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8. 바람닫이 (1/4)
며칠 사이에 벌써 여름 기운이 끼친다. 달구어진 햇빛에서 훅 놋쇠 냄새가 난다. 더위가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덥다가도 한 번씩 비가 쏟아져서, 초목은 날로 무성하여지고, 집 안팎에는 파리, 모기가 극성이다. 고샅에도 토담 밑에도 잡초가 검푸르게 우거질 지경으로 농부들은 일손이 바쁘다. 봄보리, 밀, 귀리를 베어 내고, 논밭에 서로서로 대신하여 번갈아 들면서 김매기를 하느라고, 땀이 흘러 흙이 젖고,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과 위에서 내리쪼이는 놋쇠 같은 햇볕 때문에 헉, 헉, 숨이 막힌다. 거기다가 손이 많이 가는 면화밭은 그 공이 몇 배나 더 하여, 호미질을 하고 나면 어깨가 빠지는 것만 같다. 그런 중에도 누우런 오조 이삭이 어느덧 묵근하게 살이 차고, 청대콩도 익어간다. 비워 놓고 나온 집에서는 어린 것이 집을 보면서 명석에 보리를 널어 말리고 있을 것이다. 마침 뙤약볕이라 참으로 잘 마르겠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자칫 헛눈을 팔고 해찰하기 일쑤라.
"아이고오. 저노무 달구새끼이. 훠어이. 야야, 너는 멋 허고 있간디 달구새끼가 저렇게 달라들어서 멍석에 보리를 다 쪼사 묵게 두고 있어어. 참말로 기양 한 대접은 찍어 묵었겄네에."
마당 가운데 빨랫줄을 받치고 서 있는 바지랑대를 잡아채, 거꾸로 들고 휘둘러 닭을 쫓던 아낙은 목청을 돋군다.
"호랭이 물어갈 놈, 아, 그렇게 두 손 놓고 간짓대같이 섰을라먼, 멋헐라고 너보고 집 보라고 허겄냐야."
그네는 아이를 향해 발을 굴러 보인다. 아낙은, 보리 한 톨, 수수 한 알갱이도 살점같이 아깝다. 무심하게 입으로 들어가는 그 곡식 한 톨에 허리가 몇 번이 구부러지며 손이 몇 번 가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런 뙤약볕에 등이 뜨끈뜨끈하게 익어가면서, 흘러내린 땀으로 발등을 적시고 흙을 젖게 한 쌀이야말로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그 하얀 쌀은 그저 바라보기도 아깝고, 소중하며, 심지어는 경건한 심정까지도 드는 것이다. 거기다 손 안에 뿌듯이 쥐었을 대의 느낌이라니.
"그렇게 왜놈덜이 인자는 놋그륵, 숟구락끄장 다 공출을 헌디야?"
"놋그륵 숟구락이 문제가 아니라, 제기도 다 걷어 간다네."
"하이고매."
"말도 말어, 절깐에 불상도 끄집고 가 부렀다는디?"
"어쩔라고 그러까잉... ."
수군수군 김 매던 사람들은, 때마침 논둑 저편에 안서방네와 바우네가 광주리를 이고 오는 것을 보고는 일손을 놓는다. 점심 밥이다. 그들은 목에 건 수건을 들어 땀을 닦으며 하나씩 둘씩 정자나무 밑으로 모인다. 발걸음들이 무겁다. 옹구네, 평순네, 춘복이, 공배 들은 논에 엎드려 있던 다른 놈들과 함께 웅기중기 광주리 곁에 둘러앉는다. 공배네가 밥 광주리를 덮은 삼베 보자기를 젖히자, 된장 사발과 풋고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추는 약이 올라서 꽁지를 하늘로 쳐들고 있다. 금방 따서 씻어 왔는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참말로 이날 이때끼 욕심 낸 거라고는 보리밥 한 사발허고 풋고추 된장 한 입뿐인디, 내가 늙마에 이거이 무신 마음 고상잉가 모르겄네."
공배는 털썩 주저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힘없이 말한다.
"아재도 참. 아, 보리밥 한 술에 풋고추 된장이나 욕심 내고 살았잉게, 이날 펭상 이러고 살다가 이 모냥인 거이제 머."
춘복이 되받아 핀잔을 준다.
"언지는 머 우리가 농사 지어 갖꼬 우리 입으로 들어왔간디요? 땅바닥에 어푸러져 주딩이서 단내가 풀풀 나고, 손톱 발톱이 모지라지는 놈 따로 있고, 청풍멩월에 노래 부름서 손꾸락 하나도 까딱 안허고 받어묵는 놈 따로 있잉게. 우리사 머 왜놈 주딩이로 들으가나 지주 곳간으로 들어가나, 빼 빠지게 헛고상 허능 거는 펭상 마찬가지라요."
"춘복아, 너는 어째 그 셋바닥을 그렇게 가만 못 두고, 꼭 입빠른 소리럴 뱉고 있냐. 있기럴."
"아, 창씬가 머인가 허능 것도 그렇제. 우리덜 쌍놈이 머 언지는 성씨 갖꼬 이름 갖꼬 살었간디요? 성짜가 있다고 빤 듯이 써 볼 일이 있능교오, 이름짜가 있다고 어따 대고 떳떳허게 불러 볼 일이 있능교. 양반들이나 그렁 거 챙기제 우리가 멋 땀세 속이 상헌다요? 말이사 바로 말이제. 우리들 이름이랑 거이 맹랑허다고요. 달구새끼, 뒤야지, 퇴깽이 이름이나 머 매한가지 아닝교?"
공배는 야무지게 쇳소리를 내며 말하는 춘복의 얼굴이 똑 약오른 고추 같다고 생각한다.
"아나, 밥이나 어서 묵어라. 암말도 말고잉? 말 많이 허먼 매급시 헛심만 팽긴다. 뱃속에다 쟁에 논 것도 없이 씨잘디 없는 소리만 긁어 내지 말고. 말 안헌다고 속도 모르능 것 아닝게로."
공배네가 보리밥 사발을 춘복이 앞에 놓아 준다.
"됩대 우리 같은 사람덜한티는 잘된 일이제 머. 어런 때 성씨도 하나 새로 맨들고 이름도 처억 바꿔 불먼 누가 누군지 알 거잉교? 그러다가 누가 아요? 우리도 지아집 짓고 종 부림서, 에얌, 허고 사는 날이 올랑가아... . 하도 요상헌 시상이라, 알 수 없제."
침을 탁, 뱉어가며 쏘아붙이는 춘복이 말에 공배가 밥 순가락을 입에 넣다가 말고
"자 좀 바라, 자 좀 바. 너 어디 가서는 당최 그런 소리 말어라. 덕석말이 일 당헌다. 몰매 맞어어. 나 듣는 연에나 말허까, 무단시 비얌맹이로 그 방정맞은 셋바닥 조께 날룽거리지 말란 말이여."
하면서 눈썹을 찌그린다. 눈썹을 찌그러지자,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공배의 얼굴은 그만 우는 시늉이 되어 버린다. 그 옆에서 밥을 푹푹 퍼먹고 있던 옹구네는, 어느새 밥 그릇을 비우고 입가심으로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입술을 손으로 닦아 낸다. 마침 정자나무 위에서 참매미가 시원하게 울어젖힌다. 옹구네의 삼베 적삼은 접시만한데, 그것도 앞자락이 두르르 말려 올라가 있어 검은 젖퉁이가 비죽 내밀어 보인다.
"먼 걱쟁이 그렇게 많다요? 무신 신주단지가 있는 인생도 아니고, 뻬 빠지게 일만 허다 게발 같은 맨발로 가신 조상님들이 머 성멩 삼자 찾어서 헤매고 댕길 것도 아닌디, 아무 꺼이나 이름 붙이고 살제잉, 어차피 넘으 꺼인디, 우리덜이사 머 이름만 넘으 꺼이간디? 농사진 쌀도 내놔라 허먼 내놔야고, 손꾸락이 닳어지게 헌 질쌈 미영(무명)도 내놔라 허먼 내놔야고, 어디 그거뿐이여? 몸뗑이도 내놔라 허먼 그거이 내 몸땡이간디? 그저 등 따시고 배 불르먼 그것이 내 팔자로는 닥상이제잉."
평순네는 그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풋고추 꽁지에 된장을 찍는다.
"서방 없다고 그렇게 막말 허능 거 아니여, 누가 그께잇 노무 몸뗑이를 내노라고나 허능게비네."
공배네가 민망한지 핀잔을 준다. 공배네는 나이로 보아도 옹구네보다 십여 년이 위였지만, 매사에 조심성이 있어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고, 심중이 깊은 아낙이었다. 그런 점을 옹구네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이상하게도 옹구네는 공배네가 만만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말이 그렇다 그거이제 머. 무신 못헐 소리 했간디? 내가 서방 없는 년이라고 성님이 나한티 외나 막말을 허싱만."
"아고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 누가 그런다냐? 됩대 꼬깔을 씌우고 자빠졌네에."
옹구네와 말이 붙어 보아야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도, 양반은 확실히 근본이 달르드라. 저번에 주재소 순사 왔을 적에 말이여. 청암마님한티 순사가 되게 꾸지람만 듣고는 마당에 선걸음으로 쬐껴났다네. 어쩌든지 목심을 걸고, 목에 칼이 들으와도 창씨개명은 못허겄다고 허셌드란다."
공배는 곰방대에 담배를 재우며 춘복이한테 말한다. 아무래도 그는 창씨개명을 한 것이 꺼림칙하였다. 그러나 주재소 순사와 면사무소 서기가 무슨 장부를 들고 찾아와 공배에게 눈을 부릅뜨는데, 우선 겁에 질려 앞뒤 생각할 것 없이 그만 덜컥 도장을 눌고 말았던 것이다. 도장이라야 시뻘건 인주 범벅이 된 손도장이었지만, 그 순간 공배는 마음이 허퉁해지면서 마치 조상을 팔아먹은 듯 죄가 되고 면목이 없었다.
"나까무라 요이찌? 허... 참... ."
그때 공배는 횟새가 일어날 때같이 어지러워, 정짓간으로 들어가 물을 바가지로 퍼 마셨다. 생각 같아서는 물독아지를 그대로 기울여 들이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순사와 면서기는, 거멍굴, 아랫볼, 중뜸 할 것 없이 집집마다 들어가서 이름을 하나씩 지어 주고, 우격다짐으로 도장을 받아 갔다. 사람이 없는 집은 논밭에까지 일일이 찾아가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엉겁결에, 순사의 허리춤에서 철그렁거리는 칼 소리에 놀라 도장을 눌렀던 사람들은, 바로 그 순사가 청암부인에게 큰 꾸중을 듣고 선걸음에 쫓겨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면서기는 머리를 긁적이고, 순사는
"요오시!"
하면서 칼 소리를 일부러 날카롭게 내며 땅을 구둣발로 차고 갔다는 말도 있고, 그대로 혼비백산 달아났다는 말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청암부인이 호통을 친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네는 대청마루에 서서, 서기가 들고 있는 검은 뚜껑의 창씨개명 장부를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보며 서릿발 같은 호령을 했던 것이다. 남녀가 유별한데 아무리 조선의 법도를 모르기로소니, 무례하고 상스럽게 남의 내정에 돌입하여 허락없이 들어선 것부터 크게 나무라는 그네의 서슬에, 결국, 청암부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서기는 순사와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그냥 돌아갔다. 그때, 순사가 필요 이상 일본도의 칼집을 철그럭, 소리가 나게 두드린 것도 사실이었다. 집안의 사람들은 그들이 돌아간 다음에도 공연히 가슴이 서늘하고 두근거려 뒤안의 헛간 모퉁이, 장독대 곁에 움줄움줄 모여서서 소리 죽인 채 눈짓만 할 뿐, 일손이 잡히지 않았었다. 기표는 밤이 깊어지도록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기채와 함께 종대의 사람에 있었다.
"형님, 용단을 내리셔야지 이러고만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 큰 봉변 당하게 됩니다. 그게 어디 종가 한 집에만 닥칠 일인가요? 문중에서도 대강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는데 형님이 결단을 허십시오. 생각해 보세요. 일본이 어디 쉽게 망헐 나랍니까? 그 사람들 무섭습니다. 허는 짓을 보면 모릅니까? 요시찰인이 되어서 좋을 게 뭐 있습니까? 그렇잖어도 총독부에서 위험 분자는 총검거하라는 검속 명령이 내렸다는데, 공연한 화근을 왜 불러일으킵니까? 그렇기만 헌 것이 아니라, 일전에 고등께 나까지마 주임이 그런 얘길 해요, 곧 징병령이 발표될 거랍니다. 아 왜, 그 육군 특별지원병 모집헐 때도, 조선 청년들을 모두 강제로 끌어가다시피 허지 않았어요? 끌어가면 끌려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강모, 강태가 징병에 나가서 총대 잡고 싸우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헐 때는, 그때는 어쩔 셈이신가요? 일본은 절대 쉽게 안 망헙니다. 이런 시국일수록 지혜롭게 살어야지, 고집만으로는 아무것도 안되지요."
"어머니께서 저러시니 낸들 어쩌겠는가? 어머니 말씀이 사리에 어긋남이 없는데 내 고집대로 일을 할 수도 없어. 또 이것이 어린아이 장난처럼 간단한 일도 아니고, 한 번 해다가 물릴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 내가, 종가의 종손이 아니라면 건 모르겠지만, 나 하나가 어디 나 하나로 그치야 말이지. 참으로 이런 문제야말로 생사가 걸린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한 가문의 문을 닫는 일인데."
"백모님은 아무리 여중호걸이요, 여중군자라고 하시지만 역시 아녀자가 아니십니까? 여자가 아무리 출중하다 하여도 결국 집안에 사는 사람이라, 세상 돌아가는 이차와 변화를 어찌 다 알겠습니까? 막말로 , 백모님이 무슨 서류를 제출할 일이 있습니까아, 학교에 다닐 일이 있습니까, 그리고 어디 관직에 나갈 일이 있습니까, 하다못해 그분 이름으로 누구를 만나 사교할 일이 있습니까? 그러니 도리를 지키고 가문을 지키면 살 수 있지만, 남자가 어디 그렇습니까? 날만 새면 밖에서 살아야 허고, 해야 할 일 투성이인데, 나 혼자서 고고하고, 나 혼자서 성씨를 지키다가, 거미줄같이 얽히고 걸리는 그 많은 장애를 어쩌실 것입니까? 단순히 거미줄같이 얽히기만 한 것이라면 또 별 일 아니지요. 그 거미줄이 밧줄이 되고 차꼬가 되면 어쩔 것인가? 오도 가도 못하고 납작없이 앉은 자리에서 죄수 노릇 하게 됩니다. 형님, 이런 난세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그나마 목숨 보존하고 살아 남습니다. 더구나 강모, 강태는 지금 학생이니, 그렇잖아도 조선 학생이라면 무조건 요시찰인 대상에 오르는데 굳이 위험을 사서 부를 건 없지 않습니까, 그러고, 이 집안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도 창씨개명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기표는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기실은 그 말이야말로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으며, 기표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관심이 있는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기채는 그렇지 않은 편이었다. 비록 양자로 종가에 들어와 종손이 되었지만, 자신은 한 번도 자기가 양자라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다. 이기채의 생모 이울댁은 평범하고 정이 많은 부인이었다.
이기채는 그네를 작은어머니라고 부르며 성장하였다. 이울댁 또한 분에 넘치게 다정하지 않고, 그저 자상하고 따뜻한 정도를 스스로 잘 지켜 주었다. 그런 세월이 저절로 흘러 그네가 생모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도, 엄격하고 정중하면서 기품 있는 청암부인을 몹시 어려워하기도 했지만 내심 어머니로 섬기는 심정으로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든지, 종가의 종손으로서의 할 일을 다하려고 하였다. 그가 세상에 나 맨 먼저 눈에 익인 사람도 청암부인이었으며, 기어다니면서 가지고 놀던 것도 청암부인의 반짇고리와 실패였고, 처음으로 일어설 때 붙잡은 것 역시 그네의 문갑이 아니었던가. 나중에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을 배울 무렵에야 자신에게 어머니가 두 분이며, 내내 작은어머니라고 부르던 분이 바로 생모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졌을 뿐, 철이 들어 사물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도 생모와 양모의 구분은 실제로 어려웠다. 그만큼 이기채는 온전히 청암부인의 아들로, 종가의 종손으로 길러졌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자신의 대에 와서 자신의 손으로 이 대종가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 어찌 기색을 할 일이 아니랴. 더구나 평탄하게 번영하며 이어져 내려온 종문도 아니요, 자기가 어찌하여 양자로 종가에 들어왔는지를 그는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대단한 명분이 아니라도 좋았다.
"머슴이 발로 한 번 찼는데 그만 힘도 없이 허물어져 버리더라. 허망했지."
청암부인은 그때 이야기를 하면 꼭 웃었다. 어이없었던 그 순간이 회상되는 때문이리라. 또한, 허망한 흙더미로 무너지던 그 퇴락한 집안을 열아홉 청상의 여인 몸으로, 이날 이만큼 세워 일으킨 한 세월에 대한 감회가 가슴에 사무쳐서 그랬을 것이다.
"내, 저 동구에 열녀비 앞을 지날 때면 참 생각이 많아지느니라. 이만하신 어른이 이 집안에 며느님으로 들어오셨길래 은연중 이와 같은 가풍이 내게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청암부인은 어린 이기채를 마주하고 앉아 집안 내력을 들려 주면서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던 선대 할머님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하였다. 본디 말수가 많지 않은 부인이었으므로 한 번의 말도 곡진한 터이라, 이토록 여러 번 말씀하신, 그 열녀 정문까지 내려받은 할머님의 생애를 어찌 심중에 새겨듣지 않을 수 있었으리. 청암부인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문과 비각을 정성껏 돌보았다. 누구라도 그 앞을 지나칠 때는 옷자락을 여미었으며, 특히 부인들은 자신의 행실에 대한 거울로 삼을 만큼 조심스럽게 섬기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출가하지 않은 과년한 처자들도 이 정문과 비각 앞에서 자신의 정절을 새삼스럽게 다짐하였다. 그리고 철모르고 뛰어다니는 어린 것들까지도
"열녀 할머니, 열녀 할머니."
하며 살아 있는 사람한테처럼 그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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