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장정일
시로 덮힌 한 권의 책
아무런 쓸모없는, 주식시세나
운동경기에 대하여, 한 줄의 주말 방송프로도
소개되지 않은 이따위 엉터리의.
또는, 너무 뻣뻣하여 화장지로조차
쓸 수 없는 재생불능의 종이뭉치.
무엇보다도, 전혀 달콤하지 않은 그 점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로 덮힌 한 권의 책, 이 지상엔
그런 애매모호한 경전이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신을 위해서랄 것도 없는.
하지만 누가 정사에 바쁜 제 무릎
위에 얄팍하게 거만떠는
무거운 페이지를 올려놓는다는 말인가?
그래, 누가 시집을 펼쳐들까
이제 막 연애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이,
중동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아니면 장서를 모으는 수집가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뒷장을 열어 출판년도를 살펴볼까?
양미간을 커텐같이 모으며 이것
굉장하군! 감탄하는
끈끈한 조사와 형용사로 단어와 단어사이를
교묘히 풀칠하는 당신의 시.
그 따위 것을 누가 찾아 읊조린단 말인가
절정의 순간에 한 줄의 엘리어트를 읽어주어야만
만족해하는 성도착증의
젊은 부인을 위해? 혹은
강단에서 시를 해석하는 문법학자의
조심스레 미끄러지는 입술에서나
그것은 팽개쳐질까. 아무런 열의도 없이
이해하겠어요, 이 작가의 콤플렉스를?
지루하게 외쳐대는 오후의 강의 시간에나
시인과 시인이 맞붙어 싸우는 이
암호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두터운
안경을 맞추어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마음 멍청하면 사게 되는 것이냐, 아무리 찾아도
국립극장 초대권 하나 붙어있지 않은
이 한 권의 책을, 놔 둬 버리지
서점의 제일 높은 판매대에 꽃혀
먼지가 만지도록 그냥, 놔 둬 버리지.
제일 아래쪽 밀대가 지나다니며
까맣게 구정물이 먹도록. 구석을 찾아
이리저리 천대 받도록 그렇게 놔둬
버리지. 이따위, 엉터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