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 : 어우야담에 수록된 이야기 중 두 편을 골라 현대의 맞춤법으로 고쳐 소개한다.
수염 잡고 손 맞는 주인
한 적은 사나이 수염 긴 자가 있어, 집이 넉넉하며 매양 술과 안주를 갖추어 손님을 먹이더니, 가만히 아내와 더불어 언약하되, "내 상객을 보거든 웃수염을 잡고, 중객을 보거든 가운데 수염을 만지고, 하객을 보거든 아랫수염을 만질 것이니, 세 층으로 술과 안주를 장만하라." 방안에서 가만히 한 말을 바깥 사람이 아는 자가 있더라. 하객이 오거늘 주인이 아랫수염을 잡으니, 아내 술과 안주를 박하게 하여 대접하더니, 석 잔이 지나매 주인이 말하기를, "집이 가난하여 술과 안주 맛이 없으니, 손님을 대접할 만하지 못하다." 하여 명하되 "걷으라." 하니, 객이 말하기를, "이 술과 음식이 맛이 특별하니 이어 마시고 걷지 말라." 한 대, 주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나를 비웃는 말이다." 하고 즉시 걷으니, 후에 손이 그 일을 아는 자가 있어 오니, 주인이 아랫 수염을 잡는데, 객이 말하기를, "청컨대 손을 조금올려 잡으라." 한 대, 주인이 크게 부끄러워한 고로, 요사이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수염 잡는다'하더라.
한 상국의 농사
상국 한응인 이 신천 땅에서 상중에 있더니, 때에 왜군이 온 나라에 가득 차 명문의 집안들도 생계를 유지하기라 어려운지라, 상국이 가족을 데리고 내려가 시비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였다. 오뉴월 즈음에 오려를 이미 두 번 매에 이랑에 가득히 벼가 무성하거늘 심히 즐거운지라, 상국이 박대를 집고 논을 보고 기뻐하며 돌아와 나이 많은 농부들에게 자랑하여 말하기를, "우리 농사지어 두 번 매어 벼가 구름같이 무성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하였다. 늙은 농부들이 가서 살펴보니 오려가 아니라 다 피 같은 잡초라. 대개 시비는 서울에서 성장하여 일찍이 전원을 보지 멋하고, 하는 일이 오직 비단과 거문고와 비파와 노래와 춤이라, 하루아침에 몰아 논밭에 넣으니, 매어 버리는 바는 아름다운 벼이고, 복돋아 심는 것은 다 피와 잡초라. 온 집안이 어리석어 알지 못하더라. 신천 사람들이 웃어 매양 농사 잘못하는 이를 보면, 반드시 말하기를 '한상국의 농사라' 하니 말세의 사람 쓰는 것이 다 이런 이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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