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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 단상(斷想) - 유권재
플랫폼, 눈앞에 늘씬한 다리 길게 늘여 햇살에 반지르르
윤나는 것이 마치 뒷골목 유리 상자의 마네킹처럼 전시
된 윤락녀의 스타킹 씌운 다리 조명에 번질거리는 섹시
함이다. 이따금 그 위를 숨차게 지나는 열차. 아, 바라만
봐도 울렁거려
기다리는 열차시각은 아직 멀고, 무료함으로 신문 가판
대 앞을 서성이다 문득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궁금하지
도 않은 안부 몇 마디 나누고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구급차의 사이렌이 살
같이 차도를 가른다. 건너편 플랫폼으로 열차가 숨을 몰
아쉬며 정차한다. 사정(射精)하듯 사람들을 쏟아내고 난
자를 향해 돌진하는 정자처럼 출구를 향해 몰려가는 사람
들. 생겨날 때의 치열함이 본능처럼 굳어있다. 이윽고 내
가 탈 열차가 도착한다. 내 좌석은 3호차 57호석. 사람들
이 몰려들고, 덩달아 부랴부랴 열차에 오른다. 모두들 자
리에서 연신 시계를 보며 재촉하는 표정들.
손에 쥔 내 차표에는 청량이-정동진이라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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