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1970~ ), '가족사진'
할머니를 중심으로
우리 가족은 카메라를 보고 있다
아니, 카메라가 초점에 잡히지 않는
우리 가족의 균열을
조심스레 엿보고 있다
더디게 가는 시간에 지친 형들이
이러다 차 놓친다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담장처럼
잠시 후엔 누가 잡지 않아도
제풀에 지쳐 제각각 흩어져 갈 것이다
언제나 쫓기며 살아온 우리 가족
무엇이 그리 바쁘냐며
일부러 늑장을 부리시는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 위로
플래시가 터진다
순간, 담장을 타고 올라온
노오란 호박꽃이
환하게 시들어간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할머니 생신 날 고향의 부름을 받고 모처럼 모여 있다.
그러나 의무를 마친 가족 구성원들은 다시 흩어질 궁리에 바쁘다. 갓 지은 밥
과 같이 사랑으로 끈끈했던 연대가 아니라 파편화된 개인으로 구성된 가족의
균열이 아슬아슬하다. 제 밥벌이에 바쁜 현대판 유목민들. 새삼 생각하노니,
생활의 궁핍은 얼마나 가혹하고 야박한 것인가.
이재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