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3 - 최명희
15. 가슴애피(4/7)
안서방네와 안서방은 그네의 양쪽 팔목을 붙들어 잡고, 쇠여울네가 몸부림치는 대로 씨름하는 사람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이토록 독이 올라 거품을 뿜으며 날뛰니, 두사람의 힘으로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말로 허시오, 말로. 우리도 다 귀 있응게에, 말로 하라고요.”
안서방이 쇠스랑을 뺏으려 한다. 쇠여울네는 그런 안서방의 손을 홱 뿌리쳐 버린다. 그 서슬에 안서방은 맥없이 밀린다.
“말로? 말로해서 될 사람한테 말로 허능 거이제, 이런 짐승만도 못헌 놈한테 무신 말로 혀어, 말로 허기는.”
새끼머슴 붙들이와 바우네, 상머슴, 호제, 종들, 할 것 없이 뒤어나와 안팎으로 모두 겹겹이 둘러서서 창황 중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효원은 대청마루에 서 있고, 율촌댁은 댓돌에까지 내려왔다. 이기채는,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무어라고 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쇠여울네가 번쩍 치켜 세운 쇠스랑 끝에 차가운 겨울 햇빛이 섬짓하게 찍힌다. 그는 이기채를 찍어 내리려고 그러는 것이다. 몇 번이나 허공 중에 헛손질을 하는 그네의 갈라진 손등에는 시퍼런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네 이년, 네가 어디서 지금 이런 짓을 허는 게냐?”
이기채가 질려 있던 입술이 겨우 풀리면서 노기를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하이고오, 똥뀐 놈이 썽낸다드니, 날도적놈이 됩대 꼬깔을 씌우능구만 그리여. 내가니 앞에서 무신 못헐 짓을 했단 말이냐. 내가 무신 못헐 지서리를 했느냐고오. 오냐, 나는 너한테, 굶어 죽게 생게서 논 팔은 죄배끼는 없다. 그러고 그 돈 못 받은 죄배끼는 없다아. 니가 나를 혼자 사는 예펜네라고 우습게 봤능갑다만, 나도오...나도오...”
쇠여울네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어 통곡을 한다.
“그께잇 노무 논밭 뙈기, 느그집 행랑살이만도 못헌 거이다마는, 그것을...어치께 일군 거이라고...황소 공출해 가고는, 내가...내 모가지에다가...이, 내 모가지에다가 쟁기 걸고...가래질했던 논이 다아...그 논바닥에 내 눈물로 거름을 줌서 이날끄정 목심같이 여겨왔든 논이라고오...시상에도 웬수에 여름 가뭄 땀새, 딸자석 하나있능 거 보리쌀에팔어먹게 생겠길래, 딸년을 팔어 먹느니 논을 팔자, 허고, 내가, 자식을 파는 심정으로 팔었든 논이다, 그 논이...”
쇠여울네는 발을 버르적이면 이기채를 향하여 쇠스랑을 여지없이 내리찍는다. 차가운 햇빛이 파랗게 잘린다. 이기채는 무망간에 옆으로 피한다.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허허어. 이런 고약한 년을 보았나. 내가 언제 네 논 판 돈을 떼어 먹었단 말이냐.너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로, 누구 앞에서 이러는 것이냐. 네 이녀언.”
“오냐, 나는 배운 거이 없어서 이 모양이다마는, 잘 배운 너는 무신 그렇게 잘날 일이 있냐. 너나 나나, 창씨개밍을 허고 일본놈 성씨 따고 이름 따고 일본놈맹이로 살고 있는디, 머어이 달르냐. 니가 가문이 좋아도 그건 다 옛날 고리쩍 이얘기다. 이께잇노무 집구석, 조상 팔고 이름 갈기는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머어이 그렇게 잘났냐. 머어이 그렇게 잘났어어. 자식 쥑인 년이 겁날 거 하나 없다. 내가 이놈 니 자식놈도 내 자식 쥑이디끼 쥑일란다아.”
쇠여울네는 홱 몸을 돌이키더니, 맨발로 내리달아 안채의 대청마루까지 단숨에 뛰어올라간다. 창졸간에 온 집안에 공포가 뒤덮인다. 효원은 건넌방 문고리를 몸으로 틀어 막으며 두 팔을 벌린다. 댓돌 위에 서있던 율촌댁이 뒤따라 치솟으며 쇠여울네의 뒤에서 팔을 틀어쥔다. 뒤쫓아 올라온 안서방과 머슴, 호제, 종들이 한꺼번에 쇠여울네를 싸잡는다. 그러나 순식간에 놓치고 만다. 그네는 쇠스랑으로 대청마루를 찍는다.
쿠웅.
쿵.
쇠여울네는 흡사 미친 여자 같았다. 대청마루의 바닥에는 여기저기 쇠스랑 자국이 나서 패어 나간다. 그네는 마루 기둥을 찍는다. 눈에서 푸른 불꽃이 번쩍 번쩍 한다. 그 눈빛과 쇠스랑에서 튀는 살기에 질린 사람들이, 장정인데도 차마 덤벼들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만 있다. 이기채는 온몸이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한다.
“네 이녀언.”
하더니,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그의 얼굴이 샛노랗다. 집안의 수라장에 놀랐는지 철재가 건넌방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짖힌다. 이뜻밖의 난리에 놀란 문중 사람들이 창황하게 모여들고, 집안으로 문중의 머슴과 노복, 장정들이 몰려왔다. 거멍굴의 춘복이도, 옹구네와 평순네도 혼비백산 달려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쇠여울네의 뒷머리를 후려쳤다. 춘복이였다. 그 바람에 그네는 쇠스랑을 놓치고 앞으로 거꾸러졌다. 아랫것들은 한꺼번에 그네를 덮어 누르고 몰매를 때렸다. 춘복이도 장작을 내리쳤다. 피가 튀었다. 쇠여울네는 온몸에 몰매를 맞으며 방성대곡을 하였다. 창자가 찢기우는 것 같은 처절한 울음 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구름같이 둘러서서, 이 영문 모를 참담한 일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수천샌님을 불러라.”
이기채는 목안에 잠긴 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낯빛이 백지장같이 질려 있었다. 입술은 안으로 말려 들어가 가느다란 검은 줄만 보일 정도였다. 붙들이가 달음박질로 중문을 나선다.
“왜 이런당가?”
평순네가 구경하는 사람들 틈으로 얼굴을 비집어 넣으며,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옹구네에게 묻는다.
“머엇을 왜 이런당가여? 이런 꼴 진작 안 낭거이 됩대 요상시럽제.”
“무신 소리여?”
“내가 이럴 지 알었다고오.”
“무신 소리냥게?”
“샐인 안 낭 것만도 천신이 보살핑 거이여.”
“하이고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에. 오늘따라 웬 주뎅이가 그렇게 무겁당가? 싸게 말히여 봐아. 뜸딜이지 말고.”
“인자 이 집안도 다 망허능갑다. 예날 같어 봐라. 죽으라먼 죽어야제 어디다가 짹, 소리라도 헐 수 있었간디? 시상 참 많이 변해 부렀다. 그렁게, 사램이 오래 살어야 이 꼴 저 꼴을 보능 거이여.”
쇠여울네는 물 건넛마을 쇠여울에 살고 있는 타성 사람이었다. 마흔을 막 넘긴 억척스러운 여자로 몇 년 전에 남편을 잃고는 혼잣손으로 서너 마지기의 농사를 지어 왔었다. 그네는 본디 여섯 남매를 낳았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가운데로 넷은 차례로 숨이 지고,맨 위로 딸 하나와 맨 끝으로 아들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까 낮에 숨을 거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슬아슬 실낱처럼 크던 어린 것은, 이제 일곱 살인데도 머리만 수박통처럼 크고 맹꽁이배를 불룩 내밀고 다녀서, 그저 기껏 보아야 다섯 살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거기다가 팔다리는 비비 꼬여 살거죽이 밀리며 히줄거리는 모양이, 차마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등 거이 죽어 분 거이라.”
“왜 매급시 잘 놀든 애기가 죽어?”
“잘 놀기는 무신 지랄났다고 잘 놀아? 안 죽고 살어서 눈 껌벅거링게 목심 붙었능갑다했제잉. 그거이 막 나서도 비일 빌 했거등, 왜 그런디, 요번 여름에 가뭄이 엥간히 극성시럽등가? 봄부터 부황난 놈을 멕일 거이 없어서 그 가뭄에 패싹 말려 놨으니. 에미 맴이얼매나 씨러겄능가잉. 그래서, 독헌 맘 먹고 입도선매를 했등갑서.”
“나락 모가지 시퍼렇게 선 놈을, 기양 팔어 넹겠구만이?”
“하아. 그런디, 그것도 돈을 바로 줬으면 누가 머이래야?”
“왜? 돈을 안 주었당가?”
“율촌샌님이야 주셌겄지맹.”
“그러먼?”
“머어이 그러먼 이여, 그러먼이?”
“무신 소리여?”
“율촌샌님 살림살이, 수천샌님한티로 아매 반절은 새 들으가 부렀을 거이네.”
“아이고매.”
“아 그렁게, 입도선매 해 부린 쇠여울네는 환장 복통헐 노릇 아닝갑서? 상하가 있잉게로 차마 재촉도 못허고 눈치만 봄서, 똥마런 강아지 새깽이같이 끙끙거릿겄제. 그리도 어디 수천샌님이 돈을 주간디?”
“왜 수천샌님이 쇠여울네한테 그 논값을 줘어?”
“아이고오. 이 웬수년 귓구녁은 무신 귀뚝 속이당가? 율촌샌님 넨 논 사고 밭 사능거, 죄다 누가 허간디? 그거 다 수천샌님이 헌다고오. 아, 시방끄장 그것도 몰르고 살었간디?”
“그러먼 수천샌님네 가서 난리를 치제 왜 윤철샌님한티 그릿스까이? 율촌샌님은 아무죄도 없구마는.”
“아, 그렁게, 수천샌님은 율촌샌님한티로 자꼬 미룬 거이제잉.”
“그리여잉...”
“그러다가, 혼자 사는 타성바지, 지께잇 거이 감히 율촌샌님한티로 대질허로 갈 거이냐, 핑계 대고 미뤄 두먼 제풀에 지치든지, 지친 끝에 타관으로 동낭치를 가든지 헐 거이다 싶었겄지맹.”
“어찌야 옳이여?”
“그런디, 덜컥 새끼가 죽어 놨이니 쇠여울네가 게거품 물고 쇠시랑 치키 들고 안 가겄어? 참말로 샐인 안 난 것만도 천행만행이제. 아 개새끼도 지 새끼 넘보면 저 밥 주든 쥔이든 나발이고 다 물어 쥑이잔여. 눈에다 불을 씨고 미치는 거이제. 뵈능 거이 있겄능가?”
“그런디, 수천샌님은 어디 가셌능가? 왜 안 오시네?”
“시 살 먹은 애기라도 누가 이런 난장판에 꺼덕 꺼덕 오겄능가잉? 어디로 숨었다가, 이 난리통이 지내간 담에 나와서는, 그 양반은 입심 좋고 수단 좋응게, 구변으로 또 어뜨케 헐티지맹.”
“아이고, 어쩌끄나.”
평순네는 탄식을 하였다. 쇠여울네의 처지가 한없이 가엾고 처량하였으며, 수천샌님 기표가 무서웠다. 그리고, 말라 비틀어져 죽었다는 쇠여울네의 자식 새끼 때문에 목이 메었다.
“어쩌끄나...”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도 그네를 훨씬 놀라게 한 것은, 쇠여울네가 쇠스랑을 거꾸로 치켜 들고 이기채에게 덤볐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참 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구나. 평순네는 떨리는 다리를 오그려 붙이고 쇠여울네가 미친 듯이 찍어 내린 대청마루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허연 허깨비처럼 앉아 계시던 청암마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네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송구스러워하였다. (마님은 정신을 놓고 지심서도 얼매나 마음이 아푸시까잉...저어그, 이러어케 앉어 지시든 양반이, 당신 앉으시던 자리를 저렇게 내리찍으니, 말씸 한 마디도 못허시고, 얼매나 원퉁허고 설우실꼬...참말로 인심도 무섭구나...이 일을 어쩌끄나...무신 일이 날라고이러까잉.)
평순네는 안절부절을 못하며 서성거린다. 차라리 청암부인이 이런 저런 꼴을 못 보고 못 듣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부인께서 못 보고 못 들으시니 이런 죄로 갈 일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평순네는 그만큼 심덕이 온순하기도 했으며, 이 원뜸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대하여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원한보다는 오히려 항상 공연히 송구하고 그 은덕이 하늘 같기만한 마음이었다. 더구나, 바로 지난 봄, 밭에서 풋고추와 애호박 한 덩이를 소쿠리에 따 담아 가지고 오다가, 청암부인이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여 곡기를 통 못든다는 말이 생각나서 대갓집에 들렀던 일은 두고 두고 생각하여도 가슴이 벅차고 감격스러웠다. 가뭄에 딴 애호박이라 물도 제대로 안 오르고 살도 차지 않은 것이었으나, 어째서인지 한 덩이 드리고 싶었다. 이께잇 하찮은 것을...무신 천도 복송이라고...기양 가까...? 중문간을 들어설 때는 발걸음이 쭈밋쭈밋하여, 누가 볼까 싶어지면서 그냥 돌아설까 망설여졌다.
산지 사방에서 일꾼들이 이고 지고 오는 온갖 곡물과 진귀한 물건, 새로 난 과일들도 누가 다 먹지를 못하여 썩어난다는 집안 아닌가, 거기다가 소식의 이기채 때문에, 바리 바리 싣고 오는 갈비짝이며 귀물단지 생선 상자가 몇 날 며칠을 가도 헛간에 산적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또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애호박 한 덩이를 소쿠리에 담아 가지고 가서, 무슨 우세를 당허려고 내가 이런 마음을 먹었을까. 평순네는 그만 돌아서고 싶었다. 그러나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대청에 나와 앉은 청암부인의 눈에 띄고 말았다. 옆에서 손부 효원이 부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답답하여 대청에라도 나와 앉아 바람을 쐬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냐, 들어오다 말고 왜 가?”
“예...저...아무껏도 아닌디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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