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부연록
[정의] 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金時習)이 쓴 소설.
[개설] 「용궁부연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들어 있는 5편 가운데 하나로, 주인공이 용궁에 다녀온 일을 삽입시로 표현하며 서술한 소설작품이다. 글재주가 뛰어난 한 인물이 용궁에 초대받아 누각의 상량문을 써주고 돌아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창작경위] 「용궁부연록」은 생육신의 한 명인 김시습이 경주금오산에 머무르는 동안 명나라 구우(瞿佑, 1347~1427)의 『전등신화(剪燈新話)』를 읽고 작품배경과 인물, 사건을 자국화(自國化)하여 쓴 한문소설이다. 「용궁부연록」의 용궁은 임금이 사는 곳이며, 김시습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불만과 처지를 주인공 한생(韓生)에게 감정이입하여 창작하였다.
[내용] 주인공 한생이 어느 날 꿈속에 용궁으로 초대되어 갔는데, 용왕의 청을 받아 상량문을 써주었다. 용왕은 그 재주를 크게 칭찬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면서 구슬과 비단을 선물로 주었다. 꿈에서 깬 한생은 용궁의 일을 통해 일장춘몽과 같은 세상의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내용이다. 현실적 지상계와 가상적 용궁계를 넘나드는 구성을 통해 이승과 다른 의식의 세계를 연결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과 이상의 대립을 제기하고 있다.
[특징] 몽자류(夢字類) 소설로 환몽적 구조를 보여준 「용궁부연록」은 동해안 용궁설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등신화』의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과 유사한 것으로 분석되나, 오히려 강릉 일대 안인진자락바위와 관련된 김자락의 용궁설화와 대단히 흡사하다. 이러한 용궁설화와 환몽구조는 매월당김시습이 은둔하며 기이한 행적을 보인 색은행괴(索隱行怪)의 전기적 생애와도 연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관동지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시를 남긴 김시습의 일화가 전해지는데, 「용궁부연록」은 동해안의 용궁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동해용궁설화」는 안인진해령산의 명선문과 해랑당, 정동진등명낙가사 등지에 전하는데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작품과 상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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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 천마산이 있는데 그 산은 높이 공중에 솟아 험준함으로 천마산이라 한다. 그 산 속에 용추 하나가 있는데, 이름은 박연이라 한다. 이 못은 둘레는 얼마 되지 않으나 깊이가 몇 십 자가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못 물이 넘쳐서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폭포의 길이는 몇 십 길이나 될 것 같다. 경치가 맑고 아름다웠으므로 구경 오는 스님이나 손들은 반드시 이 곳을 관람했다. 예부터 여기에 용신이 살고 있다는 이산한 전설이 전기에 실려 전해오므로, 나라에서는 해마다 명절이면 큰 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게 했다. 고려 때 한 씨 성을 가진 서생이 살고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 이름이 알려져서, 문사로 평판이 있었다. 어느 날 서생은 고초하는 방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편히 쉬고 있었더니, 문들 청삼을 입고 복두를 쓴 관원 두 사람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서 뜰 밑에 엎드렸다. "박연 못의 용왕께서 모셔오란 분분이십니다". 서생은 깜짝 놀라 낯빛을 밝히면서 말했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길이 막혀 있는데 어찌 통할 수 있겠소? 더구나 용궁은 길이 아득하고 물결이 사나우니 어찌 갈 수 있겠소?" 두 사람은 말했다. "준마를 문 밖에 준비시켜 두었습니다. 사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그들은 몸을 굽혀 서생의 소매를 잡고 문 밖으로 모셨다. 거기에는 과연 총마 한 필이 있는데, 금 안장 옥굴레에 누런 비단으로 배띠를 둘러 놓았는데, 날개가 돋혀 있었다. 수종자는 모두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싸고 비단바지를 입고 서 있는데, 여남은 사람이나 되었다. 그들이 서생을 부축하여 말 위에 태우니, 일산을 쓴 사람이 앞에서 인도하고 기락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두 사람도 홀을 손에 잡고 따랐다. 미구에 말이 공중을 향해 날으니 말발굽 아래 구름이 뭉게뭉게 이는 것만 보일 뿐, 땅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잠깐 후에 일행은 벌써 용궁문 바께 도착했다. 말에서 내려서니 문지기 들이 방게, 새우, 자라의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주르르 늘어서 있는데, 그들은 눈자위가 한 치나 되었다. 서생을 보더니 모두 머리를 숙여 절하고는 고의를 놓고 앉아 쉬기를 청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듯했다. 두 사람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서서 보고하니, 곧 푸른 옷을 입은 두 동자가 나와 손을 마주잡고 서생을 인도했다. 그는 조용히 걸어 나아가다가 궁문을 쳐다보았다. 현판에 함인지문이라 씌어있었다. 그가 문 안에 들어서자 용왕은 절운관을 쓰고 칼을 타고 손에 홀을 쥐고 뜰 아래로 내려와서 맞이했다. 그를 이끌고 다시 뜰 위로 해서 궁전으로 올라가더니, 앉기를 청하니 그것은 수정궁 안에 있는 백옥 걸상이었다. 서생은 엎드려 굳이 사양하며 말했다. "어리석은 백성은 초목과 함께 썩을 몸이 온데, 어찌 감히 거룩하신 임금님께 외람히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용왕은 말했다. "오랫동안 선생의 성화를 들어왔습니다만 오늘에야 모시게 되었습니다." 의아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침내 손을 내밀어 낮기를 청했다. 서생은 세 번 사양한 후 자리에 올랐다.
용왕은 남쪽을 향해 칠보로 만든 교의에 걸터앉았고, 서생은 서쪽을 향해 앉았는데 교의에 앉기 전에 문지기가 와서 말씀을 올렸다. "손님이 오십니다." 용왕은 또 문 밖으로 나가서 맞이해 들였다. 세 사람이 붉은 도포를 입고 채색 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위의와 종자들로 보아 임금임에 틀림없었다. 용왕은 또 그들을 궁전 위로 인도했다. 서생은 들창 밑으로 몸을 비꼈으나 그들이 자리에 앉은 후에 인사를 청하겠다고 생각했다. 용왕은 그들 세 사람에게 권해서 동쪽을 향해 앉히고는 말했다. "마침 인간 세상에 계신 문사 한 분을 모셔왔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의아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측근 사람에게 명하여 서생을 모셔오게 했다. 그가 재빨리 나아가서 인사를 하니 그들도 모두 머리를 숙이고 답례를 했다. 서생은 윗자리에 앉기를 사양하면서 말했다. "여러 신께서는 귀중하신 몸이오나 저는 일개 가난한 선비올시다. 감히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윗자리를 굳이 사양하니 그들이 말했다. "서생은 양계에 계시고 우리는 음계에 사니 매여있지는 않습니다만, 용왕님은 위엄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식도 밝으십니다. 선생은 틀림없이 인간 세계의 문장 대가이실 것입니다. 용왕님의 영이시니 거절하지 마십시오." 용왕은 말했다. "어서들 앉으십시오." 세 사람은 한꺼번에 자리에 앉고 서생은 몸을 굽혀 올라가서 자릿가에 꿇어앉았다. 용왕은 말했다. "편히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자 술잔을 돌린 후에 용왕이 그에게 말했다. "내 슬하에는 오직 딸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벌써 결혼할 시기가 되어서 곧 시집을 보내려 합니다. 그러나 거처가 누추해서 사위를 맞이할 집도 화촉을 밝힐 만한 방도 없습니다. 그래서 따로 누각을 지을까 하며, 집 이름을 가회각이라 하기로 했습니다. 장인도 벌써 모았고 목재,석재도 다 준비했습니다만, 다만 없는 것이 상량문입니다. 풍문에 들으니, 선생께서는 문명이 삼한에 나타났고 재주가 백가에 으뜸 간다하므로, 특별히 부하들을 먼 곳으로 보내어 모셔오게 한 것입니다. 나를 위해 상량문을 하나 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아이가 하나는 푸른 옥돌 벼루와, 상강의 반죽으로 만든 뭇을 받들고, 다른 하나는 얼음 같이 흰 명주 한 폭을 받들어 들어오더니, 꿇어앉아서 서생 앞에 놓았다. 서생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일어나더니, 붓에 먹을 찍어 곧 상량문을 써 내려가는데, 그 글씨는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히는 듯했다. 문장은 이러했다.
"생각건대, 천지 안에서는 용왕님이 가장 신령스럽고 인물 사이에서는 배필이 아주 중한데, 용왕님께서는 이미 만물을 윤택하게 하신 공을 마련해 두셨으니 어찌 복을 받을 터전이 없으랴. '시경'관저장에서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라 함도 조화의 시초를 나타낸 것이며, '주역'의 건괘에서 비룡재천에 이견대인이라 함도 신령스러운 변화와 자취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새로 큰 궁궐을 지어 아름다운 칭호를 높이 게시했는데, 이무기를 불러 힘을 내게 하고, 보배를 모아 재목을 삼으며, 수정과 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용뼈와 낭간으로 들보를 걸어 구슬발을 걷으면 산에는 놀이 푸르러 있고 백옥 들창을 열면 골짜기에 구름이 둘러 있다. 가족은 화합하여 복록을 만녀토록 누릴 것이요, 부부가 화락하여 귀한 자손이 길이 억대에 번성하리라. 풍운의 변화를 돕고 영원히 조화의 공덕을 나타내어 높은 하늘에 오를 때나 깊은 못에 있을 때나 하민의 갈망을 구제하고 상제의 어진 마음을 도와서 기세가 천지에 떨치고 위엄과 덕망이 원근 지방에 흡족하여 검은 거북과 붉은 잉어는 기뻐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산괴물과 산도깨비도 차례대로 와서 축하한다. 마땅히 단가를 지어 곱게 조각한 위에 높이 걸어야겠다. 원컨대 이 집을 건축한 후에 혼례를 이룬 날에는 온갖 부록이 다 이르고, 많은 상서가 모두 모여들어 요궁 옥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어르고, 봉화 베개와 원앙 이불에는 즐거운 소리가 들끓게 되며 그 덕이 나타나게 되고 그 신령이 빛나게 될 것이다."
서생은 그 글을 쓰기를 마치자 곧 용왕에게 바치었다.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에 세 신에게 명하여 이 글을 차례로 보게 하니 세 신이 모두 떠들썩하게 감탄하고 칭찬하여싿. 이에 용왕은 서생을 대접하기 위하여 잔치를 열게 하니 서생은 꿇어앉아서 물었다. "높은 신들이 이 자리에 다 모였사오나 존함을 미처 묻지 못했습니다." 용왕은 말했다. "선생은 양계에 계시므로 모르실 것입니다. 이 세 분 중에는 첫째 분은 조강의 신이요, 둘째 분을 한가의 신이며, 셋째 분은 벽란의 신입니다. 우리 오늘 다 같이 놀까 해서 이렇게 초대한 것입니다." 술자리가 다하려 하자 풍악이 시작되었다. 미인 십여 명이 푸른 소매를 흔들거리며 머리에 구슬꽃을 꽂고 앞으로 나아왔다가 뒤로 물러갔다 춤을 추면서 벽담곡 한 곡조를 불렀다. 춤이 끝나자 다시 총각 십여 명이 왼손에는 피리를 잡고 오른 손에는 새깃 일산을 들고 서로 돌아보면서 회풍곡을 불렀다. 춤이 끝나자 용왕은 기뻐하면 다시 술잔을 씻고 다시 술을 부어 서생 앞에 권하면서 스스로 옥피를 불고 수룡음 한 곡을 노래하여 즐거운 정을 다하였다. 용왕은 노래를 마치자 측근 사람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장소의 놀음은 인간 세상과 같지 않으니 그대들은 귀한 손님을 위하여 각기 재주를 보이라." 이에 한 사람이 자칭 곽개사라 하고는 발을 들고 모로 걸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저는 바위 틈에 숨은 선비요, 모랫구멍에 사는 한가한 사람입니다. 팔월에 바람이 맑으면 동해 바닷가에 가서 뱃속으로 벼까끄라기를 쏟아내고, 하늘에 구름이 흩어질 때는 남정성의 곁에서 광채를 머금기도 합니다. 속은 누르고 겉은 둥글며 갑주로 몸을 싸고 예리한 병기를 가졌습니다. 늘 손발을 잘려서 솥에 들어가게 되며, 비록 정수리를 갈더라도 사람을 이럽게 했습니다. 멋스러운 맛은 장사의 얼굴빛을 기쁘게 하고 조롱하는 꼴은 마침내 부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조나라 왕윤은 물 속에서 만나더라도 저를 미워했으나 송나라 전곤은 지방에 나가 있으면서까지 저를 생각했으며, 죽어서는 진나라 필이부의 손에 들어갔으나 초상은 당나라 한진공의 화필에 의탁되었습니다. 또한 장소를 만나 놀음을 하게 되니 마땅히 다리를 들어 춤을 추겠습니다." 하더니, 곽개사는 그 앞에서 갑옷을 입고 창을 쥐고 침을 내뿜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동자를 돌리더니 사지를 흔들고 비틀거리면서 재빨리 앞으로 갔다가 뒤로 불러나면서 팔풍무를 추었다. 그의 동류 몇 십 명이 고개를 숙여 엎드려 돌면서 절차에 맞추에 춤을 추었다. 이에 그 춤추는 태도가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굽으며 뒤로 물러 갔다가 앞으로 달아나기도 하니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이 모드 몸을 뒹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이 놀음이 끝나자 또 한 사람이 자친 현선생이라 하고는 꼬리를 끌고 목을 빼고 기분을 뽐내고 눈을 뚫어지게 보면서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저는 시초 떨개에 숨은 자요, 연잎 밑에 노는 사람입니다. 낙수에서 글을 등에 지고 나왔으니 이미 하나라 우임금의 공로를 나타내었으며, 맑은 강에서 그물에 잡혔으나 일찍이 송나라 원군의 계책을 이룩했습니다. 비록 배를 갈라 사람을 이롭게 할지언정, 껍질 벗기는 것은 감내하기 어렵겠습니다. 두공에 산을 새기고 동자 기둥에 마름을 그렸으니, 껍질은 노나라 장공이 소중이 어겼으며 돌 같은 내장을 가지고 검은 갑옷을 입었으니 내 가슴은 장사의 기상을 뽐내었던 것입니다. 진나라 노오는 나를 바다 위에서 걸터앉았으며, 진나라 모보는 나를 강 가운데 놓아주었습니다. 살아서는 세상을 기쁘게 하는 보배가 되고 죽어서는 도리를 예언하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마땅히 입을 벌려 노래를 불러 천 년 동안 속에 쌓였던 회포를 풀어 보겠습니다." 하고, 곧 그 앞에서 기운을 토하매 실오라기처럼 나부끼어 그 길이가 백여 척이나 되더니 이를 들이마시매 흔적도 없어졌다. 그리고 그 목을 움츠려 사지 속에 감추기도 하고 또 목을 길게 빼어 머리를 흔들기도 하더니 조금 후에는 앞으로 조용히 걸어와서 구공의 춤을 추면서 홀로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물러갔다. 하더니 이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곡은 끝났으나 그래도 망설이고 황홀하여 발을 높고 낮게 춤을 추니 그 태도는 형용할 수 없어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이에 숲 속의 도깨비와 산 속의 괴물들이 일어나서 각기 그 기능을 자랑하는데, 어떤 것은 휘파람을 불고 어떤 것은 그냥 뛰놀았다. 그들의 노는 꼴은 각기 달랐으나 소리는 똑같았다. 이에 노래를 지어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강의 군장이 꿇어앉아 시를 지어 드렸다. 쓰기를 마치자 용왕에게 바치니 용왕은 웃으면서 이 시를 보고난 후에 사람을 시켜 서생에게 주었다. 서생은 이 시를 받아 꿇어 앉아 읽고 세 번이나 거듭 음미하고 난 후 곧 그 자리에서 장편시 12운을 지어 훌륭한 일을 서술하였다. 시를 지어 올리니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은 모두 감탄하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용왕이 감사하면서 말하였다. "마땅히 금석에 새겨 제 집의 보배로 삼겠습니다." 서생은 절하고 사례한 후에 나아가 용왕에게 말하였다. "용궁의 좋은 일들은 이미 다 보았습니다만 그 위에 또한 궁궐의 웅장함과 강토의 광대함도 두루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용왕은 말하였다. "좋습니다." 서생은 허가를 얻어 문 밖에 나와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다만 오색 구름이 주위에 둘러 있으므로 동쪽과 서쪽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용왕은 구름을 불어 없애는 사람에게 병하여 그름을 걷게 하매 한 사람이 대궐 뜰에서 입을 줄이면서 한 번 불어 버리니 하늘이 환하게 바락아져서 산과 바위 벼랑도 없어지고 다만 넓은 세계가 바둑판처럼 된 것이 수십리나 되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그 안에 벌여 심겨 있고, 바닥엔 금모래가 퍼져 있고, 둘레는 금성으로 쌓아졌으며, 그 행랑과 뜰에는 모두 푸른 유리 벽들을 펴고 깔아서 광채와 그림자가 서로 비치었다. 용왕이 두 사자에게 명하여 서생을 인도하여 관람시켰는데, 한 곳에 이르매 누각 한 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조원지루라 하였다. 이 누각은 전체가 파려로 만들어졌고 구슬과 옥으로 장식하고 누르고 푸른빛으로 아로새겼는데, 그 위에 오르매 마치 허공에 오른 것 같았으며 그 층계는 열 층계나 되었다. 서생이 그 위 층계에까지 다 오르려 하니 사자는 말하였다. "여기는 신왕께서 신력으로 자기만 오르실 뿐이옵고 저희들도 또한 관람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이 누각의 위층은 구름 위에 솟아 있으므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이었다. 서생은 7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다시 한 누각에 이르니, 그 누각의 이름은 능허각이라 하였다. 서생은 물었다. "이 누각은 무엇에 소용됩니까?" 사자는 대답하였다. "이 누각은 신왕께서 하늘에 조회하실 때 그 의장을 정돈하고 그 의관을 치장하는 곳이옵니다." 서생은 다시 청하였다. "그 의장을 보여 주십시오." 사자는 서생을 인도하여 한 곳에 이르니 한 물건이 있는데 마치 둥근 거울과 같은 것이 번쩍번쩍 광채가 있어 눈이 아찔아찔하여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서생은 물었다. "이것은 무슨 물건입니까?" "번개를 맡은 전모의 거울입니다." 또 북이 있는데 크고 작은 것이 서로 맞았다. 서생이 이를 쳐보려고 하니 사자는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양 한 번 친다면 온갖 물건이 모두 진동하게 되니 이것은 곧 우레를 맡은 뇌공의 북입니다." 또 한 물건이 있는데 풀무와 같았다. 서생이 이를 흔들어 보려고 하니 사자는 다시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 번 흔든다면 산의 바위가 다 무너지고 큰 나무가 뽑혀지게 되니, 곧 바람을 일게 하는 풀무입니다." 또 한 물건이 있는데 모양이 청소한는 비와 같고, 그 옆에는 물독이 있었다. 서생이 비로써 물을 뿌려보려고 하니 사자가 또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 번 물을 뿌린다면 큰 물이 져서 산과 언덕이 물로 둘러싸이게 될 것입니다." 서생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여기에 구름을 붙어 내는 기구는 비치하지 않았습니까?" "구름은 신왕의 신력으로 되는 것이지 기계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생은 또 말하였다. "우뇌를 맡은 뇌공, 번개를 맡은 전모, 바람을 맡은 풍백, 비를 맡은 우사는 어디 있으니까?" "이들은 천제께서 깊숙한 곳에 가두어 나와 놀지 못하게 했다가 신왕이 나오시면 이에 접합시킵니다." 그 나머지 기구도 많았으나 일일이 다 알 수가 없었다. 또 긴 행랑이 삼사 리나 연해 뻗어 있었는데 문에는 용의 형상을 새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서생은 물었다. "여기는 어떤 것입니까?" 사자는 대답하였다. "이곳은 신왕께서 칠보를 간수한 곳입니다." 서생은 한 시간 동안 구령하였으나 다 볼 수 없었다. 서생은 말하였다. "그만 돌아가고자 합니다." 사자는 말하였다. "예, 좋습니다." 서생이 돌아오려고 하니 그 문들이 첩첩이 싸여서 앞이 아득하여 갈 길을 알 수 없었으므로 사자에게 명하여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서생은 본디 있던 자리에 도착하자 용왕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였다. "대왕의 은덕으로 좋은 경치를 두루 구경하였습니다." 두 번 절하고 작별하니 이에 용왕은 산호반위에 야광주 두 개와 빙초 두 필을 담아서 전별의 노자로 주고 문밖까지 나와서 전송하였다. 세 신도 한꺼번에 하직하고는 수레를 타고 곧 돌아갔다. 용왕은 다시 두 사자에게 명하여 산을 뚫고 물을 헤치는 서각을 가지고 인도하게 하였다. 사자 한 사람이 서생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선 애 등에 올라타고 반 나절만 눈을 감고 계십시오." 서생은 그 말 대로 하였다. 사자의 한 사람은 서각을 휘두르면서 앞에서 인도하니, 마치 공중으로 올라 날아가는 것 같은데 다만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잠깐 동안 끊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윽고 소리가 그치어 서생이 눈을 떠보니 다만 자기 몸은 거처하는 방 안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서생이 문 밖에 나와서 보니 하늘의 별은 드문드문하고 동방은 밝아오며 닭은 세 홰를 쳤는데 밤은 벌써 오경이었다. 빨리 그 품속의 물건을 찾아서 보니 야광주와 빙초가 있었다. 서생은 이 물건을 상자 속에 깊이 간직하여 소중한 보물로 삼고 남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 후에 서생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에는 생각을 두지 않고 명산에 들어 갔는데, 그가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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