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이 없기로서니 이 손길을 놓으랴
조금씩 낮게 낮게 지층을 파고들어
햇빛이 그리울수록 어둠 속을 가야 한다
지상에 까닭 없이 피는 꽃을 보았는가
먼 먼 지유地乳를 찾아 손끝이 갈라져도
끝끝내 보일 수 없는 젖어미의 속울음
세상을 버텨온 것은 뿌리였다. 지층을 파고드는 것이 어찌 광부의 삶뿐일까. '햇빛이 그리울수록' 어둠 속을 가야 하는 부조리와 모순을 뚫고 견디며 일구어낸 삶이기에 지상의 꽃이란 꽃은 소중한 의미로 개화한다. '뿌리'는 부정을 여과한 긍정적인 자세와 목소리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반듯한 정형에 어우러진 수작이다. 생명과 역사를 지켜온 것은 저 뿌리의 끈질긴 인내와 슬픔의 응고이던 것을.
박구하시인은 국민문학으로 시조를 꽃피우기 위해 온몸과 정성을 다한 뿌리 자체의 삶을 살았다. '시조는 시의 첨단'이라며 오를레앙의 잔다르크처럼 시조부흥을 위한 깃발을 높이 들었다. '시조월드' 편집장으로, 시조의 세계화를 목적으로 한 사단법인 '세계시조사랑협회'를 맡아 나라 안팎을 바쁘게 찾아다니며 조선족 한족 만주족에 이르도록 어린이시조시인(총인원 2779명)기르기 운동과 중국에서 한중문인시조세미나, 시조연수회, 연변 초·중학생 백일장 등 시조 보급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단에 나온 지 10년, 대외 활동뿐만이 아니라 주옥 같은 시조 300여 수와 논문, 칼럼 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정작 그는 작품집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작년 갑자기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보름 전 그의 1주기를 맞아 부산고 문예반 출신 동기회원 주축으로 유고집 '햇빛이 그리울수록'(해와달) 출간기념회 및 추모행사가 서울 '문학의집'에서 열려 슬픔도 달랠 수 있었다. 시조사랑을 위해 그가 가꾼 뿌리는 '햇빛이 그리울수록' 무성히 뻗어가리라.
전연희·시조시인(신라중학교 교장, 시집 '숲가까이 산다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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