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 수 8,042 추천 수 5 댓글 0
최영숙(1960~2003), 「감자싹」전문
검은 비닐봉지에 싸여
찬방 속에 박혀 있던
세 개의 감자에 싹이 났다
먹으면 식중독을 일으킨다는 감자싹의
성분은 솔라닌이다 물에 녹지 않아
호흡중추나 운동중추를 마비시킨다고 사전에는
씌어 있다 햇빛도 양분도 없는 곳에서
감자는 어떻게 싹을 틔울 마음이 들었을까
슬픔도 때로는 힘이 된다,
침묵도 어느 땐 필요한 법이다, 그런 것이었을까
비죽이 솟은 노란 싹이 꼭 뿔 같다
제 몸에 뿌리를 박고라도 번식하고 싶은 발아 그 슬픈 정수리
무엇을 찌를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는
내 마음이 나쁘다 이를테면 찬물에 온통 머리를 처박아도
빠지지 않는 사랑 같은 것 추억 같은 것
다 잊어도 나만은 안 잊는다 그런,
잊혀지고 낡아진 꿈을 밀어올리느라 품게 된
독 같은 것 질겨진 혓바닥 같은 것
그 다음에 오는 눈물이라는 것……
감자싹을 도려내는 손길이 아리다
깜깜중에도 눈뜨고 싶은 덩굴 속마음, 내가 너를 버리다니
사랑 평화 그리움 무엇보다 손 뻗어 잡아보고 싶은 푸른 하늘
주섬주섬 싹눈을 주워 흙에 옮긴다 잘 자라 다시 만나자
땅도 햇볕도 물도 없는 세상에 잘못 던져진 감자싹. 하필이면 누군가가 먹으려고
찬장에 넣어 둔 음식에 뿌리를 내린 어린 생명.
그 예쁘고 노란 몸이 새 생명이 아니라 <뿔> 같다고 시인은 안타깝게 말한다.
누가 말리겠는가, 작은 틈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는 저 생명의 고집불통의 본능을.
김기택<시인>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공지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53,258 | 2023.12.30 |
3930 | 빨래하는 맨드라미 - 이은봉 | 風磬 | 26,766 | 2006.07.05 |
3929 | 동네 이발소에서 - 송경동 | 風磬 | 24,317 | 2006.07.05 |
3928 | 사평역에서 - 곽재구 | 風磬 | 22,531 | 2006.08.22 |
3927 | 여름날 - 신경림 | 風磬 | 19,251 | 2006.08.25 |
3926 | 고향 - 정지용 | 風磬 | 19,176 | 2006.08.25 |
3925 | 인사동 밭벼 - 손세실리아 | 風磬 | 17,994 | 2006.08.25 |
3924 | 시를 쓰는 가을밤 - 이원규 | 風磬 | 21,581 | 2006.08.25 |
3923 | 휴전선 - 박봉우 | 風磬 | 23,249 | 2006.08.26 |
3922 | 홍시들 - 조태일 | 風磬 | 19,640 | 2006.08.26 |
3921 | 늦가을 - 김지하 | 風磬 | 17,885 | 2006.08.26 |
3920 | 빛의 환쟁이 - 정기복 | 風磬 | 15,482 | 2006.08.27 |
3919 | 바다와 나비 - 김기림 | 風磬 | 18,991 | 2006.08.27 |
3918 | 木瓜茶 - 박용래 | 윤영환 | 18,896 | 2006.09.02 |
3917 | 白樺 - 백석 | 윤영환 | 15,378 | 2006.09.02 |
3916 | 11월의 노래 - 김용택 | 윤영환 | 32,612 | 2006.09.02 |
3915 | 얼음 - 김진경 | 윤영환 | 19,346 | 2006.09.02 |
3914 | 바람이 불어와 너를 비우고 지나가듯 - 박정원 | 윤영환 | 21,213 | 2006.09.02 |
3913 | 겨울날 - 정호승 | 윤영환 | 16,794 | 2006.09.04 |
3912 | 춘란 - 김지하 | 윤영환 | 20,772 | 2006.09.04 |
3911 | 돌베개의 詩 - 이형기 | 윤영환 | 25,625 | 2006.09.04 |
3910 | 빈집 - 기형도 | 윤영환 | 12,695 | 2006.09.04 |
3909 | 9월 - 오세영 | 風磬 | 13,006 | 2006.09.05 |
3908 | 종소리 - 이재무 | 風磬 | 17,431 | 2006.09.07 |