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 말글 2012.10.15 바람의종 R 11114
[우리말바루기] 응큼하다 최근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옆자리에 앉은 여성을 추행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화제가 된 바 있다. 실제로 여성 직장인 10명 중 4명꼴로 출퇴근길에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이런 응큼한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된다” “다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응큼하게 느껴졌다”에서와 같이 ‘엉뚱한 욕심을 품고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응큼하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엉큼하다’가 맞는 말이다. ‘엉큼하다’는 위에서와 같이 주로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긍정적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 “그이는 보기보다 엉큼하게 일을 잘해내 믿음이 간다”에서처럼 ‘보기와는 달리 실속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엉큼하다’의 작은말인 ‘앙큼하다’는 ‘엉뚱한 욕심을 품고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는 의미를 지녀 ‘엉큼하다’와 실질적 뜻이 같다. 그러나 표현상 느낌이 작고 가볍고 밝게 들려, “앙큼한 사랑의 거짓말”에서와 같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깜찍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어감의 차이가 ‘엉큼한 손길’과 ‘앙큼한 손길’의 의미를 구분 짓게 한다.
Board 말글 2012.10.09 바람의종 R 14052
[우리말바루기] 전년도, 회계연도 “1만2768건. 지난 회계년도에 시 민원전화에 접수된 빈대 발생건수다. 이는 전년도 회계년도에 비해 16%나 증가한 수치다.” 최근 뉴욕의 빈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는 이 보고 자료에 나오는 ‘년도’는 맞게 적은 걸까? ‘전년도’는 어법상 문제가 없지만 ‘회계년도’는 ‘회계연도’로 바루어야 한다. ‘年度’를 한글로 옮길 때 ‘년도’로 사용해야 할지, ‘연도’로 사용해야 할지 헷갈린다는 이가 많다. “년도별 입국자 현황을 파악하라”에서 ‘년도별’은 ‘연도별’로 고쳐야 맞다. ‘녀·뇨·뉴·니’로 시작하는 한자음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는 두음법칙에 따라 ‘여·요·유·이’로 표기한다. 단어의 첫머리가 아닌 경우엔 본음대로 적는다. 이 기준에 따라 ‘회계년도’로 표기하지 않고 ‘회계연도’로 적는 이유는 뭘까? 독립성 있는 단어에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두 개의 낱말이 결합해 합성어가 된 경우 뒤의 단어에도 두음법칙이 적용된다는 예외 규정 때문이다. ‘會計+年度’로 분석되므로 ‘회계연도’라고 한다. ‘전년도’의 경우 ‘前+年度’가 아니라 ‘前年+度’로 분석되는 구조이므로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전연도’로 써서는 안 된다.
Board 말글 2012.10.08 바람의종 R 12980
[우리말바루기] 마다 않고, 아랑곳 않고 “행상을 한 할머니는 철수가 바르게 클 수 있도록 궂은일도 마다 않고 뒷바라지를 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 먼 길을 마다 않고 한달음에 달려와 자기 일처럼 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눈에 자주 띄는 예문이다. 여기서 ‘마다 않고’의 ‘마다’는 ‘마다하다’의 어근이다. ‘마다하다’는 ‘거절하거나 싫다고 하다’를 뜻한다. 어근은 단어를 분석할 때 필요한 개념이다. 용언으로서 단어가 문장에서 제 기능을 다하려면 어근만 가지고선 안 된다. 따라서 ‘마다하지 않고’로 적어야 옳다. 인터넷상의 축약된 언어가 일상 언어에 영향을 미쳐서인지 이처럼 줄여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턱대고 말을 잘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바깥의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영자는 고개를 숙인 채 일에 열중했다”의 ‘아랑곳 않고’는 어떨까. 여기서도 ‘아랑곳하지 않고’로 쓰는 것이 바른 용법이다. 그러나 ‘아랑곳 않고’는 허용될 만하다. ‘마다’와 달리 ‘아랑곳’은 ‘일에 나서서 참견하거나 관심을 두는 일’이란 뜻의 명사다. 또 “그녀는 그 젊은이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을 않으려는 투였다”처럼 ‘아랑곳’ 뒤에 ‘을’이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못하다, 머지않다, 못지않다’처럼 한 단어로 인정받았으면 모를까 ‘마다않다’는 아직 허용되지 않는다.
Board 말글 2012.10.05 바람의종 R 17747
[우리말바루기] 팔염치, 파렴치 / 몰염치, 염치, 렴치 뻐꾸기는 참 파렴치한 새다. 다른 새집에 알을 낳고 부화부터 양육까지 죄다 떠넘긴다. 그 새끼들도 원래 둥지의 새알을 밀어내 버리는 몰염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가졌지만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뻐꾸기처럼 ‘염치’도 두 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염치를 모르고 뻔뻔스러움을 이르는 ‘파렴치(破廉恥)’와 염치가 없음을 일컫는 ‘몰염치(沒廉恥)’는 ‘염치’에 각각 ‘파-’와 ‘몰-’이 붙은 같은 구조의 말인데 왜 달리 표기할까? ‘염치(廉恥)’를 ‘렴치’로 쓰지 않는 것은 단어의 첫머리가 ‘ㄴ’이나 ‘ㄹ’로 시작하는 한자어는 ‘ㅇ’이나 ‘ㄴ’으로 바꾼다는 두음법칙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몰렴치’로 적어야 할 것 같지만 ‘몰염치’가 바른말이다. 복합어의 경우 두음법칙이 적용된 상태에서 합쳐진 것(몰-염치)으로 본다. 선이자(先利子)는 ‘선-이자’, 해외여행(海外旅行)은 ‘해외-여행’처럼 합성어와 파생어는 뒤의 단어에도 두음법칙을 적용한다. 문제는 ‘파렴치’다. ‘몰염치’와 같은 구조인데도 ‘파염치’가 아닌 ‘파렴치’로 쓰는 건 이미 사람들의 발음이 원래 음의 형태로 굳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음법칙의 예외 규정인 셈이다.
Board 말글 2012.10.02 바람의종 R 17066
[우리말바루기] ~도 불구하고 언어란 다양한 어휘로 다채롭게 표현해야 가치가 있고 세련미가 느껴진다. 한 가지 말만 자주 사용하면 금방 싫증 나게 마련이다. 상투적이고 획일적으로 쓰여 지루하게 느껴지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불구하고’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등처럼 ‘불구하고’를 즐겨 쓴다. 일본어의 ‘~にもかかわらず’를 구조 그대로 ‘~에도 불구하고’로 옮기다 보니 생긴 버릇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영어의 ‘in spite of~’ 등을 ‘~에도 불구하고’로 단순 암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보는 이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불구하고’는 상투적으로 쓰여 말과 글을 지루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군더더기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불구하고’ 없이 “많은 노력에도 실패했다” “그럼에도 재기에 성공했다”로도 충분한 표현이다. 더 큰 문제는 ‘불구하고’가 우리말의 특징인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을 해친다는 점이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는 “많은 노력에도 실패했다”뿐 아니라 “많이 노력했는데도[노력했으나,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다” 등처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불구하고’를 줄여 써야 한다.
Board 말글 2012.10.02 바람의종 R 12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