 예물을 이웃 두 노인에게 나눠 주면서 일일이 부탁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 집이나 잘 보살펴 주오. 이번에 가긴 가나 멀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이윽고 이웃 두 노인은 건숙에게 잘 다녀오시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건숙은 수레에 올랐다. 그리고 건병은 고삐를 잡고 부친이 탄 수레를 몰았다. 공자 칩은 다른 수레를 타고 나란히 명록촌을 떠났다. 그들은 밤이 되면 주막에 들어가 자고,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계속해서 진나라를 향해 달렸다. 진나라 교외 가까이 당도하자 공자 칩은 먼저 수레를 달려 궁에 들어가서 진목공께 아뢰었다.
"건숙 선생이 이미 교외에 당도했습니다. 그 아들 건병도 또한 훌륭한 장수의 재주가 있기에 신이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진목공은 크게 기뻐했다. 즉시 백리해에게 교외에 나가서 건숙을 영접하도록 명했다. 백리해와 건숙, 두 의형제는 여러 해만에 진나라 교외에서 서로 만났다. 건숙이 궁으로 들어가자, 진목공은 뜰에까지 내려와서 영접했다. 그리고 건숙을 전상으로 안내해 들어가서 자리에 앉힌 뒤 예의를 갖춰 말했다.
"백대부가 여러 번이나 선생의 현명함을 말하였소. 선생은 장차 패업을 이루는데 무엇으로써 과인을 깨우치고 지도 하시려오?"
건숙이 정중히 대답했다.
"진나라는 중원과 떨어진 서쪽에 위치하고 융적과 이웃간에 있습니다. 땅은 험하고 군사는 강하여 나아가면 족히 싸울 수 있고 물러서면 족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원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공의 위엄과 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위엄이 없으면 어찌 그들이 진(奏)을 두려워할 리 있으며, 덕이 아니면 어찌 그들로 하여금 우리 나라에 진심으로 복종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에 따르지 않는다면 진나라가 어떻게 패업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건숙의 말을 열심히 듣고 나서 진목공이 다시 물었다.
"진실로 선생의 말처럼 하면 마침내 우리 진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잡을 수 있겠소?"
건숙이 옷깃을 여미고 대답했다.
"우리 진은 나라를 서융에까지 확대시키느냐 못하느냐가 장차 국운(國運)의 융성과 쇠퇴를 가르는 판가름 길이 됩니다. 이제 제나라의 관중도 늙었고, 제환공도 사치에 빠져 그 위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제나라의 패업이 시들어 갈 것입니다. 이 때를 당하여 주공께선 진실로 옹위의 백성에게 덕을 베풀고 나아가서는 오랑캐들까지도 감화시킨 뒤에 그들을 거느리고서 복종하지 않는 오랑캐를 치십시오. 모든 오랑캐가 복종하게 되거든 병사를 거두고 중원에 변동이 있기를 기다려 제나라가 남긴 것을 줍고 덕과 의를 펴십시오. 그러면 주공께서 비록 패업을 원하지 않으시더라도 사양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목공이 감탄했다.
"과인이 얻은 두 노인은 참으로 서민의 장이로다!"
드디어 진목공은 건숙을 우서장(右庶長)으로 삼고 백리해를 좌서장(左庶長)으로 삼았다. 이리하여 두 노인의 위(位)는 다 상경(上卿)에 올랐다. 그 뒤로 진나라에서는 건숙과 백리해를 합쳐서 이상(二相)이라고 불렀다. 진목공은 또한 건숙의 아들 건병에게도 대부 벼슬을 주어 병사들을 거느리게 했다. 이후 이상(二相)은 함께 정사를 보며 법을 세워 백성을 가르치고 나라를 일으키면서 모든 재난을 막았다. 그 뒤로 진나라는 크게 발전했다.
|
|
글나눔 → 삶속의 글
|
|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와사등의 불빛처럼
-고 김광균 선생님께
지병으로 말문이 닫혔어도
마음 문은 열려있어
문병을 갈 때마다
그토록
좋아하시던 등불 같은 미소로
환히 반겨 주시던 선생님
시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오히려 남보다 적게 쓰시며
가슴에 시를 개켜 두신 선생님은
"시를 쓰지 않더라도
항상 시의 불꽃을 지니고 살라"고
제게 일러주셨습니다.
흰 눈을 좋아하셔서
흰 눈이 내리던 날
성스런 사제의 품에 안겨
흰 눈처럼 고요히
세상을 하직하신 선생님
"저는 옛날부터
산문은 피하고 살아왔습니다.
산문을 쓰는 동안 시가 새어 나가
시의 금고가 바닥날 듯한 불안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지상에 두고 가신
아름답고도 쓸쓸한 시편들과
제게 주신 편지들을 다시 읽노라면
그리움의 눈물이 하얀 눈꽃으로
제 마음의 창에 얼어붙습니다.
"저는 나이 탓도 있습니다만
일생에서 시를 뺀다면
참 형편없는 인간이라 생각합니다.
시작에 겁이 나시는가 본데
주저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를 써주십시오."
선생님의 기대와 달리
저는 아직도 시의 나무에
좋은 열매 하나 못 달았지만
항상 격려해 주시던 그 목소리는
와사등의 불빛처럼 은은하게
제 영혼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1993)
|
|
글나눔 → 읽어둘문학
|
|
|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원응서편"
원응서(1914~1973)
번역 문학가, 평양 출생, 일본 리쿄 대학 영미 학부 졸업. 문예지 '문학' 주간 역임. 원응서는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일상의 체험에서 우러난 통찰 깊은 수필들이 몇 편 전해져 그의 진가를 보여 준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관조와 애정이 곁들여 있어 독자들에게 수필 문학의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그놈을 잡으려
나처럼 글재주가 무딘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번역을 한 줄 하는 데도 민망할 정도로 연방 우리말 사전을 뒤적인다. 그럴 것이 목적한 단어를 찾다가 낯선 낱말이라도 눈에 띄면 그것에 정신이 팔리다가는 또 다른 어휘를 발견하면 그것에로 달아난다. 이처럼 '도리기'란 말을 찾다가 '되리'란 말에 눈을 팔듯이 연줄연줄 따라가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버리곤 한다. 이렇게 흘러 버린 시간이 수없으리라. 이 수없는 시간을 나는 아깝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노라면 우리말 사전과 싸우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가 당장에는 용처가 없지만 앞날을 위해서 눈에 띄는 낯선 말이면 무작정 적어 두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해서 적고 적어 둔 것이 어느새 두툼한 노트로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무료한 때면 이 노트를 꺼내 가지고, 어허 이런 어휘도 있었던가, 저런 말도 있었던가고 사뭇 감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겉장이 낡고 닳아 새것으로 씌우고 모자라진 데는 손질을 하느라고 화초를 가꾸듯이 매만지기도 했다. 이렇듯 노트는 거의 내 머리맡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고 손땟국이 흐르게 되었다. 몇 번이나 겉장을 갈았는지 모른다. 이런 노트를 나는 잃어버렸다. 사변 때 모든 책과 함께. 잃은 책은 그때그때 사정이 닿는 대로 제일 필요한 것부터 다시 사들일 수 있지만 노트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뿐 아니라 다시는 노트를 만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를 일이다. 무던히나 열을 쏟았고 정을 부었던 때문인지 모르겠고 이제는 그럴 겨를과 일이 없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변으로부터 거의 2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에도 문득문득 생각에 떠오르는 것이 노트다. 번역을 하다 우리말이 막힐 때가 더욱 그렇다. 그것이 지금 곁에 있어도 별도움은 안 될 것이지만, 정확히 따지고 보면 거기 적힌 어휘들이라야 대개는 지금에는 눈에 익은 것이 많고 나머지는 별로 쓰이지 않는 말들이다. 거기에는 놀란흙, 자드락, 어리, 버덩, 도리기, 좀 쑥스런 말이지만 '되리'등이 있을 것이고 번역에 필요한 거의 같은 성질의 낱말들을 정리해 놓은-대번, 문득, 별안간, 갑자기, 대뜸, 금세, 고대, 퍼뜩. 또 다른 종류의 계열로는-결국, 필경, 종당, 필시, 나중에, 결말에, 종국에. 그리고--종종, 가끔, 때때로, 어쩌다 등 이런 것들이었으리라. 후자에 속하는 이러한 일상적 용어들의 집합은 같은 뜻의 '결국'이라는 낱말이라도 다양성 있게 쓰이는 영어에 대처하는 데 편의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취해진, 동의어를 모은 소사전의 구실을 해 주는 것이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노트이건만 그것은 날이 갈수록 눈앞에 자꾸 확대되어 오곤 한다. 무료할 때가 더욱 그렇다. 그리고 2,3월 이맘때면 더더구나 거기 적혀 있었던 낱말 하나가 머리를 뱅뱅 돌면서도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아서다. 겨울철 삼림 속에, 내린 눈이 쌓이고 쌓였다가 봄이 되어 낮에 볕을 받아 오후엔 건등이 녹아 내리며 물이 돈다. 하지만 밤에 접어들어 다시 기온이 내려가 물이 돌던 눈의 건등은 얼음으로 변한다. 발로 짚으면 물 위의 살얼음처럼 바삭 하고 꺼져 내린다. 영어로는 crust라고 한다. 이 눈 건등의 얼음진 것을 한 마디의 낱말로 무엇이라고 하는지. 분명히 노트에는 적혀 있었다. 한 5, 6년 전 어떤 수기를 번역하다가 이 crust가 나왔다. 아무리 생각을 해내려고 애를 쓰고 사전을 뒤적여 보았으나 허사였다. 할 수 없이 눈얼음이라고 번역했다. 말이면 다 말은 아니다. 이것은 얼토당토 않은 궁여지책에서 나온 넋두리에 불과하다. 나는 얼마 전부터 하루에 단 1분씩이라도 "우리말 큰사전"을 샅샅이 잡아 나가기로 했다. 저 노트에 적었던 그놈을 잡기 위해서다. 그놈을 잡으려면 몇 해가 걸릴지 모르지만.
|
|
글나눔 → 읽어 둘 문학
|
|
|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시를 살리는 우리말
우리 시에 나타난 어린이 말
이 자리에서는 어른들이 쓰는 시(어린이들에게 주기 위해서 쓰는 동시 가 아니고 어른들이 읽는 것으로 쓰는 시)에 나타난 어린이의 말(어린이들이 나날이 쓰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른들이 읽는 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린이들이 알 수 있는 말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까닭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시의 본질이 어린이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우리 어른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외국에서 들어온 글을 숭상하고 그 글말을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그것을 특별한 권리로 삼아, 일하면서 살아가는 백성들을 부리고 아이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개화 이후에는 우리 문인들이 우리말로 글을 쓰고 시인들이 우리 시를 썼다고 하지만, 남의 나라 글자라고 할 밖에 없는 한문글자와 그 글자로 된 말이며, 일본말법을 마구 그대로 써 왔기에 아이들이 읽을 수 없고 읽어도 알 수 없는 글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이 가끔 나온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어른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썼는데도 그 마음이 어린이와 다름없는 상태여서 저절로 어린이가 하는 말로 시를 쓰게 된 것이다. 이런 작품을 몇 편만 보기로 하자.
빗소리 - 주요한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1924)
밤에 오든지 낮에 오든지 봄에 오는 비가 들려주는 소리를 오늘날에는 어른들조차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한 소리로 반가운 자연의 소리로 받아 들일 수 없도록, 자연이고 사람이고 달라지고 병들어 버렸다. 그러니 이런 시의 맛을 요즘 학생들이 어느 정도로 알 수 있을까 싶어 슬퍼진다. 어쨌든 자연의 소리에 감동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은혜로움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어른이고 어린이고 다를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말도 이런 시에서 티없이 깨끗하게 씌어졌다고 본다.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1922)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시다. 소월은 이 시를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시로 쓴 것이지, 특별히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쓴 것이 아니다. 어른이 그 심정을 그대로 쏟아 놓았는데도 그것이 그대로 어린이들까지 자기들이 하는 말로 받아들이게 되는 시, 가장 바람직한 시의 모습을 여기서도 보게 된다. 강변 이란 말을 썼는데, 본래 우리말로는 강가 이다. 그런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경북의 깊은 산골에서고 조그만 냇라를 갱변 갱빈 이라 했고, 이 갱변 갱빈 이란 말이 시골말로 널리 쓰고 있으니 우리말로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에서 강변 이란 말을 썼다고 탓할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바닷가 라고 할 것을 해변 해변가 라 써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호수 - 정지용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꼬 간지러워. (1930)
지는 해 - 정지용
우리 오빠 가신 곳은
해님 지는 서해 건너
멀리 멀리 가셨다네.
웬일인가 저 하늘이
핏빛보담 무섭구나!
날리 났다. 불이 났다.
앞의 시 호수 는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쓴 동시가 아니고, 발표한 잡지도 어른들이 읽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낮은 학년 어린이들도 읽으면 오리들이 물 위에 떠 다니면서 목을 감고 놀고 있는 모양을 그려 보며 좋아할 것 같다. 뒤의 시 지는 해 는 어린이들에게 주기 위해서 쓴 동요다. 그래서 여기서는 우리 오빠 라 하여 시인이 어린 아이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 시인이 짐짓 어린이로 꾸며 보여서 어린 아이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는다. 아주 완전히 어린이가 되어 살아 잇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요를 쓴 어른과 글 속의 어린이가 따로 떨어져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시를 읽으면 그 옛날 거의 저녁마다 볼 수 있었던 새빨갛게 타오르던 노을과 그 노을 저쪽으로 지던 해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더구나 이 동요시에는, 숱한 우리 젊은이들이 서쪽 바다 건너 전쟁터에 끌려가던 중일전쟁이 터졌을 무렵의 불안한 세상 형편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금까지 든 네 편 가운데서 빗소리 는 들은 것을, 호수 와 지는 해 는 본 것을, 엄마야 누나야 는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쓴 것이지만 모두 자연을 글감으로 하였다. 본 것이든 들은 것이든 자연을 노래한 시에서 이와같이 어른과 어린이의 세계가 하나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겨울 물오리 - 이원수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새야
나도 이젠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1981)
이 시는, 어른들이 읽는 수필이나 논문도 썼지만 평생을 주로 동시와 동화와 소년소설을 쓰다가 돌아가신 지은이가 일흔의 나이로 병상에 누워서 마지막으로 써서 남긴 작품이다.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고 작품만 보아도 어린이들이 읽는 동시구나 하고 모두 말할 것이다. 그렇게 보아도 좋다. 그러나 잘 살펴서 읽으면 이 시에는 어린이들이 아직은 느낄 수 없는 깊은 세계가 담겨 있다. 지은이의 작품 세계와 살아간 길을 대강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에서, 고향의 봄 으로 시작하여 55년 동안 이원수 문학이 걸어온 길이 마지막으로 이르게 된 자리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이 시는 작곡이 되어서 유치원 어린이들도 즐겨 부르고 있는데, 이렇게 깊고 넓은 뜻을 담아 놓은 시가 유치원 어린이들도 즐겨 부르는 노래로 되어 있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물론 어린이들은 어린이의 정도에서 읽고 노래하면 그만이고, 그래서 차츰 자라나 먼 훗날 이 시를 다시 읽고 새로운 뜻을 깨닫게 되면 평생을 이 노래로 함께 자라고 살아가게 되는 셈이니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이 시는 아동문학작가가 썼지만, 지은이가 쓴 많은 동시가 그랬던 것같이, 지은이가 짐짓 어린이로 되어 어린이 짓을 해 보인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자기 자신을 노래한 것이 그대로 어린이의 노래로 되었고, 시인의 세계와 어린이의 세계가 아주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에서는 자연과 사람이 또 하나로 되어 있다. 자연이 사람이고 사람이 곧 자연이 되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놓았다. 이것이 모두 깨끗한 우리말, 어린이 말을 시의 가장 좋은 표현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