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球)에 관한 짧은 생각
1. 축구공
운동장의 축구공은 누구에게나 쉽게 버림받는다. 가슴 열고 기다리던
사람도 품에 와 안기는 순간 빨리 그를 버린다. 모난 곳 하나 없는 둥근
성격으로도 그는 환영받지 못한다. 차이고 차이면서도 공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다. 수많은 꼭짓점들을 만들어가며 운동장을 뛰고 뛰어도
거기엔 답이 없다. 슬픔의 뿌리를 모르는 공, 마주치는 상대들은 끝없이
고독해질 문제들을 자꾸 만들어낼 뿐 하나의 답과 만나려 하는 찰나 그
를 멀리 차 버린다. 허공을 날고 땅을 굴러가던 축구공이 달려가다가 멎
는 그 순각(瞬刻), 줄곧 그를 기다리던 그물은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
고 만다. 경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2. 지구
언제부터인가 지구는 둥글기만 한 별이 아니었다. 별의 중심에서 사
방으로 손을 내어뻗으면 손끝에 닿지 않는 기둥들이 자꾸 생겨났다.
곳곳에 솟아오른 남근들이 무정자의 연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하늘을
구를 수 없게 된 조물주의 구슬, 생명을 기를 수 없게 된 여자, 엄마의
품에서 쫓겨난 자식들이 집 밖으로 흩어졌다. 바람이 누렇게 불어 갈
곳 없게 된 아이들의 눈을 가려버렸다. 아이 잃은 어미의 눈에서는 불
규칙하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를 찾는 울음소리와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뒤섞여 허공을 붉게 물들여갔지만 한번 발기한 남근은 시들
줄을 몰랐다. 지구는, 트랜스젠더가 되어버린 나의 엄마. 우리는 자꾸
불행해져만 갔다.
3. 생명 구슬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빨 빠진 동그라미1)인 나는
덜렁, 자그마한 생명 구슬 두 개
반쪽의 생을 몸 밖에 두고
뒤뚱뒤뚱, 비익조(比翼鳥)의 꿈을 꾸는 나는
안해야, 안해야
해와 달 같은
내 구슬들 너 줄 테니, 나랑
생명 심으며 살자, 응
생명 낳으며 살자, 응
1) ‘송골매’가 노래한 「이빨 빠진 동그라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