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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규(1945~ ), '문상'
地上 가득한 죽음 지나 모든 물고기들이 먼저 問喪(문상)을 와 있었다 설악산 열목어도 와서 있었다 나 죄가 많다 문상만은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안면이 있는 버들치 각시붕어 등 몇몇이 나를 알아보는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민물고기를 먹지 못한다 어머니의 내 태몽이 한 마리 잉어였다 그걸 그들이 알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시인의 전언에 의하면 이 시는 민물고기 박사 최기철옹이 92세(2002년 10월 22일)로 민물고기 인생을 끝냈을 때 그를 기리기 위해 쓴 것이다. 평생을 물고기 연구에 전념하신 분답게 그를 문상하러 온 분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설악산 열목어를 비롯한 버들치, 각시붕어 등속이 눈에 띈다. 모두 일급수에만 사는 물고기다. 나같이 급수에도 들지 못하는 죄 많은 중생은 마음이 있어도 가지 못한다. 하지만 먼저 온 문상객들이 시인을 알아보고 문상만은 허락한 것을 보면 그래도 시인은 급수 안에서 노는 청정 물고기가 아닌가.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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