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가고싶다
나는 떠나고 싶어서 마음먹고 가본 여행이 단 한 번도 없다.
일에 치여, 돈이 없어, 용기가 나질 않아서......
얼마나 마음 가난한 삶인가.
집 앞 구멍가게나 도서관 말고는 밖에 나가 걷지도 않는다.
답답하거나 힘겨울 때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겪어 봤음직한 마음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냥 떠나라고 하지만 경험이 아예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엄두조차 내질 못한다. 그보단 마음이 족해 할 만한 여유가 내겐 없다는 말이 더 그럴싸한 변명 같다. 수북한 재떨이나 굴러다니는 소주병들이 지겹기도 할 텐데 뭘 망설이는 건지. 그런 놈이 군 훈련소는 어찌 그리 씩씩하게 혼자 갔는지......
그건 그렇고...
인적 드문 산속에 홀로 있는 허름한 집에서 살고 싶다.
갑자기 홍철 형 생각난다.
툭하면 차를 몰아 양평으로 향하곤 했는데......
헬리콥터 말곤 외부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산속 삼족오 비닐대문 집.
태어나 처음 보는 삼족오를 보고 무당이라고 놀려댔던 기억이 난다.
술에 취해 헛소리 질러대도 웃어주던 형. 엄청난 지식의 소유자. 조선 검술의 달인.
뭐든 품어주는 따뜻한 사람.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 모조리 걷어치우고 갔으련만.
그건 그렇고...
뭔가 될 듯 될 듯 안 되고, 뇌가 엉클어진 듯하고, 꽉 막힌 것만 같고, 답답한 나날이다. 내일은 대보름이다. 엄니한테 가봐야 하는데 못갈 듯싶다. 맥이 없다. 188Cm의 거구가 지하철에서 쓰러지면 누가 업겠나. 경험상 시민들에게 민폐다. 이틀 전 꿈자리 사나웠던 엄니한테 전화가 왔다.
“아야. 너 그렇게 살다 죽어야! 나가 니 몸을 너보다 더 잘 알어.”그 말이 묘하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한편으론 벌써 갔어야 하지 않나싶다. 나는 항상 어머니를 웃겨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다. 나는 늘 어머니보단 일찍 죽지말자는 생각으로 산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 아닌가.
그건 그렇고...
그러고 보니 건강보험공단인가 갱단인가에서 밀린 보험료 안 낸다고 통장을 압류한다는 편지가 왔었다. 받아 처먹은 약값도 돌려 달란다. 통장이야 뭐 압류해봐야 동전뿐이니 별 상관없지만 내 방에 있는 것들을 몽땅 압류한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그 압류절차 비용도 내가 내야 한단다. 사정했더니 씨알도 안 먹힌다. 이 컴퓨터도 갖고 갈려나? 보증금도 빼간다는데 집주인한테 진짜 전화 거나? 저 책들도 가져다 팔려나? 아니면 고물상에 무게 달아 시집들을 폐기 처분 하려나? 킬로그램 당 100원이니 내가 먼저 갖다 팔면 보험료 내고도 남지 않을까? 압류하러 오면 “소주한잔 하며 풉시다.” 하면 풀리려나? 문 잠가놓고 숨죽이고 있으면 돌아가려나? 내 방 꼬락서니를 보고 압류할 마음이 들려나?
그건 그렇고...
그나저나 내일 못 간다는 전화를 엄니한테 어떻게 건담.
일단 한 잔 하면서 생각해볼 일이다.
잠도 자야 하니까.
소주만한 친구는 세상에 없다.
재워주고
대신 울어주고
화도 풀어주고
토닥여주고
음악도 틀어주고
새벽하늘도 보게 해주고
까칠한 부작용만 빼면 참 좋은 친구다.
햄스터한테 소주를 좀 줬더니 잘 먹는다. 주인 닮았다. 짜아식! 손을 갖다 대면 올라탄다. 외로운 거지. 친구들 다 죽고 외로운 거지. 짜아식! 먹고 자고 싸는 일만 한다. 나랑 똑같다. 한심한 짜아식! 저놈이 말만 하면 좋은데 말을 못해 소주에 밀리는 친구다. 귀여운 짜아식!
그건 그렇고...
얼마 전 오랜 시간 연락 끊긴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야! 너 왜 그리 한심하게 사냐?”
“그나마 두심하지 않으니 다행 아니요?”
“개소리 그만하고 나와. 술값 걱정 말고 나와.”
“십리가 넘어 안가요.”
“뭔 소리야?”
“나는 십리도 못가 발병이 나는 사람이요.”
사실 가고 싶었다. 왜 나가지 않았을까?
요즘 뉴스를 보면 무슨 “은둔형외톨이”가 어쩌네저쩌네 지랄들이다. 내가 “은둔형외톨이“인가 생각해봤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정신상태가 좀 삐딱해서 그렇지 저따위의 정신병은 없다. 정신병자네 뭐네 말하지 말라하지만 정신병이라고 말해줘야 하지 않나? 부모가 살아있는데 자살이나 하고 범죄나 저지르고 뭐하는 짓인가. (너나 잘하세요.)
그건 그렇고...
요즘 문학평론, 비평 책들을 읽고 있는데 한 권씩 읽어 갈 때마다 나 같은 놈은 절대 글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뭐 무서워서 글 쓰겠나. 살벌해서 겁난다. 문학이론서들이야 좀 참아주고 읽겠지만 이건 뭐 껌도 아니고 질겅질겅 씹어대니 원...... 직접 한 번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댁이 쓴 문학 좀 봅시다.
그건 그렇고...
2009년엔 문인들이 조금씩 입을 여는 듯하다. 작년엔 그리도 침묵하더니 요즘 들어 목소리들이 들린다. 사실 2008년 내내 서점가를 휩쓸었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책 파는 것 말고 뭘 했나. 요즘엔 정부정책을 비판하면 한 겨울에 안방까지 쳐들어와 수갑 채우고 철창으로 끌고 가서 가둔다. 가둬놓고 먼지를 턴다. 털어서 저학력에 무직자면 언론에 공개하면서 사회에서 매장을 시켜버린다. 군부정권에서 쓰던 잔인한 인권유린이다. 누리터 논객 미네르바 구속을 놓고 전 세계 유명 언론이 대한민국을 향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미개국으로 낙인을 찍어버린 언론도 있다. 중국 공산당에서 하는 일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나라당에선 반정부정책적인 글을 쓰거나 정권비판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법안까지 통과시킬 예정이다. 그 법을 중국 정부에서 극찬하며 같이 도입할 예정이라는 소릴 TV토론에서 들은 것같다. 대체 뭐하는 짓들인가. 뚫린 입으로 말도 못하고 사냐?
영혼 없는 공권력들이 뻔뻔하게 대놓고 판을 치고 있고, 보수단체소속이라는 사람들은 불에 타죽은 철거민들을 죄인으로 몰고 간다. 웃기지 않나? 합법적인 공무집행인데 사람이 왜죽어? 사람이 죽었으면 이미 합법적인 공무집행이 아닌 것이다. 이런 간단한 논리를 왜곡하고 뻔뻔하다 못해 자랑스럽게 경찰을 두둔하고들 있다. 촛불 들고 공원을 걸어도 잡아가서 왜 촛불을 들었는지 조사하고 신원조회를 한다. 집회만하면 끌고 간다. 웃긴 건 보수단체가 집회하면 경찰이 보호한다.
문인들이여 말하고 써라. 억울한 영혼들을 노래하라. 당신의 독자들 아니었는가.
그건 그렇고...
넋두리. 나는 넋두리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루터기, 여울목, 는개 같은 단어들도 좋아한다. 오늘따라 푸념이 길다. 나는 졸릴 때까지 글을 쓴다. 3일을 뜬 눈으로 지샌 적도 있다. 그다지 영양가도 없는 글들이지만 우연히 걸리는 마음에 드는 문장도 보인다.
“캬~. 내가 썼지만 멋진 문장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라톤을 하며 중간 중간 마시는 음료수 같은 해갈의 기쁨이다.
그건 그렇고...
해가 뜨기 전에 자야 할듯하다.
끝내기 전에 요즘 읽는 책 하나 추천하고 싶다.
[제목 : 전혜린, 저자 : 이덕희, 출판사 : 이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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