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7. 흔들리는 바람 (4/4)
"나도 새며느리를 보았으니 며느리 손에 저고리를 얻어 입어야겠다. 뜯어서 새로 푸새하여 곱게 지어 봐라."
효원은 묵묵히 반짇고리에서 저고리를 들어내어 접어 들고 건넌방으로 왔다.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하여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한 번 더 숨을 들이쉰 다음 침착한 손끝으로 동정을 뜯는다. 옷고름을 떼어 내고, 깃을 뜯어 낸다. 놋화로에 잿불을 담아다 놓고 인두와 인두판을 챙기면서, 저고리 모양을 유심히 눈여겨 보아 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길이, 품, 화장이야 본래 그대로 하는 것이어서 상관없지만, 어려운 것은 깃과 섶을 다는 일이었다. 깃과 섶의 모양이 저고리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입은 사람의 멋과 품위를 살려 주는 곳도 이 부분이다. 그래서 바느질 솜씨가 빼어난 사람은 바로 여기서 한껏 솜씨와 모양을 낸다. 또 성미가 까다롭거나 옷을 곱게 입으려는 사람이 트집을 잡는 부분도 바로 이곳이다. 우선 그 명칭의 섬세함만 보아도, 잔손질이 얼마나 어려우며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 수가 있다. 깃에는 겉깃 길이, 안깃 길이, 뒷깃, 깃 나비가 다른데, 그것이 섶에 이르면 더욱 복잡하다. 섶 길이, 섶 나비, 섶 아랫나비, 섶 윗나비, 안섶 길이, 안섶 나비, 안섶 아랫나비, 안섶 윗나비... . 그런데 사람마다 깃과 섶에 대한 취향이 다르다. 어떤 사럇람은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은 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날렵한 칼깃을 좋아한다. 깃에 따라 섶의 모양도 어울려야 한다. 그런 것을, 우둑우둑 그냥 뜯어헤쳤으니 그 일이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저고리를 하나 주시라고하여 그 본을 보면 되겠으나, 효원은 굳이 그러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어, 그냥 그네식대로 바느질을 해 나갔다. 설령 그네가 침선에 별 마음이 없었다 한들 시집온 지 두어 달 만에, 그것도 처음으로 짓는 시어머니의 저고리이니 있는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밤에는 일찍 등촉을 뜨고 자리에 들라는 주의를 들었지만 효원의 성미에 할 일을 두고 잠들 수는 없었다. 그네는 꼬박 밤을 밝히고 인두질을 하고 바느질을 하였다. 어깨솔, 등솔을 하고, 겉깃, 안깃을 모두 인두로 꺾어 놓은 뒤, 겉깃에 겉깃 길이를 대고 바늘을 꽂아 깃이 너무 곧지 않게, 또 너무 둥글지 않게 어여쁜 곡선을 만들며 풀로 붙인다. 섶머리 길이는 깃 나비와 비슷하고, 섶머리의 나비는 깃 나비의 삼분의 일이 되게하여 역시 풀로 곱게 붙인다. 그리고는 풀 붙인 뒤를 헝겊으로 덮고 인두로 눌러서 잘 붙게 한다.
잠 안 오는 밤에는 바느질을 한다더니 과연 그러했다. 꼬박 앉아서 한 숨도 돌리지 않았는데, 창호지에 버언한 새벽빛이 들었다. 등잔 불빛이 퍼져 버리며 빛을 잃는 무렵에야, 효원은 놀란 듯 불을 껐다. 일부러 안방으로 불러들여서 일렀건만 하룻밤도 지나기 전에 오히려 이번에는 아주 밤 내내 장등을 하였으니, 어른의 말씀을 받는 아랫사람으로서 도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딱히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러한 것도 아니고, 또 마침 저고리 짓는 일이 있었던 것이어서 그다지 큰 염려는 하지 않았다. 날이 밝고, 해나절이 지나서 효원은 저고리 안팎을 뒤집어 부리를 맞추었다. 그리고 부리, 도련, 섶을 돌아가며 인두질 하고, 등솔, 섶솔을 바늘로 떠 시침을 하였다. 이윽고, 옷고름을 달고 동정을 달았다. 마지막으로 안 옷고름을 달아 놓고는 허리를 펴니, 벌써 새때였다. 그네는 왼쪽 소매를 접고, 그 위로 오른쪽 소매를 접어 올려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다리가 저리며 휘청하였다. 한자리에 앉은 채로 밤을 세워 일을 한 탓이리라. 그러나 안방에서 저고리를 받아든 율촌댁은 못마땅한 얼굴로 접어놓은 소매를 홱 젖히더니 댓바람에
"이게 저고리냐?"
하고 차갑게 말했다. 효원이 놀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무러면 네가 시에미 저고리를 이렇게 허수롭게 안단 말이냐? 네가 어른을 어른처럼 대한다면 그러지는 못하리라."
율촌댁의 음성은 가시가 돋아 있었다. 평소에 소심한 편이며 별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도 않은 율촌댁은 의외로 의뭉한 데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한 번 맺힌 일은 결코 푸는 일이 없으며, 풀린 체하더라도 더욱 더 깊이 새겨 두는 성격이었다. 거기다가 시어머님 청암부인 때문에 스스로 눌려 지내면서 그런 성격은 더욱 더 안으로 파고들게 된 것 같았다. 율촌댁의 얼굴이 파르르 떨린다.
"감히 네가... ."
저고리를 움켜쥐는 손도 떨린다.
"나를 업수히 여기다니."
그러면서 움켜쥔 저고리를 들고 찬 바람이 나게 대청마루로 나가, 마당에 그대로 패대기를 치며 내던져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저고리는 희끗희끗 잔설이 녹고 있는 질척한 마당 가운데 내동댕이 쳐진 것이다. 자주 고름이 진창에 젖어들어갔다. 차마 율촌댁의 서슬에 마당 가운데로 나서지 못한 채 행랑에서 하인과 머슴들이 웅숭웅숭 내다보고, 안서방네와 바우네는 부엌에서 나온다. 효원은 멋모르고 당한 일이라 얼떨결에 율촌댁의 뒤를 따라 대청으로 나왔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는 얼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춤거리던 안서방네가 행주치마를 거머쥐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저고리를 집으러 가는 것이다.
"그만두게."
율촌댁이 싸느랗게 말한다. 안서방네가 멈칫 하더니 뒷걸음질을 친다. 안서방네는 율촌마님이 절헤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처음 보았으므로 우선 정신이 아득하여 질정을 못한다. 효원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하인 비복들 앞에서 당하는 수모로 인하여 그 기를 참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내 이대로 이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으리라. 낚싯바늘 같은 갈퀴 고리가 효원의 가슴을 찍어 할퀸다. 칵 고꾸라져 죽으리라. 첫날밤 신방에서 칠보장식 화관조차 제대로 벗지 못하고, 앉은 채로 밤을 세우면서 이를 악물었던 그때의 수모가 이만하였던가.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자위가 붉어지면서 눈물이 싸아하니 돈다. 이윽고 그네는 마루에서 토방으로 내려서고 토방에서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진창에 던져진 저고리를 집어 들었다. 저고리는 검은 흙탕물을 흥건하게 머금고 있었다. 율촌댁은 꼿꼿하게 선 채로 효원을 매섭게 내려다보았다. 효원은 율촌댁을 향하여 허리를 숙이는 시늉을 해 보이고 뒤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뒤안 우물가에 가서 앉은 효원은 침작하게 우물물을 길어 올렸다. 저고리를 빨려는 것이다. 그때 황급히 부엌 뒷바라지를 밀고 나온 안서방네가
"이리 주시지요."
하면서 대야를 빼앗았다. 안서방네는 그저 민망하여 효원 쪽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였다. 효원은 안서방네가 대야를 받아간 다음에도 한참을 그러고서 있었다. 바람 끝에 차건만 추운 줄도 몰랐다.
"들어가시기요. 새아씨."
안서방네가 조심스럽게 다시 뒷바라지로 나와 일깨워 주었을 때야 효원은 정신이 났다. 무슨 정신인지 모르고 건넌방에 들어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그제야 비로소 차가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몸이 얼음처럼 식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일변, 청암부인이 마침 중뜸에 마실 내려가 있는 사이에 이런 일이 지나가 준 것이 다행스러웠다. 청암부인에게만큼 자신이 이렇게 참담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네는 청암부인에 대하여 그만큼 깊은 경외의 심정을 품고 있었다.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할머님이 계시면 견딜 수 있으리라.) 효원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착하게 빨아 놓은 녹두색 명주 저고리를 다시 지었다. 율촌댁은 율촌댁대로 심경이 곤두섰다. 효원만 생각하면 가시 박힌 손가락 끄트머리처럼 소스라쳐지면서 가슴이 우끈거린다. 효원의 기가 숨막히게 느껴진다. (어찌할꼬... 저 기를 어찌할꼬. 지금 휘돌려 잡지 않으면 평생을 갈텐데. 강모 일이 걱정이다.) 율촌댁의 머리 속에는 벌겋게 달아오르는 효원의 얼굴과 활처럼 휘어지던 그네의 입술이, 때때로 가슴 밑바닥에서 주먹이 치밀 듯 떠올랐다. 율촌댁이 새파랗게 노하여 내동댕이친 저고리를 줍던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 그리고 낯색도 변하지 않고 두말없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일찍 등잔불을 끄라고 말한 그날 밤에 하필이면 반발이라도 하듯이 장 등을 하길래, 그것도 몹시 못마땅하였고, 밤새껏 지었다는 저고리의 깃궁둥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바느질 솜씨가 남달리 좋은 율촌댁은 특별히 날렵하면서도 부드럽게 돌아가는 깃을 잘 달았다. 그래서 율촌댁의 저고리는 우아하였다. 그런데 며느리가 내미는 저고리의 깃궁둥이를 보라지. 안반짝같이 펴져 가지고 넙적한 것이, 발로 바느질을 해도 이만 못할까? 이것이 사람을 업수히 여기는가?
설령 본디 솜씨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흉거리일 뿐만 아니라 어차피 이 옷은 다시 지어야지 못 입을 것, 마침 어머님도 안 계시니 내 저 기를 꺾어 놓으리라. 네가 타고난 성격을 쉽사리 고칠 수 없을 것이나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네가 그 성질 순하게 고치지 않으면, 네 평생도 고달프거니와 온 집안이 평안치 못하리라. 거기다가 강모의 성격이나 좀 강단이 있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는 순하기 노루 같고 어여쁘기 꽃 같으니, 차라리 내외가 바뀌어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리. 강모는 확실히 혼인하고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모습은 소년이로되 겉늙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것이 율촌댁의 가슴을 못으로 치듯이 저리고 애달프다. 강모가 그렇게 이상하게 그늘지고 시들어가는 까닭을, 율촌댁은 효원에게 있다고 짐작하였다. 내 짐작이 맞고말고, 여자 대가 저렇게 드세니 어찌하랴. 이번 일을 기회로 생트집을 잡아서라도 단단히 눌러 주리라. 그래서 율촌댁은 저고리를 움켜쥐고, 눈 녹은 마당의 진흙탕에 동댕이를 채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효원과는 마주앉으려고도 않던 강모가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매안에 왔을 때, 청암부인은 강모를 붙들고, 얼마나 간곡하게 사정하고 타이르고 애원하였는지.
"강모야, 할미 좀 봐라. 인제는 다 늙었다. 인제 모든 게 전 같지가 않어. 밥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다 힘들다. 이러다가 곧 죽을 게야. 그런데 내가 왜 못 죽고 있는 줄 아느냐? 강모야, 증손자 안아 보고, 이 할미가 그놈 얼굴 좀 보고 갈라고 이렇게 지체하는 게다. 아, 그래야 구천으로 돌아가서도 조상님을 뵈옵고는, 증손자 소식을 전해 드릴 게 아니겠느냐? 아무 소식도 못 가지고 빈 손으로 간다면, 내, 면목이 없어서 그런다. 이 할미 심정을 알겠지...? 할미가 머리 알아서 날받이도 다 해놨단다."
청암부인의 목소리에서는 끈끈한 침이 묻어났다. 그 끈끈함이 마주앉은 강모와 건너편에서 소리를 죽이고 있는 율촌댁의 목 언저리에 엉기어 마치 실타래를 감듯 감겨들었다. 강모가 꾸르륵 침을 삼켰다.
"너는 이 종가의 손을 이어 놓아야 할 귀중한 사람이다. 사람마다 일이 있고 몫이 있는 법인데, 어찌 너는 네 할 도리에 대해서 그리 등한하냐? 어디 속 시원히 할미한테 다 털어 놓아 보아라. 속에다가 담어두지만 말고. 할미가 들어 주마."
청암부인은 강모 쪽으로 윗몸을 구부리며 무픕까지도 기울여 이야기하고 있었건만, 강모는 오히려 한 걸음 뒤쪽으로 물러나기라도 하는 것같은 몸짓을 하였다. 강모의 숙인 이마 위에 잔 그물 주름이 지는 것을 율촌댁은 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다시 침묵이 방안에 고였다.
"강모야. 왜 아무 말이 없어? 할머님이 저렇게 말씀허시는고만... . 어른 말씀에는 얼른 대답을 사뢰어야지."
침묵이 저울추보다 무겁게 처지자, 보다 못한 율촌댁이 낮은 소리로 강모를 채근하였다.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인 까닭에 공연히 청암부인께 자신이 면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면구스러움은 율촌양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쩟, 혀를 차기만 해도, 그것이 강모의 일일 때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곧 민망해졌다. 그 혀 차는 소리 속에는
"도대체 에미라고 집안에서 자식한테 무엇을 가르쳤는고."
하는 책망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어미 탓이다."
라고 직접 대 놓고 말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스스로 그렇게 자책하였다. 율촌댁이 채근하는 말에도 강모는 이번에 장판만을 내려다보고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양이 고집을 양보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
그런데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오냐. 어서 말하거라."
청암부인은 반가운 낯빛으로 웃는다. 강모가 침을 꾸르륵 삼킨다.
"저, 동경으로 갈랍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요. 제가 아직 나이 어리고 학업에 전념할 때라, 아무래도 뜻한 대로 공부를 좀 해 보고 싶습니다. 또 동경이 멀다 하나 강호형도 있고 요즘은 너나없이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낯선 곳만은 아닙니다."
청암부인의 어깨가 뜻밖의 말에 부딪쳐 툭, 소리라도 낼 듯이 꺾이며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율촌댁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반이나 벌어져 휘둥그레 강모를 바라보았다. 그런 두 부인과는 상관없이 요지부동 앉아 있는 강모에게, 드디어 청암부인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들만 낳아라. 그러고 떠나거라."
그리고는 한참 후에 다시 덧붙여 말했다.
"오늘이 아주 좋은 날이니라. 생기복덕일로 천자만손이 대문 앞에 모이는 그런 날이다. 부디 이 할미의 당부를 저버리지 말아다오. 내 오늘 밤에는 문 앞에서 지키고 앉었을란다."
청암부인은 이미 효원에게 흡월정까지도 시켜 놓았었다. 흡월정이란, 음력으로 초열흘부터 보름까지 닷새 동안 달이 만삭처럼 둥그렇게 부풀어오를 때, 갓 떠오르는 달을 맞바라보고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셔, 우주의 음기를 생성해 주는 달의 기운을 몸 속으로 빨아들이는 일을 말했다. 그렇게 하면 여인의 몸에 달의 음기가 흡수되어 혈력이 차 오른다는 것이다. 저 무궁한 우주를 한 점 달에 응축시켜 몸 속으로 흡인하는 힘. 그 혈력으로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언뜻 생각하면 그저 큰 숨이나 들이쉬고 내뱉는 정도라고 여기기 쉽지만, 그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하고, 주변을 깨끗이 쓸어 잡인들이 근접하지 못하게 한다. 부정을 타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는 어른이 감시하였다. 그러다가 막 달이 떠오르면, 입을 아 벌리고, 온 정성을 다하여 있는 힘껏, 구곡간장과 살 속 뼛속 실핏줄 끝끝과 머리꼬지 정수리까지 달이 가득 차 오르도록 달을 들이마신 뒤, 머리가 아찔하여질 만큼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숨을 참았다가, 숨결의 터럭도 흔들리지 않게 고요히 배앝는다. 이미 마신 달의 정이 새어 나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 숨통이다. 한 숨통마다 안서방네가 손뼉을 딱, 치며 박자를 맞추어 수를 세어 주었다. 그리고 청암부인이 옆에서 지켜보았다. 달빛 아래 서 있는 부인의 모습은 더할 수 없이 엄숙하고 경건하였다. 마치 신불 앞에선 듯했다. 효원은 온몸에 정신을 모아 티끌만치도 달빛이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흡월하여, 아홉 숨통을 마시었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 흡기는 짝수로 마쳐서는 안되므로, 보통 세 숨통, 다섯 숨통, 일곱 숨통식으로 마셔야 하는데, 우선 본인의 기운이 부치고 어지러워서도 한 숨통을 넘긴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아홉 숨통을 채우는 일이랴. 웬만한 사람도 다섯을 넘기기가 어려운 것을, 효원은 기어이 끈기를 가지고 아홉 번까지 해내고 말았다. 그러더니 그네의 얼굴빛이 달빛처럼 파랗게 바래면서,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아 버렸다. 전에 어떤 여인은, 머리카락 손톱 끝 모세혈관까지 만원처럼 부풀도록 흡월정을 하고 나서, 곁에 있는 나무 둥치를 쓸어 안고 그만 엉엉 울었다니, 이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를 알 수 있으리라. 청암부인은 주저앉은 효원의 등을 부드럽게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 손길이 하도 간절하여 영령이 어리는 것 같았다. 효원은 정수리까지 차 오른 달빛에 멀미를 일으키며 고꾸라졌다. 그때 율촌댁이 달빛을 마시는 효원에게서 느낀 것은, 무서운 집념과, 오기와, 범접할 수 없는 기상이었다. 왈칵, 겁이 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며느리가 두려워졌다. 그런 다음이니, 청암부인이 강모를 어떻게든지 달래고 설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강모를 몸소 데리고 가 건넌방으로 들여보낸 청암부인은, 대청마루에서 건넌방을 향하여 몸을 바르게 하고 섰다. 마치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처럼 이윽고 부인은, 두 팔을 반공중에 커다랗게 벌리어 원을 그리면서 손을 모아 합장했다. 합장한 손을 가슴에 붙이고 한동안 서 있던 그네는 간절하게 엎드리면서 방문 앞에다 큰절을 하였다.
... 부디 아들 하나 태워 주소서. 엎드린 부인은 일어날 줄을 몰랐다. 천만 마디 말보다도 더욱 아픈 심정 한 토막이, 밤의 가슴에 옹이로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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