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딸에 관한 위험한 독법 - 김륭
그러니까, 나는 딸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없다
아파트 베란다 마른 빨래처럼 널린 여자들에게 꽃을 안기고 물을 주었지만
쑥쑥 키 자라고 젖무덤 솟아오르는 딸에겐 그저 엉덩이나 두들겨주고
발갛게 달아오른 볼에 입을 맞춰주었을 뿐
딸을 꽃으로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만나기도 전에
사랑해버린 것이다 고백컨대 내가 꾸역꾸역 삼킨 밥알에 관한 탐욕적인 묘사와
단 한 톨도 똥 덩어리로 밀려나지 않을 거란 눈물겨운 진술로 낳은
단 하나의 문장을 사랑니처럼 뽑아낸 것이다
꽃은 늙지 않는다 그러니까, 딸은 바람의 문체로 완성한 꽃이다
딸이 꽃의 뿌리에 발을 담근 것인지 꽃이 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것인지
햇살의 입을 열어 확인할 길 없지만 바람은 언제나
꽁꽁 꽃과 딸을 한데 묶어 피를 돌린다
나는 내 품을 떠난 딸이 보고픈 날이면 꽃이 미워진다 한없이
미워져 복사뼈 걷어차며 딸에게 떠먹인 살이라도 찾아오고 싶은 것인데
그건 곧 깨진 화분 같은 내 몸에서 끓고 있는
피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나는 널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 할 수 있는 것인데
꽃나무 발등 위에 떨어진 꽃잎처럼 주절주절 흩뜨려놓고 사는 것인데
그럴 때면 눈이 빨간 산토끼처럼 꽃밭에 쪼그려 앉아있는
내 성기를 발견하곤 한다
바람이 위험해질 때 새들은 구름을 물어온다 그러니까, 구름은
딸과 꽃이 심겨진 아주 오래된 꽃밭이거나 딸과 내가 함께 덮고 자는 이불이다
갈라선 아내가 키우고 있는 딸에게 모처럼 넣어본 전화를
꽃이 받는 순간 후닥닥 딸은 시든다
그러니까, 나는 딸과 꽃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못 다한 사랑은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턱밑에 붉은 밑줄을 긋고
잘못 살았다, 나는 제대로 늙기도 전에 미치거나 시드는 꽃을
눈물로 읽고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