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75호 2022.10.13 (음 9.18)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오래 묵을 수록 좋은 것 네 가지: 오래 말린 땔나무, 오래 묵어 농익은 포도주, 믿을 수 있는 옛친구, 읽을 만한 원로작가의 글. ―프란시스 베이컨(英 작가)
|
|
글나눔 → 말글
|
|
|
정치와 은유(2): 목소리
나이 들수록 힘이나 논리보다는 공감과 연결성 같은 심성이 문제를 더 잘 푼다는 걸 알게 된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상상이나 이성만으로 얻기 어렵다. 눈물과 스며듦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대화하는 이미지로 정치를 그려볼 수 있다. 혁명의 꿈이 사라진 자리에, 당사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끝없이 대화하는 모습 말이다.
물론, 목소리는 불평등하다. 그래서 지배자나 권력자보다는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맨 앞자리에 놓인다. 버려지고 지워지고 억압받고 은폐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발언권을 줄 때, 목소리 은유가 갖는 정치적 급진성이 담보된다. 주변부로 내몰린 사람들의 목소리야말로 이 세계가 단일한 질서를 갖는 것도 아니며, 적대적인 이원 대립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님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지배와 피지배, 자본과 노동, 남성과 여성, 갑과 을, 정신과 육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국인과 외국인으로 깔끔하게 양분되지 않는다. 이분법은 우리 머릿속에 선후경중과 효율성을 따지게 하여 ‘뭣이 중헌디?’란 질문을 반복하게 만든다. 목소리 은유는 목소리가 겹칠 때 발생하는 관계의 공명―함께 울림, 함께 울기, 함께 바뀜―을 지향한다. 지금의 권력을 상대화하고 기존의 분할을 다르게 분할하여 무력화한다.
‘육성’. 몸의 소리. 목소리는 몸과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다움의 추구는 발성(소리 지름)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목소리’ 없는 사람,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있다는 자각은 중요하다. 진보는 어제보다 많은 목소리가 참여하는 것이다.
정치와 은유(3): 가정
당신은 국가를 어떻게 상상하는가?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사람들은 국가를 가정과 비슷한 걸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어떤 가정으로 비유하느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갈린다. 보수는 국가를 ‘엄한 아버지’의 가정으로, 진보는 ‘자상한 부모’의 가정으로 비유한다.
엄한 아버지는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내려면 아이가 성실함과 실력을 갖추도록 훈육해야 한다고 본다.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 잘 견뎌낸 아이가 물질적 부와 명예를 얻고 그러지 못한 아이는 가난과 실패를 맛보는 게 당연하다. 삶의 성패는 개인의 책임이다. 그러니 가난뱅이들을 돌보는 것은 쓸데없는 돈 낭비이자 비도덕적인 행위다. 자기 절제와 성실함이 없는 자들에게 복지라니.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반면에 자상한 부모는 자신들의 보살핌으로 아이는 더 선해지며 세상도 더 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부모는 아이의 성공과 실패에 동참하며 함께 울고 웃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세계에 대한 책임감과 헌신을 중시한다. 무엇보다 물질적 성공과 도덕을 연결시키지 않는다. 훌륭한 삶은 물질적 성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따라서 누구나 이 세계에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국가는 모든 이들이 기꺼이 삶을 살 수 있도록 옹호할 책임밖에 없다. 역할과 책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위아래로 나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농담조로 말한다. “여러분 모두 진보주의자가 되길 바랍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진보주의자가 되지 않을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잘 안 먹힌다. 내가 보수라서(!)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
|
시나눔 → 우나라詩
|
|
|
거위 소리 - 김수영
거위의 울음소리는
밤에도 여자의 호마색(縞瑪色) 원피스를 바람에 나부끼게 하고
강물이 흐르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웃는 얼굴을 더 웃게 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한다
<1964. 3>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군자삼락(君子三樂)
君:임금 군. 子:아들 자. 三:석 삼. 樂:즐길 락, 좋아할 요.
[원말]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 [유사어] 익자삼요(益者三樂)
[반의어] 손자삼요(損者三樂) [출전]《孟子》〈盡心篇〉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는 말.
전국 시대, 철인(哲人)으로서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B.C. 372?~289?)는 《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君子有三樂(군자 유삼락)]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父母具存 兄弟無故(부모구존 형제무고)]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득천하영재 이교육지)]
한편 공자는 《논어(論語)》〈계시편(季시篇)〉에서 ‘손해 되는 세가지 좋아함[損者三樂(손자삼요)]’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교락(驕樂:방자함을 즐김), 일락(逸樂:놀기를 즐김), 연락(宴樂:주색을 즐김).
|
|
글나눔 → 추천글
|
|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선택형 의문문으로 요청하라
이 방법은 자녀에게 선택의 자유와 함께 그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뜻을 전달한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얘야, 지금 상을 차릴래, 아니면 그 TV 프로그램을 본 다음에 차릴래?"
"붉은 색 잠옷을 입을래, 초록색을 입을래?"
"시리얼을 먹을래, 계란을 먹을래?"
"캐리어스를 먹을래, 콘프레이크를 먹을래?"
특히, 이 방법은 자녀의 관심을 당신이 거절하고 싶은 대상이나 환경에서 돌려놓는데 효과적이다. 당신이 상점의 시리얼 매장에 있다고 가정하자......
"엄마, 엄마, 바비 시리얼을 사주세요!"
"그건 오늘 안돼, 웨얼티(통밀로 만든 간편식)를 살까, 그라놀라(납작보리로 만든 아침식사용 간편식)을 살까?"
"바비를 사주세요!"
엄하고, 단호하게 선택 조건을 반복하라.
"웨일티로 살까, 그라놀라로 살까?"
결국, 선택에 대한 자녀의 욕구가 우세해질 테고 다들 승리자가 된 기분으로 가게를 나온다.
5.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생 텍쥐베리 - 진정한 삶은 첫걸음을 때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한 걸음을 때는 것이다.
격려를 요청하라
격려란 영혼의 청량제이다. - 구전 속담
1980년에 나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연출과 공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부동산 분야에서의 매우 성공적이었던 직업 대신에 노래와 춤, 그리고 극작을 하고 싶어했다. 내가 그것을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곧 매우 중요한 무엇인가가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꿈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그는 혹시 미친 게 아니냐고 반문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황금색 글씨로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는 푸른 리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일깨우고 당신의 꿈은 무엇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나는 말했다.
"저는 당신이 당신의 희망을 이루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그리도 당신 역시 제가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격려해 주기를 바랍니다. 들어보세요. 저는 2002년 3월 31일에 브로드웨이에서 저의 뮤지컬을 공연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을 만날 때마다 저는 당신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계속 노력해, 해리스!'라고 말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네 몫 즐거움을 내 차지 - 조 그리피스의 '사업계 일화 모음집'에서
어떤 해군 장교와 사령관이 섹스에 대해서 너무도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장교는 섹스가 80%의 노동과 20%의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했고, 사령관은 10%의 노동과 90%의 즐거움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오랜 시간 논쟁을 벌였고 공평한 판정을 원했다. 그들은 옆에 있던 상사를 불러 세워 이런 논쟁에 대해 설명하고 그의 의견을 물었다.
"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두분 모두 틀리셨습니다."
상사가 대답했다. 그들은 어째서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가 대답했다.
"만일 섹스에 어떠한 노동이라도 있다면, 두분은 그 일을 저에게 대신 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연장과 장비를 요청하라 - 마이크 위켓
몇 년전에, 커다란 석유 정유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불길은 수백피트 이상 치솟았으며, 하늘은 검고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찼다. 불길이 거세게 번져나가서 소방관들은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소방차를 대기시키고 불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렸지만 화재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몇 블록 밖에 있던 소방차가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그곳으로 달려와 불길 바로 앞 커브에 충돌해서 멈췄다. 그리고 소방관들이 차에서 내려 불길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다른 소방관들 역시 다시 달려와 같이 협조했다.이러한 협동적인 노력의 결과로 화재는 거의 진압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화재 진압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소리쳤다.
"세상에 저 불길 속으로 먼저 뛰어든 소방관들은 정말 용감하군!"
그들은 그러한 용감한 행위에 대해서 특별 포상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상식에서 시장이 말했다.
"소방 대장님, 우리는 당신들의 환상적이고도 용감한 행동에 대해서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들은 재산은 물론이고 소중한 인명의 손실도 막아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그러자 대장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네, 존경하는 시장님, 새로운 브레이크 장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6. 제환공과 굴완, 입술에 피를 바르다
포숙아가 감탄하다
예를 마치고 나서 제후들은 서로 재배하고 치사했다. 관중이 굴완에게 청했다.
"청컨대 귀국에 사로잡혀 있는 담백을 정나라로 돌려보내 주면 매우 감사하겠소."
굴완이 웃으며 관중에게 청했다.
"우리 나라도 채후를 대신해서 귀국에게 사죄합니다. 그러니 귀국도 채나라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쌍방 조건을 허락했다. 마침내 관중은 8국 군대에게 회군할 것을 하령했다. 대군이 돌아가는 도중이었다. 포숙아가 관중에게 물었다.
"초나라 죄는 초후(楚侯)가 이제까지 망령되게 스스로 왕이라고 자칭한 데 있소. 그런데 그대는 초후가 포모를 주왕실에 바치지 아니한 것만을 가지고 문제를 삼았소. 웬일이오? 나는 그대의 속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려."
관중이 대답했다.
"초나라가 자칭 왕호를 쓴 것은 벌써 3대째가 되었소. 내가 만일 초나라가 왕호를 쓴다고 꾸짖었다면 초가 머리를 숙이고 내 말을 듣겠소? 만일에 초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서로 싸우는 수밖에는 없소. 싸움이란 그대도 잘 알고 있듯이, 한번 시작하면 서로 보복하느라 여념이 없게 되오. 한두 해에 결말이 나지 않소. 특히 우리와 초나라가 싸운다면 남북이 아마 몇 해를 두고 극도로 소란할 것인즉 전쟁의 피해는 몇 대를 두고 이어질 것이 틀림없소. 초나라를 멸망시킬 수는 있겠으나 우리 제나라도 온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오. 내 포모로써 트집을 잡아 초로 하여금 공물을 천자께 바치게 하였으니 이는 초가 스스로 자기 잘못을 인정한 것이오. 그리고 주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위엄을 알린 것이오. 동시에 우리 주공의 패업을 더욱 빛나게 하고 이 곳에 모인 각국의 군후들 위력도 빛냈소. 나는 그대의 생각에도 전쟁을 열어 화를 맺는 것보다 서로 동맹하고 우호를 맺는 것이 낫다고 하리라 보오."
이 말을 듣고서 포숙아가 크게 감탄했다.
"역시 관중이로고. 군사 하나 다치지 않고도 천추의 높은 공적을 주공에게 바치고, 주왕실의 위엄을 떨쳤도다."
관중이 포숙아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대는 돌아가는 길을 잘 보아 두오. 언젠가 우리 나라와 초는 자웅을 결판지어야 할 날이 올 것이오. 그 때는 초나라의 둥지를 단숨에 둘러 빼야 할 것이오."
포숙아가 다시 찬탄한 후 물었다.
"그대가 볼 때 어느 때쯤 우리 나라와 초나라가 한판 승부를 해야 할 것 같소?"
관중이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초와 우리가 전쟁을 치루려면 주왕실을 비롯한 중원의 모든 나라가 우리 제나라를 편들어야 하오. 특히 진(晋)과 진(秦)의 협력이 있어야 하오. 그리고 북쪽 오랑캐에 대한 대비도 있어야 할 것이오. 그 때가 되면 나나 그대나 어찌 초나라를 두려워하겠소."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한 미소를 나누었다.
|
|
글나눔 → 읽어둘문학
|
|
|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상편"
이상(1910~1937)
시인. 소설가. 본명은 김해경. 서울 출생. 경성 공고 졸업. 총독부 내무부 건축과 근무, 특이한 소재와 특이한 기법, 특이한 행적으로 이채를 띠었던 이상은 수필에도 뛰어났다. 독특한 안목과 감성으로 사물을 바라본 그의 수필은 실험적인 시나 황당한 소설보다 훨씬 짙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권태
3
대싸리 나무도 축 늘어졌다. 물은 흐르면서 가끔 웅뎅이를 만나면 썩는다. 내가 앉아 있는 데는 그런 웅뎅이가 있다. 내 앞에서 물은 조용히 썩는다. 낮닭 우는 소리가 무던히 한가롭다. 어제도 울던 낮닭이 오늘도 또 울었다는 외에 아무 흥미도 없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다. 다만 우연히 귀에 들려 왔으니 그저 들었달 뿐이다. 닭은 그래도 새벽, 낮으로 울기나 한다. 그러나 이 동리의 개들은 짖지를 않는다. 그러면 모두 벙어리 개들인가, 아니다. 그 증거로는 이 동리 사람 아닌 내가 돌팔매질을 하면서 위협하면 10리나 달아나면서 나를 돌아다보고 짖는다. 그렇건만 내가 아무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천 리나 먼 데서 온 외인 더구나 안면이 이처럼 창백하고 봉발이 작소를 이룬 기이한 풍모를 쳐다보면서도 짖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어째서 여기 개들은 나를 보고 짖지를 않을까? 세상에도 희귀한 겸손한 겁쟁이 개들도 다 많다. 이 겁쟁이 개들은 이런 나를 보고도 짖지를 않으니 그럼 대체 무엇을 보아야 짖으랴.
그들은 짖을 일이 없다. 여인은 이 곳에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도연변에 있지 않는 이 촌락을 그들은 지나갈 일도 없다. 가끔 이웃 마을의 김 서방이 온다. 그러나 그는 여기 최 서방과 똑같은 복장과 피부색과 사투리를 가졌으니 개들이 짖어 무엇하랴. 이 빈촌에는 도적이 없다. 인정 있는 도적이면 여기 너무나 빈한한 새악씨들을 위하여 훔친 바 비녀나 반지를 가만히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되리라. 도적에게는 이 마을은 도적의 도심을 도적맞기 쉬운 위험한 지대리라. 그러니 실로 개들이 무엇을 보고 짖으랴. 개들은 너무나 오랜 동안-아마 그 출생 당시부터--짖는 버릇을 포기한 채 지내 왔다. 몇 대를 두고 짖지 않는 이 곳 견족들은 드디어 짖는다는 본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리라. 인제는 돌이나 나무 토막으로 얻어맞아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야 겨우 짖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본능은 인간에게도 있으니 특히 개의 특징으로 쳐들 것은 못 되리라.
개들은 대개 제가 길리우고 있는 집 문간에 앉아서 밤이면 밤잠, 낮이면 낮잠을 잔다. 왜? 그들은 수위할 아무 대상도 없으니까다. 최 서방네 집 개가 이리로 온다. 그것을 김 서방네 집 개가 발견하고 일어나서 영접한다. 그러나 영접해 본댔자 할 일이 없다. 양구에 그들은 헤어진다. 설레설레 길을 걸어 본다. 밤낮 다니는 길, 그 길에는 아무것도 떨어진 것이 없다. 촌민들은 한여름 보리와 조를 먹는다. 반찬은 날된장 풋고추다. 그러니 그들의 부엌에조차 남는 것이 없겠거늘 하물며 길가에 무엇이 족히 떨어져 있을 수 있으랴. 길을 걸어 본댔자 소득이 없다. 낮잠이나 자자. 그리하여 기들은 천부의 수위술을 망각하고 낮잠에 탐닉하여 버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짖을 줄 모르는 벙어리 개, 지킬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 개, 이 바보 개들은 복날 개장국을 끓여먹기 위하여 촌민의 희생이 된다. 그러나 불쌍한 개들은 음력도 모르니 복날은 몇 날이나 남았나 알 길이 없다.
4
이 마을에는 신문도 오지 않는다. 소위 승합 자동차라는 것도 통과하지 않으니 도회의 소식을 무슨 방법으로 알랴? 오관이 모조리 박탈된 것이나 다름없다. 답답한 하늘, 답답한 지평선, 답답한 풍경, 답답한 풍속 가운데서 나는 이리 디굴 저리 디굴 굴고 싶을 만치 답답해하고 지내야만 된다.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한다. 병석에서는 더욱 많이 생각하는 법이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 과잉은 이런 권태치 않을 수 없는 권태 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시한다. 그러나 지금 이 개울가에 앉은 나에게는 자의식 과잉조차가 폐쇄되었다. 이렇게 한산한데, 이렇게 극도의 권태가 있는데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기를 주저한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 그것조차가 귀찮다. 그러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눈뜬 채 졸기로 하자.
더워 죽겠는데 목욕이나 할까? 그러나 웅뎅이 물은 썩었다. 썩지 않은 물을 찾아 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 썩지 않은 물이 여기 있다기로서니 나는 목욕하지 않았으리라. 옷을 벗기가 귀찮다. 아니 그보다도 그 창백하고 앙상한 수구를 백일 아래 널어 말리는 파렴치를 나는 견디기 어렵다. 땀이 옷에 배이면? 배인 채 두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더위는 무슨 더워냐. 나는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세수를 하기로 한다. 나는 일어나서 오던 길을 돌치는 도중에서 교미하는 개 한 쌍을 만났다. 그러나 인공의 기교가 없는 축류의 교미는 풍경이 권태 그것인 것같이 권태 그것이다. 동리 아해들에게도 젊은 촌부들에게도 흥미의 대상이 못 되는 이 개들의 교미는 또한 내게 있어서도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함석 대야는 그 본연의 빛을 일찍이 잃어버리고 그들의 피부색과 같이 붉고 검다. 아마 이 집 주인 아주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이리라. 세수를 해 본다. 물조차가 미지근하다. 물조차가 이 무지한 더위에는 견딜 수 없었나 보다. 그러나 세수의 관례대로 세수를 마친다. 그리고 호박넝쿨이 축 늘어진 울타리 밑 호박넝쿨의 뿌리 돋친 데를 찾아서 그 물을 준다. 좀 생기를 내라고 땀내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고 툇마루에 걸터앉았자니까 내가 세수할 때 내 곁에 늘어섰던 주인집 아이들 넷이 제각기 나를 본받아 그 대야를 사용하여 세수를 한다. 저 애들도 더워서 저러는구나, 하였더니 그렇지 않다. 그 애들도 나처럼 일거수 일투족을 어찌했으면 좋을까 하고 있는 권태들이었다. 다만 내가 세수하는 것을 보고 그럼 우리도 저 사람처럼 세수나 해 볼까 하고 따라서 세수를 해 보았다는 데 지나지 않는다.
|
|
글나눔 → 삶속의글
|
|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혼자만의 시간 - 스테파노 선생님께
나뭇잎 하나가
벌레 먹어 혈관이 다 보이는 나뭇잎 하나가
물속이 얼마나 깊은지 들여다보이려고
저 혼자 물위에 내려앉는다
나뭇잎 하나를 이렇게 오도마니
혼자서 오래오래 바라볼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란 제목의 시집을 펴낸 바 있는 안도현 시인의 `나뭇잎 하나가` 란 이 시를 공감하며 읽어 보는 조용한 주일 오후입니다.
스테파노 선생님, 아네모네와 여러 고운 꽃우표가 붙어 있는 정성스런 편지는 반갑게 받았습니다. 베토벤의 `전원교향악` 을 좋아해 필라델피아 중심가에 개업하는 새 식당 이름도 `전원` 이라고 하셨다구요? 하루 종일 고전음악이 흐르는 그곳에서 손님들이 잠시나마 기쁘게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남의 인사도 으레 바쁘냐고 먼저 물어볼 만큼 늘 일 속에 파묻혀 사는 바쁜 시대의 우리들은 일부러 큰맘 먹고 선행하지 않으면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기도하거나 조용한 명상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조금은 쓸쓸하지만 고즈넉한 기쁨이 고여 오는 시간을 갖기가 어려운 듯합니다. 신과 자연과 인간 그리고 모든 사물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하고 오래 바라볼 틈을 갖지 못하는 것이지요.
한 가지 일이 끝났다 싶으면 또 해야 할 일이 생기고, 거듭되는 만남의 약속을 위해 쉴새없이 계획표를 짜야 하는 일도 때로는 우리를 힘들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이번 달의 잡지를 아직 다 읽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또 다음달 잡지가 도착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시간의 빠름을 절감하기도 합니다. 위의 시를 읽으면서, 저도 요즘은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맡은 일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분명하게 보내느라 차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재충전하지 못한 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내면이 침묵과 고독의 전류로 충전되지 않으니 사소한 일에서도 실수가 뒤따르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하며 삐걱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이렇게 빈방에서 창문을 열어제친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산을 바라보고,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음이 얼마나 흡족하고 소중한지요. 새 한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다 어느 순간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것 또한 기쁜 일입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이제 주일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저도 새롭게 결심해 봅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도 피하고, 산책을 하든 음악을 듣든,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만드는 연습을 꾸준히 함으로써 여럿이 모여 사는 공동체 생활도 더 잘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인 말로 모건(Marlo Morgan)의 <무탄트>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평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의 영원한 본질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데 우리가 실제로 소비하는 시간은 너무나 적다` 라는 이 말은 외적인 일들에 마음이 매여 정신없이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촛불을 켜고 케이크를 자르며 즐기는 생일 파티에 대해 설명하는 이 책의 저자에게 반문하던 호주 원주민들의 말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는 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 데는 어떤 노력도 들지 않아요. 우리는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지난해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이 알수 있으니까, 잔치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잔치의 주인공이지요.`
이 말을 저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뇌어 보곤 합니다. 겉으로는 늘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의 삶일지라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는 가운데 다른 이와의 관계를 진정한 사랑과 용서와 이해로 넓혀 나간다면 하루하루가 떳떳하고 자유로우며 새로운 기쁨과 보람으로 누가 옆에 없어도 스스로 충만함을 누릴 수 있을테지요. 아마도 `나이를 헛먹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기보다는 그야말로 작은 축제를 즐기는 느낌을 지닐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스테파노 선생님. 지난번에 제가 보내드린 시들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셨다니 기쁩니다. 오늘도 최근에 발견한 몇 개의 좋은 시들을 보내니 가까운 이웃들과 돌려보시길 바랍니다. 제게 편지를 보내는 독자들 중에는 제 자신의 글보다도 제가 인용한 다른 이의 좋은 글들을 보고 그 감동을 표현하는 분들도 적지 않기에 저는 앞으로도 계속 제가 발견한 아름다운 글들을 이웃에게 실어 나르는 심부름꾼이 되려 합니다. 한지에 적힌 글은 액자에 넣어 선물용으로 쓰셔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수녀원의 솔 향기, 아카시아 향기 속에 고국의 늦봄을 담아 보내며 기도 안에 뵙겠습니다.
(1996)
|
|
글나눔 → 읽어 둘 문학
|
|
|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일기글 쓰기 - 일기글 어떻게 쓸까 (2/4)
고사리 꺾자
동내 울산을 넘어가자
(66쪽. 이것은 충남 공주 사람이 적은 것인데, 제목은 동래 울산 이라고 되어있다)
고사리 대사리 꺾세
좃침 댓침 꺾세
(74쪽. 충남 부여 사람이 적었는데, 제목에는 잡이라 되어 있다.
[고사리 대사리 꺾자]
거춘 대춘 꺾자
광주 무등산에 가서
고사리 대사리 꺾자
제주 한라산에 가서
고사리 대사리 꺾자
(123쪽. 전북 고창군 대산면 사람이 적었다. 제목이 고살 이고, 끝에 처녀들이 명절 때 모여 놀며 라고 써 놓았다.)
고사리 캐로 간다고
핑계핑게 하드니
총각낭군 무덤에
삼우제 지내러 간다네
(328쪽. 경남 진해 사람이 적었는데, 제목이 속요 잡 이라 되어 있다)
이렇게 4편 중에 3편이 꺾자 로 적혀 있다. ( 캔다 는 말이 한 군데 나오는데, 이 말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역시 고사리를 끊는다는 말은 충청도고 경상도고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또 찾아 보았다. 이번에는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바로 초등 학교 6학년 음악책에 나온 민요의 원형임에 틀림없는 노래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뜻밖에도 껑자 로 되어 있다. 제목만은 고사리 꺾자 로 썼다. 노래 앞에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면서 노는가를 설명해 놓았는데, 다음에 옮겨 놓은 노래말은 첫머리 것으로 이것은 전체의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란 말은 끝까지 되풀이되어 있다.
설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받는 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설소리 껑자 껑자 고사리 대사리 껑자
수양산 대사리 껑거다가
우리 아배 반찬하세
받는 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껑자 껑자 고사리 대사리 껑자
여기서 의문이 다 풀렸다. 전북 고창 사람들은 옛날부터 고사리를 껑는다 (이것은 꺾는다 고 써도 같은 소리가 된다) 껑자 라고 말하고 노래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이것이 교과서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껑자 가 끊자 로 되어버렸다.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일부러 고친 것이 분명하다. 껑자 란 표준말이 없으니 껑자 에 가까운 끊자 로 하자고. 내가 보기로는 악보를 만든 사람이 이렇게 고치지는 않았을 것 같고, 교과서를 만드는 실무자들이 이렇게 한 것이라 짐작된다. 이것은 국정 교과서가 우리말을 일부러 틀리게 고쳐 적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하는 하나의 보기가 된다. 최근 전남 고흥군에 있는 한 선생님 얘기를 들으니 호남지방에서는 어디를 가도 고사리 껑자 라고 말한다 했다. 그래 이 문제는 다시 더 알아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또 시험문제를 하나 내어 보기로 하자. 다음 네가지 말 가운데서 어느 것이 바른 우리말인가 표를하라.
고사리를 1) 껑는다. 껑자. ( )
2) 끊는다. 끊자. ( )
3) 꺾는다. 꺾자. ( )
4) 캔다. 캐자. ( )
어느것이 표준말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바른 우리말이냐고 물었으니 3)과 함께 1)에도 표를 해야 맞다. 사투리도 틀리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끊는다 는 아주 틀린 말이다. 캔다 도 더러 쓰기는 하지만 맞지 않는 말이다. 고사리는 꺾지, 캐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시험문제가 나왔다고 할 때 3)과 1) 두 군데 다 표를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3)에만 표를 하는 사람도 이 문제에서 맞는 점수를 얻지 못할 것이다. 교과서에 고사리 끊자 로 되어 있으니 교과서대로 채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나? 길은 우선 두 가지다. 점수를 따기 위해서 사실이고 진실이고는 다 덮어두고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외운 대로 2)에 표를 하든지, 아니면 자기가 옳다고 믿는대로 (그따위 점수 같은 것에 붙잡혀 있지 말고) 당당하게 3)과 1)에다 표를 하든지다. 나로서는 뒤의 길을 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 또 한 가지 길이 있다. 자기가 믿는 것은 마음속에서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점수를 따기 위해, 이것이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2)에다가 표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나로서는 찬성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틀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모조리 말릴 생각은 없다. 마음속에 지닌 그 믿음을 잃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말과 진리를 책으로 글로서만 배우고 찾으려 할 때 우리는 누구든지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고 사실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