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이정록(1964∼ )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스무살 초입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절룩거리며 걷다 보니,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만 눈에 들어와 깜짝 놀랐다. 안경을 처음 썼을 때도 그랬다. 사람을 볼 때 눈부터 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세상 떠난 남편뿐 아니라 꽃과 열매의 아픈 허리를 염려한다. 누구에게, 무엇에게 어떤 의자가 필요한지 훤히 꿰뚫고 있다. 당신 자신의 의자는 잘 챙기지 않으면서. 아, 나는 누구에게 푹신한 의자였던 적이 있었던가. 남을 앉히기는커녕 내가 앉은(을) 자리만 탓하지 않았던가.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