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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1960~ ), '혜초의 시간'
또 다시 황사바람이 불어와 눈 비빈다
이 모진 바람 언제부터 불어왔을까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온 시간
바위가 돌이 되듯 세월 부서지고
돌이 모래가 되듯 시간 쌓였으리
돈황 막고굴에 봉인되어 있던
혜초의 시간 장장 1200년
그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면서 참 많이도 울었으리 눈물 없는
서방정토를 꿈꾸며 그렸을까 둔황벽의 그림을
시간은 바람처럼 왔다 물처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땀 흘리며 그려내는 것
둔황 가는 길 다리 아파 밤하늘 우러르니
캄캄한 저 하늘에 가불가물 별빛 하나
고개 끄덕이며 내 가슴에 불 박힌다
1908년 중국 둔황 석굴에서 발견한 낡은 두루마리. 바로 신라의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필사본.
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 태어나고, 잊혀지고. 오늘 내 시간의 필사본엔 파미르 고원을 넘어
가는 고독한 수도승이.
박상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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