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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1942~ ),'어떤 개인 날' 전문
낡고 외진 첨탑 끝에 빨래가
위험하게 널려 있다.
그곳에도 누가 살고 있는지
깨끗한 햇빛 두어 벌이
집게에 걸려 펄럭인다.
슬픔이 한껏 숨어 있는지
하얀 옥양목 같은 하늘을
더욱 팽팽하게 늘인다.
주교단 회의가 없는 날이면
텅 빈 돌계단 위에 야윈 고무나무들이
무릎 꿇고 황공한 듯 두 손을 모은다.
바람이 간혹 불어오고
내 등 뒤로 비수처럼 들이댄
무섭도록 짙푸른 하늘.
첨탑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하늘은 무척 심심했을 것이다.
빨래는 하늘에 햇빛과 바람과 아득한 높이가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빨래는 '깨끗한 햇빛 두어 벌'이 되고
'집게에 걸려 펄럭이는' 바람이 된다. 위태로운 높이는 하늘
을 긴장시켜 '더욱 팽팽하게' 늘어나게 하고, 시인의 등골이
시리도록 날선 '비수'가 되게 한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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