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과학 - 이야마 히로유키, 옮긴이: 이정임
갈바니와 개구리 다리
지금도 이과대학 학생들은 생물학 실험 커리큘럼으로 개구리 해부를 한다. 냉철하고 정확한 관찰안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무자비한 행동을 참아낼 수 있는 정신을 키우는 전통적인 연습 실험이다. 그렇지만 불쌍하게 뼈를 드러내놓고 있는 그 징그러운 생물이 학생이 메스를 댔을 때 갑자기 움직인다면 그 학생은 어떤 느낌일까? 메스를 구성하는 금속물질과 개구리의 척추신경 사이에 원인불명의 반응에 대해서 즉시 조사하기 시작할까? 아무래도 일단은 자제하고 생명에 대한 감탄이나 불쌍하다는 생각을 다시 마음속에 품을는지 모른다. 이 장의 주인공으로 약 200년 전에 살았던 갈바니도 그러한 기로에서 있었던 사람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뒤돌아 보면 아마추어 과학의 전성기라고도 불리는 18세기 시대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존재의 세속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네 가지 원소인 불, 공기, 물, 흙이 다양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장으로서 신비와 기적으로 이루어졌던 물질세계는 실험실의 천칭으로 측량할 수 있는 단순한 물질의 총화로서 기술되고, 신성한 근원물질은 원소의 주기율표 밖으로 밀려나기에 이르렀다. 2장에서 소개한 프랭클린의 실험에서도 성스런 하늘의 불인 번개를 일상 세계로 끌어내려 식탁 위에 놓여진 모슬린 천과 유리관의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유체라고 규정하는데 성공했다. 연 실험으로 전기가 세계에 널리 펴져 있다는 것이 증명됨과 동시에 낙뢰 현상은 피뢰침으로 유도되는 커다란 규모의 전기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게 되었다. 1841년에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지금까지 말한 사건에 대해서 매우 인상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1789년과 1815년 사이에 일어난 가장 새로운 사실. 우리들의 현재 생활 속에서 인식할 수 있고, 만인이 감지하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사실은 아마도 대혁명과 제1제정을 구성하는 전통적인 역사적 유형의 커다란 사건이 아니다. 한 사건의 중요성은 어느 사람의 생활 속에 그 사건이 연출하는 역할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사자가 그 역할을 의식할 수 있는 그 범위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1789년과 1815년 사이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1800년의 볼타에 의한 전지 발명과 전류 발견이 된다.
인용문 중 "우리들의 현재 생활 속에서 인식할 수 있고, 만인이 감지하고 있는 가장 뛰어난 사실"이라는 난해하고 긴 표현을 약간 알기 쉽게 쓰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현재 숨쉬고 있고 확실하게 그 은혜를 받고 있다고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역사상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발레리는 전지 발명과 전류 발견을 인류에게 있어서 역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뉴턴에 의해 이루어진 고전역학의 완성도 아니고, 라부아지에에 의한 새로운 물질의 명명법도 아니다. 물론 프랑스 시민혁명도 아니고 미합중국의 독립도 아니다. 오로지 전지 발명과 전류 발견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들 현대인에게 있어서 빛나는 전등 불빛에 싸여있는 밤도시는 근대문명을 생각하게 하고, 생활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여러 가지 전기제품의 존재는 과학의 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내가 인상적이라고 말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마지막 문장에 나와 있는 사람 이름이다. 볼타에 의한 전지 발명이 회기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고 해도 그 발명을 아무말 없이 재촉한 불쌍한 늙은 갈바니에 대해 언급되어 있지 않은 점은 공평치 않다고 생각한다. 발레리는 인용문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새로운 사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모험 소설의 돌발적인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진행을 답습하며 집적되어 간다. '과학'은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 발전한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소송은 한두 번이 아니라 재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하는데, 예를 들어 재심에서 승소한 볼타 뿐만 아니라 자연에 맞서서 최초의 소송을 낸 갈바니의 일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한다.
갈바니와 그 아내 갈바니는 1737년에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만유인력의 발견자인 뉴턴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의 일로 31세의 프랭클린이 자기가 살고 있던 지역의 우체국장으로 취임해 바쁜 관계로 전기 실험에 대한 취미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든 해이기도 했다. 유서깊은 가문의 태생으로 평판이 높았던 갈바니는 22세 때에 볼로냐 대학에서 의학과 철학 학위를 받는다. 이후 해부학과 신경생리학 연구에 일생을 바치는데, 졸업 다음 해에 대학시절 은사인 가레아티의 딸 루치아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항간에 떠돌던 말로는 이 루치아가 불가사의한 현상 발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물리학사가인 가죠리는 1780년 11월 6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부인이 병에 걸렸는데 개구리를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갈바니는 아내를 위해 손수 요리를 만들었다. 껍질을 벗긴 개구리를 식탁 위의 대전된 기전기(마찰이나 정전기 유도에 의해 전기를 일으키는 장치)의 전극 부분에 둔 채로 방을 나간 후, 부인이 기전기 가까이에 있었던 메스를 들고 그 끝을 껍질이 벗겨진 채 있는 개구리 다리의 신경에 살짝 댔을 때 불꽃이 일어남과 동시에 다리가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부인이 그 사실을 갈바니에게 알리자 그도 직접 실험을 반복해 보았다. 역사에 남아 있는 우연적인 발견을 전하는 이야기로서는 다른 이야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독특한 이야기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일화는 갈바니 본인이 남긴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원래 갈바니는 논문이나 편지를 많이 썼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조수로 일한 조카 아르디니가 이야기의 발설자였을 가능성만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에일대학의 프루톤과 쿠싱이 발견한 문헌에서는 갈바니는 루치아를 위해 개구리 뿌이용(고기와 뼈를 삶아 우려낸 국물,스프)를 만든 걸로 되어 있다. 뿌이용이라는 것은 날고기가 아니었다. 삶아서 소금 간을 한 개구리가 전기 충격으로 움직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당연히 삶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메론에 날 햄을 얹은 이탈리아 요리 오도부르를 먹은 사람도 있었지만, 개구리를 회로 먹거나 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부인이 병상에서 일어나서 메스를 잡았다는 것은 웬지 마음에 걸린다. 갈바니의 집에서는 고기 자르는 칼 대신에 메스를 사용해서 식사를 했던 것일까?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이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의심스럽다고 생각한 역사가는 많이 있었지만 납득할 수 있게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로 갈바니가 아내의 병을 염려하고 있었던 것은 치료의 샘으로 당시 알려져 있었던 파렛타의 물을 분석하고 있었던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신경이나 근육 또는 과민반응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고, 또 생리학에 중심을 둔 그의 연구 경력 때문에 광천수에 대한 분석은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병약한 아내에게 광천수를 주어 영험이 나타나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그 효능을 조사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파렛타의 샘이 팔려버려 갈바니는 그 일을 한탄할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개구리 요리를 남편이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사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 메스에 닿은 개구리가 갑자기 움직였다는 결정적인 사건은 개구리를 요리한 날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갈바니는 1773년경부터 개구리 근육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있었고, 식용이 아니라 실험용으로 다량의 표본을 구입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갈바니에 대해 기록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개구리 요리의 일화와 개구리 실험을 연결시켜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 번째로 부인이 칼 대신에 메스를 쥐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보자. 확실히 가정주부가 메스를 흔드는 모습은 그다지 기분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루치아 자신도 갈바니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 연구가였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루치아가 실험하는 여성이었다고 하면 메스를 사용한 것 자체가 불가사의하지 않다. 사실 루치아는 연구가였다고 한다. 당시 볼로냐 대학에서는 학술에 뛰어난 여성에 대해서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주는 분위기가 있엇다. 예를 들어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실험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스파란차니를 지도한 라우라 바시라는 여성은 보편 철학의 교수직에 임명되었고, 안나 모란디에 이르러서는 해부 표본을 완성하는 기술에서 남편 만초리니를 능가해 1777년 볼로냐 해부학 박물관의 개관 강연으로 그 탁월한 기량을 갈바니로부터 칭찬받을 정도였다. 그곳에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과학에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축복된 환경이 있었다. 한편 연구가가 되지는 않았지만, 전기에 흥미를 가진 남편의 실험에 참가하는 여성도 이 시대에는 많았다고 생각된다. 앞장에서 약간 다룬 빈클러의 아내는 호기심에 이끌려 라이덴병으로 전기 쇼크를 받았고, 그 라이덴병의 발상지에서는 자연철학자인 뭇센브레이크의 아내가 헌신적으로 남편의 실험을 보좌하다 감전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루치아의 경우 남편인 갈바니가 의학교수였고, 그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새로 이사간 곳에 해부실험실을 둘 정도였기 때문에 루치아에게도 과학의 소양이 꽤 있었다고 보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갈바니 또는 아르디니가 썼다고 하는 익명 논문에 "갈바니 부인이 언제나 만들었던(개구리) 표본과 같이"라는 한 구절로도 상상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루치아는 명확한 실험 의도를 갖고 개구리의 신경에 메스를 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발견과 유익한 조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갈바니 본인의 논문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발견되었다고 말하고 있는지 읽어보도록 하자.
세 가지 실험 보고로 되어 있는 그 논문이 발표된 것은 약 10년 후인 1791년의 일이었다. 갈바니의 발견 첫 번째 실험에서 개구리 다리를 남겨둔 절단된 표본이 사용되고 있다. 즉 척추 끝에 노출된 좌골신경이 연결되어 있어 그 끝에 대퇴부와 다리가 늘어져 있는 형태의 표본이다. 그 중 하나를 가끔 기전기를 올려 둔 책상 위에 둔 것이 계기가 되어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조수 중 한명(루치아가 아닐까!)이 메스 끝을 개구리의 노출된 신경에 댔는지 어땠는지 갑자기 개구리의 근육이 경련한 것같이 수축되었다. 또 한 명의 조수는 기전기에서 전기 불꽃이 튄 순간에 이 불가사의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메스를 쥔 손가락이 개구리 견갑골을 고정하고 있었던 못에 닿는 순간 수수께끼 같은 경련이 일어났다. 반대로 회로를 차단하고 신경을 접지시키지 않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갈바니는 표본을 정확하게 절연시킨 후 같은 실험을 반복했는데, 그런데도 역시 죽은 개구리는 움직였다. 10년 동안 개구리로 실험한 갈바니조차도 이 원인 불명의 현상을 그 자리에서 설명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기전기에서 불꽃이 튈 때 공중을 경유해서 직접 개구리의 신경에 작동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절연된 표본에 전기는 정말로 날아들어갈까? 둘다 처음 체험하는 것 투성이로 그는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고 쓰고 있다. 공중을 나는 전기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갈바니의 뇌리에는 1735년 번개에 맞았던 리히만의 비극이 떠올랐다. 그는 주도면밀하게 두 번째, 세 번째 실험을 계획했다. 우리집의 발코니를 둘러싼 철책에 동으로 만든 갈고리를 달아 개구리의 하지 표본을 여러 개 매달아 두었는데, 그 발은 벼락칠 때뿐만 아니라 맑은 날에도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관찰했다. 그것을 보고 개구리의 근육 수축이 공중에 있는 전기로부터 유래한 것인가 철저하게 조사해보고자 마음 먹었다. 그래서 나는 근육의 움직임에 날씨가 미치는 효과를 기대하며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리 표본을 많이 만들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며칠씩 철책을 달아두고는 그 움직임에 주목했다. 마침내 기다리는데 지친 나는 무익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고 개구리의 등뼈에 확실하게 고정되어 있었던 갈고리를 철책에 강하게 마찰시켜 보았다. 이렇게라도 하면 무언가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었고, 공중 전기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별도의 조건 변화가 효과를 미치는 것이 아닐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개구리 다리가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더 이상 날씨 변화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사건이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와 개구리를 철로 만든 판 위에 놓고 등뼈에 접속된 갈고리를 판에 대보았다. 역시 밖에서와 마찬가지 수축이 일어났다!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각에 몇 번씩 실험을 반복했다. 참고로 사용하는 금속 종류를 바꾸어도 종류에 따라서 경련의 강도에 차이를 보일 뿐 어느 경우나 근육 수축은 관찰되었다. 마지막으로 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거나 전혀 통하지 않는 유리, 고무, 수지, 돌이나 나무판 등을 사용해 보았는데 그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관찰했다. 근육 수축도 다리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실험 결과의 원인에 대해서 나는 심각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러던 중에 동물 자체에 전기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매우 섬세한 신경 유체가 신경을 통해 근육에 흘러들어가는 것과 라이덴병의 전기 흐름과 같다고 가정하면 그 생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전기학의 초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 갈바니의 결론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개구리뿐만 아니라 일반 동물의 체내에는 전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중에 갈바니즘 또는 동물전기설이라고 불린 이 이론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면면히 계승되어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상식이 되었다.(우리 체내에 존재하는 전기는 갈바니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미약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정말로 이 논문에서 갈바니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추리의 순서를 거쳐 동물전기설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좀 의심스럽다. 실제로 이 기술에는 오랜 기간 고생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던 비빌이 감추어져 있다. 많은 역사가는 그 비밀을 해독하지 않고 이 사건의 밑바닥에 있는 우연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지금도 수족관에 가면 전기뱀장어의 발전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물론 전기 자체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전기를 소리나 빛으로 변환해서 관람객에게 들려주거나 보여준다. 즉 동물 중에는 체내에 발전기관을 갖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동물전기설은 부분적으로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런 특수한 동물이 발견된 경우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실제로 갈바니는 그러한 변종 생물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천문학자 리쉐는 남미의 불란서령인 기아나에 있는 가이에누섬에 관측을 위해 체류하고 있던 1671년에 하천에서 포획한 전기뱀장어의 불가사의한 성질에 대해서 보고했고, 18세기에 들어서는 '필로소피컬 트랜잭션즈'지 제 65권(1759년)에 세 편의 전기뱀장어에 관한 논문이 실려 있다. 또 시끈가오리의 이야기는 프리니우스가 "상당히 먼 곳이라도, 또 창이나 장대가 닿기만 해도, 또 아무리 힘있는 팔이라도 저리고 아무리 빠른 발이라도 마비되어 버린다"라고 '박물지'(제 32권,7)에 썼듯이 꽤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1772년에는 올슈라는 전기학자가 미국의 프랭클린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시끈가오리에 의해 저려오는 것의 정체가 전기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 민간의료에서는 전기동물들이 마비성 질환의 치료에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다. 새로운 것으로는 1777년 런던 신문에 1회 2실링 6펜스로 전기뱀장어의 쇼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광고가 게제되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신경쓰인다면 알프스 남쪽의 학자가 이러한 영국이나 프랑스의 정보에 늦고 대부분 몰랐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갈바니가 전기뱀장어나 시끈가오리를 모른다고 해도 논문의 첫 번째 실험 결과는 그에게 있어서 결코 의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갈바니는 초기에는 뼈의 구조나 병리학, 또는 조류의 신장이라든가 귀의 비교해부학을 연구했지만, 1772년부터 연구 대상을 대폭적으로 변경했다. 주로 표본이 개구리였던 것은 이미 말했지만, 1774년에는 노출된 신경조직에 아편을 투입해 그 효과를 관찰하거나 했다. 실제로 이러한 동물 신경에 인위적읹 자극을 주는 연구방법은 당시 볼로냐 의학계의 한 가지 전통이기도 했다. 갈바니가 직접 가르침을 받은 베카리아, 카르디니, 폰타나같은 선배 의학자들은 모두 신경에 미치는 전기자극을 조사했고, 실제로 환자를 피실험자로 이용하거나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예를 들어 베카리아는 1753년에 살아 있는 수탉의 노출된 근육에 전기 자극을 가했고, 1756년에 카르디니는 신경 표본이나 개의 횡경막 신경에 똑같은 전기 자극을 가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고, 폰타나는 미주 신경에 전기 자극을 일으키는 실험을 했다. 계속해서 볼로냐 대학에서도 읽을 수 있었던 프랑스의 의학잡지 '쥬르나르 드 메디시누'에는 1750년부터 1780년까지 26편의 연구논문이 제출되었는데, 모두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신경계에 전기 쇼크를 준 다음 그 효과를 검토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증거 자료가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전기 자극에 의해 개구리의 근육이 수축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갈바니가 굳이 말할 것까지 없이 1784년에는 이미 생리학자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이해된 사항이었다. 실험의 진상 그렇다면 왜 갈바니는 그런 일을 기록했을까? 수수께끼 실험의 진의를 밝혀보자. 우연히(본인은 그렇게 적고 있다) 기전기가 놓여 있는 테이블 위에 개구리 표본을 두었던 것까지 이야기를 되돌려 보자. 베카리아외 여러 선배들의 실험을 알고 있던 갈바니는 자택에 실험실용으로 기전기를 구입한 시점에서 그것을 사용해서 마찰전기를 일으켜 개구리 척추신경에 흐르게 하고자 했다. 그 이외의 용도로 이용했다는 논문은 한 편도 없기 때문이 이 점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는 기전기가 놓여 있던 테이블 위에 표본을 고의로 즉 어떤 실험 의도를 갖고 놓아 두었을 것이다. 계산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수에게 발전 작업을 맡기고 자신은 도선을 신경에 연결시켜 관찰했다. 물론 예상했던대로 개구리의 다리는 움직였다.
첫 번째 우연은 조수 중 한 명(갈바니 본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이 표본을 조정하기 위해 메스를 개구리 살에 대었을 때 또 한명의 조수가 기전기를 돌려버렸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된다. 도선없이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본 것이다. 1791년에 발표된 갈바니의 기념할만한 논문에서 무엇보다 새로운 점은 이 도선없이 한 전기 자극이었다. 도선 없이 자극이 전달된 것에 놀란 갈바니는 기전기 이외의 전기 유체의 근원으로 알려진 벼락에 의한 방전을 이용해서 자극의 공중 전달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두 번째 우연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서도 다시 잘못 해석해서는 안된다. 벼락치는 날이 아닌 맑은 날에도 경련이 일어난 것은 갈바니의 예측 범위에 들어 있었다. 벼락의 존재와는 관계없이 구름이나 대기 자체가 전하(모든 전기 현상의 근원이 되는 실체)를 띠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여러 마리의 머리없는 개구리의 다리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 광경은 이상했을 것이다. 그 보기에 이상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외부에 드러난 개구리의 몸에 생각지도 못한 우연이 작용한 것같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절명의 우연은 발코니에 달려 있었던 선반과 개구리의 다리를 매달아두는데 사용한 갈고리가 각각 다른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금속의 접척이 개구리의 신경을 매개로 해서 성립되었다는 것에 세기를 대표하는 우연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예측을 전제로 해서 현재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일화가 왜 생겨났을까 생각해보자. 그리고 같은 이야기이자만 앞에서 감추어졌다고 지적한 비밀을 풀어보자. 사랑하는 아내 루치아가 우연히 이룩한 내조의 공헌에 관한 전설과 메스를 갖고 있던 조수의 우연한 공적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었을까? 현재 남아 있는 자료로 직접 판단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후자는 공표된 논문에 쓰여져 있어서 근원이 확실치 않은 전설보다는 신뢰할 수 있다. 그렇지만 둘 다 놓칠 수 없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일련의 발견에 최초의 일격을 가한 인물은 모두 갈바니가 아니라는 점이다. 갈바니는 개구리의 척추에 메스를 댄 사람이 아니라고 암암리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둘 다 진실했는지 하는 문제보다도 왜 갈바니 본인이 이 우연적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이미 말했듯이 그는 동물의 신경계통에 여러 가지 자극을 가해 그로 인해 생기는 반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온갖 금속이나 전기 부도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조건을 바꾸면서 할 정도로 철저한 분석을 해낸 숙련된 연구가가 도체를 사용해서 개구리의 신경을 집는 루프를 만드는 실험만은 시도해보지 않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시간은 8년이나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다음에 얘기한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면 갈바니에게 있어서 첫 번째 실험의 핵심 부분은 직접 손을 대고 싶지 않았던 성질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단서는 인용문 중의 다음 표현 중에 있다.
이러한 실험 결과의 원인에 대해서 나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에 동물 자체에 전기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맨처음 설명해 둘 필요가 있다. 동물의 체내, 바꾸어 말해 신경에서 근육에 이르는 전달체계 중에 당시는 유체라고 생각된 전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학설은 예를 들어 화이트가 "최근의 자연학자에게는 자연의 밑바탕에 감추어진 온갖 작용을 전기로 설명하려고 하는 경향이 인정된다"라고 1766년의 저서 '생리학 논집'에서 말하고 있듯이 오히려 알려진 것이었다. 이 시대에 널리 읽혀진 알브레히트 폰 하라의 생리학설을 높이 산 갈바니의 은사인 교수들이 그의 수행시대에 해당하는 175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뜻을 모아 밝히려고 했던 점은 외부로부터의 전기 자극에 의해 근육이 수축하는 현상을, 생명의 본질은 전기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학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었다. 즉 동물정신=전기설이 우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전기 자극이 근육의 수축반사를 일으킨다고 해도 마찰전기와 동물정신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말하는 볼로냐 학파의 학설이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 자체에 전기가 들어 있다'라는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누구나 알고 있던 유행하던 이론이었다. 실험을 축적해가던 중 번뜩 떠오르는 성질의 생각이 아니다.
마침내 수수게끼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만일 현재의 대학 이학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는 과학자 지씨가 갈바니의 입장였다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상상해보자. 지씨는 전기 측정에 열중한 동료 브이씨에게 공동연구자가 되어 줄 것을 요구하고 정부나 민간재단에서 연구비를 얻어내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할 것이다. 제목은 예를 들면 '척추 동물의 신경-근육간에 보여지는 내부 전기 작용에 대해서'정도가 될 것이다. 다음 수속이나 실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하고, 갈바니의 입장과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지씨와 브이씨는 어떤 형태로 학회에 발표를 할까? 이미 신청서 단계에서 무엇을 발견하고자 하는지 명시되어 있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는 우연을 상상케 하는 단어는 한마디도 들어 있지 않았다. 실험 결과를 정리했다면 세포내에 전기가 작용하고 있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와 같은 표현으로 보고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자가 어떻게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공표할까? 그 때의 표현형식이나 설명 이론에는 과학자가 살았던 시대에 유행한 방법론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 그것은 때로는 강력한 사고의 틀을 제공하고 정신의 내면에 잇는 진실을 은폐하기조차 한다. 그리고 그 자체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발견방법으로서의 우연 여기에서 약간 시점을 바꿔 새로운 것에 대한 사상의 변천으로 되돌아보자. 갈바니가 논문을 쓰는데 있어서 어떤 방법론을 염두해 두었을까, 그것부터 대강 예측해 보자. 과학 역사의 오랜 기간을 고전주의 시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한 고전주의란 예술사에서 말하는 르네상스 시대에 볼 수 있는 정신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관한 지식은 기본적으로는 그리이스 시대에 쓰여진 고전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하는 수구적 태도를 의미하고 있다. 고전으로서 자연학자의 사고를 기재하고 있던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나 '형이상학'(기원전 4세기),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2세기,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지동설을 제창하였다). 에우크레이데스의 '원론'(기원전 3세기, 유크리드 기하학의 원전), 그리고 가레노스의 '의학집성'(2세기)등이 있다. 이러한 서적은 집필 당시 알려져 있었던 광대한 사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쉽게 설명하는 원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에 의해 변경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리이스어에서 일부 아라비아어를 거쳐 라틴어로 번역된 유구한 과정에서도 기본적인 내용 변경없이 시대마다 주석이 붙는 정도로 모든 지식의 근원으로 영원히 지식계에 군림하고 있었다.
17세기 근대과학의 탄생은 어떤 의미로는 이와 같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의 이탈이거나 때로는 반역이기도 했다. "자연에 대해서 이미 모두 탐구한 듯이 감히 말하는 사람들은 철학 및 모든 과학에 최대의 장애를 끼친다"고 가식없이 말한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책에서만 지식을 얻으려 하고 자연으로부터 직접 배우는 것을 잊은 강단의 학자를 비판한 것이다. 베이컨은 관찰과 실험에 근거한 경험 철학의 방법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세상에 처음으로 제창한 사상가이다. '대혁신' 제1부 중에서 "신은 인간의 혼을 전세계를 비출 수 있는 거울과 같이 만드셨다"(학문의 존엄과 진보, 1623년, 제1장)고 말하고, 외부로부터 얻어진 시식은 고전에 쓰여진 학설 등의 선입견을 일체 배제한 것이어야 하고, 억측이나 편견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을 버리자, 거리로 나가자"라고 테라야마 슈지는 말했는데, 베이컨은 "책에 의지하지 말고 숲으로 나가자", 그리고 자신의 눈과 귀로 자연으로부터 배우라고 독려했다. 베이컨은 항해술의 진보로 세계가 넑어지고, 책에는 없는 지식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대상을 거울처럼 비춰 관찰하고 이를 집적하여, 축적된 지식을 가지고 새로운 법전을 작성해야만 하는 시기가 왔다고 주장햇다.
베이컨의 장대한 계획은 제도면에서는 과학에 뜻을 둔 사람들의 조직화를 촉진해 1660년에는 런던의 왕립협회를, 1666년에는 파리의 왕립학회 아카데미의 설립을 실현시켰다. 그렇지만 많은 역사적인 사정으로 자연학자가 베이컨 사상을 널리 받아들여 논문이나 저서의 구성이나 표현 스타일에 활용하게 되는데는 18세기 말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런 경향은 19세기 전반까지 이어졌다. 즉 갈바니가 활약했던 시기에는 베이컨류(계몽기의 철학자가 이해한 의미로서의 속류 베이컨주의)의 서술 스타일이 일부 연구가에게 보여진다. 마침내 본론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우리들은 우연이 과학 무대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베이컨류의 서술법이란 새로운 지식이 우연히 나타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을 해서는 안된다는 베이컨은 요청을 융통성없는 규정으로 해석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과, 혹은 이미 이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이나 관찰을 하는 것은 모두 편견과 선입견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해 기피했다. 이러한 이유로 중요한 발견은 경이로움을 동반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면 안되었다. 8장에서 잠깐 다루게 될 프리스틀리에 의한 산소 발견에 관한 서술도, 돌턴의 원자론에 접한19세기 초의 화학자들의 평가도 같은 방법론상의 신념에 지배되었다. 그들은 어떤 새로운 지식도 실험을 통해서 우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새로운 지식은 이미 확신하고 있는 가설을 증명함으로써 얻어진다는 설-연역법에 근거한 제3의 태도가 출현한 것은 19세기 중반에 '과학자'라는 용어를 발안한 캠브릿지의 지식인 윌리엄 휴엘 이후의 일로, 그 때까지 약 반세기는 가설을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서 일부 자연학자에게 있어서 실험이나 관찰은 생각지도 모산 우연 사상을 찾는 것의 연속이었다.
갈바니는 동물의 체내에는 전기가 들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동물 전기의 가설이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개구리의 척추와 근육을 연결하는 회로를 만들어 보았다"라고 말했다면, 지금 말한 베이컨주의의 규약에서 일탈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 그렇다고 해도 논문으로 공표할 때는 사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해야 한다. 주수나 루치아가 가끔 기전기에 놓여 있던 테이블에 개구리의 다리 표본을 둔 것도, 혹은 갈바니 자신이 동으로 만든 갈고리를 철책에 마찰시킨 것도 사실은 동물전기설을 입증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한 발견처럼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논문 전체의 구도를 살펴보자. 첫째, 개구리의 신경계에 직접 마찰전기를 흘린다(이 기술은 생략되어 있다). 둘째, 개구리만의 폐쇄회로를 만들어 전기 스파크를 일으킨다. 셋째, 철책에 개구리를 매달아 공중전기를 유도한다. 넷째, 철책과 동으로 만든 못을 박은 폐쇄회로를 만들어 옥외에 방치한다. 외부에서 전기가 통하게 한 경우와 폐쇄계를 만들어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차단한 경우가 교대로 반복되는 완전한 실험 계획을 알아챌 수는 없을까? 여기까지는 우연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우연의 명암
갈바니의 우연 발견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이와 같은 위장된 우연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위장하려고 해도 본인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진정한 우연이 존재하고, 그런 우연이야말로 발레리를 감탄케 하는 세기의 발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치 않은 혐의로 관직을 잃고 초라하고 빈곤한 가운데 죽은 불쌍한 갈바니가 불후의 영예를 목전에 두고 놓친 우연은 과연 무엇이였을까? 그것을 이제 이야기하기로 하자. 전지 발명자인 볼타는 여러 가지 점에서 갈바니와는 대조적이다. 8살 연하인 그는 같은 파비아대학에서 활약한 전기학자로, 결혼은 늦은 49세에 했지만 나폴레옹과의 사이에 우호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만년은 명예롭고 행복했다. 볼타는 처음에는 동물전기설에 매료되어 지지했지만, 갈바니의 논문에 감추어진 우연을 발견해 1792년 무렵 새롭게 접촉(금속) 전기설을 만들었다. 갈바니가 자택의 발코니에서 관찰한 개구리의 근육 수축은 2종의 금속(철책과 동으로 만든 못)이 루푸(닫혀진 회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즉 이 현상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은 개구리가 아니라 금속인 것이다. 갈바니는 개구리를 남겨둔 채 연결부의 금속을 부도체로 바꾸는 실험을 실시했는데, 볼타는 그것과 반대로 금속을 그대로 두고 개구리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전기 유체의 통과를 가르쳐주는 것 중 우리 주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인간의 혀이다. 볼타는 폭이 넓은 은종이와 은돈의 끝을 동선으로 연결하고 다른 한쪽 끝에 자신의 혀를 삽입해 보았다. 신맛을 느꼈는데, 상하의 금속을 바꿔보자 이번엔 쓴맛을 느꼈다. 볼타는 이 실험으로 기분이 좋아져 더욱 많은 서로 다른 금속의 접촉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실험은 이미 1762년에 베를린의 수학교수인 즈루차에 의해 실시된 적이 있다. 이 선구적인 연구에서는 납과 은을 혼합해 자신의 혀에 대고 실험한 결과 녹반(시고 떫은 맛) 맛에 가까운 것을 느꼈다고 보고되어 있다. 금속으로 둘러싼다고 해도 상하가 같은 종류라면 이와 같은 맛을 경험할 수 없다고 쓰여져 있다. 그러나 즈루차의 결론은 매우 흥미롭다. 금속을 구성하는 입자가 진동을 일으켜 "그 진동이 혀의 신경을 흥분시킨다"라고 말한 것이다. 30년 후의 볼타의 실험과 거의 같은 것이었지만 그 사이에 갈바니의 동물 전기설이 개입되었기 때문에 얻어진 결론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볼타는 특히 이마와 입천장을 이종 금속의 회로로 연결해 실험을 했는데, 접촉한 순간에는 밝은 빛이 보였다고 한다. 개구리의 해부 표본을 이용한 갈바니의 실험에서는 이제까지 말한 것과 같이 개구리 자체는 전기를 검출하는 이외에 어떤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모스린 실이나 종이 혹은 보릿짚으로도 대용할 수 있다. 이것이 노생물학자가 놓친 '다른 것에서도 있을 수 있는 우연" 즉 이접적 우연이었다. 즈루차 때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금속의 접촉에 의한 전기 발생은 얼마 안 있어 관계가 없는 것으로 버려진 개구리의 근육을 이용해 처음으로 달성되었다. 볼타는 금속 종류의 차이에 따라 전기 힘의 차이를 수치로 나타내고, 그 차이(전위차)가 각 금속의 고유한 순위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른바 이온화 경향의 순서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800년의 논문에서 라이덴병과 같이 순간적으로 강한 전기 불꽃을 일으키고 소진해버리는 전기와는 달리 그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일정한 효력을 갖는 전기(전류)의 존재를 밝혀 이른바 볼타 전지를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지의 원형이 되었다.
우리들은 발전소에서 보내진 전기로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기껏해야 휴대용 기계에만 전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지 발명의 고마움을 상상하는 것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텔레비젼이나 조명등을 가동시키는 교류 전원은 볼타가 개구리의 우연의 본질을 알아차림으로써 발명한 이 이종 금속을 접촉시킨 전지가 없었다면 결코 만들 수 없었던 것임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전기의 역사는 1800년에 방향 전환을 하고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에너지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볼타는 18세기 자연학자를 고민케 한 시끈가오리의 발전기관이 자신이 만든 전지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동물전기의 신비함을 추구하다 쓰러진 갈바니가 아니라 개구리 다리 경련에는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종류의 금속에 대한 수수께끼를 뒤쫓은 볼타가 성과를 이룬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문학 속의 갈바니즘
개구리 근육 수축에 관한 해석을 둘러싸고 명암이 나뉜 두 명의 이탈리아 자연학자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이나 시 등의 허구 세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원자로 건설에 해당하는 혁명적인 에너지의 발견이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말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재미있는 점은 이 과학의 일대 쇄신을 상상력의 세계에서 겪은 작가들의 반응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일부분을 소개하겠다.
내가 고생 끝에 완성을 본 것은 11월의 쓸쓸한 밤이었습니다. 힘들수록 열의를 다해 발 밑에 누워있는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의 불꽃을 붙여 주고 생명 기계를 주변에 모았습니다. 이미 새벽 1시. 나는 비가 추적추적 음산하게 창문을 때리고 있던 그 때 거의 꺼지려 하는 약한 빛에 생물의 생기없는 노란 눈이 떠지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천천히 숨을 쉬며 팔다리에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이 유명한 고딕소설의 화자의 이름은 빅터 프랭켄슈타인이다. 보리스 카로프 주연의 공포영화로 유명해진 괴담의 클라이막스 장면이다. 자주 오해를 받기 때문에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말해 두면 주인공인 프랭켄슈타인은 인조인간을 만드는 제작자이고 그 인조인간은 이름이 없다. 즉 프랭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닌 것이다. 작가가 확실하게 이름을 붙였다면 무서운 괴물을 프랭켄슈타인이라고 부르는 습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다 이 괴물에 대해서는 원어 몬스터라는 외래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깨닫지 못하지만 사용된 연대로 생각하더라도 '기쁨'이라고 해야 한다. 소설명은 '프랭켄슈타인의 기형아'인 것이다. 이것은 쿠키 슈우조우가 정언적 우연(즉 본래 갖고 있어야 할 성질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으로 분류하고 있는 예외로서의 우연의 한 예로 당연히 나타나야 할 모습과는 다르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근원을 밝히면 라틴어의 몬스트럼이 그 원어인데, 동사형 모니레는 '경고한다'라는 것을 의미하고, 보기 드문 모습의 탄생은 '신으로부터의 경고'이기도 하다. 외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네상스 시기의 앙브로와즈파레에게 '기형과 경이에 대해서'(1573년)라는 저서가 있는데 파레는 기형이 존재하는 첫 번째 원인을 '신으로부터의 축복'이라고 해석하고 있다.(원래 두 번째 원인은 '신의 노여움'으로 되어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기형아'에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가 붙여져 있는 것은, 줄거리가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그리이스 신화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프로메테우스는 천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고도 하고, 인간을 창조하였다고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빅터는 소년 시설에 벼락의 경이로움과 만나 갈바니 전기를 배울 결심을 한다. 천계의 불인 벼락을 실험실에서 실현한 것이 갈바니의 전기이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사체에서 생명의 호흡을 일으킨 힘을 하늘에서 유래한 전기로부터 빌리고 있다. 간행 연도는 1818년이지만, 이야기의 설정이 1700 몇 년으로 되어 있는 점도 간파할 수 없다.
19세기가 되었다면 이미 말했듯이 볼타의 전지가 발명되었는데, 어째서 사용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스럽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사체를 소생시키는 마술의 도구로서는 신식 금속 전기보다도 구식 마찰에 의한 전기 불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고, 또한 동물 전기설을 제창한 갈바니에 대한 공감도 있었을 것이다. 1831년판 서문에 메어리 본인은 이렇게 적고 있다. (에레즈마스) 다윈 박사의 실험도 화제가 되었다. 박사가 바미세리(파스타(풀)같은 것)의 자투리를 유리상자 속에 넣었을 때 어떤 경위에선지 그것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생명이 주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체를 소생시키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미 갈바니 전기는 그 예고가 아닐까? 순식간에 생물의 구성 부분을 창조하고 그것을 조립해서 생명의 온기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빅터가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데는 깊은 의미도 있다.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에 있는 판도라의 상자 신화에서는 형인 프로메테우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의 계략도 모른 채 판도라를 재해가 가득 찬 병과 함께 받고 만다. 선견지명이 있다고 자부하는 지적인 인간에게는 함정이 있고, 결국 실패한 후 제물이 되어버린다는 것의 우화인데, 빅터는 인조인간을 만든 것을 즉시 후회하게 되고 마침내 그 기형인간 때문에 애인이 살해당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보면 갈바니 논문의 되는 대로 쓴 저술방법은 아무리 봐도 프로메테우스적이라고 하기보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놀라는 에피메테우스에 가깝다. 메어리의 남편인 시인 셀리에게도 '결박을 푼 프로메테우스'라는 작품이 있다. 셀리는 자택에 실험실을 갖추고 라이덴병이나 기전기를 사용해서 프랑켄슈타인 못지 않은 실험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메어리가 남편이 바이런의 도발에 힘입어 괴기소설을 쓰기에 이른 동기에 대해서는 1831년판 서문에 쓰여져 있는데, 켄 러셀 감독이 '고딕'이르는 작품으로 영화화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생명의 생기를 주는 수단으로 전기 불꽃이 이용된 예는 이외에도 있다. 비리에 드 리라딘의 '미래의 이브'는 하다리라는 여성이 인공적으로 창조되는 이야기인데, 그 제작자인 주인공 에드슨에게는 "모든 인간은 신성한 생명의 불꽃을 갖고 있고, 그 불꽃은 전기같은 것이다"라는 사상이 있었다. 하다리는 금으로 만든 폐, 강철로 만든 관절을 가진 로봇으로 지하실에서 전기 불꽃을 맞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또 독일 시인 노바리스의 '푸른 꽃'의 제 9장에는 볼타의 전지가 시적인 분위기 속에 상징화되어 있어 무척 흥미롭다. 시의 정기 파베르가 체험한 재생의 여행 도중 발작으로 인해 전신이 마비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거인 아트라스와 만난다. 파베르는 아연과 금과 트리마린(전기석)의 도움을 빌려 이 거인을 수술하여 소생시킨다. 아트라스의 입 안에 금화 한 잎을 넣고, 정원사인 아연이 허리 아래에 접시 하나를 끼워 넣으면 이번에는 파베르가 아트라스의 눈에 대고 이마 위부터 물을 붓는다. 눈에서 입으로 물이 통과해서 아래에 있는 접시까지 도착하는 순간에 전신의 근육에 생명의 번개가 달린다. 전지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서로 다른 두 금속과 습기에 대해 매우 진지할이만큼 문학적 색채가 가미되어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아닌 프랭클린에 의해 지상의 인간에게 전해진 천계의 불인 벼락은 갈바니의 몽상 속에서 생명과 정신을 지배하는 세계적인 영으로서 받아들여지고, 그 사상은 마침내 볼타의 전지에도 적용되어 낭만파의 작가들에게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장에는 갈바니가 관찰한 개구리의 자극 반사를 둘렀나 여러 가지 우연의 본성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왔다. 앞 장에서는 하늘로부터 떨어진 우연을 화제로 해서 가장 큰 두려움의 예로서 벼락의 일화를 소개했는데, 이 장에서는 개구리 다리에 관한 이야기로 빠져버렸다. 다음 장에서는 다시 '떨어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궤도를 수정하도록 하겠다. 벼락이나 거북이나 만나나 개구리 이외에도 떨어지는 것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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