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이덕규(1961~ )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 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
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
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
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거려서
그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
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
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공자의 말씀 한 자락이 떠오른다. 좋은 시란 '즐겁되 음탕하지 않다'. 이 시가 그렇다.
사물과 인간의 교감이 성적인, 그것도 벌건 대낮에 아주 질펀한 수준의 행위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절실한 현실 경험이 감동의 일반화에 이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그것의 중요한 자질과 요소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농사 체험이 아니었다
면 이 감동 시편은 써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적 주체의 사물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지극하다.
이재무<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