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1964~ ), '정거장에 걸린 정육점'
사랑에 걸린 육체는
한 근 두 근 살을 내주고
갈고리에 뼈만 남아 전기톱에 잘려
어느 집 냄비의 잡뼈로 덜덜 고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에 손을 턴다
걸린 제 살과 뼈를 먹어줄 포식자를
깜박깜박 기다리는
사랑에 걸린 사람들
정거장 모퉁이에 걸린 붉은 불빛
세월에 걸린 살과 뼈 마디마디에
고봉으로 담아놓고 기다리는
당신의 밥, 나
죽을 때까지 배가 고플까요. 당신?
이렇게 듬뿍 근으로 썰어, 먹어 치우는, 또 나오는,
인생의 벌건 정거장에서 깜박깜박 나이가 든, 주기만 한, 기다리기만 한,
먹기만 한, 피 같은, 살 같은, 밑 빠진, 모조리, 구멍 난 사랑.
이제야 깨닫느니. 사랑하노라. 죽도록.
박상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