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1부
38선을 넘나들어 (2/5)
남쪽을 맡았으면 남쪽답게 우리맘이 한번 마파람으로 못 불어볼까? 마파람이 불면 북쪽 응달의 얼음이 녹지. 순 임금처럼 거문고로 마파람 노래를 타 백성의 마음을 푸는 우리는 님은 아니 오시려나.
38선이란 뭔가
38선이란 대체 뭔가? 나라의 절반을 자른 칼자루 아닌가? 우리같이 미미한 씨알이 고등기술로 하는 세계정치의 속살 알 길도 없지만, 나타난 결과로 미루어 보아 뻔한 것이,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려 할 때 톱의 두 끝을 쥐고 서로 당기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 제 나라의 이익을 표준으로 흥정조로 하다가 그 금새가 떨어진 그금이지 별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됐던 죄로 이렇게 되기는 한 일지만 정의니 인도니 세계문화니 자유니 하면서 아무리 흥정조로 하는 외교라 하더라도 남의 나라의 허리를 자르는 법이 어디 있느냐? 나라는 결코 물건이 아니요, 한 개 생명체다. 한 인격이다. 나라 땅과 국민과 주권은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요, 하나다. 우리나라 땅을 절반으로 자른 것은 우리 3천만의 허리를 개개이 자른것이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의 심장과 골을 반씩 자른 것이다. 그러고는 나라가 살 수는 없다. 6.25가 뭐냐? 잘라진 두 고깃덩이가 아직 채 기운이 죽지 않아 너무 아파서 도마위에서 냉큼냉큼 뛴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를 해방시켰다지만 정말 해방일까? 아기를 잘라서 내면 그것이 해산이냐? 우리를 산 사람으로 알았을진대 그렇게는 아니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미운 것은 루즈벨트다. 첫 루즈벨트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먹으려는 것을 허락해주었지만 그 둘째는 루즈벨트도 소련의 사나운 것을 막아주지 않았다. 스탈린이야 본래 흉계를 가지고 한 것이었을 터이니 말할 것 없다. 그는 미국을 시켜 불 속 밤을 끄집어내게 하고 먹기는 제가 먹자는 심산이었다. 미국이 나라힘을 기울여 2차 대전을 끝맺게 하였는데 스탈린은 그 기회에 뒤로 슬슬가며 세계를 빨갱이로 만들 계획을 했다. 그러는 데는 아시아를 먼저 해야 했고, 그러려면 중국과 일본 둘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에 쐐기를 먼저 밖아 쪼개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어떻게든지 우리나라에 발톱을 박아놓아야 한다 해서 일본군 무장해제를 하는데 자기네가 38선 이북을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즈벨트나 그 옆에 있던 미국 정치가들이 그것쯤 몰랐을까?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 그 흉계를 알고도 왜 양보를 하여 남의 나라의 허리를 자르고 3천만의 심장을 쪼갰을까? 너무 무식한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 민중의 소박한 판단으론 미국 정치가들이 겁이 나서 그랬다고 할 수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겁은 무슨 겁? 전쟁에 싫증이 난 민중의 여론 말이다. 그들 생각에 스탈린을 누르려면 또다시 소련과 한 번 맞붙을 각오를 해야겠는데 전쟁을 또 한다는 말 들으면 민중의 여론이 어떨까? 걱정이 돼서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한 나라 절반을 잘라서 반은 네가 찬 지혜라, 반은 우리가 알아 하마 하는 것이 정의. 인도에서 볼때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제 나라의 이해문제가 급하다 할때 일부러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 점이 밉단 말이다. 미국이 인류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나선 줄을 우리가 모르지 않고 한국을 위해서도 이날껏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나 사람을 살리려거든 끝까지 살려야지, 이젠 한걸음이라는 데서 놓고 물러서면 이때까지의 공이 헛되게 될 뿐아니라 그 사람의 처지는 더 참혹해지지 않나? 믿는 바가 있으니만큼 밉다는 말이다.
지나간 세기의 정치도덕으로 하면 이것은 별로 나무랄 것이 없는 일이다. 그때 각 민족, 각 나라는 생존경쟁의 철학 밑에 서로 싸웠는데 내가 약해 남의 밥이 됐으면 분이람 분이지 먹은 편을 향해 나무랄 권리는 없다마는,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이젠 네 나라 따로 내 나라 따로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가 없이 된 시대다. 그러므로 여기서 강대국 주의를 지지해 가는 것은 시대에 거슬리는 일이요, 따라서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소련은 다 그것을 버티는 벼릿줄을 세계적으로 벌리지 않고는 하루도 설 수 없는 전봇대이다. 두 나라는 다 혈압이 높다. 그러므로 원조라거나 간접이라거나 협조라거나 탄압이라거나 하여간 무슨 형식으로나 그 울결되려는 피를 빼지 않고는 서갈 수가 없는 나라다. 쉬운 말로 미국은 왜 먼로주의를 버렸나? 그‘명예의 고립’을 버린 것은 결코 수세계가 불쌍해서 후견을 하는 의미로만 아닐 것이다. 미국 자체를 위해 버린것이지. 무산자가 못사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책임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 전체의 기구에 있다. 그의 게을러지는 책임까지도 그 사회제도가 져야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약소국이 되는 것은 물론 제 잘못 있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원인은 강대국에 있다. 큰 나무 아래에선 작은 나무가 못 자란다. 그러나 약소국이 못살면 그것은 못살게 만드는 강대국 자체도 못살게 된다. 파상풍균이 들어간 것은 발가락이지만 죽는 것은 발가락만이 아니요, 전체다. 어쩔 수 없이 하나인 것을 어떻게 하나? 이 점이 오늘날 정치와 옛날의 정치가 근본적으로 다른점이다. 사실상 한 나라인 걸 서로 네 나라의 차별을 하는 데 현대의 고민이 있다. 정의.인도의 입장에만 아니라 미국자체를 위해서도 38선을 양보한 것은 어리석은 실패였다. 무식한 우리 눈으로도 제2차 대전을 일으킬 때 미국이 소련과 악수를 하고 무기를 빌려주는 것을 보고, 이따가는 그 무기로 자기네가 공격받을 것이 뻔한데 어쩌려고 저러나 했다. 그때 형편으로 전체주의를 대항하기 위해 그것은 부득이한 정책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따가는 필연적으로 미.소가 붙고야 말것을 미리 생각했어야 할 것이다. 살아나면 내가슴을 물 줄 모르고 언 뱀을 품속에 넣은 것은 결코 착함이 아니다. 두 고래가 싸우는 데 새우같은 우리처지에 우리등만 터지는 것이 아니라, 저의 대강이도 어쩔 수 없이 부스러지고야 말 것을 모른 바는 아니건만 새우처지에 말할 처지도 못되어 가만 있었다.
하나 이제라도 항의는 하여야 하고 또 그 항의는 들어줘야 한다. 새우 등만이 갈라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마르스가 새우 한두 마리로 만족하겠느냐? 당초 38선을 양보하고 속히 미국의 안락을 찾자던 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다. 한국이란 파리한 염생이 하난 먹고 말잔 것이 아닌 시베리아의 승냥인 줄을 왜 몰랐을까? 아무래도‘싸구려!’평안에 눈이 어두웠지. 그때에 미국이 차라리 다시 한번 싸울 각오를 했더라면 우리의 허리가 잘라지는 참혹한 운명은 아니 당했지! 살지도 못하고 채 죽지도 않고 내 창자가 흘러나와 땅에 발리운 것을 내 눈으로 보는 이 운명은 뭐냐? 38선 양보가 아니었더라면 6.25는 없었지! 미국의 젊은이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지! 세계 수십 나라가 전쟁을 또 하지는 않았지! 타산에 밝은 미국사람들이 타산으로 실패한 것이 아니냐! 이가 남았나? 손해가 났나? 밑져도 분수가 있지. 미.소가 그때에 한 번 싸웠다면 미국은 그 이후 소위 냉전이라는 형식하에 당한 물질,인명의 그러한 손해는 아니 당했을 것이요, 세계도 지금처럼 이렇게 고민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무식한 우리 소견으로 말리기는 어렵지만 아마 그때에는 소련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미국보다 훨씬 떨어졌지. 미국은 아직 물자가 다 된 것은 아니었지. 미국은 비겁했었다. 이것은 전쟁을 불어넣는 말이 아니다. 나는 평화주의에서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마는 역사에서는 치를 것은 치러야 한다. 미국이 정말 자기희생적인 순전한 평화주의에서 양보를 했다면 차라리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단지 미국민이 전쟁을 피하려는, 향락을 희생하기를 아껴하는 생각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비겁이라는 것이다. 역사에서 보면 아끼는 놈은 반드시 아낀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잃는다. 목숨을 아끼면 목숨과 겸해 명예도 혼까지도 잃지않나? 미국이 만일 한번 더 싸움을 하면서라도 38선을 양보를 아니했더라면, 그리하여 한국이 완전한 자유주의로 섰더라면, 그 넓은 만주에는 시베리아에 닿기까지 한국 사람이 혈관처럼 샅샅이 들어가 끼어 있었으니, 만주를 공산주의에서 지키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만주가 빨개지지 않았더라면 중국 8억 민족이 빨개졌을 리 가 없고 중국이 만일 자유주의로 깼다 그래 봐! 그럼 세계 역사가 어찌 되었겠나? 이렇게 생각하고 역사를 읽어 미.소의 밀약에 이를때 우리는 보던 책장을 찢고싶은 심정이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예나 이제나 생명을 잃는 자는 얻고 얻으려는 자는 잃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정국을 올바르게 수습할 자격을 잃는 루즈벨트는 막중간에 퇴장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과 ‘조선’
죽은 루즈벨트를 나무래 무엇하며 뒈진 스탈린에 발길질을 해 무엇하리오? 미국에 책임을 돌리느 것도 비겁이다. 일은 내게 있다. 나다.‘나’라 하는 것이 나라다. 속에서 나라서 나라지 밖에서 들어가서 나라될 수 없다. 사람이 반드시 제가 스스로 업신여긴 다음에야 남이 업신여기는 법이요, 집이 반드시 제가 스스로 헌 다음에야 남이 허는 법이요, 나라가 반드시 제 스스로 친 다음에야 남이 치는 법이다. 38선은 지리상의 선도 아니요, 정치 외교의 선도 아니다. 그것은 민족역사의 선이요, 성격의 선이요, 우리 맘의 선이다. 남쪽은‘한’이라 하고 북쪽은‘조선’이라 하는데, 그것부터 우연한 일이 아니다.‘한’이나 ‘조선’이 다 한 옛적부터 우리나라를 부르는 이름이다. 단군 이야기를 환인, 환국 하는 그 환이 다 이‘한’이요, 마한, 진한, 변한의 한, 대각간, 성길사한의 간. 한도 다 이것이다.‘조선’은 지금와서 역사에 조선이라 쓴 한문자를 발음한 것이나 도리어 예로부터 하는 우리말에서는 차라리‘되션’,‘되센’으로 하는데 단군이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는 것을 보면 역시 처음부터 있은 이름이다. 숙신도 아마 같은 말일 것이고 백두산의 옛 이름인 불함도 그것인지 모른다. 이것은 아직 고증학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해 조선이라 해둘 수 밖에 없으나 어쨌든 두 이름이 다 저 먼 옛적부터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 ‘한’과 ‘조선’은 어떻게 서로 관계가 되나? 같은 우리 이름이면서 무엇이 서로 다른가?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나 보기에는‘한’은 사람을 가리킨 말이고 ‘조선’은 살림을 같이해 나가는 그 조직체에 대한 이름인 듯 하다. 즉 ‘조선’은 나라 이름이고‘한’은 민족의 이름이다. 물론 후에 와서는 서로 섞여서 사람을 조선 사람이라 하기도 하고 나라 이름을 한이라 붙이기도 했지만 그 본래의 뜻은 그렇지 않을까? 그것은 어찌 됐건 지금 38선 갈라져 이 쓰라린 운명을 당하고 있는데 그 갈라짐은 결국 사람과 조직과 조직이 하나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남쪽에서 한을 골라 대한민국이라 한 것은 그 이름 붙이는 그때 누구누구들이 무슨 생각에 그렇게 했는지 어디 공식으로 발표된 것이 없으니 알 수가 없으나 아마 대개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한때 없어진 대한에 붙여 다시 살리는 뜻에서 한 것 아닌가 한다. 즉 역사적 전통을 찾는 뜻에서 아닐까? 그러나 그건 이씨조선에서 대한제국이 될 때에는 어찌하여‘한’을 가져다 쓰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외양으로 이씨가 여전히 임금으로 있으니 그 나라 그대로인 듯 하나 속으로 하면 전연 다르다. 전에는 정말 이씨네의 나라였다. 나라와 백성은 임금의 한 개 소유이므로 맘대로 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될 때는 서양에 있는 입헌제도를 배워야 한 것이므로 이제 임금은 한 개 기관이지 나라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실상 혁명이었다. 그 혁명이 완전히 되지 못한 탓으로 아직도 썩어진 옛 생각을 가지고 우물쭈물하다가 망해버리는 운명을 당했지만 그 성질은 적어도 그런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사이에도 아무관련이 있을 수 없다. 공교롭게 이대통령이 전주 이씨지만 망해버린 대한제국의 세습적인 임금인 이씨와는 털끝만큼도 관련이 있을 수 없고,더구나 올라가서 이씨조선과 우리와는 아무상관이 없다. 나라야 물론 다름없는 우리 그 나라요, 역사는 끊어질 수 없는 우리가 책임맡는 그 역사지만, 그때에 나라 일을 맡았던 조직체로서의 그 조선, 그 제국은 우리에 대해아무 발언권도 주장도 가질 수 없다. 한 말로 지금은 지난날 조선도 대한제국도 이씨도 없다.
이런 이야기 하면 내가 쓸데없는 군말을 한다 할지 모르나, 아니다. 백주에 세계 뉴스에 동경 있는 이은이를 한국으로 모셔간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풍설이 떠도는 것을 보지 못했나? 밤이 낮같은 세상이라 하지만 사실은 낮이 밤같이 도깨비가 나는 세상이다. 잘못하다가는 생눈깔을 뽑힌다. 아니다, 벌써 다 뽑힌걸, 내 눈깔 있어 보거니 하고 망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북에서는 왜 ‘조선’을 가져다 썼는지 그것은 더구나 알 수 없다. 남에서 ‘한’이라니 덮어놓고 맞서노라고 다른 이름으로 하자니 조선이라 했나? 아무려나 운명적이다. 고려도 있고 고구려도 있고 역사에서 빌어오려면 빌 수 있는 이름이 달리도 있고 새로 지울 수도 있는데 하필‘한’과‘조선’이 맞서게 됐을까? 세상이 이상한 세상이 되어 형식에 걸려 역사가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글쎄 같은 민인데 왜 국민이나 민중이라면 좋고 인민이라면 잘못인가? 민 그 자체는 세계 어디가나 다름없는 민일터인데 서로 국민이요 인민이요 하여 사람을 찢으려나? 남북으로 다름이 없는 나라인데 어째 한국이라고는 하되 조선사람이라고는 못하나?
6.25전에 한 번 강연하다가 조선이란다고 경관한테 말썽을 당한 일이 있고, 6.25당시 머리를 박박 깎은 탓으로 빨갱이로 몰린 청년이 많고, 수염을 길렀다고 스파이라고 시비하는 것은 들은일이 있지만, 그럴진대야 조선 호텔은 뺄갱이의 소굴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그게 정치냐? 남한에서는 조선이라는 명사는 아주 잊어버리게 되어 가니 이게 무슨 일이냐? 그거 충성이냐? 잘하는 거냐? 나는 조선 사람이다! 단군 할아버지가 내이름을 지어주셨다.
우리 민족의 성격적 결함
‘한’과‘조선’의 대립 그것은 단군 할아버지를 반으로 쪼개는 거야! 38선은 자아분열의 선이다. 완전한 제 노릇을 못했기 때문에 그어진 금이요, 그 금이 갔기 때문에 자꾸 피가 빠져 죽게 되는 상처다.‘한’과‘조선’은 하나야! 못떨어진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하나다. 조선 잃은 한은 참 한이 아니요, 한 없는 조선은 참 조선이 아니다. 생명과 조직이 어떻게 떨어질 수 있느냐, 딴 것일 수 있느냐? 생은 유기요, 유기는 생이지. 미.소가 아무리 무리한 톱질을 하기로서니 우리 자체가 정말 깨질 수 없는 조직에 사는 금강신이었다면 그게 능히 우리를 둘로 쪼갠단 말이냐? 우리 몸에 금이 갔기 때문에 톱니가 먹어든 것이다.
당초에 잘못이 우리가 조직을 갖지 못한 체 해방을 당한 데 있다. 조직없는 민족, 그것은 한 개고깃덩이다. 산 듯하나 얼마 못가 곧 썩을 것이요, 누구의 미끼가 되기 쉽다. 일제 밑에 있어서는 밖에서 오는 강제의 조직이나마 있으니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속에 아무 통일적인 조직이 없었다.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일본과 타협을 하고 돌아 붙어먹은 지 벌써 오래였다. 그 마지막 꿈틀거림이 소위 신간회란 것이다. 민립대학 소리를 해보다 만 다음에는 우리 민족은 그저 헤진 모래알이었다. 그러므로 지식있는 자나 없는 자나 일본 사람의 맘대로 부려먹을 수가 있었다. 부분적으로 하면 기독교도 있고, 천도교도 있고, 불교도 있고, 썩다 남은 유림조차도 있었으나, 민족 전체를 통일하는 정신적인 체계는 없었다.
그러나 정치는 조직이지, 조직 없이 나라를 해갈 수 없다. 정치가 조직을 세워가는 것이 아니라 산 정신적 조직이 있어서 정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백상태로 해방을 당했으니! 다시 말해서 우리는 투쟁을 해오지 못했다는 말이다. 개인개인으로야 물론 싸웠다 하지만, 나라는 결코 개인적인 싸움으로는 아니된다. 그 개인의 희생적인 투쟁이 전체적인 통일운동을 일으키는 고동이 되고 초점이 돼지만 그 뜻은 있다. 도산이 옥중에서 죽어도 혼자서 죽은 다음엔 소용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을 맞고 우리는 당황했던 것이다. 나라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받을 손이 없었다. 창졸간에 할 수 없이 임시로 한 것이‘자치회’란 것이었다. 그때 나는 남한에 있지 않는 북에 있었으니 서울 일은 모르지만, 북에서 본 것으로 하면 민중의 떠밀림을 받아서(그때야 말로 떠밀어서 나선 사람들이지, 아직 정치업자들은 못 나선 때이다)일을 한다고 사람마다 정부는 중국이나 미국이나 어디서 조직해 가지고 들어오려니, 그때까지 우리는 임시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책임이거늘, 이러한 정도의 생각을 넘지 못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기막힌 일이다.
씨 속에는 봄만 오면 껍질을 트고 나올 움이 겨울 동안에 벌써 다 되어 기다리고 있지 않나? 우리는 씨가 영글지 못한 채 봄을 만났다. 이것이 다 같이 밖에서 오는 힘으로 갈라진 것이기는 하면서도 우리의 남북한과 독일의 동서독이 서로 다른 까닭이다. 독일엔 6.25전쟁은 나지 않았다. 소련이나 중공의 책임이 아니야, 제 민족 제 잘못이지.
그와 같이 해방을 당할 때에 나라를 낳을 만한 아무 정신적 통일이 없었다. 민족이야 있고 사회야 있지, 문화도 있지, 하지만 그것은 내용이요 재료지, 그것이 역사적 운동을 하려면 어떤 중심이 있고 방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에 오직 한개의 조직적인 운동이 있었다면 그것은 공산주의다. 공정한 말로 그들은 결코 우리 민족 전체의 사상도 기분도 아니었다. 일제시대에 일본 경찰도 조선의 공산주의의 특색은 그 민족주의적인 데 있다고 하였고 그런 방침으로 다스리기도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적인 것을 무시하고 공산주의가 발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여간 민족주의자는 타락을 해버리는데 그들은 민족주의를 이용해가며 민중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썼다. 그런데 해방을 당하고 나니 넓은 의미의 민족주의자들은 자다가 신랑이 온다는 고함 소리를 듣고야 부스스 일어나는 슬기없는 처녀 모양으로 그제서야 자치회요, 국민회요, 전국위원회요 하고 서두르면서, 공산주의자들은 벌써 대기하고 있던 태세였다.
이리하여 38선으로거나 무엇으로거나 사상으로 민족이 갈라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다수를 말하면야 물론 민족주의지. 하지만 그들의 아무 조직이 없었다. 공산주의는 결코 일반 민중의 신임을 받을 만은 못하지만 그들은 힘있는 조직을 가지고, 분명한 노선을 가지고, 연구된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후 38선을 가운데 놓고, 우리 역사를 다른 것 아니고 조직없는 선이 조직 있는 악에서 어떻게 싸움에 견디나 하는 그 증명이다. 옛날은 또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사람의 살림은 조직없이는 아니된다. 반드시 비밀결사 말 아니요, 폭력적인 시위 만 아니다. 그것은 사실은 조직운동 중 가장 낮은 가장 못된것이다. 역사상에서 유명한 십자군은 결코 비밀결사가 아니었다. 내놓은 운동이었고 간디의 사티아그라하는 조금도 폭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단군 할아버지는 바탕 어진 한 사람을 가지고 밝은 조선을 세워 그 빛이 동쪽 아시아 천 년 동안 빛이 됐다. 이제 한은 그 한 그대로 건만 조선은 그 조선대로가 아니다. 우리는 조직에 재주없는 민족이다. 이 민족이 성격을 세우지 못한 민족이다. 오늘날 우리의 중심과제는 국민 성격을 쌓는 일이다. 맘은 구술 같건만‘하나’로 꿰일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 우리의 허리를 자르고 애를 끊고 염통을 쪼개고 골을 가르는 운명의 38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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