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2 - 최명희
14. 나의 넋이 너에게 묻어(3/4)
"앉아라."
부인은 효원에게 손짓을 하며 아이의 옆에 앉는다. 보면 볼수록 영락없는 고사리 같기만 하고 앙징스럽다. 청암부인의 엄지손가락만큼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작은 주먹은, 손가락들이 안으로 도르르 말려 있었다. 거기다 어쩌면 그렇게 눈꼽만큼씩한 손톱은 또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생겨 나 있는지. 그 비늘같이 얇고 조그만 손톱에 분홍빙이 돌고 있다. 그것도 손가락이라고 마디가 다 있다. 마디에는 자잘한 주름까지 잡혀 있다. 하나하나 세어 보고 싶을 지경으로 그 마디들은 재미있고 귀엽다. 잠들어 있지만 않다면 단풍의 어린 잎사귀 같은 이 손바닥의 손금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으련만, 청암부인은 바람이 일지 않게 가만히 이불자락을 들어올려 조그만 발을 본다. 완두콩 같은 발가락들이 조르르 달려있는 것을 보던 청암부인은 그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아가, 신기하지 않으냐? 이 모습이 얼마나 어여쁘냐. 참으로 신비하지? 어디서 왔을꼬...?"
조금전 창씨 문제로 큰방에서 이기채 형제와 나누었던 무거운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잊혀지고 어린 증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청암부인은 속으로, 이 증손이 어떤 증손이냐, 싶은 생각이 사무쳐 왔다.
"이 귀한 내 손자한테 왜 이씨 성을 못 붙인단 말이냐. 이 할미가 꼭 그것만은 지켜줄 테다. 아무도 네 성은 못 뺏어간다."
청암부인은 잠든 아기의 작은 주먹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감싸며, 주름진 늙은 뺨을 꽃잎같이 보드라운 어린 뺨에 가만히 대 보았다.
"네가 네 성은 꼭 다시 찾아 줄 것이다."
그러는 청암부인의 모습을 효원은 말없이 바라본다. 아들 철재가 잠들어 있을 때를 빼고는, 청암부인이 그 무릎에서 아기를 내려놓지 않기 때문에 효원으로서는 감히 언제 아기와 방긋거릴 틈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놓이고 청암부인과 자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맥이 서로 따뜻하게 흘러드는 것을 느낀다. 피도 살도 섞이지 않았으나, 자신이 집안의 줄기를 잇는 한 마디라고 하는 것이 실감되었다. 그것은 뿌듯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꿈 같은 아들 철재의 고물거리는 손가락 발가락을 통하여 얻는 뿌듯함과는 상관없이, 이 어린 것의 아비인 강모에 대해서는 차가운 치욕의 감정을 지워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부부가 혼인하여 세월이 흐르면 당연히 어버이로 변하는 것이언만,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철재의 탄생은 뜻밖이었다.
지난 경진년 여름, 괭괭거리는 삼경의 징소리와 독경 소리에 잠을 못 이루던 밤, 남편 강모는 느닷없이 벌컥 장지문을 열어젖혔었다. 그때 그의 모습은 무엇에 쫓기는 것도 같았고, 어찌 보면 성난 짐승과도 같았었다. 때가 여름인지라 몹시 무더웠었다. 방안에 고인 등장 불빛마저도 더운 김이 더하여 살갗에 감겨드는 것이 끕끕하게 여겨졌었다. (무슨 풀지 못할 심정으로 사무쳤기에 젊은 나이에 사람이 상사로 죽어간단 말인가. 아무리 정애가 깊다기로 목숨이 빠질까. 한번 죽어버린 사람을 위해서 넋을 불러 굿을 하고 혼례를 시키는 것도 헛짓이려니와, 되지도 않을 일에 뜻을 두고 괴로워하는 그 시초부터가 잘못이라. 사리 분별있는 사람이라면 살 궁리를 해야지, 죽기로 작정을 하다니. 어리석은 일이다.) 효원은, 자신이 시집도 오기 전에 세상을 버린 한 총각의 혼백을 두고 혀를 찼다. (애초에 세상살이 견디기 쉬운 것이었다면, 부처님은 무엇 하러 왕궁을 버리고 얼음 골짜기에서 뼈를 깎었으리. 오죽하면 인생은 고해라 하지 않던가. 사람마다 남 보기는 호강스러워도 저 혼자 앉어 있을 때의 근심고초란 짐작도 못하는 법. 어떻게든지 그것을 이겨내고 버티면서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그저 타고난 본능만은 아니지. 그것은 일이야. 일이고말고. 살아도 그만 안살아도 그만일 수는 없지. 뜻한 것이 이루어지고 재미있고 좋아서만 사는 것이랴. 고비고비 이렇게 산 넘고 물 건너며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밤새도록 그칠 것 같지 않은 굿의 중허리가 휘어지는 소리에 심중이 어수선하여 일손도 더디었다. 본디 여름에는 손에 땀이 나서 침선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날마다 벗어 내놓는 삼베 모시의 푸새거리를 다듬고 밟고 다리는 것이 큰일이었다. 효원은 청암부인의 옷가지를 접어 개키는 중이라서 더욱 그렇게 산란하였는지도 모른다. 날마다 흥건하게 젖어 나오는 적삼과 단속곳들이 부인의 허약해진 기력을 대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손을 베게 날이 선 치마 저고리를 날아가게 입고 앉아 있던 부인이, 더위와 식은땀에 후줄근히 녹아 내리는 모습을 그네는 의복에서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든 기운을 차리셔야 할텐데.) 효원은 이미 불이 꺼진 큰방 쪽에 마음을 기울이며 적삼의 솔기를 손톱으로 눌러 펴고 있었다.
그때 강모가 들이닥친 것이다. 그는 효원이 미처 일감을 치우기도 전에 사나운 몸짓으로 물어뜯을 듯이 그네를 덮쳤다. (아니, 이 사람이.) 효원은 무의식중에 그를 밀어냈다. 무슨 거역을 하겠다든가 마땅치 않아서가 아니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강모의 행동이 일변 어이없고, 한편으로는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평상시의 강모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난폭함에 놀란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그네는 알 수 없는 모욕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나야 제 사람이니 언제라도 하란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효원은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힘대로 강모를 밀어내며 바람벽에 등을 버티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감아쥐었다.
"왜 이러시오?"
이것이 그네의 말이었다. (불도 안 끄고...) 효원의 눈에 등잔불이 들어왔다. 새 혓바닥 같은 불꼬리가 펄럭, 흔들리더니 긴 그을음이 실처럼 오른다. 그네는 지금 강모가 본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디 바깥에서 있다 오는 야기가 옷갈피에서 스며나오고, 무엇보다 그는 허탈해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효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초리는 마치 자기 먹이를 채가려는 사람을 향하여 으르렁거리는 것과도 같은 노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적의조차도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침묵이 차 올랐다. 침묵이 부풀면서 서늘한 식은땀이 돋아난다. 이러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한 효원이었다. 순리대로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이렇게 쫓기듯 서두르는 강모의 속마음을 알지 못하는 효원은 묘한 앙심을 느꼈다. (몇 년 몇 달을 두고 증오나 하듯이 팽개치고 돌아보지도 않더니, 무슨 까닭으로 이 밤에 이러는가. 필경 곡절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예삿일은 아니다. 순탄한 양기라면 이와 같으리. 내 아무리 규방에서 보고 들은 것이 없이 살아왔고, 시집이라고 와서도 하릴없이 지내왔단들 이만한 짐작도 못할 것인가.) 그것은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효원으로서는 이런 식으로 느닷없는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네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반닫이 장롱 속에 접힌 채로 있는 삼팔주 명주 수건이 허옇게 펄럭였다.
"소용이 있으리라."
고만 말하며 접어 넣어 주던 어머니 정씨부인의 모습도 지나갔다. 그러면서 순간 청사등롱과 사모관대, 나무기러기, 청홍의 이부자리며 마당에서 들리던 낭랑한 웃음 소리들이 환각인 듯 떠올랐다. 위로는 천지신명과 부모님을 비롯하여 아래로는 토방 위의 강아지까지도 한 마음으로 복을 빌어 주던 밤이었다. 그런 밤에 효원은 가슴을 동여맨 대대마저도 풀지 못한 채 꼬박 앉아서 밝혔다. 그때의 암담하던 답답함이 새삼스럽게 치받쳤다. 그 모든 밤을 다 헛되이 내버리고, 야합도 아닌데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무서워서 그렇게 서두르는가. 효원의 머리가 물로 씻은 듯 차갑게 가라앉으며 몸이 굳어졌다. (오늘 밤에는 절대로 안된다.) 왜 그렇게 단단한 결심을 하였을까. 그네는 어금니까지 시퍼렇게 물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이르는 그 말을 채 맺기도 전에 그네의 어금니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
톱니가 살 속에 박히는 것 같은 아픔이 몸의 한가운데로 날카로운 금을 긋고 지나갔다. 그것은 겁간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절차도 짓뭉갠 채 당해 버린 일 끝에, 그네가 맛 본것은 무참한 쓰라림뿐이었다. 텅 빈 가슴이 식어 내리면서 눈자위에 뜻 모를 눈물이 번지는 것을 그네는 간신히 참아냈다. 토할 길 없는 시커먼 돌덩어리 하나를 삼킨 것 같은 무거움이 그네를 누르기도 하였다. 효원은 그날 뜬 눈으로 앉아서 밤을 새웠다. 그런데 하늘의 섭리란 참으로 오묘하고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효원의 육신 한 구석에 박힌 증오의 옹이에서 생명이 자라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삶의 현상이란 저희들끼리 저절로 아우러지고, 서로 독을 풀고, 스스로 갚아 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철재 때문에라도 창씨개명은 안했어야 하는 것을."
청암부인은 핏덩이 증손자를 내려다보며 탄식하였다. 그것은 참을래야 참을 길이 없는 통분함이었고 설움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어린 것에 대한 깊은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내 어찌 이것한테 할미 소리를 바랄 수 있겠느냐. 성씨 하나도 물려주지 못하는 주제에 할미는 무슨..."
부인은 손부 효원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부인의 목소리에도 땀이 배어났다.
"이 아이가 어떻게 해서 태어난 종손인데 이씨 성을 못 붙인단 말이냐. 이제야 내가 이 집안에 들어온 보람을 다 했는데, 나라에 죄진 일도 없이 하루아침에 성을 뺏기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이 아이 하나가 태어나 주어서 나는 가문에 대한 도리를 다 하였다. 이제 구천에 돌아가 짐드신 조상님을 뵙더라도 이만하면 떳떳하다 싶었는데...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성씨를 빼앗기고 말았으니..."
청암부인은 말끝을 맺지 못하며, 비분을 누르고 잠든 아기 철재의 조그만 주먹을 가만히 잡는다. 여리고 봉긋한 봉오리 같은 주먹. 생각하면 지나간 세월이 꿈결만 같다. 그 세월의 모든 고비와 질곡, 무서운 집념들이 모두 이 한 점의 생명을 위하여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비로소, 천방지축 어지럽고 정신없던 나날들과, 편한 잠을 깊이 못 들고 항상 꼿꼿이 허리를 펴고 살아왔던 한세상의 기나긴 긴장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이 어린 생명 하나로 인한 평화로움은, 이미 죽은 선대의 선영과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안의 가솔들, 그리고 이제 다시 면면히 이어질 후손들이 한마당에 모여 앉는 잔치 자리의 흥겨움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이제 물길이 제대로 잡히고 순하게 흘러가게 되었다는 깊은 안도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청암부인은 가까스로 몸을 움직이면서도 뿌듯하고 그득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불현듯 건넌방으로 건너오곤 하였다. 다만 애석하고 애석한 것은 창씨의 일이었다. 이런 심정은 일흔두 살 청암부인이, 사십칠 년 전, 이기채를 양자로 들여왔을 때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기채를 품안에 받아 안았을 때, 스물다섯 살, 청상의 양모, 청암부인은 울컥 설움이 받쳐 올랐었다. 어머니라는 호칭에도 가슴이 덜컥 하였거니와, 무릎에 안긴 아기의 살덩어리가 가슴에 그대로 얹히는 듯 싶었었다. 내 무슨 운명으로... 젊은 청암부인은, 가슴에서 고무락거리는 어린 이기채를 방바닥으로 내려놓았다. 형언할 길 없는 낯설음과 이상한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안하였다. 그때 느꼈던 수치심과 불안은 그 뒤로도 아이가 웬만큼 자라도록까지 내내 가슴의 갈피 사이에 끼워진 채, 밖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청암부인과 이기채의 사이에 남모르는 어려움을 만들게도 하였다. 그럴수록 청암부인은 이기채에 대한 의무를 다하였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려 준 사람은 보쌈마님 김씨부인이었다. 김씨부인은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궂은 운명 때문이었는지 천성 때문이었는지 모를 일이나, 나중에 쉰을 조금 넘기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웃는 얼굴을 보인 일이 몇 번 없었다. 몇 번이라고 하지만 그 또한 소리 내어 웃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미소를 지은 정도였다. 그 대신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마루며 헛간이며 뒤안 마당과 텃밭을, 지성으로 쓸고, 닦고, 일구고 하였다.
"집안에 사람 훈김 있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어서..."
가끔 그네는 청암부인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청암부인도 마찬가지였다. 노복과 여비를 따로 둘 수 없었던 그때의 형편에 두 여인이 서로 의지하였던 심정이란 기구하면서도, 그 만큼 절실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기채가 양자로 왔었다.
"애기 울음 소리란 참으로 기묘한 것이오. 청상에 두 과부만 우두커니 마주보고 살다가 이렇게 아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니, 갑자기 생기가 나고 재미도 절로 있지 않소?"
김씨부인은 생전에 보여 준 몇 번의 웃음을 그때 웃었다. 처음으로 아기를 안고 잠들던 밤. 만가지 감회가 착잡한 가운데도 양모가 된 청암부인은 두려움을 가누기 어려웠다. 어쩌면 자신의 속에서 자라나 자신이 낳았다면 그런 것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우선 아기를 안는 팔이 부드럽게 펴지지 않고 나무 막대기처럼 딱딱했다. 그리고 품안에 묻힌 어린 것이 주둥이를 쫑긋거리며 어미의 젖을 찾는 시늉하는 것을 바라본 순간, 그네는 (어찌할꼬.) 싶은 망연함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뒤미처 무거운 짐을 맡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려놓을 수도 없고, 함부로 들쳐 업거나 이고 갈 수도 없는 짐. 온몸의 정신을 한자리에 모아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짐. 그렇다고 울타리 두르고 겹겹히 감고 싸서 감추어 두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하는 것이랴. 이 어린 것을 한 가문의 뼈대 있는 종손으로 길러 내야만 한다. 그래서 스스로 일으킨 몸을 기둥처럼 세우고, 온 문중에 그늘을 드리우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런 날을 바라고 이 주먹만한 어린 것을 키워가야 하는 것이다. (지푸라기로 대들보를 만들어야 하니, 그 일이 내 업이라.) 청암부인은 한숨을 고쳐 쉬었다. (내 마음이 어미 될 준비가 전혀 없는데, 비록 핏덩이 어린 소견이라 한들 나를 어미라 여기겠는가. 어린아이 세 살 이전에는 천지조화의 무궁한 법칙과 자신의 앞날 운명까지도 다 예견한다는데, 내 행여라도 저를 짐스럽게 여긴다면 그 죄를 내가 받지.) 아무리 말 못하는 어린 아기이지만, 이제 이미 모자의 인연을 맺어 한 품에 안고 안기게 되었으니, 어찌하든 어미된 자의 행실과 심덕을 먼저 배우고 갖추리라. 그네는 속으로 다짐했다. 때 맞추어 늑대가 바로 귀밑에서 아후 우으응 길게 울었다. 달구새끼, 토끼는 물론이고 허술한 외양간의 송아지도 물어가는 늑대의 울음 소리였다. 그네는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이불자락을 끌어당겨 아이를 감싸며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김씨부인 역시 아이를 생산해 보지 못한 여인이었는데 본디 성품이 무던한 탓인지, 아니면 나이가 가르친 것인지, 청암부인보다는 훨씬 손놀림이 수월하고 자상했다.
"왜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꿈에 애기를 보면 깨고 나서 근심질 일이 생긴다고. 애기라는 것이 그만큼 애물이라는 뜻일 게요. 잠시 잠깐도 헛눈 팔면 안되고, 너무나 애중히 섬겨도 안되고, 강아지나 풀나무 같이 저절로 크는 것도 아니고."
김씨부인은 마치 아이를 길러 본 사람처럼 그렇게 말하지도 했다.
"그래도 삼신할머니가 보듬고 키워 주시니 그 힘으로 사람되는 게지, 그게 어디 인력만으로 크겠소?"
그 말은 맞는 것 같았다. 삼라만상에 다 지켜 주는 신령이 있지 않은가. 물에 가면 물귀신이 있고, 산에 가면 산신령이 계시고, 부엌에 가면 조왕신이 집안을 지킨다. 그뿐인가. 하늘에는 일월성신, 땅에는 지신이 있어 천지의 기운을 조화롭게 다스린다. 심지어는 닳아빠진 부지깽이조차도 오래 쓰면 넋이 생겨 아무 데나 버려서는 안된다. 막대기 하나도 사람 손에 길들여지면 한밤중에 파랗게 불꽃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목숨 있는 것들이랴. 그 중에도 영물 중의 영물이라는 사람은 일러 무엇 하리. 그러나 이기채는 몸이 약했다. (저것이 어미 젖도 채 떨어지기 전에 나한테로 와 그런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짐승이나 사람이나 젖을 배불리 먹어야 성정도 온순하고 체구도 튼실한 것을. 제 아무리 정성으로 먹인다 한들 암죽이 어찌 젖만하랴. 내가 혹여 저것한테 죄 지은 것이나 아닌가.) 얼굴빛이 노르께한데다가 도무지 살이 오르지 않는 이기채는 이미 그때부터도 깐깐한 성격을 감추지 못했다. 청암부인은 이기채의 생모 보기가 몹시도 무안하였다. 공연히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형님도 참 별 말씀을 다 허십니다. 아이가 실하고 부실한 것이 어찌 키우기 탓인가요? 본디 제가 그렇게 타고난 것이지요. 제 품에서 컸다고 지금보다 무에 더 나아지겠는가요? 잘 먹지도 못하는 에미 젖이 암죽보다 나을 게 무에 있을라고요?"
"내가 죄가 많은 사람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네."
"그런 말씀은 차후에도 하지 마서요. 기채가 어디 제 아들인가요. 형님 정성으로 이만이나 컸는데 아직도 빌려온 자식 같으신가 보네요. 요새는 저도 기표란 놈 때문에 치다꺼리할 일이 하도 많아, 아이고. 형님이 내 대신에 기채 기르시노라고 얼마나 노심하실까, 외나 제가 죄송하드구만요."
"그리 말해 주니 내 고맙네."
"형님, 저한테는 기표가 큰놈이에요. 기채 낳을 때 어쨌는지는 생각도 안나고, 시방은 새집이로 서툴러요."
청암부인은 손아래 동서 이울댁의 말에 위안을 얻기는 했지만, 마음이 아주 놓이는 것은 아니었다. 한 뱃속에서 나온 두 아들이건만 자기에게로 양자 온 기채는 그렇게 약질로 애간장을 녹이는데, 그와는 달리 생모 품에서 크는 기표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는데 세 살 터울인 제 형의 몸집에 맞먹을 만큼 크고 충실했던 것이다. 그것이 청암부인에게는 민망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그네는 이기채의 담력을 길러 주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또 하나, 청암부인의 마음 한쪽에 웅크린 채 도사리고 있는 근심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것은 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일이 없는 말이었으며 내색조차도 한 일 없었지만, 이기채를 무릎에 받아 안는 순간부터 그네의 마음에 덜컥 내려앉은 생각이었다. 이제 막 고물거리는 어린 것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바라볼 때 그 암담함은 더욱 깊어졌다. (저 손이 크고, 저 발이 자라서 과연 장정이 되어 줄 것인가.) 참으로 사위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네는 머리를 저었다. 그러나 암죽을 떼고 밥숟가락을 거꾸로 쥔 채 밥상 앞에 앉은 세살바기 이기채의 왜소한 몸집을 내려다보면, 숨어 있던 불안이 거멓게 밀려왔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그네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던 하루 김씨부인이 무심히 반짇고리를 밀어내며 말했다.
"사람 사는 일이 한바탕 개미꿈이라드니, 나도 이제 늙어가는가."
"그런 말씀은 왜 허시는가요?"
"정신이 아물아물, 무얼 봐도 마음에 남지를 않고 헛본 것같을 때가 많아져서 안 그렇소..."
"몸이 허하신가 봅니다."
"그렇기도 허겠지. 나도 나이 삼십 중반을 넘긴 지 몇 해나 됐으니 이제 중늙은이 아니요?"
중늙은이. 아닌 게 아니라 김씨부인의 겉모습은 염려하다거나 살빛이 두드러지는 편이 못되었다. 어느덧 처음 보쌈으로 업혀왔을 때 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때 문득 생각해 보면 내가 흙덩어리 같기도 하고, 나무토막 같기도 하고. 무심하기는 내 몸뚱이나 흙이나 나무토막이나, 하나 다를 게 없는 것 같소. 아마 나는 넋이 진즉에 빠져 나간 모양이요. 남어 있는 것은 형상뿐이고, 빈 집이나 매한가지라. 앞뒤 문짝 다 열어젖혀 놓고 바람이나 지나갈까, 누가 나를 채워 주겠소...?"
김씨부인은 실패에 실을 감을 양으로 다시 반짇고리를 끌어당겼다.
"그래도 내가 청춘을 서러워 않고 세월이 가잔 대로 쉽게 쉽게 따라 늙는 것은, 초상을 두 번이나 치러서 그러는가 싶소. 참 이상한 일이지. 처음에 뜻밖의 일을 당허고는 그 양반만 죽은 것이 아니라 나도 죽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마당에 왔다갔다 하는 문상객이며 사람들이 모두 허깨비로 뵈는 것이었소. 내, 그 경황 중에도 속으로 그랬지. 사람이 살었달 것이 없는데,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어 있는 줄 아는가 보다. 마치 움직이는 그 사람들이 흐늘흐늘 망혼들 같았으니. 그러다가 두번째로 보쌈까지 와서도 또 궂은 일을 당허지 않었소...? 그때는 정말로 이가 시립디다. 내 기구한 팔자를 서러워할 겨를도 없이 그만 살이 얼어붙어 버린 게요."
한참 동안 김씨부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묵묵히 실패에 실만 감았다. 청암부인도 실타래를 감고 있는 두 손목이 뻑뻑해지도록 입을 열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웬일인지 그 말은 김씨부인의 가슴 속에 가장 무겁게 얹혀 잇는 말일 것만 같아서였다.
"사람은 뼈와 살로 되어 있으니, 뼈로는 일을 하고, 살로는 정을 나누는 것인가 싶습니다. 헌데 나는 이미 살이 식은 사람이 아니요? 그러니 무슨 청춘이 한될 일이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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