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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어떤 귀가 -김명희-
캄캄한 어둠이 오글거리는 골목길
야트막한 대문 새로 삐져나온 엷은 불빛
아이들 수군거리는 창밑마다 찾아든 별
깎아지른 언덕길을 막 올라선 발걸음이
거친 숨 몰아쉬고 담벼락에 기대서면
찬바람 쏘아붙이듯 귓불 치고 달아난다
움츠린 어깨위에 지난날 꿈 아른거리고
젊은 시절 당당했던 목소린 작아졌다
기대설 누군가 있다면 짊어진 짐 놓고 싶다
돌아갈 집이 있어 기다려줄 아이 있어
오늘도 기름 떼 낀 목수건 걸고 대문 연다
거머쥔 붕어빵 봉투 인생 줄에 매달렸다
[신춘문예 시조 당선소감 김명희씨]
추억의 열병을 앓고
어둠이 소 울음처럼 머리를 묻는 들녘. 기다림에 괜스레 설레는 마음들이 마중 오면 별 무리 꼬리를 물고 등 뒤로 다가선다. 한번쯤 텅 빈 세상 서성이는 하늘가. 살아가는 흔적 찾아 지난날을 되뇌면 생명력 흠뻑 날리는 대문 밖 길 배인 인연마다 설레발을 든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옛 추억을 곱씹으며 열병을 앓는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후회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어리석음으로 지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머물러 서글픈 인연들로 남아 툭툭 떨어지는 잎 새 위에 시린 마음을 들키곤 했다. 달려온 길 위에 인연들을 누이고 질겅질겅 지난날을 새긴다. 차 한 잔의 향기에 호흡을 멈추어 기대어 있으면 나는 어느새 내 유년의 길에 서 있다.
나의 유년에서 아버지의 귀가는 늘 허기져 있었다. 배움이 짧아 견뎌야했던 설움은 길고 깊었다. 홀로 우뚝 서 당당하게 세월을 헤쳐 나갔던 젊은 날의 패기는 비탈길을 내려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구슬픈 노랫가락을 타고 어릴 적 내 마음을 더욱 춥고 배고프게 했다. 오늘날 이 땅위에 사는 가난한 아버지의 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을 어깨에 달고 어둠속을 걸어오시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는 지금도 가슴팍을 파고들어 하나의 문처럼 내 감성을 열고 닫는다. 흐드러지게 봄을 수놓았던 개나리꽃 더미에서 웃음을 나누었던. 첫눈 내리던 새벽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어린 시절과 함께.
지금 내게 다가온 이 가슴 벅찬 마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또한 내 삶의 거름이 되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든든한 마음 줄이 되리라. 달려온 길을 되돌아볼 줄 아는 나무처럼 제살을 뚫고 나온 헛된 욕심을 깎아 아픔을 기쁨으로 끌어안고 내일의 삶을 계획해야겠다. 겸허한 자세로 시조의 율과 격을 내 안에 심으며 나를 보듬고 다듬어 보리라. 그리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알고 정갈한 맛을 느끼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시조의 길을 열어주시고 쓸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신 분께. 부족한 작품에 불 밝혀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마음 한 조각 따스함으로 채워주셨던 유숙경 선생님. 자신을 헌신하며 며느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시부모님. 자식들을 위해 새벽기도로 하루를 여는 친정어머니가 옆에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통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충렬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지금은 사진 속에 남아 겨울밤처럼 긴긴 편지되어 다가오는 하늘나라 아버지께 무엇보다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
△1964년 부산 출생 △진주교대 졸업 △2004 교사예능경진대회 시조부문 1등급 △2006년 제17회 경남시조백일장 장원 △통영 충렬초등학교 교사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허점없는 언어 밀도 돋보여
우리는 모국어의 새로운 발성법을 지닌 시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 발성법이란 소재의 확장. 깊이있는 사유의 천착. 참신한 언어감각에 의해 드러나는 치열하고 당돌한 개성을 말함은 물론이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선자들을 고심케 한 작품은 ‘봄비’. ‘레이스를 짜는 여자’. ‘어떤 귀가’였다. ‘봄비’는 아름다운 서정시일 뿐 아니라 시조의 율감을 적절히 살릴 줄 아는 시인의 작품으로 무리없이 읽혔다. 그러나 도발적인 혹은 치열한 작가정신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것은 결국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것이고 이 점이 신인의 자격으로는 적지않은 결함이라 생각했다. ‘레이스를 짜는 여자’의 경우는 우선 참신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제목이 그랬고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재로 원용한 것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정형시에서 특별한 이유없는 동어반복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였다. 그러한 약점은 상의 불분명함과 함께 습작기간의 부족으로 다가왔다. 강파른 현실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싶은 작자의 의도에 비해 그 구성이 지나치게 서투르다는 것이 선자의 공통된 견해였다. 이런 결함을 극복한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보였다.
올 해의 행운은 결국 ‘어떤 귀가’에 닿았다. ‘어떤 귀가’는 적지않은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이 시인의 응모작 모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특히 비교적 호흡이 긴 연시조들도 쉽게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 언어 밀도를 보였다. 아울러 어떤 제재를 가지고도 시조를 빚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저력을 감지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작품을 선택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것은 새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신년 초에 독자에게 찾아갈 신춘문예 작품이라면 신선함이 중요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준에서 본다면 분명 빗나간 낙점이다. 그러나 시조를 빚기 위해 쌓아온 내공이 역력히 드러나는 믿음직한 작자를 천거한다는 것 또한 작은 기쁨이 아니다. 하루의 영광 뒤에 쉽게 사라지는 많은 당선자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는 확신으로 이 시인을 민다. 이제 더 새로운 작품으로 선자의 우려를 불식시켜 대성하길 당부하며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우걸. 장성진
번호 | 제목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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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우리시 시조의 이해 | 바람의종 |
1044 | 시간 - 이정자 | 風磬 |
1043 | 멍에 - 김영덕 | 風磬 |
1042 | 봄비 - 김보영 | 風磬 |
1041 | 첫사랑 - 임금자 | 風磬 |
1040 | 청평사에 다녀오다 - 서공식 | 風磬 |
1039 | 강가에서 - 경규희 | 風磬 |
1038 | 선묘(善妙)의 사랑 - 김민정 | 風磬 |
1037 | 아름다운 황혼녘 - 이도현 | 風磬 |
1036 | 겨울 電柱 - 장지성 | 風磬 |
1035 | 봄이 오는 소리 - 자헌 이정자 | 風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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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 | 2007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분 - 가면놀이 - 이민아 | 風磬 |
1032 | 200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 이민아 | 風磬 |
1031 | 2007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 구석집 - 김사계 | 風磬 |
1030 | 저문 날의 斷想 -김광수- | 바람의종 |
1029 | 生命의 길 -이명자- | 바람의종 |
1028 | 네 가슴에는 무엇을 품고 사나 -유권재- | 바람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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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 선운산 저녁 -김정숙- | 바람의종 |
1025 | 달과 함께 -이근구- | 바람의종 |
1024 | 나그네 - 김석철 | 바람의종 |
1023 | 흔적 - 임금자 | 바람의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