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8. 바람닫이 (2/4)
"내가 만일 종부가 아니었더라면, 나도 진즉에 칼을 물고 자진을 했을 거야."
청암부인은 효원이 시집오고 나서 얼마 후 그렇게 말했었다. 부인이라면, 능히 스스로 자결을 할 수 있는 성품인 것을 효원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전에 그런 열녀가 있었더란다. 옛날 중국 제나라의 장공이 거 땅을 칠 때의 이야기지. 장공이 누군고 허면 중국에 춘추 때, 제나라 임금이었단다. 영공의 아드님이었는데, 본 이름은 빛날 '광'자였단다. 헌데 나중에 시호를 '장'이라 했거든. 그래서 그렇게들 부르지. 그분이 어떤 싸움터에서 용맹한 장수 하나를 아깝게 잃고 말았더래. 그 장수 이름은 기량식이라. 장공이 이 소식을 듣고는 그 마음에 몹시 애통히 여기고 슬퍼했는데, 어느덧 싸움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량식의 아내를 만났드란다. 그래 장공은 얼른 신하를 보내서 그 남편이 죽은 것을 애도했단다. 신하는 가서, 저희 주군께서 보내신 신하올시다, 얼마나 분하고 망극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랬겄지. 길에서 만난 김에 그렇게 조상을 한 것인데, 기량의 처가 분연히 떨치고 돌아서며 말했드란다. ... 이제 저의 남편 기량은 죄를 졌사온데, 왕께서는 어찌 욕되이 저에게 조상을 하시나이까... 그렇지않고 제 남편에게 죄가 없다고 하면, 저의 집이 바로 여기 가까운 곳에 있사온데, 어찌 하필 길거리에서 이렇게 조상을 받게 하시나이까... . 그 말을 전해들은 장공은 아차, 잘못을 깨닫고는, 그 집으로 친히 가서 식의 아내에게 문상을 정중히 하고 갔지. 그 아내의 생각에, 비록 남편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미 죽은 사람한테라도 바르고 정당한 대접을 받게 해 주어야 헌다고 생각해, 그렇게 한 게 아니겠느냐? 죽은 이에게 그러할진대, 하물며 날마다 함께 모시고 섬기고 사는 남편한테야 더 말하여 무엇하리. 마땅히 도리를 다하여 남편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고 살도록 해라. 남편이 남들에게 대접을 받고 못 받는 것이 다 안사람하기에 달린 것이니라."
청암부인은 손부 효원을 앞에 앉혀 놓고, 기량식의 아내가 지아비를 잊고 통곡한 '식처곡부'의 행실을 들려 주었다. 그때 기량식의 아내는 자식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안팎으로 오복의 동족인 오속의 어느 가까운 일가 하나도 없어, 의지하고 살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복이라 하면, 초상을 당했을 때 망자와의 혈통관계를 따라 입는 다섯 종류의 단계별 상복으로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를 말한다. 상복 가운데 가장 중한 참최는, 극추생마포 제일 굵고 거친 삼베로 지어 아랫단을 꿰매지 않은 상복이다. 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혹은 아버지를 여읜 맏아들이 할아버지 상사를 당해 상주가 된 승중조부의 상에 삼 년을 입는다. 또한 양자가 양부의 상을 당했을 때, 아내가 남편의 상을 당했을 때, 그리고 첩이 정실부인의 상을 당했을 때도 참최를 입니다. 재최는 차등추생포 굵은 베로 옷을 지어 단을 꿰매는데,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서 삼 년 입는 상복이다. 아버지 없는 손자가 할머니 상을 당했을 때, 어머니가 맏아들 상을 당했을 때, 며느리가 시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공복을 입는 대공친으로는 남편의 겨레붙이 모두인 남편의 조부모, 백숙, 남편의 종형제, 종자매, 질부를 말하며, 소공복을 입는 경우는 종조부모, 재종형제, 종질, 종손이고, 시마는 그 중 복이 가벼워 삼 개월만 입으면 되었다. 남편 형제의 증손과 남편 종형제의 손자를 비롯하여, 서모, 유모와 사위, 장인, 장모에게 입는 이 시마를 입을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함이니, 막막한 천지에 혈혈단신 기량식의 아내만 홀로 남은 것이다. 그 아내는 남편의 시체를 성 아래에 누이고, 머리를 풀어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다. 길을 가던 사람도 무심하지 못하여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이 정경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밤낮으로 처참하게 통곡하니, 열흘째 되는 날에는 그 통곡이 진동하여 흔들리고 눈물에 금이 가서, 성이 그만 절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 아내는 그제서야 드디어 남편을 장사지내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자란 대체로 반드시 의지하는 데가 있게 마련이건만 나는 천지에 혼자로구나. 여자란 일찍이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남편이 있으면 남편에게 의지하고, 자식이 있으면 자식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허나 지금 나의 처지는 위로 아버지가 계시지 않고, 옆에는 남편도 없으며, 슬하에 자식도 없다. 안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내 정성을 어디에 보일 것이며, 밖으로도 의지할 곳이 없으니 내 절개를 누구에게 보인단 말이냐. 그렇다고 내가 어찌 딴 남편을 고쳐 섬길 수 있겠느냐. 차라리 죽음이 있을 뿐이로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울면서, 마침내 시퍼런 치수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내가 일찍이 식처곡부의 이야기를 왜 모르겠는가, 아녀자 오륜 행실의 본이 되는 그 사람은 열녀로서 가히 장한 사람이었으니, 내가 그를 따라 목숨을 버리는 것은 자랑이면 자랑이었지 아무 흉될 것은 없었지만, 그때 내가 기량식의 아내 못지않은 기구한 형상 중에도 목숨을 버리지 않고 살아 남은 것은, 오로지 종부였기 때문이었느니라. 내게는 나 홀로 져야 할 책임이 있고 도리가 있었던 게야."
청암부인은 효원의 숙인 이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같은 말을 몇 번씩 하는 것은 듣기에 따라 공치사도 같고 부질없는 일도 같다마는, 너 또한 책임과 도리가 나와 조금도 다를 바 없어서 이렇게 새겨들으라고 자꾸 말하느니, 허나, 처지로 비기면야 어찌 너와 나를 한자리에 놓을 수 있으리. 우선은 서로 낯이 덜 익어 설다고 하지만 배필과 더불어 한 지붕 밑에 있고, 위로는 층층이 어른들이 계시고... .끼니를 당하여 식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매, 이만하여도 너는 호사로다. 다만, 내가 밤이나 낮이나 근심하는 것은 일점 혈육이 무릎 아래 곰실거리면서 노니는 모습을 못 보는 것이구나. 늙은 할미 망령이라고 속으로 웃을는지 모르나, 나한테는 그 일이 가장 사무치는 일이니라. 아가, 너, 내 심중을 헤아리겠느냐?"
효원은 숙인 이마를 더욱 깊이 수그렸다. 그네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네 자신이 주도하여 하는 일이라면, 두부를 자르듯이 네모 반듯하게 경경하여 어여쁘게 할머님 앞에 놓아드릴 수도 있겠지만, 혼자 앉아 아무리 각골명심 새겨들어본들 무슨 하릴 있으리오.
(할머님의 심성을 제 어찌 모르겠습니까...하오나, 다만 헤아려드리올 뿐 더 어쩌지도 못하고, 제 몸으로 남의 인생 사는 것이 무슨 희롱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인 운명이, 제가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하고, 살라고 주어지는 것을 살아야 하는지요. 여인이라 그러한가, 남들도 나 같은가. 만들고 고치고 소망하는 것이 모두 다 홀로 달을 바라봄과 같으니 손발이 있으면 무엇하고, 뜻이 있으면 무엇하겠습니까.)
효원의 수그린 이마와 각이 진 어깨에 그 단단한 마음이 글자처럼 드러나 보였는지 청암부인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손부의 손을 따뜻하게 잡는다.
"기다리는 것도 일이니라. 일이란 꼭 눈에 띄게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지. 모든 일의 근원이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인즉, 네가 중심을 가지고 때를 고요히 기다리자면 마음이 고여서 행실로 넘치게 마련 아니냐. 이런 일이 조급히 군다고 되는 일이겠는가. 반개한 꽃봉오리 억지로 피우려고 화덕을 들이대랴, 손으로 벌리랴. 순리가 있는 것을. 허나, 나는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시절은 흉흉하여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지라, 어린 너한테 과중한 짐을 부려 저리고자 이렇게 자꾸 다짐을 하는 것이니라."
청암부인은 쥐고 있는 효원의 손을 조용히 어루만지고만 있었다. 부인 손의 다순 온기가 효원에게로 번지며 스며드는 것을 효원은 느낀다. 그 온기 속에는 추상의 찬서리 기운도, 뇌정의 울음 소리도 아닌 그저 한 아낙의 간절한 심정만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마당에서 콩심이가 달랑거리며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누렁이와 함께 뛰는지 무어라고 땍땍거린다. 그때 겨우 아홉 살이 된 콩심이는 효원이 대실에서 신행올 때 교전비 몸종으로 데리고 왔으나, 그까짓 코흘리개가 무슨 수발을 제대로 들겠는가. 저 혼자 제 머리 빗기에도 어린 것이었으니, 말이 몸종이지, 친정 뜨락의 낯익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오는 심정으로 함께 왔던 것이다. 고것은 안서방네에서 가끔씩 쥐어박히면서도 그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이런저런 자잘구레한 이야기의 말동무도 되어 주고 낫낫하게 잔심부름도 곧잘 하였다.
"아이고, 이년아. 너는 무신 노무 목청이 그렇게 때까치맹이로 땍땍 땍땍. 내 귀가 마대. 조신허게 가만 가만 좀 못허겄냐?"
안서방네는 콩심이의 주동이를 향하여 주먹을 질러 보인다. 콩심이는 혓바닥을 날름하며 눈을 질금 감는다. 알았다는 시늉이다.
"너 이년, 이 댁으 청암마님이 어뜬 양반인지 알기나 허냐? 매급시 천방지축 팔랑거리고 댕기다가, 다리 몽생이 분질러질 중 알어라."
"아앗따아, 워찌 고렇코롬 무선 양반이다요."
"이년, 이 주둥팽이, 어른이 무슨 말을 허는디 그렇게 비얌 셋바닥맹이로 날름 말을 받아먹냐? 그렇다먼 그렁갑다, 허고 속으로만 알어들을 일이제."
안서방네는 옆에 놓인 사기대접의 물을 한 입 물더니, 푸우우, 물먹은 이불 호청 위에 뿜어낸다. 푸른 빛이 도는 광목 호청에 순간 부연 안개가 어리는 듯싶다.
"내가 내 눈으로 보든 안했는디, 아조 유명헌 이얘기가 하나 있제잉. 너 들어 볼래?"
안서방네의 말에 콩심이의 눈이 반짝한다. 이야기라면 무엇을 마다하리. 고것은 턱을 추켜들고 침까지 꿀꺽 삼킨다.
"마님이 이 댁으로 신행오실 적으 이얘긴디... ."
비록 반겨 줄 이 없는 애통하고 적막한 집으로 가는 초상길의 가마였으나 명색이 신행이므로, 청암의 친정에서는 격식을 제대로 갖추어 교군꾼과 하님들을 챙겨 보냈다. 그러나 다만 호화롭고 아름다운 청홍의 술을 늘이운 꽃가마가 아니라, 이 서러운 신부의 가마는 흰 덩이었다. 그 흰 덩을 따라서 이고 진 사람들의 행렬은 사흘 밤낮을 걸어, 드디어 하루 해만 걸으면 될 숲말에 당도하였다. 마침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파, 잠시 객주집 근처에서 일행은 쉬게 되었다. 그때 근방에 사는 민촌의 아낙 하나가, 일행들 행차로 보아서는 신행길이 분명한데 난데없이 웬 가마가 하얗게 길목에 앉아 있는 것이 흥미로웠던지, 가마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고개를 쑤욱, 안으로 들이밀고 청암부인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고메, 신부가 과분가아? 벨 일이여이. 무신 노무 신부가 이렇게 생겠당가, 흐윽허니 참말로 요상허그만, 무섭게도 생겠네에. 호랭이맹이로. 하나도 이쁘도 안허고, 구신도 같고?"
아낙은 질겁을 하며 가마 문짝을 꽈당, 닫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속에 앉아 있는 신부는 어두컴컴한 가마 안에서 허연 소복을 하고 있었으며, 그 용색 또한 굵직하고 매서웠으니, 아낙이 소리를 지른 것은 순간의 일이었으리라. 호들갑스러운 비명에 요란한 몸짓으로 달려드는 아낙의 수선에, 객주집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고개를 틀어 돌아보았다. 교군꾼 하나는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던 손목을 꺾은 채 눈이 동그래져서 깜박이지도 못하였다. 하님 하나는 아예 일어서 버렸다. 무슨 일이 난 줄로 알았던 것이다. 아낙은 그만큼 야단스럽게 놀라며 낄낄거렸다. 일순 가마 주변에는 정적이 돌았다. 그것은 고즈넉한 것이 아니라 터질 듯이 팽창해 오르는 정적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민촌 아낙은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배를 내밀어 뒤뚱걸음을 걸으며, 금방 구경거리를 본 것에 대하여 호기롭게 자랑하려는 듯 궁둥이를 내둘렀다. 그때였다.
"네 이녀언."
벽력 같은 고함소리가 쩌엉, 울리며 공기의 폭을 갈랐다. 뒤꼭지를 할퀸 사람처럼 자지러지며 돌아선 민촌 아낙은, 가마 문을 열고 나와 우뚝 서 있는 청상을 보았다. 얼른 보아도 이십 미만의 여인이 분명한데 어디서 그런 서릿발이 돋는 것일까. 마흔이 훨씬 넘었을 아낙은 주춤, 그 자리에 서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제서야 객줏집 평상과 마루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두렵게 웅숭웅숭 일어나 길목으로 나왔다. 햇발 아래 청상의 소복은 날이 선 푸른 빛을 눈부시게 뿜어냈다.
"저년을 잡아 오너라."
부인은 말끝을 칼날같이 잘랐다. 아직 부인이라기에는 애띠고 어린 여인의 분부라지만, 감히 누구도 말을 붙일 수가 없는 위엄이 전신에 어렸다. 그래서 교군꾼 두 사람이 가까이 그 아낙의 곁으로 걸어가지도 전에, 아낙은 저절로 주저앉고 말았다. 비실비실하는 아낙을 가마 앞까지 데리고 왔을 때, 부인은 아낙의 머리채를 잡아 낚아 그 얼굴을 쳐들게 하였다. 아낙의 낯빛이 노랗게 질리는 것을 역력하게 보였다. 반면에 청상의 안색은 새파랗게 바래는 것이었다.
"네가, 감히, 누구를."
청암부인은 옆사람에게조차도 들리지 않을 만큼, 숨을 잘라 뱉어내듯이 말했다. 그러더니 동댕이치듯 머리채를 놓아 버렸다. 아낙이 휘청하며 그만 길바닥으로 동그라졌다. 아무러면 어린 여인의 힘 때문에 그네가 쓰러졌을까. 아마도 창졸간에 너무 놀라 얼이 빠진 탓에 그렇게 힘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으리라.
"사람이란 엄연히 상하가 있는 법이거늘, 너 이년,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로 누구한테 그런 막된 행실을 하는 게냐. 내, 네년을 단단히 가르칠 것이니 그리 알아라."
청암부인은 길바닥의 아낙에게 일별을 던지고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한 마디로
"가자."
하더니, 몸을 돌려 가마에 탔다. 그네가 소복 입고 오는 신행길에 버릇없이 민촌 아낙을 끌고 와, 마당에 꿇어 엎드리게 해 놓고는 불칼 같은 호령으로 나무란 일은, 훗날에까지 두고두고 안팎에 일화거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몇 십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타관 땅에서 몸종으로 주인을 따라온 아홉 살짜리 교전비 콩심이에게까지 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말 한 마디 잘못허고 행실 한 가지 비끗허먼 그렇게 큰일 나능 거이여. 알겄냐? 어른 뫼시고 사는 사램이란 것은 언제든지 조심을 해야 헌다. 그저 어쩌든지 입이 무거야고, 놀리는 일손은 번개같이 빠름서도, 그렇다고 눈치없이 아무 디나 촐랑촐랑 나서지 말어야고오."
안서방네는 눅눅해진 이불 호청을 네모 반듯하게 개키며 콩심이에게 다짐을 둔다. 그러면서, 새앙쥐 꼬랑지만한 콩심이 머리꼬리에 웃음이 나와 다시 한 번 대가리를 쥐어박아 준다. 그러나, 사람들 모두가 그 이야기를 안서방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
"혼인허고 사흘 만에 신랑을 잡아먹었으먼, 원 하늘이 무섭고 세상이 부끄러서 고개도 못 들고, 어디 쥐구녁 없능가, 삿갓을 씨고 있어도 모지래겄그만. 서방 죽어 초상난 신부가 겁도 없이 고래고래 남 다 듣게 외장을 침서 멀 잘했다고 죄인끄장 이바지맹이로 끄집고, 시집으로 온당가. 첨 오는 질에. 아이고, 배짱도 무서라."
"쌍것으로 태어난 설움을 톡톡이 받었그만 그리여. 그께잇 가매 뚜껑 조께 열어 봤다고 그렇게까지 헐 거 머 있당가? 하도 요상허게 뀌민 가매라 지내감서 한 번 디리다 봤을티제잉. 가매란 거이 보통 호사시럽제, 그렇게 흰 덩을 탄 신부가 어디 흔헝가, 머? 나라도 디다 보겄네. 아 자네 같으먼 안 보고 싶겄능가? 난생 첨 보는 거인디. 사람 귀경도 죄가 되는 노무 인생. 무신 좋은 날을 볼라고 이러고 사능고."
그때 당시에나 몇 년이 지난 후에나 그보다 더 긴 세월이 흐른 뒤에나, 거멍굴 사람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처지를 그만큼 절실하게 깨우쳐 주면서도, 매안의 문중에 대하여서는 일종의 두려움을 새로 일깨워 주는 이야기인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씨 문중과 청암부인의 서슬에 금방이라도 살을 베일 것 같은 아찔함을 한두 번 맛본 것이 아니었다.
"가매를 열어 본 사램은 또 얼매나 놀랬겄능가잉.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녹이 홍생을 떨쳐입은 꽃각시가 앉었능게미 재미로 열어ㅂ다가, 무신 구신맹이로 흐옇게 앉았는 젊은 여자를 ㅂ이니, 그것이 나였드라도 놀래 자빠졌겄네. 아, 누가 안 놀래겄능가? 거그다가 지금은 그 냥반이 늙어잉게 보타져서 그만이라도 쬐깐해졌제, 옛날으 젊었을 적으는 무신 지둥맹이로, 가매 뚜껑을 뚫어 불라고 앉은키가 우뚝허니 솟았을 거인디 말이여. 거그다가 엥간치 매섭게 생겠능가? 참말로 자개 생긴 것은 생각도 안허고, 넘보고 놀랜 넘보고만 허물을 따지자니이... ."
옹구네는 그 이야기만 나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말을 곱씹었다. 그네로서는 매안 동구에 서 있는 열녀비라든가 피투성이같은 시뻘겋게 칠갑을 한 창살으 나무기둥 정문을 바라만 보아도 울컥, 아니꼬운 심정이 드는 것이었다.
"허엉. 열녀? 니가 멋으로 열녀를 했능가는 모리겄다마느은, 너도 참말로 불쌍헌 헛세상을 살다가 갔다. 인생이 한 번 왔다가 죽고 말먼 그거뿐인디 어디 눈에 맞는 머심 등짝엘가도 엡헤서 밤도망을 갔다먼 또 말도 않겄다. 속절없이 죽어간 것은 누구 보라고 헌 짓이냐고오. 너도 매급시 넘으 비우 맞출라고 애간장 녹게 아까운 목심을 덜컥, 끓었겄지마는, 그거이 무신 지랄이냐. 나는 지발도 먼저 죽은 서방 따러 죽었다고 누가 열녀라고 해 주도 않지마는, 내가 죽도 안헌다. 내가 왜 죽겄냐. 나느은 살라안다아."
언젠가 옹구네는 남편의 제사를 지내고는, 홀짝 홀짝 따라마신 음복주에 흥건하게 취해서 허벅지 장단을 두드리며 타령조로 사설을 하다가, 열녀비 쪽을 향하여 코를 팽, 풀어 던졌다. 그러면서도 그네는 찰진 입심만큼 손끝도 야물어, 원뜸 일이라면 자기 손바닥처럼 훤히 알고 궂은일 잔일을 잘 찾아 하였다. 거멍굴에서 나서면 공방담배 석 대는 피워야 겨우 아랫몰로 건너가는 도랑물에 닿는다. 그 도랑을 건너고도 또 그만큼이나 걸어가야 겨우 아랫몰에 이르는데, 기운 없는 여름에는 팍팍하고 힘 팽기는 거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옹구네는 도랑물을 건널 때마다, 이것이 서로의 신분을 금 긋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그 물을 건너면서는 말씨도 조심하고 걸음걸이도 안존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고샅에 돋아나는 풀포기 하나라도 뽑아내고, 발끝에 채이는 돌멩이 한 개라도 골라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청암부인의 성품이,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 고샅을 지나는 사람의 마음이 그러할진대, 그 댁의 마당은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그대로 맨발로 디뎌도 흙이 묻어나지 않을 만큼 반드럽고 탄탄하였다. 네모진 귀퉁이의 날카로운 각은 누가 보더라도 그 집안의 서슬을 느끼게 하였다. 그 마당을 쓸어내는 새끼머슴 붙들이 솜씨 또한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선 대빗자루로 초벌을 쓸고, 다음에 부드러운 싸리비로 재벌을 쓸었는데, 바깥에서 안쪽으로 먼지 한 점 일우지 않고, 마당이 세수라도 한 것마냥 매끄럽게 일을 해냈다.
"집안에 먼지 일게 허지 마라. 마당 하나 쓰는 데도 정성이 들어가야 합심이 되는 법이거늘, 쌓인 흙이라고 마구 쓸어내면 종당에는 마당이 돌짝밭 되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 그저 되는 일은 없느니."
그렇게 단속하는 청암부인의 성품 탓으로 큰일, 작은일, 큰손님, 작은손님이 끊일 사이 없는 종가의 부엌 행주에서는 언제나 맑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니 심지어는 이런 일까지도 있었다. 본디 침착한 안서방네가 그날은 웬일이었는지, 청암부인이 마실 냉수를 받쳐 내오다가 발목이 비끗하면서, 물을 부엌 바닥에 흘리고 말았다. 물론 그릇을 엎은 것도 아니도, 다만 자칫 잘못으로 한 모금이나 될까 한 물을 엎지른 데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대로 두면 바람에 마를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 안방에 앉아 있던 부인이 부엌 바라지 앞에 서 있었지, 그런 안서방네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막 시집와서 얼마 안되었던 안서방네는 청암부인에게 죄송스러운 몸짓으로 허리를 굽히고는, 급히 냉수 한 대접을 다시 뜨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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