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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비애 / 김상미
언제나 나는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리고
사랑과 미움에 흔들리고
아름다움에 흔들리고
꽃에 흔들리고
오래된 바위에 흔들리고
물소리에 흔들리고
우연에 흔들리고
밥과 가족에게 흔들리고
삶과 죽음에 흔들린다.
한번 흔들릴 때마다
내 몸의 모든 솜털 유유히 일어서고
나는 바로 서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자잘한 악행 유유히 되풀이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더럽힘에 대한 그리움
나를 내 밖으로 힘차게 내던지는 불가사의한 그 힘
사람들은 그 힘을 연민이라 부르고
나는 그 힘을 끝없는 비애라고 부른다.
끝없는 비애를 먹고 자라고 살찌는 나...
언제나 나는 흔들린다.
노란 은행잎에 흔들리고
황혼에 흔들리고
함성과 침묵에 흔들리고
검은 웃음에 흔들리고
너에게 흔들리고
믿음과 배신에 흔들리고
사라져가는 모든 것에 흔들리고
잡을 수 없는 욕망에 흔들린다.
나로서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끝없는 비애
그것이 내가 발음하는 모든 것들속의 나이고
내가 사는 시대이고
내가 버린 어머니의 영혼이 울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이다.
흔들리는 순간은 짧고,
그 슬픔은 영원하지만
나는 흔들림으로써
내 삶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과도한 이성이 댕강댕강
나를 잘라먹지 못하도록
절망의, 희망의 오래된
녹슨 문들을 삐걱하고 연다.
미친 듯 살과 뼈가 부딪히는
끝없는 비애 화신이 되어
수많은 타인들이 가득탄 광휘의 순간안으로
다시 돌아와 나를 끌어들인다.
온몸이 환한 빛이 될 때까지
온몸이 칠흑 같은 어둠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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