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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일(1961~ ), '새벽촛불' 전문
새벽촛불이 제 몸을 숫돌 삼아 빛을 갈고 있다 뇌천을 마모시켜 만든 확 하나이고, 천상에서 정화수 긷고 있다 정화수 한 사발 내려놓는 가장 완전한 치성은 목욕재계한 자신을 번제(燔祭)하여 바치는 일이었으므로 주위를 비춰 본성을 감춘 죄, 제 갈아낸 서슬로 제 멱을 딴다 연기가 유필(遺筆)하는 상형문자들, 여백이 된 길 더듬어 돌아가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유서를 쓰는 가장 긴 삶을 읽는다 하늘이 바람을 시켜 천기누설을 지운다 탯줄 묶는 어머니 손을 설핏 보았으나, 제단 위 태(胎) 한 더미만 화석처럼 굳고 있다
이 시는 촛불이 붓의 모양과 닮았다는 데 착안하고 있는 것 같다. 촛불은 제 몸을 갈아 빛을 만들어 새벽하늘에 긴 유서를 쓰고는 한 여인의 치성에 기꺼이 번제물이 된다. 초는 다 타고 제단 위에 굳은 촛농과 재를 남긴다. 태(胎) 한 덩어리만 같은.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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