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나라 체류기' - 유홍준(1962~ )
있으나 마나 합니다 내 얼음대문 얼음자물통
낳으나 마나 합니다 내 얼음아이들
얼음시들……
기대기만 하면
녹아버리는 얼음언덕에 기대어
얼음눈물이 줄줄 흐르는 얼음눈으로
바라봅니다 돌아갈 수 없는 얼음어머니
얼음아내……
여보, 건너려고만 하면 녹아 허물어지는
이 얼음다리 위로
나 어떻게 건너가지?
세속의 삶이 불구덩이 '불난 집'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음의 집'이라 하네. 스르르 녹아 형체가 사라질까 봐 서로에게 기댈 수조차 없는 그런 곳이라 하네. 어머니를 만나고 아내를 맞고 아이를 얻는 이 인연이 끝이 없는 훗날을 기약할 수 없다 하네. 이 소식은 미리 앞서 하는 걱정인가, 우리의 실상인가. 오! 늙고 작아진 어머니여, 밤새 뒤척이는 아내여, 철모르고 뛰는 아이들아. 그대들 얼음 눈에 얼음 눈물이 줄줄 흐르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