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從主人(명종주인) 名(이름 명) 從(좇을 종) 主(주인 주) 人(사람 인)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환공(桓公) 2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름철 4월, 노(魯)나라는 고)나라에서 만든 큰 솥을 송(宋)나라로부터 입수하여, 무신(戊申)날에 주공(周公)의 대묘에 바쳤다.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이름은 그 주인을 따르고, 물건은 중국을 따르는 법이니(名從主人 物從中國), 고나라의 큰 솥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큰 솥(大鼎)은 본시 고나라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후에 송나라가 이것을 차지하였다가, 다시 송나라의 화보독(華父督)이 환공에게 뇌물로 제공한 것이었다. 따라서 노나라에서는 내력이 복잡한 이 물건을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공자의 의견을 들었던 것이다. 名從主人 이란 사물은 원래 주인의 이름을 따라 짓게 됨 을 뜻하며, 이는 곧 사물의 명칭이 그것의 소재지나 나라의 호칭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명함에 표기된 보조 국호(國號)로 물의를 일으켰던 모 국회의원은 단순히 한자권 인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몇몇 무식한 중국인들의 편의만을 위해 국민적 자존심을 배려하지 않은 발상에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스스로 지킬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口蜜腹劍(구밀복검) 口(입 구) 蜜(꿀 밀) 腹(배 복) 劍(칼 검)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에는 이임보(李林甫)라는 사람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임보는 당 현종 때의 재상(宰相)으로서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다른 재주도 많아서,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그는 또 아첨하는 재주가 있어서, 권세 있는 인물들과 자주 접촉하고, 황제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많은 뇌물을 주어 황제의 언행을 항상 파악하여, 황제의 기분에 맞게 처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19년 동안이나 안전하게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능력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중상하고 제거하려는 계책을 세웠다. 이임보는 황제가 병부시랑(兵部侍郞) 노현(盧絢)과 엄정지(嚴挺之) 등을 중용하려 하자 그들을 비방하여 그들의 승진을 막기도 하였다. 이임보는 겉으로는 매우 선량하게 좋은 말만을 하였으나, 속으로는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자, 세상 사람들은 마침내 그의 위선적인 면목을 알고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지만 뱃속에는 칼이 들어있다(李林甫口有蜜, 腹有劍) 라고 말하였다. 口蜜腹劍(A honey tongue, a heart of gall) 이란 겉으로는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품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 장량과 제갈량, 강태공 등이 좋은 방면의 모사(謀士)였다면, 당 현종(唐玄宗)때 재상을 19년 지낸 이임보(李林甫)는 나쁜 방면으로 그들과 맞먹는 모사였다. 간사하기로는 조조와 필적할 인물이나 조조는 대인(大人)에 속하지만 임보는 소인(小人) 가운데 소인(小人)이었다. 당나라를 뒤엎을 만한 반란을 일으켰던 안록산도 이임보가 두려워 그가 죽은 지 3년 후에 반란을 일으킬 만큼 그를 두려워했다.《십팔사략(十八史略)》에 기록된 이임보의 평(評)을 보자. 이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口蜜腹劍]'라고 말했다. 서재에 앉아 깊이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다음은 반드시 주살(誅殺)이 있었으며 가끔 큰 옥사를 일으켰다. 태자로부터 이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했다. 재상 지위에 있던 19년 동안에 천하의 난리를 길러내었으나, 현종(玄宗)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안록산도 이임보의 술수를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李林甫 妬賢嫉能 排抑勝己 性陰險 人以爲 '口有蜜腹有劍' 每夜獨坐偃月堂 有所深 思 明日必有誅殺 屢起大獄 自太子以下皆畏之 在相位十九年 養成天下之亂 而上不 悟 然綠山畏林甫術數 故終其世末 敢反. 【유사어】소리장도(笑裏藏刀), 소중유검(笑中有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