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규장전
송도에 이씨성을 가진 서생이 낙타교 옆에 살고 있었다. 나이는 열 여덟인데 얼굴은 말쑥하며 재주가 뛰어났다. 일찍부터 국학에 다녔는데 길을 가면서도 글을 읽었다. 그때 선죽리 귀족집에 최씨 처녀가 살고 있었다. 나이 열대여섯쯤 외었는데 맵시는 아리땁고 자수에 능하며 시부에도 뛰어났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했다. 이 서생은 일찍부터 책을 끼고 학교에 갈 때는 언제나 최 처녀의 집 앞을 지나다녔는데 그 집 북쪽 담 밖에는 수십 그루의 수양버들이 운치 있게 둘러 처져 있었다. 이 서생은 어떤 날 그 나무 밑에서 쉬다가 문득 담 안을 엿보았더니 이름 있는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벌과 새들이 그 사이를 요란하게 날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누각이 꽃 숲 사이에 은은히 보이는데, 구슬로 만든 발은 반쯤 가려 있고 비단 휘장은 나지막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속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수를 놓고 있다가 손을 잠시 멈추고 아래턱을 괴더니 시를 읊는다. 이 서생은 그녀가 읊은 시를 듣고는 자기의 재주를 급히 시험하고자 안달이 났다. 그러나 그 집의 담장은 높고 가파르며 안채가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다만 서운한 마음으로 학교로 갔다. 그는 돌아올 때에 흰종이 한 폭에다 시 3수를 써서 기와 쪽에 배달아 담 안으로 던져 보냈다. 최 처녀는 시비 향아를 시켜 주워보니 이 서생이 보낸 시였다. 최 처녀는 그 시를 읽고 또 읽은 후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자기도 종이 쪽지에다 짤막한 글귀를 적어서 담장 밖으로 던져 주었다. "도련님은 의심하지 마십시오. 황혼에 뵙기로 합시다." 황혼이 되자 이 서생은 최 처녀의 집을 찾아갔다. 문득 복숭아 꽃나무 한 가지가 담 밖으로 휘어져 넘어오면서 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 서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에 매달린 대광주리가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 서생은 그 줄을 타고 담을 넘어갔다. 때마침 달이 동산에 돋아오고 그림자가 땅에 깔려 맑은 향기가 사랑스러웠다. 이 서생은 자기가 신선 세계에 들어오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은 은근히 기뻣으나 몰래 숨어들고 보니 모발이 곤두섰다. 그가 좌우를 살펴보니 최 처녀는 벌써 꽃떨기 속에서 시녀 향야와 함께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 서생을 보자 방긋 웃으며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최 처녀는 곧 낯빛이 변하면서 말했다.
"도련님 저는 애당초 도련님을 끝내 남편으로 보셔 오래도록 즐겁게 지내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조금도 걱정함이 없는데 대장부의 의기를 가지고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뒷날에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그녀는 향아를 시켜 방에 들어가서 술과 과일을 가져오게 했다. 향아가 떠나 버리자 사방이 적막하며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이 서생이 물었다.
"여기는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저의 집 뒷동산에 있는 작은 누각 밑입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무남독녀이므로 여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따로이 연못가에 누락을 지으시고 시비와 더불어 화창한 봄을 즐기게 해주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여기서 떨어진 깊숙한 곳에 계시기 때문에 비록 웃으며 큰소리로 얘기해도 쉽게 들리지 않습니다."
여인은 좋은 술을 따라 이 서생에게 권하면서 시 한 편을 읊었다. 이 서생도 시를 지어 화답했다. 이 서생이 읊기를 마치자 최 처녀가 말했다.
"오늘 일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도련님은 저를 따라오셔서 두터운 정의를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그녀가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이 서생도 취를 따랐다. 누각에 걸쳐진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다락이 나타났다. 그곳은 서재였다. 책상은 매우 말끔했으며 한 쪽 벽에는 안개 낀 강 위에 첩첩이 싸인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 한 폭과 우거진 대와 묵은 나무를 그린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는데 모두 유명한 그림들이었다. 그림 위에는 시를 써 놓았는데 그것은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첫째 그림에 시가 씌어 있었다. 둘째 그림에도 시가 씌어 있었다. 한 쪽 벽에는 사시의 경치를 읊은 시를 각각 네 수씩 붙여 놓았는데, 그것도 역시 어떤 이가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글씨는 조맹부의 서체를 본받아서 자체가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그 다음 폭에도 역시 시가 있었다. 한 쪽에 따로 작은 방 하나가 있는데, 휘장, 요, 이불, 베개 등이 또한 매우 정결했고, 휘장 밖에는 사향을 태우고 난향의 촛불을 켜 놓았는데 환학 밝아서 대낮과 같았다. 이 서생은 여인과 더불어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이곳에서 머물렀다 며칠 후 이 서생은 최 처녀에게 말했다.
"옛 성인의 말씀에 어버이의 슬하에 있는 몸은 집을 나갈 때는 반드시 가는 것을 알려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집을 나온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엇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반드시 마을 입구에 나와서 기다릴 것이니 어찌 자식의 도리가 하겠습니까?"
최 처녀는 서운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옳게 여겨 승낙하고는 담을 넘어 보내 주었다. 이 서생은 그 후 저녁이면 최 처녀를 찾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이 서생의 아버지는 그에게 꾸짖으면서 말했다.
"네가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옛 성현의 참된 말씀을 실천하려 함인데 요사이는 황혼에 집을 나가서 새벽에 돌아오니 어찌된 까닭이냐? 틀림없이 경박한 놈의 행실을 배워서 남의 집 담장을 넘어가서 처녀를 엿보고 다니는 것이겠지? 이런 일이 만일 탄로나면 사람들은 모두 내가 잘못 가르쳤다고 책망할 것이요, 또 그 처녀도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라면 반드시 네 행동 때문에 그의 가문이 누를 입게 될 것이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너는 한시바삐 영남으로 내려가서 노복들의 농사 감독이나 해라.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올 생각은 하니 말라."
아버지는 이튿날 아들을 울주로 내려보내 버렸다. 최 처녀는 저녁마다 화원에 나와서 이 서생을 기다렸으나 두 서너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서생이 병이나 나지 않았나 염려되어 향하를 시켜서 몰래 이웃 사람들이게 물어보게 했더니 이웃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도령은 아버지께 죄를 얻어 영남으로 내려간 지가 벌써 두서너 달이 되었네."
여인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상심하여 병이 나서 침상에 쓰러졌다. 그녀는 음식도 먹기 못하고 말도 두서가 없었으며 피부는 피빛을 잃었다. 그녀의 부모는 이를 이상히 여겨 병의 증상을 물어보았으나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들은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다 거기에는 딸이 이 서생과 서로 주고받은 시가 들어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제야 놀라면서 무릎을 쳤다.
"아이고 까딱 잘못했으면 내 귀한 딸을 잃을 뻔했구나."
그들은 딸에게 물었다.
"이 서생이란 대체 누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니 최 처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으므로 목구멍에서 간신히 나오는 목소리로 부모님께 사뢰었다.
"저를 고이 길러 주신 아버님과 어머님께 어찌 감히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하옵건데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낌은 인간의 정리로서 가장중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혼기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시경의 주남편에도 나타나고,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것은 역경에 경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냇버들 같은 연약한 자질로서 용색이 시드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서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옆 사람의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삼 덩굴과 여러 이끼가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 듯이 벌써 위당의 처녀 행세를 하게 되었으니, 죄가 이미 가득 차 수치가 가문에 미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장난꾸러기 도련님과 정을 통한 후에야 도련님께 대한 원망이 첩첩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약한 몸으로 괴롬을 참고 살아가려니 사모하는 정은 날로 깊어 가고 아픈 상처는 날로 더해 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해 버릴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남은 생명이나 보전되겠습니다만, 만약 저의 이 간곡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도련님과 저승에서 다시 함께 만날지언정 절대로 다른 가문에는 시집가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이미 그 딸의 뜻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고 깨우쳐 주고 달래오 주고 하여 그녀의 마음을 누그럽게 해 주었다. 그들은 매자를 사이에 넣어 예를 갖추어 이 서생의 집으로 보냈다. 이 서생의 아버지는 최씨 집안에 대해서 묻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저의 집 아이가 비록 나이 젊어서 바람이 났다고 하더라고 학문에 정통하고 풍채도 현인답게 생겼소. 훗날엔 장원으로 급제할 것이며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니, 그의 배필을 서둘러 구할 생각이 없소"
매자가 돌아가서 사실대로 전하니 처녀의 아버지는 다시 매자를 이씨 집에 보내어 말하게 했다.
"송도에 사는 친구들이 모두 그 댁의 영식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났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과거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어찌 끝까지 초야에 묻혀 있을 인물이겠습니까? 제 여식도 과히 남에게 뒤지지는 않으오니 그들의 혼인을 이루어 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매자는 다시 이 서생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그대로 전했다. 이 서생의 아버지는 말하였다.
"나도 젊어서부터 책을 들고 학문을 닦았으나 아직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노복들은 뿔뿔이 흩어져 가고 친척들도 도와주지 않아서 생활이 치밀하지 못해 살림이 궁색해졌습니다 그런데 어찌 권세 잇는 가문에서 빈한한 선비의 자제를 사위로 삼으려 하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호사가들이 내 가문을 지나치게 칭찬해서 규수댁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매자는 한번 더 돌아와서 들은 대로 일러주니 최씨 집에서는 말했다.
"모든 예물 드리는 절차와 의장은 저희 집에서 다 처리할 것이니 좋은 날만 가려 가약을 맺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고 여쭈어 주시오."
매자는 또 달려가서 이 말을 전했다. 이씨 집에서는 마침내 뜻을 돌려서 곧 사람을 보내어 이 서생을 불러와서 그의 의사를 물었다. 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서 시를 지어 읊었다. 최 처녀는 이 서생이 이 같은 시를 지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병이 차차 나아져 그녀도 시를 지어 읊었다. 이에 길일을 택해서 혼례를 이루니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졌다.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여 손님과 같이 대하니, 옛날의 양홍, 맹광과 포선, 환소군의 부부일지라도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 없었다. 이 서생이 이듬해에 대과에 합격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니 그의 명성이 조종에까지 알려졌다.
이윽고 신축년에 홍건적이 서울을 점령하매 임금은 복주로 피난 갔다. 적들은 집을 불태우고 사람과 가축을 주기고 잡아먹으니,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능히 서로 보호하지 못하고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기를 꾀했다. 서생은 가족을 데리고 궁벽한 산골에 숨어 있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쫓아왔다. 서생은 겨우 달아났는데 여인은 도적에게 사로잡힌 몸이 되었다. 적은 여인의 정조를 겁탈하고자 했으나 여인은 크게 꾸짖어 욕을 퍼부었다.
"이 호랑이 창귀 같은 놈아! 나를 죽여 씹어먹어라. 내 차라리 이리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개돼지의 배필이 되어 내 정조를 더럽히겠느냐?"
도적은 노하여 여인을 한 칼에 죽이고 살을 도려 흩었다. 한편 서생은 황폐한 들에 숨어서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의 무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살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집은 병화에 타버리고 없었다. 다시 아내의 집을 가보니 행랑채는 쓸쓸하고 집안에는 쥐들이 우글거리고 새들만 지저귈 뿐이었다.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작은 누각에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고 길게 한숨을 쉬면 날이 저물도록 앉아서 지난날의 즐겁던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밤중이 거의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쳐 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기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먼 데서 차차 가까이 다가왔다. 살펴보니 사랑하는 아내가 거기 있었다. 서생은 그녀가 이미 이승에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사모하는 마음에 반가움이 앞서 의심도 하지 않고 말했다.
"부인은 어디로 피난하여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은 서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곧 사정을 얘기했다.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자수와 바느질에 힘썼고, 시서와 예법을 배워 왔습니다. 그러니 다만 규중의 법도만 알았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낭군께서 붉은 살구꽃이 피어 있는 담을 엿보게 되자 저는 스스로 몸을 바쳤으며, 꽃 앞에서 한번 웃고 난 후 평생의 가약을 맺었었고 휘장 속에서 거듭 만났을 때는 정이 백년을 넘쳤습니다. 사세가 이렇게 되자 부끄로움을 차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장차 백년을 함께 하려 했는데 어찌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 알았겠습니까? 끝내 이리 같은 놈들에게 정조를 잃지는 않았습니다만, 스스로 몸뚱이를 진흙창에서 찢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진실로 천성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만 인정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낭군과 궁벽한 산골에서 헤어진 후론 짝 잃은 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잃었으니 피곤한 혼백 의지할 곳 없음이 한스러웠습니다. 의리는 중하고 목숨은 가벼우므로 쇠잔한 몸뚱이로서 치욕을 면한 것만은 다행이었습니다만, 누가 산산조각난 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겠습니까. 다만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입니다. 해골은 들판에 던져졌고 몸뚱이는 땅에 버려지고 말았으니, 생각하면 그 옛날의 즐거움은 오늘의 이 비운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와서 제 환신이 이승에 되돌아 왔습니다. 낭군과 저와는 3세의 깊은 인연이 맺혀져 있는 몸,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결코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낭군께서 지금도 3세의 인연을 알아주신다면 끝내 고이 모실까 합니다. 낭군께서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서생은 기쁘고 또 고마워서, "그것은 본디 나의 소원이오." 하고는 서로 즐겁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윽고 이야기가 가산에 미치자 여인은 말했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떤 산골짜기에 묻어 두었습니다." "우리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은 어디에 있소?" "하는 수 없이 어떤 곳에 버려 두었습니다."
서로 쌓였던 이야기가 끝나고 잠자리를 같이 하자 지극한 즐거움은 옛날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은 서생과 함께 개녕동을 찾아가니 거기에는 금은 몇 덩어리와 재물 약간이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어 금은과 재물을 팔아서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고는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모든 예절을 다 마쳤다. 그 후 서생은 벼슬을 구하지 아내와 함께 살게 되니 피난 갔던 노복들도 또한 찾아들었다. 서생은 이로부터 인간의 모든 일을 전혀 잊어버리고서 친척과 귀한 손의 길흉사 방문에도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으며, 늘 아내와 함께 싯구를 지어주고 받으며 즐거이 세월을 보냈다. 어느덧 두서너 해가 지난 어떤 날 저녁에 여인은 서생에게 말했다.
"세 번째나 가양을 맺었습니다마는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즐거움도 다하기 전에 슬픈 이별이 갑자기 닥쳐왔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목메어 울었다. 서생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그 무슨 까닭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여인은 대답했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낭군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악도 없었으므로 이 몸을 환신시켜 잠시 낭군을 뵈어 시름을 풀게 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산 사람을 유혹할 수는 없습니다."
하더니 시비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서생에게 술을 권했다. 노래 한 가락씩 부를 때마다 눈물에 목이 막혀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했다. 서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했다.
"나도 차라리 부인과 함께 황천으로 갔으면 하오. 어찌 무료히 홀로 여생을 모내겠소. 지난번에 난리를 겪고 난 후에 친척과 노복들이 각각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들판에 버려져 있을 때 부인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능히 장사를 지내 주었겠소. 옛 사람의 말씀에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예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도 예절로써 장사 지내야 한다 했는데, 이런 일을 모두 부인이 실천했소. 그것은 부인은 천성이 순효하고 인정이 두터운 때문이니 감격해 마지않았으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였소. 부인은 이승에서 함께 오래 살다가 백년 후에 같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떻겠소?"
여인은 대답했다.
"낭군의 수명은 아직 남아 있으나. 저는 이미 저승의 명부에 이름이 실려 있으니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굳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해서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에 위반됩니다. 그렇게 되면 죄가 저에게만 미칠 것이 아니라 낭군님께까지 미칠까 두렵습니다 베풀어주시겠다면 유골을 거두어 비바람 맞지 않게 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구에 여인은 말했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말을 마치자 점점 사라져서 마침내 종적을 감추었다 서생은 아내가 말한 대로 그녀의 해골을 거두어 부모의 무덤 곁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 후 서생은 아내를 지극히 생각한 나머지 병이 나서 두서너 달만에 그도 또한 세상을 떠났다. 이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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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金時習:1435~93)이 지은 한문소설. 〈금오신화 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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